훠궈 : 내가 사랑하는 빨강 띵 시리즈 8
허윤선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허윤선 에디터의 [훠궈: 내가 사랑하는 빨강]을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8번째 책이다. 훠궈를 처음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니 무려 16년 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도 생각보다 꽤 앞서 훠궈를 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홍대 근처의 어느 훠궈 전문점이었는데, 당시에는 마라가 뭔지도 모를 때였다. 그냥 중국식 샤브샤브라는 것만 듣고 가서 보니 둥그런 냄비에 가운데 물결처럼 흐르는 칸막이가 있어서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에는 홍탕, 다른 쪽에는 백탕을 끓이며 평소 샤브샤브를 먹듯이 고기와 야채와 해물을 넣고 익는 족족 집어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평소 매운 맛을 즐기지 않는터라 홍탕의 넘실거리는 기운이 너무나도 강렬해 섣불리 젓가락을 내밀지 못했는데, 용기를 내어 한 점 집어 맛보니 생각보다 많이 맵지 않고 백탕과는 다른 화끈한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훠궈를 즐길 일이 별로 없었고, 홍대 얘기가 나오면 제일 먼저 그 훠궈집이 떠오르곤 했다. 


요즘엔 그야말로 마라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밀집 상가 지역에는 반드시 마라탕집을 지나치게 된다. 특히나 매운 맛에 대한 열광이 지나칠 정도로, 때로는 익명의 사람들의 위장이 걱정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기에 마라탕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감이라고 하던데,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이 나거나 열이 나는 순간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호르몬이 나온다고 하니, 매운 음식을 먹고 스트레를 푼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닌것 같다. 아무튼 저자의 훠궈 사랑은 정말로 대단해서 담낭 제거 수술을 한 직후에도, 홍콩의 훠궈집을 지도 없이도 찾아내는 정도라고 하니 책 제목을 [내가 사랑하는 빨강]이라고 짓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보인다. 근래에는 훠궈 전문점을 가본 적이 없기에 우리나라에 이렇게 다양한 훠궈 체인점이 있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가 소개하는 훠궈를 먹는 방식에 대한 설명을 보니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한 번에 채소를 다 때려 넣었던 지난 날이 떠올랐다. 펄펄 끓는 홍탕, 백탕에 오랜 시간 잠수했던 채소들은 당연히 본연의 맛을 잃고 바닥에 가라앉은 채 누군가 어서 집어 가기를 기다리겠지만, 이미 풀죽은 채소들은 누군가의 선택을 받았다 하더라도 앞접시에 머물며 버려지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저자가 소개한 훠궈 전문점은 언젠가 한 번 가서 책에 나온 매니저들이 만들어준 소스에 홍탕의 기운을 입은 탱탱한 채소를 찍어 맛보고 싶다. 빨간 맛을 괜히 아이돌이 노래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맹장도 약간의 기능은 한다는 이론이 있을 정도인데, 쓸개는 분명한 역할이 있다. 물론 의학적 관점에서 쓸개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살 수 있는 기관이다. 만약 여러분의 담낭에 문제가 생긴다면 의사들은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떼어버리자고 할 것이다. 담낭 따위 없어도 생명에 문제가 없다니 그 점은 다행스럽지만 쓸개가 없으면 간에서 만든 담즙을 보관해둘 수가 없다. 그래서 담낭을 제거한 많은 사람들이 소화불량에 시달린다.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으면 '폭풍 설사'가 예정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84)" 


"나는 마음의 추위도 제법 탄다. 겨우 어린애였을 때도 나는 마음이 줄곧 추웠다. 왜 그렇게 허구한 날 마음이 쓸쓸하고 추웠는지 모르겠다. 빨리 어른이 되길 갈망했지만 되어서도 그랬다. 친구도 연인도 있었지만 하하호호 떠드는 시간이 끝나면 어김없이 마음이 추웠다. 붐비는 거리에 나만 혼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외로움인 줄 알았다. 외로움은 사람을 만나면 되는 줄 알았고, 나의 외로움을 없애줄 사람이 나타나리라고 생각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나는 외로웠던 게 아니라 고독함을 느꼈던 것이라는 걸. 돌아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의 쓸쓸함, 변해가는 것들에 대한 애석감일 때도 있었다.(159-1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