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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지음, 김재혁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13년 1월
평점 :
내 어린 날 청소년기에 읽었던 '데미안'을 명확하게 기억하진 못하지만 우유뷰단한 친구에게 자유로운 영혼과 구원의 손길을 뻗치던 그 대단한 존재 '데미안'만은 잊을 수 없다. 어렵고 잔잔하고 깊이있는 문장들이 때론 어린 내게 무겁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틀에 박힌 교육의 현장 한 가운데서 사춘기를 제대로 겪을 겨를도 없이 스치듯 지나가는 과정에서 읽은 그 책은 영혼의 친구를 만난 듯 했다. 그리고 그 책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불혹의 나이에 접하게 됐다. 이 뭉클함과 잔잔함 속에 녹아있는 사춘기의 애잔함!
명작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를 더해간다고 했던가! 중년으로 가는 이 시점에서 여유롭기는 커녕 그 두려웠던 사춘기 시절처럼 왠지모를 불안감을 느끼는 요즘 마음의 안정을 조용하게 되찾게 해준 책인 듯 싶다.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 외모상으로도 연약하기가 이루 말할수 없고 어릴 적 부터 두각을 나타내 아버지의 기대와 나아가서 마을의 유망주로 떠오른 하얀 얼굴의 공부벌레! 공부만 잘한다고 어른들이 전력질주해서 그쪽으로 밀어부치는 행위가 과연 정당하고 옳은 일인가? 그 시대가 그런 인간형을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오랜 교육 방식에 개몽되지 못한 부모의 교육 방식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합리화 해 본다면 지금의 우리시대는 어떤가? 한 세기를 넘어섰고 부모의 의식은 개몽에 개몽을 거듭해 부모가 자식의 스펙을 쌓아주는 경지에 이르렀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춘기의 아이들은 더 자유롭고 나름의 생각할 시간과 여유를 갖고 살고 있는가? 누가, 무엇이, 고귀하고 순수해야 할 나이의 아이들을 지독한 고독과 악독한 교육의 현장으로 내몰고 있단 말인가. 씁쓸한 기운을 책을 다 읽은 후까지도 못내 지울 수 없었다.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신학교를 들어간 한스는 자신의 본문에 맞게 공부에 온 정신과 마음을 쏟아 붓지만 자연을 벗하고 느긋한 그만의 세계를 잃어버리면서 마음이 병들기 시작한다. 마침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친구'헤르만 하일너'를 만나지만 어른들이 추구하는 세계가 옳은 길이라 믿고
있던 한스는 점점 문제아로 낙인 찍히고 친구와의 교류를 통해 사춘기를 관통하면서 새로운 사고를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물론 어디나 그렇듯 그 틀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인간유형도 많다. 하지만 다른 사고와 다른 생김새를 가진 무리를 가둬두고 모두 똑똑한 수재가 되기를 강요하는 그들은 누구를 위한 교육을 하는 것인가. 헤세가 하고픈 말이 그대로 들어난 문구가 있다.
아버지와 몇몇 옛 선생들의 야비한 야망과 학교가 이 연약한 인간을 이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왜 그는 인생에서 가장 민감하고 위험스런 소년 시절에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 했던가?
청소년기를 지나고 청년이 되어 가면서 한스는 어린 날 자신을 되돌아본다. 친구가 많거나 큰 사고를 일으킨 적은 없지만 조용한 가운데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의 소소한 일상을 사랑했으며 낚시를 즐기고 수영을 좋아했으며 풀밭에 누워 명상 하기를 좋아했다. 그랬던 그는 어느 날 푸른 옷을 입은 기계공이 되어 있었으며 이기지 못하는 술에 흠뻑 취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가 느낀 현실의 무게는 어떻게 다가왔으며 그 시절을 그리워할 여유도, 느끼지도 못하게 된 한스는 어떤 삶을 선택하기를 희망했을까
한스를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은 눈물겹다. 자신이 의도한 적도 없고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닌데 물흐르듯 흘러와 버린 현재의 나와의 조우!
어른들의 냉혹하리만치 단절된 대화. 우리나라 창소년 아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 그 오랜 옛날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일까. 가슴이 저리다.
인격 형성은 뒷전이고 우리의 아이들은 부모가 쌓아주는 스펙에 목숨을 걸어야 하고 자신의 목적 의식도 없이 제 2차 성장을 치뤄내고 있다. 이 아이들이 더 불안하고 안쓰러운 것은 마땅히 대화의 상대도 들어줄 상대도 없다는 것이다. 불혹은 맞은 나 같은 사람은 심리적 불안을 겪고 있다곤
하지만 그 동안 쌓아둔 인생의 경험과 나름 관리해 둔 인간관계가 이 감정의 기복을 조용히 거칠지 않게 치료해 줄 것이다.
허나 이 아이들은 어떻게 그들만의 자유를 찾을 것이며 문득 찾아드는 자아의 존재감과 고독을 치유하고 성숙시켜 나갈 것인가?
학교에 밀어 넣고 눈가리고 귀를 막고 그 시기를 넘기면 된다고 얘기할 것인가. 우리는 이런 고전적 문학 작품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감정을 치유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보다 중요할 것이다. 어른의 한 사람으로써 이 불타는 사명감을 어디다 쓸 것인가.
마지막으로 한스의 수도원 교장선생이 회유를 하면서 한마디 던지는 장면이 있다. 우리는 어떤 어른의 모습을 보일 것인가 생각해 볼 문제다.
"그래, 아무렴 그래야 해. 한스. 해이해지면 안 돼. 그랬다간 수레바퀴 아래 깔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