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라진 뒤에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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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경 작가의 [그들이 사라진 뒤에]를 읽었다. 몇 명 되지 않는 SNS의 결혼한 지인들은 온통 아이들의 사진으로 도배를 한다. 그들의 자녀들을 한 번도 직접 못 적이 없지만 매일, 며칠 간격으로 업데이트 되는 아이들의 일상을 지켜보노라면 길거리에서 그 아이들을 우연히 만나도 먼저 아는 척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보기엔 그냥 평범하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모습 같은데, 엄마 아빠의 눈에는 두 번 다시 없을 엄청난 이벤트로 보이는 것 같다. 마치 20대의 젊은이들이 온통 셀카로 자신의 얼굴을 찍어 남기다가 나이가 들수록 꽃과 나무 사진으로 가득한 핸드폰의 사진첩처럼, 아이의 행보 하나 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부모가 되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며칠전 버스를 기다리다가 엄마는 밑에서 아이는 엄마 무릎 정도 되는 높이의 길게 늘어진 경계석 위를 신나게 걷는 모습을 보았다. 행여나 아이가 떨어질까봐 신나하는 아이의 어깨를 감싸안은 엄마의 얼굴이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는 참 좋겠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대부분 이렇게 사랑을 받는 아이들이었다. 엄마 아빠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때로는 아이한테 너무 큰 기대와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닐까란 염려가 될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안정된 곳에서 보호를 받고 자란 아이들 중에서도 버릇 없고 자기 멋대로인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그런 아이들을 만나 조금만 마음을 열고 기다려주면 친구가 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작은 사탕 하나로도, 라면 한 그릇이나 햄버거 하나로도 아이들은 쉽게 마음을 열어주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프고 정말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인지 믿고 싶지 않았다. 잊을만 하면 뉴스를 통해 아동학대로 숨진 아이들의 소식을 듣곤 한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가도 자꾸 신경이 쓰일 것 같아 채널을 돌리고 만다. 소설 속에 나온 목격자 ‘김 모 씨’나 ‘최 모 씨’처럼 의심스럽고 안타까우면서도 내 일이 아니니까 괜히 간섭해봐야 피곤해질까 뻔하니까 라는 나태한 생각으로 이 세상 어디선가 고통 속에서 죽어간 아이들을 방치하는데 일조해 왔다. 자책하고 죄책감을 가져봐야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다. 뉴스를 보며 쯧쯧 혀를 차는 정도의 연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핑계를 합리화하는 것일 뿐이다. 


소설 속의 아이들의 연대를 유심히 지켜본 임산부 ‘신수연’과 편의점 알바생 ‘오영준’은 용기 있는 선택과 행동으로 아이들을 죽음의 늪에서 꺼내준다. 우리가 김 모 씨나 최 모 씨 처럼 익명의 존재자로 남지 않고 신수연과 오영준 처럼 이름을 갖고 불리기 위해서는 어쩌면 그들의 행동은 용기있는 선택이 아니라 당위의 행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가 이름으로 갖고 존엄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 걸음 내딛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음을 그 작은 아이들의 희생으로 이 땅에 울림을 주고 있다. 그래서 더 없이 부끄럽고 미안해서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나직이 읊어본다. 


“여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해결이라는 말 자체가 맞지 않았다. 저 집에서 일어난 일을 누가 정확히 알 수 있을까. 이상한 기분이었다. 바로 옆인데, 여자의 집과 똑같은 구조로 생긴 집인데, 그 집에서 일어난 일을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게. 그저 벽 하나에 가려졌을 뿐인데, 그 끔찍한 일이 벌어지도록 아무것도 몰랐다는 게. 

정말 몰랐을까.

마음 깊은 곳에서 떠오른 물음에 여자는 흠칫 몸을 떨었다. 

나는, 정말, 몰랐던가.(121)”


“이런 일이 터지면 사람들이 처음에는 분노하고 서명도 하잖아요. 그런데 오래 못 가요. 사람들은 불편한 건 빨리 잊으려고 하거든요. 왜냐면 자기도 힘이 드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죽어가는 남의 집 아이보다 당장 내 아이 교육 문제가 더 시급하니까. 정치하는 사람들은 잘 알거든요. 투표에 적극적인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그래서 아동 학대 문제는 계속 뒤로 밀려나고 결국 잊혀요. 아이들은 계속 죽고요.(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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