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읽어야 할 명심보감 - 읽으면 힘을 얻고 깨달음을 주는 지혜의 고전 삶을 일깨우는 고전산책 시리즈 3
미리내공방 지음 / 정민미디어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이 힘들고 도덕적 신념에 균열이 일 때, 마음이 어지럽고 가고자 했던 길에서 자꾸만 벗어나게 될 때 우리는 좋은 글이 담긴 책을 찾는다. 그럴 때, 명심보감(明心寶鑑)은 우리에게 충고나 조언이 될 수도, 따끔한 가르침이 될 수도 있는 시대를 초월한 보물 같은 책이다. 항상 자신의 말과 행동을 반성하는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를 담아 엮은―마음을 밝히고 보물과 같은 거울로서의 교본인―명심보감, 분명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야 시대를 초월한 인생의 지침서임에 틀림없다.


 명심보감의 첫 번째 편은 계선편(繼善篇)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선을 계속 행하라는 금언을 담고 있다. 단절된 선(善)이 아닌 끊이지 않는 선의 추구는 작은 선일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심지어 남이 내게 악하게 대할지라도 선이 행해져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밖에도 권선징악의 의미를 담고 있는 천명편(天命篇), 효(孝)에 대해 역설하는 효행편(孝行篇), 자신의 분수를 지킴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는 안분편(安分篇) 등의 격언은 마음을 다스리고 진정한 삶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전해준다.


 책을 읽으며 안분편의 ‘만족함을 알아 늘 넉넉하면 평생 욕됨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그칠 줄을 알아 늘 그치면 평생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만족할 줄 앎을 뜻하는 이 문장에서 만족할 줄도 그칠 줄도 모르는 욕망의 추구가 우리에게 어떤 화를 불러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생각은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에 가닿았다.

 분수를 몰라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모든 정치적 이슈를 차치한―정부의 무능 등―세월호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은 만족할 줄도 그칠 줄도 모르는 탐욕과 부정부패의 결과물이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생긴 무자비한 규제완화의 틀 안에서 청해진해운은 18년 된 배를 일본에서 들여왔고 여객선의 수직 증축을 하고서도 보완 조처를 하지 않았다. 중요한 장비가 고장 났지만 수리하지 않았고, 승무원의 절반이 비정규직 단기계약으로 고용되었으며 적정량의 세 배나 되는 화물을 실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안전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경제발전에 있어 발목을 잡는다는 이유로 규제를 ‘쳐부숴야 할 원수’에 빗댄 정부, 더 싼값에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그저 물질적 욕망만을 추구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만들어낸 삭막한 현실 속 이 문장은―그리고 명심보감 속 수많은 문장은― 모래 속 진주처럼 빛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광주 5월 민주항쟁의 기록, 전면개정판
황석영.이재의.전용호 기록, (사)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 창비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바라보고 반성하는 민족만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내가 읽은 민주주의에 관한 책의 한 구절이다. 그 책에선 전쟁 범죄자들에게 참배하는 일본 아베 총리와 나치 희생자들 앞에 참회하는 독일 메르켈 총리를 비교하는 의미로 씌었지만,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을 읽는 동안에도 이 구절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무자비한 국가 폭력으로 학살당한 사람들의 처절한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2008년 보수정권이 집권하면서부터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시작되어 2017년 개정판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영국의 「대헌장」,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등과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5·18 기록물. 이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세계사적 사건이자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주화운동임에 틀림없다.
 전두환은―그리고 그를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하는 사람들은―5·18을 ‘폭동’이 아니고선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5·18을 ‘민간인 학살’을 아니고선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저지른 살육전. 

 도대체 이 엄청난 국가폭력의 도가니에서 양심과 분노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 무슨 수로 저항하며,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헬기까지 동원한 시위진압의 과정은 젊은 사람이면 남녀를 불문하고 구타하여 길바닥으로 질질 끌고 나왔고, ‘자위권 발동 지시’후부터는 시민에 대한 무차별 사격으로 살상행위를 했다. 청년, 학생, 노인, 어린이, 부녀자 등 왜 죽어야하는지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 막강한 화력을 갖춘 계엄군과 맞서 싸워 이긴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목숨을 건 투쟁을 선택한 사람들…. 분노와 격정, 비명과 환희, 삶과 죽음이 어지럽게 교차하면서 도심은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형상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 부패된 시신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유가족들은 오열하다 쓰러졌다. 무자비한 구타와 인간적 모멸감, 살상행위는 계속되었고 그 끔찍한 비극에서 살아남았던 많은 사람들도 후유증이나 정신질환을 앓다가 사망했다. 
 계엄군의 학살은 어린이들에게조차 무차별 총격을 가했고, 시민들이 무장으로 대응하자 보복은 더욱 심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언론들은 진실을 외면한 채 광주를 고립시켰고, 광주의 진실을 알린 건 외신 기자들이었다.

