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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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민철 카피라이터의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었다. 부제는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이다. 작년에 [치즈: 치즈 맛이 나니까 치즈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를 읽고 난 후, 습관적으로 난데 없이 어떤 음식을 먹고 나서 혼잣말로 'OO 맛이 나니까 OO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라는 내뱉곤 했다. 뭔가 재미있기도 하고, 후크송처럼 중독성이 있고. 라임이 딱 들어맞는 느낌도 들고 해서 ㅋㅋ. 최근에 저자의 새로운 에세이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를 검색하다 이번 책을 먼저 읽고 싶어졌다. 


요즘은 어떤 책을 읽고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은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고 있다고 답하니, 돌아온 대답은 "정말 작가들은 제목부터 잘 짓는 것 같다'는 말이. 생각해보니 카피라이터라는 저자의 직업이 책 제목에서부터 너무나도 잘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의 모든 기록의 원천이 되는 저장소로 읽다: 인생의 기록, 듣다: 감정의 기록, 찍다: 눈의 기록, 배우다: 몸의 기록. 쓰다: 언어의 기록으로 구분짓어 놓았다. 책의 말미에 "나는 읽고서 쓰고, 보고서 쓰고, 듣고서 쓰고, 경험하고서 쓴다(259)"라는 한 문장으로 그녀가 어떻게 카피라이터로서의 삶을 준비해왔고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나오는 문구를 예로 든 것처럼, "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260)" 우리가 기억하고 생생히 떠올리는 추억의 모습들은 아주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부분에 불과한 것일지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 마는 물줄기처럼 겨우 손바닥에 남은 한방울에 불과할지 모른다. 


몇년 전까지 책을 읽고 마치 컬렉션을 구성하는 것처럼 작가별로 책장을 꾸며여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데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펼쳐보는 일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냥 책장에 꽂아두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책을 읽고 나면 바로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짧은 형태의 독후감을 쓰는게 좋겠다고 결심했다. 어느덧 3년 가까이 독후감을 올리는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책을 읽고 나서 어서 빨리 그 느낌들을 정리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읽는 도중에 이 부분은 나라면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라는 구상도 해보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다시 한 번 필사하며 되새겨보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예전에 읽었던 책들이 회자되었을 때 그리고 누군가에게 책을 권하고 싶을 때 내용을 떠올리기 위해 북스타그램을 열고 그 때 그 시절 그 책을 열독하던 나로 돌아가본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말한 '일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정말로 맞는 말이다. 


"<자신에게 맡겨진 시간 안에서, 일상적인 세계의 일상적인 업무에 불후의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 같지 않은 그런 인물에게는, 진실이 어울리지 않는다.-마이클 커닝햄, 세월> 그렇다면 나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 일상은 바람이 살랑 부는 노천카페에서의 커피가 아닌, 한낮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회사 앞 식당의 점심 속에 있다. 그 일상은 스탠드 불 하나 켜놓고 밤새워 쓰는 글이 아니라 창백한 형광등 빛 아래에서 작성하는 문서 안에 있고, 잘 포장된 초콜릿이 아니라 입 냄새를 없애기 위해 사는 껌 속에 있다. 보고 싶은 책보다는 봐야만 하는 서류 더미에 더 많이 할애된 일상, 좋아하는 사람과의 친말한 소통보다는 의무적으로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더 많이 소모되는 일상, 갓 갈아낸 자몽주스보다는 믹스커피에 더 친숙함을 느끼는 것이 어쨋거나 일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한다.(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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