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쇼크 - 금리가 재편하는 새로운 부의 질서
제이미 러시 외 엮음, 임경은 옮김, 박정호 감수 / 교보문고(단행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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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월급만으론 삶의 안정성을 증명할 수 없는 시대다. 눈부신 기술 발전으로 AI와 로봇이 일상화되었고, 노동력이 곧 성과이자 보상이라 믿었던 오랜 공식이 깨지고 있다. 지하철을 타면 대부분 주식 차트를 들여다보고, 대기업의 주가 등락에 온 나라가 들썩인다. 이제 대출과 저축만으로 내 집을 마련하는 길은 희박해졌고, 부를 쌓는 일은 고도의 경제 논리와 공격적인 투자 없이는 진입할 수 없는 '그들만의 영역'이 된 듯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착각 속에 살았다. 금리는 당연히 낮아야 하고, 저금리는 시대의 기본값이라고 믿었다. (중략) 모든 것이 "거의 공짜에 가까운 돈"이라는 전제 위에 설계된 세계였다. 그러나 그 전제는 이미 무너지고 있다. (감수의 글 中)

 

<머니 쇼크>는 혼란스러운 경제 상황 속에서 세계 경제의 심장인 미국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돈의 가치가 어떻게 재정립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한다. 핵심 키워드는 '자연이자율'이다. 쉽게 말해 경제가 과열되지도, 침체되지도 않는 균형 잡힌 중간 지점의 금리를 뜻한다. 과거에는 이 자연이자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했기에 저금리란 경제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저자들은 가까운 미래에 자연이자율이 상승할 것이라 경고한다.

 

변화의 핵심 요인은 AI,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국가 부채의 폭증, 기후 변화, 돌아온 냉전 체제 등을 꼽는다. 돈 들어갈 곳이 많아진 사회 구조로 금리가 저렴하게 유지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경고한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저금리 패러다임에 갇혀 뒤늦게 발등 찍히지 말고, 변화를 마음에 단단히 새긴 채 다가올 쇼크를 정면으로 마주하라고. 낙관적인 환상을 심어주기보다 거품이 꺼진 뒤의 냉혹한 현실을 꼬집는다.

 

미래에는 정말 어떻게 될까.

돈 들어갈 곳은 점점 많아지는데,

제자리인 월급이 전부인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밀려오는 막연한 불안감은 책이 내게 준 가장 중요한 수확일지 모른다. 이제는 무지함을 핑계로 경제를 외면할 수 없는 시대다. 거대한 머니 쇼크의 파도 앞에서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낯설고 냉정한 돈의 법칙을 반드시 배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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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의 탐스러움 ㅣ 픽셔너리 2
정기현 지음 / 북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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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의 '픽셔너리 시리즈'는 작가 자신을 픽션화하는 중편소설 시리즈다. 그중 <이웃집의 탐스러움>은 작가와 동명의 인물 '기현'을 통해 이제는 옛말처럼 느껴지는 '이웃사촌의 정'이란 무엇인지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사랑하는 인물들의 서사로 장면을 이끌어가는 점이 흥미롭다.


본가에서 독립한 기현은 기은-준영 부부의 옆집으로 이사하게 된다. 처치 곤란한 이삿짐의 일부를 그들에게 주며 인연은 시작된다. 집을 사느라 돈을 다 써버려 가구를 사지 못했다는 부부는 괜찮은 중고 가구가 보일 때마다 집에 들인다. 마침 기현의 가구도 그렇게 옆집으로 흘러 들어간 터라, 기현은 그들의 집에 방문했을 때 다소 묘한 감정을 느낀다. 이를 계기로 함께 저녁도 먹고, 한 팀으로 지역 축제의 연극을 준비하는 등 보기 드문 친분을 쌓아간다.


가장 내밀한 공간인 집을 공유하며 서로의 생활상을 속속들이 알게 되는 것은 분명 낯설지만 따뜻하다. 소설은 이 관계가 텅 빈집의 공허함이 아니라, 주저 없이 옆집 초인종을 누를 수 있는 신뢰로의 발전을 보여준다. 우리가 잊고 있던 정이란 가치가 어디에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들면서.


처음 보는 이들과의 대화는 참 즐거운 일이다. 대화를 통해 우리는 몰랐던 세계에 눈을 뜬다. 말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자면 그곳에는 늘 아름다움이 도사리고 있다. 나는 그것을 아는 사람. (p. 23)


늘 새로운 이웃이 드나드는 집에서 자란 기현이기에, 뜬금없는 순간도 넉살 좋게 대처할 위트가 있었는지 모른다. 독특한 이들의 모습에서 위화감 대신 자꾸만 빠져드는 매력을 느끼는 건, 언제든 문을 두드리면 환영해 주는 이웃이 나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이란 울타리 너머, 단지 옆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친해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가까워져서 안부를 묻고, 계절이 바뀌면 몸이 자라 못 입게 된 자녀의 옷을 물려주고 받으며, 제철 음식이나 여분의 음식을 아낌없이 나눠 먹던 시절. 이웃의 울타리 안에서 탐스럽게 자라던 아이가 있었다. 서로를 의심하지 않고 손을 내밀던 다정한 순간이 있었다.