 “무질서와 폭력이 난무하는 ‘폭동’(violence)이 일어난 곳이 아니라 여자, 노약자, 어린이 가리지 않고 김밥과 과일 등 음식물을 차에다 올려주는 ‘봉기(insurrection)의 도시’였다.”

 시민들의 자기희생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 그리고 자신들의 정당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항쟁을 할 수 있었던 그들은 항쟁의 성격을 ‘과잉진압에 대한 저항’을 넘어서 ‘군사쿠데타를 거부하는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했다. “항쟁자의 눈빛은 차분했다. 그러나 죽음을 예고하고 있었다.”는 미국 「볼티모어 썬」의 브래들리 마틴의 글은 윤상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5·18민주화운동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오늘의 패배가 영원한 패배가 아닐 것임을 알았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에도 최후의 한사람까지 싸울 것임을 다짐했다. 

 “… 전두환 살인마가 우리 부모형제들을 무차별 살육하고 있다. 오늘도 암매장한 시신들을 찾아왔다. 소식을 모르는 행방불명자들이 이미 수백 명이 넘는다. 자유와 민주를 위해 싸우다 비통하게 숨져간 열사들의 숭고한 뜻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싸워야 한다. …”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던진 시민들을 군홧발로 짓밟던 그들은 항쟁이 끝나고 난 뒤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역사를 왜곡, 폄훼함으로써 자위하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훼손한다. 12·12쿠데타를 ‘군사반란’으로,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한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곡을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바라보고 반성하지 않는 그들에게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37주년에서 1980년 5월 18일이 생일이자 아버지 사망일인 김소형 씨를 안아주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일부 전한다.

 “… 저는 먼저 80년 오월의 광주시민들을 떠올립니다.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이웃이었습니다. 평범한 시민이었고 학생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권과 자유를 억압받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 1980년 오월 광주는 지금도 살아있는 현실입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 비극의 역사를 딛고 섰습니다. 광주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버티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 5·18은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이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오월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룩된 이 땅의 민주주의의 역사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 완전한 진상규명은 결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식과 정의의 문제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가꾸어야할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입니다.
… 수많은 젊음들이 5월 영령의 넋을 위로하며 자신을 던졌습니다.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을 때, 마땅히 밝히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위해 자신을 바쳤습니다.
… 오월 광주의 시민들이 나눈 '주먹밥과 헌혈'이야말로 우리의 자존의 역사입니다. 민주주의의 참 모습입니다.
…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대한민국이 새로운 대한민국입니다. 상식과 정의 앞에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숭고한 5·18정신은 현실 속에서 살아숨쉬는 가치로 완성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삼가 5·18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 제155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의 크고 작은 일들이 가져오는 슬픔, 자신의 기억과 화해를 이루는 순간, 상처를 어루만지는 누군가의 손길 등 여섯 편의 단편을 담고 있는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저마다의 아픔을 잔잔한 물결 같은 감동으로 치유한다.


«성인식»

 죽은 딸, 스즈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바라보며 후회와 상실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미에코와 이쿠미. 시간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아픔에서 그들의 엉뚱한 계획은 미약하게나마 그들의 삶에 빛을 비춘다.


 스즈네를 위해서라기보다 자신들을 위해서였다. 우리는 늘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슬픔을 어느 시점에서는 과감하게 떨쳐내야 했다.

 나와 미에코에게도 성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결코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았던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과 치유와 회복의 순간들.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용서하는 방법과 후회로 얼룩진 기억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언젠가 왔던 길»

 매미가 우는 여름날, 교코는 엄마가 아프다는 동생의 연락으로 자신에게 가혹했던 엄마에게 찾아간다. 모녀(母女)라는 미묘한 관계에 더해진 자신에게 모질게만 굴던 엄마에 대한 원망.

