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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광주 5월 민주항쟁의 기록, 전면개정판
황석영.이재의.전용호 기록, (사)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 창비 / 2017년 5월
평점 :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바라보고 반성하는 민족만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내가 읽은 민주주의에 관한 책의 한 구절이다. 그 책에선 전쟁 범죄자들에게 참배하는 일본 아베 총리와 나치 희생자들 앞에 참회하는 독일 메르켈 총리를 비교하는 의미로 씌었지만,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을 읽는 동안에도 이 구절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무자비한 국가 폭력으로 학살당한 사람들의 처절한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2008년 보수정권이 집권하면서부터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시작되어 2017년 개정판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영국의 「대헌장」,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등과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5·18 기록물. 이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세계사적 사건이자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주화운동임에 틀림없다.
전두환은―그리고 그를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하는 사람들은―5·18을 ‘폭동’이 아니고선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5·18을 ‘민간인 학살’을 아니고선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저지른 살육전.
도대체 이 엄청난 국가폭력의 도가니에서 양심과 분노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 무슨 수로 저항하며,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헬기까지 동원한 시위진압의 과정은 젊은 사람이면 남녀를 불문하고 구타하여 길바닥으로 질질 끌고 나왔고, ‘자위권 발동 지시’후부터는 시민에 대한 무차별 사격으로 살상행위를 했다. 청년, 학생, 노인, 어린이, 부녀자 등 왜 죽어야하는지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 막강한 화력을 갖춘 계엄군과 맞서 싸워 이긴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목숨을 건 투쟁을 선택한 사람들…. 분노와 격정, 비명과 환희, 삶과 죽음이 어지럽게 교차하면서 도심은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형상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 부패된 시신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유가족들은 오열하다 쓰러졌다. 무자비한 구타와 인간적 모멸감, 살상행위는 계속되었고 그 끔찍한 비극에서 살아남았던 많은 사람들도 후유증이나 정신질환을 앓다가 사망했다.
계엄군의 학살은 어린이들에게조차 무차별 총격을 가했고, 시민들이 무장으로 대응하자 보복은 더욱 심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언론들은 진실을 외면한 채 광주를 고립시켰고, 광주의 진실을 알린 건 외신 기자들이었다.
“무질서와 폭력이 난무하는 ‘폭동’(violence)이 일어난 곳이 아니라 여자, 노약자, 어린이 가리지 않고 김밥과 과일 등 음식물을 차에다 올려주는 ‘봉기(insurrection)의 도시’였다.”
시민들의 자기희생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 그리고 자신들의 정당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항쟁을 할 수 있었던 그들은 항쟁의 성격을 ‘과잉진압에 대한 저항’을 넘어서 ‘군사쿠데타를 거부하는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했다. “항쟁자의 눈빛은 차분했다. 그러나 죽음을 예고하고 있었다.”는 미국 「볼티모어 썬」의 브래들리 마틴의 글은 윤상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5·18민주화운동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오늘의 패배가 영원한 패배가 아닐 것임을 알았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에도 최후의 한사람까지 싸울 것임을 다짐했다.
“… 전두환 살인마가 우리 부모형제들을 무차별 살육하고 있다. 오늘도 암매장한 시신들을 찾아왔다. 소식을 모르는 행방불명자들이 이미 수백 명이 넘는다. 자유와 민주를 위해 싸우다 비통하게 숨져간 열사들의 숭고한 뜻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싸워야 한다. …”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던진 시민들을 군홧발로 짓밟던 그들은 항쟁이 끝나고 난 뒤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역사를 왜곡, 폄훼함으로써 자위하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훼손한다. 12·12쿠데타를 ‘군사반란’으로,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한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곡을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바라보고 반성하지 않는 그들에게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37주년에서 1980년 5월 18일이 생일이자 아버지 사망일인 김소형 씨를 안아주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일부 전한다.
“… 저는 먼저 80년 오월의 광주시민들을 떠올립니다.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이웃이었습니다. 평범한 시민이었고 학생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권과 자유를 억압받지 않는,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 1980년 오월 광주는 지금도 살아있는 현실입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 비극의 역사를 딛고 섰습니다. 광주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버티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 5·18은 불의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맞선 시민들의 항쟁이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오월 광주를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룩된 이 땅의 민주주의의 역사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 완전한 진상규명은 결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식과 정의의 문제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가꾸어야할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입니다.
… 수많은 젊음들이 5월 영령의 넋을 위로하며 자신을 던졌습니다.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을 때, 마땅히 밝히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위해 자신을 바쳤습니다.
… 오월 광주의 시민들이 나눈 '주먹밥과 헌혈'이야말로 우리의 자존의 역사입니다. 민주주의의 참 모습입니다.
…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대한민국이 새로운 대한민국입니다. 상식과 정의 앞에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숭고한 5·18정신은 현실 속에서 살아숨쉬는 가치로 완성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삼가 5·18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