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0 - 소유의 문법
최윤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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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2020]을 읽었다. 대상 수상작으로 최윤 [소유의 문법]이 우수작품상으로 김금희 [기괴의 탄생], 박민정 [신세이다이 가옥], 박상영 [동경 너머 하와이], 신주희 [햄의 기원], 최진영 [유진]이 실려 있고, 기수상작가 자선작으로 장은진 [가벼운 점심]이 수록되어 있다. 여느 문학상 작품집 보다 한 편, 한 편이 가진 독특한 매력에 빠져들게 만드는 힘을 가진 훌륭한 작품들이었다. 특히 이미 작년에 대상 수상으로 자선작이 수록된 장은진 작가의 [가벼운 점심]은 항상 부정적인 시선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던 아버지의 외도를 이해하게 된 아들의 10년을 담아내 적지 않은 여운을 남겼다. 

누군가 그랬다. 하늘이 더 가까운 곳에 살게 되면 날씨에 따라 더욱 기분이 좌우되는 것 같다고.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칠흙같은 어둠과 커다란 통 유리창으로 보이는 흔들리는 억새들의 춤사위를 보면서 자연이 가진 치유의 힘과 무한함에 쉼없이 감탄하다가도 어느새 여지없이 홀로 그 광경을 바라봐야만 하는 현실에 울컥 외로움이 밀쳐 올라오곤 한다. 어차피 함께 있을 때에도 동일한 시간을 보냈음에도 모두가 떠나버린 끝자락이 남긴 을씨년스러움은 비단 흐린 날의 기운만은 아닌듯 싶다. [소유의 문법]에서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은사가 어떻게 알게되었는지 자폐증을 앓고 있는 딸과 지낼 수 있도록 산중의 집을 맡기게 된다. 갑작스럽게 고성을 지르는 딸 동아의 증세는 산중의 집에 살면서 조금씩 나아지는듯 하고 동아의 아빠는 시간이 지나며 산중 마을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되고, 마을 사람들은 은사를 몰아내기 위해 은사의 집을 거주하고 있는 아마도 동아의 아빠처럼 은사와 지인이었을 P의 소유권으로 이전시키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마을 사람들의 이기적으로 무모한 시도는 엄청난 폭우와 산사태로 무마되어버리지만, 아빠를 무사히 폭우 속에서 살려낸 동아의 고성은 아마도 우리가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것을 끊임없이 욕구하는 집착에 대한 호소였을지 모른다. 

[가벼운 점심]에서 아버지는 10년 만에 할아버지의 장례 때문에 고국에 돌아오게 된다. 아들은 왜 그렇게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버린 것이 아닌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어느 덧 자신의 아이를 가진 애인과 결혼을 앞둔 상태이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홀로 3일간 울음을 참지 못하는 역할을 맡은 것처럼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우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버지를 배웅하며 아들은 아버지와 햄버거 집에서 마지막 정찬을 하게 된다. 고기를 잘 소화하지 못해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던 아버지가 아무렇지 않은 듯 햄버거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들은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떠난 이유를 묻게 된다.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에,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20년을 버티다 결국은 그렇게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를 10년 전이라면 아마도 이해할 수 없었을 테지만, 이렇듯 가벼운 점심을 먹으며 어느덧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될 아들은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생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 뚜렷한 형태를 갖추지 않은 아기는, 커다란 점의 형태로 흑회색 부채꼴 안에 떠 있었다. 아기는 작은 잠수함 혹은우주 캡슐 안에 담긴 것처럼 보였다. 아기를 감싸고 있는 어두운 바탕은 거칠게 폭풍우 치는 바다 같기도 하고, 신비한 우주의 어딘가를 찍은 사진 같기도 했다. 어쩌면 저 작은 ‘한 점’에게 그곳은 망망한 바다이기도 우주이기도 할 것이다. 흑회색의 거친 질감 때문인지 처음 윤주가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아기가 몹시 외로워 보인다고 느꼈다. 아무도 없고, 아무도 다가갈 수 없는 어두운 곳에 갇혀 혼자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지내는 ‘한 점’ 사람의 외로움. 사람은 시작부터가 외롭구나. 절대 고독과 암흑 속에서 살아가는 거구나. 그러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윤주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야만날 수 있어, 라고 말해 주었다. 윤주의 말대로 녀석이 그걸 견디며 자라는 중이란 생각이 들었을 때는 눈물이 웃음으로 바뀌었다. 녀석은 거친 바다와 우주를 제 영역으로 만들어 가며 나와의 거리를 조금씩 좁히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고, 그렇게 생겨났던 것이다.(286-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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