 어렸을 때는 거대해 보였던 엄마가 이제는 아주 작고 연약해 보이는 교코는 엄마가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부, 잊은 것이다. 내가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었던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예쁨 받는 남동생과 죽은 언니 사이에서 엄마에게 늘 서운했던 교코. 언제나 그녀만의 엄격한 기준에 딸 교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엄마. 그녀는 딸이 찾아온다는 소식에 필사적으로 화장을 하고 반듯한 옷을 찾아 입지만 망가진 자신의 모습을 감추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녀는 평소 요양사에게 말하듯, 꼭꼭 감춰두었던 진심을 드러낸다.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가족에게 있었다는 진심을. 용서와 화해. 엄마에게 또 올 거란 말을 남기고 떠나는 교코.

 계속될 것만 같던 무더운 여름도 코스모스 꽃이 한들거리는 선선한 가을로 옮겨가고 삶을 짓누르던 원망과 상처도 이해와 용서 속에 삶은 가벼이 다시 시작된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눈앞에는 커다란 거울이 있다. 그 거울 한가득 바다가 펼쳐진다.


 자신의 잘못으로 삶의 많은 곡절을 겪은 이발사가 차린,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그를 찾아온 젊은 남자에게 자신의 삶을 들려주는 이발사.

 자신의 잘못을 담담히 고백하며 아내와 자식과 이별하게 된 사연을 들려주는 그와, 그의 손길에 어린애가 된 기분이 드는 손님은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다. 그리고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단 한 문장으로 말한다. 다음 주에, 결혼합니다. 거울에 푸른 바다와 하늘만 가득한 그곳에서 그들―아버지와 아들―은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 사과와 용서, 사랑, 추억, 그리움의 모든 감정을 차분하고도 덤덤하게 내려놓는다.


 나는 낡은 앨범을 덮듯이 유리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멀리서 온 편지»

 일에만 빠져 가족에게 소홀한 남편 다카유키에게 서운한 쇼코는 하루카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간다. 과거 연애시절과 현재의 결혼생활이 얼마나 다른지를 깨닫고 남편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서도 남편이 사과하고 자신을 데려가길 원하는 쇼코는 그곳에서 자신의 과거 연애편지를 본다. 어설픈 표현, 유치한 문장 속 지금과는 다르던 그때. 그리운 글자들이 눈으로 날아들었다.

 이별 재회 결혼의 과정을 거쳐 가정을 이룬 다카유키와 쇼코. 사소한 일에 소중한 순간들을 낭비하는 그녀에게 사치스러운 고민을 질색하는 할아버지와 그녀를 걱정하는 할머니는 과거 혹은 미래의 편지를 보낸다.

 그들의 편지를 통해 그녀는 결심한다.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편지 단 한 통만을 남기기로. ‘너를 좋아해. 나랑 사귀자’라는 단 두 줄의 편지는 마법처럼 잊고 있었던 사랑의 순수함을 회복시킨다.


«하늘은 오늘도 스카이»

 부모로부터 학대당하면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은 아카네와 모리시마 하루타의 우연한 만남. 가출을 꿈꾸고 몸을 숨기며 삶에서 도망가려는 두 아이.

 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초록, 파랑의 색으로 가득하지만 두 아이는 세상의 여러 빛깔과는 달리 가슴 속에 늘 어두운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파란 바다로 향한다. 그러나 곧 어둠이 찾아오고, 하늘이 어두워지면 현실의 빛이 아카네의 꿈과 모험을 아무 쓸모없는 잡동사니 장난감으로 비춘다.

 그런 그들에게 찾아온 따뜻한 손길. 진정한 의미의 안락함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된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에,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어른들에게 소리친다. 어른들에 의해 훼손당한 아이들은 푸른 멍과 새빨간 상처를 안고 있지만 하늘은 여전히 파랗다.


 … 오늘도 하늘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의 스카이. 바다는 바보 같이 블루.


«때가 없는 시계»

 앨범을 들여다보듯, 삶의 환희와 고통의 순간에 멈춘 시계가 있는 시계포를 찾은 그. 아버지의 유품을 들고 간 그곳에서 부인과 결혼했을 때의 시간, 딸이 태어났을 때의 시간, 그리고 딸이 죽었을 때의 시간과 부인이 떠났을 때의 시간을 간직한 주인을 만난다.


 그에게 시계 수집은 가족 앨범 같은 것인 모양이다.


 두 달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추억에 젖어드는 그는 당시 어린 아이치고는 드물게 수많은 사진의 피사체가 된 자신과 형에 비해, 앨범에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많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언제나 사진을 찍어주는 쪽은 아버지였기에.

