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 - 귀농하고픈 아들과 말리는 농부 엄마의 사계절 서간 에세이
조금숙.선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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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숙, 선무영 님의 [그 편지에 마음을 볶았다]를 읽었다. 부제는 "오해의 잡초를 헤치고 피어난 이해의 말들"이다. 책 표지 귀퉁이에 '귀농하고픈 아들과 말리는 농부 엄마의 사계절 서간 에세이'리는 설명도 있다. 우선 귀농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고, 이어서 엄마와 아들의 이어지는 편지라니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릴 때에는 성인이 된 자녀들이 혼인을 하지 않아도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설사 혼인을 한다 하더라도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에야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 여러모로 좋지 않을까란 단순한 생각을 했었다. 왜냐하면 연로하신 부모님 두 분만 함께 사는 것을 걱정하는 자녀들의 불안함과 또 아직 혼인하지 않은 자녀가 홀로 어렵게 살아가는 모습을 염려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많이 지켜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거의 대다수의 부모와 자녀들은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살림을 분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품안의 자식이라는 흔한 말처럼 이제 성장한 자녀는 더 이상 부모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헬리콥터 맘과 같은 보호 속에 있으면 퇴보할 뿐 자립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박탈당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와 아들의 사계절 서간 에세이라니 떨어져 살아도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진심을 꾹꾹 눌러담은 편지를 나눌 수 있다면 오히려 같이 사는 것 이상의 정이 생기지 않을까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든다. 귀농을 선택한 아들의 편지와 귀농을 말리는 엄마의 답장이 오고가는 중간에 아버지, 며느리의 편지도 중간에 삽입되어 온 가족이 편지로 소통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제 갓 결혼한 새신랑이 귀농이라니, 그것도 도시에서 충분히 좋은 직장을 얻고 살 수 있음에도 시골로의 귀환이라니 남이라면 그냥 작은 응원을 해주는 것에 그칠지 모르겠지만, 내 자식이라면 아마도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쌍수를 들고 말리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아들인 저자가 귀농을 선택할 수 있는 큰 빽은 뭐니뭐니해도 10년 전에 귀농을 선택한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며 귀촌과 귀농을 별 생각없이 사용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 다 시골 한 적으로 곳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것은 같겠지만, 귀촌은 그저 도시가 아닌 자연을 만끽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고 귀농은 그야말로 논과 밭을 일구는 농부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엄청난 차이였다. 사실 전망 좋은 곳에 시설만 잘 갖출 능력이 된다면 한 적한 곳에 집을 짓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삶의 터전만 바뀌었을 뿐이지 하는 일이나 라이프 스타일에 변화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귀농을 한다는 것은 하루 아침에 오랜시간 농부로 살아온 분들의 영역에 끼어든다는 것이다. 농부의 공동체에 들어간다는 것은 텃새로 무시를 당하고 농삿일을 모른다고 피잔을 듣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어마어마한 육체 노동량을 감당할 자신이 있냐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편지의 엄마가 몇 번이나 강조하듯이 농사짓는 품목들은 높은 수익을 올리기 어려운 구조이고 날씨에 큰 영향을 받기도 한다. 특히 귀농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아킬레스건처럼 다가오는 조언은 시골에는 아이들이 공동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관이 별로 없거나 또래의 아이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과 제대로 된 의료 혜택을 받기가 힘들다는 사실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 젊은 청년 농부들이 무척 행복하게 나온다. 도시의 변변치 않은 삶에서 벗어나 어릴적 엄마와 단둘이 살던 집으로 귀향한 주인공은 엄마 덕에 삼시세끼를 알차게 만들어 먹는다. 영화속에 나오는 단촐하지만 평화롭고 안정된 장면들은 시골 고향집이 없는 게 내심 아쉽게만 느껴질 정도로 매력적이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자연의 흐름과 나와는 무관하게 생존하는 수많은 짐승들과 미생물의 반격이 비지땀을 흘린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기도 하리라. 그 모든 좌절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농삿일을 마다하지 않고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온 많은 분들이 새삼 존경스럽게 다가온다. 별 생각없이 고깃집에서 상추를 리필해주지 않을 때 요즘 채소값이 왜 이렇게 비싸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뉴스에 나오는 불합리한 유통 구조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나와는 상관없는 혹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지 않겠냐고 담념해왔는데, 따지고보면 내가 먹는 모든 것이 결국 농삿일과 연관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지 못하는 과감한 용단을 내린 저자에게 큰 박수를 보내며 좋은 결실을 맺기를 응원한다. 그리고 엄마와 아들의 편지처럼 마음을 나누는 대화들이 많아지길 기원한다. 


"아내는 자신을 감추는 법이 몸에 익었답니다. 보통 사람들은 무얼 입고, 보통 어디서 살고, 보통 무슨 일을 한다는 말에 그렇게 마음이 쓰인다 해요. 무엇이 '보통'이고 어떻게 보통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 모르겠으니, 본인이 무얼 좋아하는지보다 주변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마음이 쓰일 수 밖에 없다 합니다. 자꾸 그런 생각이 행동을 주저하게 만든다나요.(63)"


"'노나메기' 정신이라고 들어봤니. 온몸의 힘을 박박 긁어 낼 때 흘리는 박땀, 안간땀, 피땀. 그렇게 흘린 땀만큼 서로서로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노나메기란다.(154)"


"삶을 향기롭게 하려면 용기가 꼭 함께해야 하는 것 같아. 나이가 들어서도, 소소한 일상에서도,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217)"


"척박함 속에서도 평화로움을 유지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을 수 있다면, 오늘을 사는 나에게도 그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평화가 찾아올 것으로 믿었다.-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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