"여기에 거짓된 말은 한마디도 없으므로 이것이 저의 진심"이라는 기현의 고백처럼 이런 자연스러운 관계가 참 그리워졌다. 이들이 나누는 정이 무한하기를 바라게 된다. 이웃 그다음이 있다고 자꾸만 믿는다는 말과 같이 특정할 수 없는 무수한 다정함이 곁에 머문다면 우리 삶이 조금은 더 편안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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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람 엄금 ㅣ 엄금 시리즈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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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다큐멘터리식 보고서인 줄로만 알았다. 읽는 내내 ‘이렇게 심각하고 위험해 보이는 사건의 전말을 세상에 공개해도 신변에 위협이 없나?’ 걱정했으니까. 완독하고 나서야 알았다. 이 모든 게 정교하게 잘 짜인 '소설'이었다는 것을. 사전 정보 없이 마주한 탓에 몰입감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밤에 책을 펼쳤다가 밀려오는 오싹함에 '오늘 잠은 다 잤다'라며 후회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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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람 엄금>은 모큐멘터리(다큐멘터리 형식의 허구) 호러의 장르 소설이다. 실제 사건 보고서 같다는 나의 착각이 구성 면에서는 아주 다른 말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야기는 대낮의 도쿄 한복판에서 벌어진 대규모 살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살인자 '야에가시'의 정신감정을 맡은 의사 '우에하라'가 바로 눈앞에서 그의 기괴한 자살을 목도하면서 극의 긴장감은 극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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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파로 도리어 정신감정을 받는 처지가 된 우에하라의 면담 기록이 총 4회에 걸쳐 이어진다. 이 구성이 정교하다. 그가 취조하고 조사한 내용들이 뉴스 화면, 기사 캡처, 생생한 현장 사진 등으로 텍스트와 함께 배치되어 마치 독자가 사건을 추적하는 수사관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시각 자료들 때문에 나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진짜라고 믿어버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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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미스터리, 공포, 호러, 스릴러처럼 간담이 서늘해지는 장르는 책으로 전혀 읽지 못하는 편이다. 만약 이 책이 소설이라는 사전 정보나 장르를 미리 알았더라면 결코 손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치밀한 구성력과 촘촘하게 깔아둔 복선은 독자가 딴눈을 팔 새 없이 정교하게 돌아간다. 이런 유의 장르를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독자라면 당장 이 작가의 열렬한 팬이 되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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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도, 카피 문구도 정말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나 미제 사건의 극비 문서를 훔쳐보는 듯한 묘한 스릴을 준다. 철저하게 속아 넘어가 버린 스스로가 조금 어이없지만, 어쩌면 그 무방비한 상태였기에 이 소설을 가장 완벽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오랜만에 다른 생각은 장막 뒤로 접어둔 채, 이야기 그 자체에 완전히 압도되어 짜릿하게 즐긴 최고의 '킬링타임'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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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 나를 울리고 너를 배반하며 이룩되는 케이팝 이야기
복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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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의 케이팝은 복잡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케이팝 산업의 모순과 환멸을 날카롭게 짚어내면서도, 결국 환호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고백한다.


넓은 의미에서 케이팝은 한국 대중음악 산업 전반을 일컫지만, 보통은 대형 기획사를 주축으로 한 아이돌 문화를 말한다. 한국에서 케이팝의 영향권 아래에 있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케이팝을 부정하며 기묘한 우월의식을 지니기도 한다. 한 마디로 케이팝을 좋아한다는 것은 안팎으로 복잡한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케이팝은 사랑과 집착, 믿음과 맹신 사이를 줄타기하는 음악이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허공이니 우리는 늘 날카롭고 예민하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렇게 힘들 바엔 차라리 욕망에 솔직해지자는 거다. (p. 57)


팬덤 문화가 보여준 광기 어린 사건들부터, 케이팝의 본질처럼 여겨지는 '유사 연애' 그리고 연예인에게 가해지는 '강압적인 도덕적 잣대'까지. 기형적인 특성들이 대를 이어 지속되어 왔기에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최근에는 해외 성과에 집착하며 그를 겨냥한 것이 빤히 보이는 음원들이 차트를 점령하니, 거대 권력관계에 신물이 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복길은 이처럼 딱 잘라 명명할 수 없는 산업의 모순, 애정과 증오, 온갖 담론을 시대를 넘나드는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풀어낸다. 치를 떨면서도 연어처럼 돌아올 수밖에 없는 케이팝의 지독한 매력을.