 그러면서도 “누구나 시곗바늘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겠죠.”라는 주인의 말에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하는 그는, 아버지의 유품이 가짜 시계라는 말을 듣고 반색하는 듯 대답하는 그는 자신이 아버지를 꼭 닮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노인은 다시 자신의 시간 속으로 침잠하고, 그는 아들로서 같은 남자로서 아버지를 이해한다.


 누구나 갖고 있는 상처, 아픈―잊고 있던―기억, 전하지 못한 진심 등 이 모든 것은 우리 삶에 깃든 이야기들이다. 그것을 슬픔 속에서 스스로 찾아낸 극복의 방법으로, 이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용기 내어 전한 진심으로,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로, 생각지 못했던 추억으로 다친 마음이 아물기 시작할 때, 삶은 또 한 걸음 나아간다. 시간이, 계절이, 바다가 흐르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을 지키는 법 - 천재 뇌신경과학자가 알려주는
조나 레러 지음, 박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어떻게 사랑이 지속될까? 무엇이 사랑을 지속시킬까? 왜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을까?’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된 이 책은 각자가 ‘사랑’이라고 불렀던 모든 행동과 기억을 되짚어볼 수 있도록 하며 그저 감정적 바다에 몸을 던지는 게 사랑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어린 시절 형성된 애착관계의 중요성과 부부싸움이 한창일 때도 용서에 대해 생각해야하는 이유를 제시함으로써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육아지침서이자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결혼생활을 바로잡을 수 있는 안내서가 되기도 한다.
 삶의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애착관계―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분리가 감정적 손상과 명백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 혹은 애착의 질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건강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나 어린 시절 안정된 애착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삶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비교한 실험에서 애정 없이 자란 사람들이 정신병 진단을 받을 확률이 3배, 이상 불안 증세를 보일 확률이 5배… 더 높았다는 사실 등―는 수많은 쥐 실험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피난, 위탁 가정의 사례로 알 수 있듯 사랑하는 능력을 결정짓는 주된 요인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포함한 사랑과 관련된 신경과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서적들은 항상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부모의 사랑이 아이의 감정 조절 방식을 확연히 바꿀 수 있고 이는 훗날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양육의 질이 지능 발달에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오로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과 엄청난 노력이 더해져야만 한다는―이 슬픈 사실은 많은 부모들이 오직 자식을 위해 자녀들과 보내야 할 시간을 경제적인 이유로 전부 일에만 쏟아 붓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비극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사실과 더불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쉽지 않고 언제나 자기 자신을 시험에 빠지게 만들며 스스로 어떤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는 것, 즉 희생의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한 내용 역시 간과하지 않는다. 다만 여러 해 동안 아이를 키우며 마주할 모든 좌절을 초월할 정도로 견고한 감정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강조할 뿐이다.

 사랑은 우리 삶의 모순을 사라지게 할 수 없다.
 그러나 모순 하나를 더함으로써 우리가 그 모든 걸 받아들이게 한다.

 «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 프롬은 ‘훈련, 집중, 인내, 신념, 겸손’을 사랑에 필요한 특성으로 열거했다. 이는 무엇보다 결혼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들일 것이다. 지속적인 활동에 헌신한다는 의미인 결혼에서 사람들은 나와 똑같거나 비슷한,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배우자로 꼽는다. 하지만 레너는 제인 오스틴과 연구자들을 언급하면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감정을 다루는 기본 철학―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2010년 부부 2만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부부간 유사성은 부부 만족도에 0.5%도 기여하지 못했다는 결과가 있다. 즉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 서로의 차이에 대처하는 방법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랑―결혼―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사랑을 지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높은 이혼율은 상대의 감정을 느끼는 것, 공감한다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사랑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단어인 지구력, 인내심, 투지를 가슴에 새기는 것만으로도―일의 성공에 있어 높은 그릿(투지)이 당연하듯, 사랑의 성공에 있어서도 그릿은 필수적이다―줄어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사랑은 너무 짧고, 잊는 것은 너무 길다.

