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인기가요 - 오늘 아침에는 아이유의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 아무튼 시리즈 39
서효인 지음 / 제철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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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 시인의 [아무튼, 인기가요]를 읽었다. 부제는 “오늘 아침에는 아이유의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이다. 아무튼 시리즈 39번째 책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가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오죽하면 18번이라는 자기만의 노래를 하나씩은 마음 속에 품고 살기에 언제 어디서든 노래 한 곡 부르라고 청하면 못 이기는 척 부르지 않는가? 특히나 가요와 관련된 TV 프로그램은 십수년 째 사골 우려먹기를 반복하고 있어도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는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흥의 민족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지금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나도 한때 노래방 죽돌인적이 있었다. 시험이 끝난 날에는 서너시간을 쉬지 않고 노래만 부르기도 했다. 틈만 나면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미친듯한 고음의 노래만 골라 올라가지도 않는 음을 내려고 애썼다. 부끄러움도 없었는지 그러거나 말거나 애틋한 발라드에 대한 애착은 청소년기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 인기가요 프로그램에 나오는 노래들이 뭔지, 저 가수는 누구인지, 아이돌이 너무도 많아서 그룹 이름도 헷갈리기 마련인데, 시인님은 정말로 대단하고 끈질긴 최신가요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쳅터가 끝날 때마다 올려준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들은 예전 노래들 빼고는 죄다 모르는 노래 투성이인지라, 이제부터 나도 오마이걸이나 이달의 소녀 노래를 들어야 하는 것인가 갸우뚱하게 된다. 

라디오를 좋아하는 이유는 시인님이 말한 것처럼 우연히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기도 하고, 우연히 좋아하는 가수가 게스트로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냥 음원사이트를 통해서 듣고 싶은 노래를 선택해서 들어도 되겠지만 라디오에서 그럴듯한 사연과 신청곡으로 나오는 노래는 뭔가 색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리고 신청자의 사연에 빙의되어 평소에는 잘 들리지 않던 애절한 가사말이 폐부를 뚫고 들어오는 것처럼 가슴이 아리는 경우도 있다. 이승환의 ‘가족’이 들려오면 겨울의 추위가 시작되는 11월의 어느 날 연병장에서 날아오던 축구공을 멍하니 쳐다보던 내가 생각나고, 윤종신의 ‘동네 한바퀴’를 들으면 로마의 400년 된 수도원의 작은 방에서 낯선 언어와 시름하던 내가 생각난다. 좋아하는 가요는 단지 그 가수에 대한 애정만이 아니라 그가 부른 노래를 통해서 남들은 전혀 알 수 없는 나만의 역사를 재생시킨다. 마치 타임슬립하듯이 과거의 나를 만나게 해 준다. 부끄럽기도 하고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모습이기도 하지만 결코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없는 나의 역사를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좋아했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의 엇나간 어느 부분을 치유할 수 있다면, 3분 동안이나마 누군가를 진심으로 그리워하고 행복을 빌어줄 수 있다면 우리에게 인기가요가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3학년 1반은 중앙 정원 왼쪽 통로에 모였다.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고 그 상태로 엎드렸다. 엎드려뻗쳐에도 단계가 있다. 1단계는 손바닥을 펼 수 있다. 2단계는 주먹을 쥐어야 한다. 3단계는 깍지를 끼는 것이고, 4단계는 손 대신 머리를 박는다. 깍지보다 머리가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선생 말대로 돌대가리여서 그랬던 건 아니겠지. 깍지 낀 손으로 온몸의 무게를 지탱하면 손가락 피부가 벗겨지기도 했다. 머리로 온몸의 무게를 지탱하면 폭탄이 된 것만 같았다. 이러다 펑 터져버리는 건 아닐까? 진화 이전의 자세로 중력에 저항하고 있노라면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우리가 왜 이러고 있지? 지난 중간고사에서 꼴찌를 한 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이러고 있지? 담임이 얼차려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이러고 있지? 늘 이래 왔기 때문이다.(43)”

이 부분을 읽으며 순간 감정이입되어 분노가 치밀어오르면서도 헛웃음이 나왔다. 해보지는 않았지만 3단계 깍지를 끼고 엎드려뻗쳐의 고급 단계로 엇깍지가, 한 단계 더 위로 트위스트 깍지가 있다고 한다. 사람이 그렇게 엎드려뻗칠수가 있나? 그리고 머리를 박는 것은 요령이 생기면 엎드려뻗쳐보다 한결 편하다는 건 안비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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