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괜찮은 해피엔딩
이지선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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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 님의 [꽤 괜찮은 해피엔딩]을 읽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어느 순간 눈물이 맺히고, 놀람의 연속이기도 하고, 저자와 함께 아픈 다리를 이끌고 마라톤을 완주하고, 종국에 가서는 따뜻한 손길로 마음의 위로를 받은 느낌이다. 오래전 뉴스 기사를 통해서 그리고 저자의 첫 책 소식을 통해서 사고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은 첫 느낌은 ‘안타깝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리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그랬다. 엄청난 사고를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으면 사고가 정지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섣불리 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 안다고,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일이 아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간직한 채 저마다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몇 년 전에 외상 후 스트레스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흔히 트라우마라고 말하는 상처가 큰 사건을 겪은 이후에 보이지 않게 마음 속에 남아 지속적으로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트라우마는 크던 작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기에 어떤 경우에는 살아가는데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기도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운전을 하다가 자동차 접촉 사고만 나도 며칠 동안은 운전을 할 때마다 트라우마처럼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까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한다. 사실 이런 스트레스에 대한 접근과 해석이 일반화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분명 예전에도 트라우마로 인해 괴로워하던 사람들이 많았을텐데, 마음과 정신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이들을 사회에서 받아들이지 못해 불행한 삶을 살다가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사람들이 마음 돌보기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저자의 글을 통해서 외상 후 스트레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외상 후 성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상 후 성장’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우연적인 수많은 사건들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데에 커다란 희망을 주는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지난 시간을 떠올릴수록 후회가 되고 다시 돌이키고 싶은 일들이 자꾸 생각난다. 그때 내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A라는 선택이 아니라, B라는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처럼 힘들어하지 않을 수 있을텐데 라는 하나마나 한 후회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한 후회의 시간이 지속되면 무력함에 빠져들고 세상만사가 무미건조해진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가 아니더라도 나중에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반성하고 후회하는 것은 이미 그 일을 경험하고 뼈저리게 아팠기 때문이다. 나의 잘못된 선택에 대하여 이유를 찾아내고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던 과거의 나에게서 벗어나 우리 삶의 굴곡진 여정에서 언제든 비슷한 일이 생겨날 수 있고 그러한 일들을 통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은 나를 성장시킨 것 같다. 


새 책이 나오기까지 공부하며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된 저자의 시간은 타인의 일이라고 잊고 지내왔던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커다란 선물을 전해준 것 같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저자가 학위를 받기 위해 보낸 1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기에, 저자가 준비한 선물을 기꺼이 기쁘게 받을 수 있고 또 저자의 선물에 감동받은 우리들은 격렬한 박수를 보내며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해주길 바라며 또 다른 책을 기대해 본다. 


“나는 사고를 당한 사람인가. 아니면 사고를 만났지만 헤어진 사람인가. 사고와 헤어지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은 더뎠으며 몸이 아픈 만큼이나 마음도 많이 아팠지만 조금씩 조금씩 흘려보내듯 헤어졌다. 나는 음주운전 교통사고의 피해자로 살지 않았고, 그때 그 자리에 마음을 두고 머무르지 않고 매일 오늘을 살았다. 한참 시간이 더 흐르니 그날 밤의 사고는 길을 가다 모르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힌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예상치 못해서 피할 수 없었고 반갑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일이지만 내 어깨를 치고 간 사람의 뒤통수를 잠시 째려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툭툭 털고 가던 길을 다시 가는 것처럼, 사고와 나 역시 그렇게 부딪혀 만났지만 툭툭 털고 헤어져 나는 그 다음의 내 시간을 살았다. 나는 사고와 잘 헤어진 사람이다.(21)”


“어려움이 닥치면 우리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저항도 하고, 한 번 넘어졌더라도 또다시 일어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일은 우리 자신을 그 일이 일어나기 전과는 다른 사람, 다른 인생으로 변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달라진 사람들이 회복하는 과정에서 이전보다 훨씬 성장했다고 느끼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고, 이전에 못 했던 일을 할 수 있다고 느끼는 자기효능감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도 알게 되고, 가까운 사람에게도 더 고마워하고, 괴로움을 겪는 타인에게 더 잘 공감하게 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많은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삶에 감사하며, 인생의 우선순위가 변하기도 합니다. 학자들은 이를 ‘외상 후 성장’이라고 합니다.(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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