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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 제155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5월
평점 :

삶의 크고 작은 일들이 가져오는 슬픔, 자신의 기억과 화해를 이루는 순간, 상처를 어루만지는 누군가의 손길 등 여섯 편의 단편을 담고 있는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저마다의 아픔을 잔잔한 물결 같은 감동으로 치유한다.
«성인식»
죽은 딸, 스즈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바라보며 후회와 상실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미에코와 이쿠미. 시간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아픔에서 그들의 엉뚱한 계획은 미약하게나마 그들의 삶에 빛을 비춘다.
스즈네를 위해서라기보다 자신들을 위해서였다. 우리는 늘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슬픔을 어느 시점에서는 과감하게 떨쳐내야 했다.
나와 미에코에게도 성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결코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았던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과 치유와 회복의 순간들.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용서하는 방법과 후회로 얼룩진 기억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언젠가 왔던 길»
매미가 우는 여름날, 교코는 엄마가 아프다는 동생의 연락으로 자신에게 가혹했던 엄마에게 찾아간다. 모녀(母女)라는 미묘한 관계에 더해진 자신에게 모질게만 굴던 엄마에 대한 원망.
어렸을 때는 거대해 보였던 엄마가 이제는 아주 작고 연약해 보이는 교코는 엄마가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부, 잊은 것이다. 내가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었던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예쁨 받는 남동생과 죽은 언니 사이에서 엄마에게 늘 서운했던 교코. 언제나 그녀만의 엄격한 기준에 딸 교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엄마. 그녀는 딸이 찾아온다는 소식에 필사적으로 화장을 하고 반듯한 옷을 찾아 입지만 망가진 자신의 모습을 감추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녀는 평소 요양사에게 말하듯, 꼭꼭 감춰두었던 진심을 드러낸다.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가족에게 있었다는 진심을. 용서와 화해. 엄마에게 또 올 거란 말을 남기고 떠나는 교코.
계속될 것만 같던 무더운 여름도 코스모스 꽃이 한들거리는 선선한 가을로 옮겨가고 삶을 짓누르던 원망과 상처도 이해와 용서 속에 삶은 가벼이 다시 시작된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눈앞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다. 그 거울 한가득 바다가 펼쳐진다.
자신의 잘못으로 삶의 많은 곡절을 겪은 이발사가 차린,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그를 찾아온 젊은 남자에게 자신의 삶을 들려주는 이발사.
자신의 잘못을 담담히 고백하며 아내와 자식과 이별하게 된 사연을 들려주는 그와, 그의 손길에 어린애가 된 기분이 드는 손님은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다. 그리고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단 한 문장으로 말한다. 다음 주에, 결혼합니다. 거울에 푸른 바다와 하늘만 가득한 그곳에서 그들―아버지와 아들―은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 사과와 용서, 사랑, 추억, 그리움의 모든 감정을 차분하고도 덤덤하게 내려놓는다.
나는 낡은 앨범을 덮듯이 유리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멀리서 온 편지»
일에만 빠져 가족에게 소홀한 남편 다카유키에게 서운한 쇼코는 하루카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간다. 과거 연애시절과 현재의 결혼생활이 얼마나 다른지를 깨닫고 남편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서도 남편이 사과하고 자신을 데려가길 원하는 쇼코는 그곳에서 자신의 과거 연애편지를 본다. 어설픈 표현, 유치한 문장 속 지금과는 다르던 그때. 그리운 글자들이 눈으로 날아들었다.
이별 재회 결혼의 과정을 거쳐 가정을 이룬 다카유키와 쇼코. 사소한 일에 소중한 순간들을 낭비하는 그녀에게 사치스러운 고민을 질색하는 할아버지와 그녀를 걱정하는 할머니는 과거 혹은 미래의 편지를 보낸다.
그들의 편지를 통해 그녀는 결심한다.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편지 단 한 통만을 남기기로. ‘너를 좋아해. 나랑 사귀자’라는 단 두 줄의 편지는 마법처럼 잊고 있었던 사랑의 순수함을 회복시킨다.
«하늘은 오늘도 스카이»
부모로부터 학대당하면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은 아카네와 모리시마 하루타의 우연한 만남. 가출을 꿈꾸고 몸을 숨기며 삶에서 도망가려는 두 아이.
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초록, 파랑의 색으로 가득하지만 두 아이는 세상의 여러 빛깔과는 달리 가슴 속에 늘 어두운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파란 바다로 향한다. 그러나 곧 어둠이 찾아오고, 하늘이 어두워지면 현실의 빛이 아카네의 꿈과 모험을 아무 쓸모없는 잡동사니 장난감으로 비춘다.
그런 그들에게 찾아온 따뜻한 손길. 진정한 의미의 안락함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에,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어른들에게 소리친다. 어른들에 의해 훼손당한 아이들은 푸른 멍과 새빨간 상처를 안고 있지만 하늘은 여전히 파랗다.
… 오늘도 하늘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의 스카이. 바다는 바보 같이 블루.
«때가 없는 시계»
앨범을 들여다보듯, 삶의 환희와 고통의 순간에 멈춘 시계가 있는 시계포를 찾은 그. 아버지의 유품을 들고 간 그곳에서 부인과 결혼했을 때의 시간, 딸이 태어났을 때의 시간, 그리고 딸이 죽었을 때의 시간과 부인이 떠났을 때의 시간을 간직한 주인을 만난다.
그에게 시계 수집은 가족 앨범 같은 것인 모양이다.
두 달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추억에 젖어드는 그는 당시 어린 아이치고는 드물게 수많은 사진의 피사체가 된 자신과 형에 비해, 앨범에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많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언제나 사진을 찍어주는 쪽은 아버지였기에.
그러면서도 “누구나 시곗바늘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겠죠.”라는 주인의 말에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하는 그는, 아버지의 유품이 가짜 시계라는 말을 듣고 반색하는 듯 대답하는 그는 자신이 아버지를 꼭 닮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노인은 다시 자신의 시간 속으로 침잠하고, 그는 아들로서 같은 남자로서 아버지를 이해한다.
누구나 갖고 있는 상처, 아픈―잊고 있던―기억, 전하지 못한 진심 등 이 모든 것은 우리 삶에 깃든 이야기들이다. 그것을 슬픔 속에서 스스로 찾아낸 극복의 방법으로, 이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용기 내어 전한 진심으로,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로, 생각지 못했던 추억으로 다친 마음이 아물기 시작할 때, 삶은 또 한 걸음 나아간다. 시간이, 계절이, 바다가 흐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