 기억은 사랑을 지속시킨다. 바로 기억의 불완전성, 계속 다시 조정되고, 다시 쓰이고, 다시 만들어지는 기억의 특성 때문이다. 또한 어린 시절의 불안정한 애착의 그늘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어린 시절의 사건이 주는 진짜 영향이 사건 그 자체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그 사건이 기억되는 방식이므로 어린 시절의 슬픔과 불안정을 뛰어넘은 사람들―획득 안정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의 고난과 고통을 이해하고 과거에 대해 의미를 부여해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게 된다. 공연할 때마다 디테일이 조금씩 바뀌는 연극과도 같은 기억의 특성 때문에 스스로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고, 그것의 중요성은 인생이란 쉽지 않고 심장은 계속해서 부서지기에 더욱 강조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에서조차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며 견뎌냈다. 이는 훌륭한 인생은 고난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임을 보여주며 사랑이 모든 것을 치유하고 우리를 강하게 만들며 계속해서 나아가도록 만든다는 진부하지만 진실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찬가지로 전쟁의 상황 속에서도 군인들을 버티게 하는 힘은 사랑―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왜 사랑이 지속되도록 노력해야하는지를 설명해준다. 부단히 삶의 목표를 찾고, 사랑할 대상을 찾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 그것만이 가치 있는 삶이자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이다. 
 자원의 부족에 집착하는 경제학이나 뇌를 용량에 한계가 있는 기계로 취급하는 현대 심리학처럼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트레이드오프, 즉 거래 균형도 사랑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사랑에는 한계가 없다. 
 앞으로도 우리의 삶은 사랑 그 자체와 사랑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 과학실험들로 가득할 것이다. 사랑에 한계란 없으므로.

 사랑은 목적지가 없다. 사랑 자체를 찾는 여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여우가 잠든 숲 세트 - 전2권 스토리콜렉터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박종대 옮김 / 북로드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흘 동안 셋이 죽었고, 피해자들은 모두 루퍼츠하인 출신이야.”


 며칠 간격으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 그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은 마을 사람 모두와 보덴슈타인을 과거와 대면시킨다.

 그들―보덴슈타인과 피아 등 수많은 형사와 검시관, 법의학자, 정신의학자 등―이 풀어야 할 현재의 살인사건과 과거 실종사건과의 연관성은 모두가 묻어둔 비밀, 이기심, 불안, 욕망, 죄책감, 얽히고설킨 관계로 얼룩져 더욱 복잡하고 쉽사리 끝나지 않을 여정으로 바뀐다.


 이 수사는 그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로 점점 깊숙이 들어가는 여정이 되었다.


 ―모자(母子)의 죽음―캠핑장에서 불에 타 죽은 남자,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교살된 채 발견된 나이든 여자, 자살로 보이는 선택을 한 은퇴한 신부 등 끊이지 않는 의문스러운 죽음은 그 진실에 다가갈수록 추악한 과거와 현재를 드러낸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 사건으로 경찰직에 대한 회의감에 품고 있던 보덴슈타인은 이 사건으로 또다시 환멸감과 무력감에 휩싸이고, 용의자들과의 개인적인 관계로 인해 형사로서의 객관적 자세와 과거 사건의 깊이 연관되어 있는 소년으로서의 상처와 깊은 감정적 기억들 사이에서 쉽게 균형을 잡지 못한다.


 진실은 아주 가까이 있었다. 누구든 침묵을 깨뜨리기만 하면 되었다.


 어린 시절, 러시아 이방인으로 모두에게 괴롭힘을 당한 아르투어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한 보덴슈타인, 그는 단 한 번 지키지 않은 약속으로 아르투어와 그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던 여우 막시 그 둘을 한꺼번에 잃는다. 과거의 그 사건은 사소한 감정적 동요가 얼마나 끔찍한 일로 번지는지, 외국인에 대한 무자비한 적대감과 인종주의적 차별이 한 가정을 얼마나 끔찍하게 파괴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보덴슈타인이 묻어두었던, 그리고 마을 사람 모두가 묻어 두었던 크고 작은 비밀들을 서서히 드러낸다.


 혐오감과 악의, 증오로 가득 찬 무덤이 돌연 열렸다.


 수많은 인물들과 사건, 폐쇄된 공동체가 보여주는 잔인함은 범인이 누구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없게 하고, 많은 인물들이 범인으로 지목될 수 있는 너무나도 많은 가능성은 보덴슈타인과 피아를 혼란스럽게 한다. 불신과 불안이 팽배한 마을 속 진실을 은폐하려는 거짓과 거짓을 침묵하는 이기심으로 뭉친 사람들에게서 진실을 파헤쳐야만 하는 보덴슈타인과 피아는 그 둘을 구분하여 숲속에 묻힌 비밀과 현재의 사건을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


 진실은 어두운 밤중에 어디서나 보이는 등대가 아니었다. 컴컴한 구석에 숨어 있다가 밖에서 끈질기게 파고들어야만 간신히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