케이팝을 듣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겐 시끄럽고 불쾌한 음악이지만 누군가는 그 음악을 들으며 삶을 견딘다. (p. 186)


인생의 어느 한 시절은 무언가에 지독하게 의존하며 견딜 때가 있다. 대체로 많은 이들이 케이팝에 저마다의 빚을 지고 있다. 나도 그랬다. 이제는 사회적으로 '나락'이라 불리는 길을 가거나, 멤버들이 탈퇴하며 그들을 좋아할 수 없게 되면서, 서서히 '보통의 케이팝'에서 멀어져 갔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이 산업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보다 열렬히, 조금 다른 방식으로 즐기고 있다. 일거수일투족을 좇으며 작은 멘트와 표정 하나에 일희일비하던 시기를 지나, 가수의 디스코그래피 속에서 내 삶의 궤적과 맞물리는 지점을 발견하며 지금 이 순간의 담백한 즐거움을 누린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간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줄면서 나는 자주 우울해지지만, 그 곡을 침대에서 들었던 경험만큼은 무척 아름다운 일이었음을 안다. (p. 197)


결국 다들 지우고 싶을 만큼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반짝였던 마음의 진가를 노래 한 소절로 기억할 때가 있다. 어쩌면 케이팝은 '향수'라는 키워드를 통해 그 시절, 우리가 그토록 지독하게 미워하고 앓았던 계절을 아름답게 재발견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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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빈자리에 - 괴물, 여성, 망자,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해
권혁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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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대해서라면 참 할 말이 많다. 태어나자마자 당사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고 평생 불려야 하는 것. 그렇기에 이름은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이정표다. 


내 이름은 ‘오금미’다. 성도 흔치 않은데 이름은 더 특이해서, 살면서 나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받아 적기 어렵고 발음하기도 까다롭다. 또박또박 발음해도 사람들은 ‘근미’나 ‘금희’로 알아들었다. 


오랫동안 내 이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내 이름은 어느 나라 문자로 써도 마찬가지로 어렵고 발음하기도 어려웠다. 또박또박 한 글자씩 발음하지 않으면 받아 듣고 받아쓰는 모든 이들이 다르게 알아 들었다. (p. 184)


학창 시절의 내게 이름은 총체적 난국이자 짜증의 원천이었다. 국어 시간에 ‘오금이 저리다’는 표현이 나오면 선생님과 학우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고, 걸핏하면 호명되어 본문을 낭독해야 했다. 훗날 지하철 노선도에서 ‘오금역’과 ‘미금역’을 연달아 발견했을 때는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주목받는 걸 즐기는 성향이라면 축복이었겠지만, 나는 눈에 띄지 않길 바라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내 성정과 달리 이름은 늘 타인의 뇌리에 각인되었고, 그것은 늘 스트레스였다. 인생이 유독 안 풀리던 어느 날, 사주 카페에서 “이제는 쓰면 안 되는 불용 한자”라거나 “사주와 충돌하는 이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삶의 굴곡이 정말 이름 때문인 것만 같았다. 


한 존재의 삶은 거의 모두 이름과의 투쟁이자 불화였고, 그리움이자 서글픔이었다. (p. 8)


그러나 이름은 뒤고 숨고 싶을 때 핑계가 되어주었을 뿐,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성인이 되어 개명할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이름을 지키기도 했다. 내 이름의 진짜 속뜻을 알게 되어서다. ‘금처럼 귀하고 높은 자리에 우뚝 서서, 그 자리에서 너 자체로 아름답게 빛나라’. 할아버지는 손녀의 삶에 커다란 포부를 심어주는 축복을 담아주셨고,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한 순간 나는 이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름의 빈자리에>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의 서사가 담겨 있다. 이름조차 없이 지워진 사람, 이름은 있으되 차마 불리지 못한 사람, 혹은 아무렇게나 막 지어진 이름을 가진 예술 작품 속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저자의 깊은 통찰로 재해석된다. 


이름은 그저 누군가를 지칭하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 발붙이고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발화의 도구이자 정체성이다. 또한, 이름의 뜻대로 앞으로를 살아가라는 예언적인 선언이었다. 나는 방황하는 인물들을 보며, 결국 타인에게 올바르게 호명당함으로써 존재 가치를 실현하고 싶어 하는 열망을 보았다. 저자가 말하는 ‘이름의 점성’이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거대한 지표인 셈이다. 


일일이 호명할 것이다. 이건 다시 쓰면, 나는 하나하나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겠다는 다짐이다. 일삼아 조근 조근. 내킬 때마다 글씨로만. 왜냐하면 다시는 입 벌려 소리를 내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그들의 이름을 부를 일은 없을 테니까. (p. 85)


이름을 사랑하고, 때로는 상처받고 증오하며, 결국에는 기억하고 추모하는 삶의 과정 속에서 내 이름에 얽힌 사연을 깊이 톺아본다. 그리고 소망한다. 내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지 않기를, 그리고 이름처럼 나의 욕망을 거스르지 않고 당당하게 위로 걸어가 아름답게 빛나기를.


요즘은 종종 검색창에 내 이름을 쳐본다. 화면에 나와 같은 성과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이 뜨는 것을 보면 묘한 안도감이 든다. 완전히 혼자는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과 내 특별함이 오롯이 나만의 외로운 무게가 아님을 다행스러워하며 슬며시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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