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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 ㅣ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정크, 쓰레기 같은 새끼, 넌 루저야.
가끔 오는 아버지에겐 한 번도 '성재야'로 불려본 적이 없는 사생아, 노래방 도우미로 밤새 미친듯이 술을 마시고는 죽은 듯이 잠만 자는 엄마는 성재 아버지의 정부다.
성재는 태어나면서 부터 쓰레기였다.
메이컵 아티스트를 꿈꾸지만 현실은 백화점 화장픔 코너에 제출한 포토폴리오 조차도 서랍으로 곧장 쳐박히는, 화장품 가게에서 알바나 하고, 친구라곤 모조리 뒷골목의 약물 중독자나 게이바 인생들이니, 제대로 된 친구 하나 없는 뭣같은 현실을 잊기 위해 약을 찾고, 애인이 있으나 한 순간의 욕망을 위해 찜질방과 뒷골목 영화관을 전전하는 동성애자다.
정크, 존재하고 있으나 존재하면 안 되는 쓰레기.
성재는 자신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과 대면할 용기마저 없어 늘 화장으로 자신을 감춘다.
"화장을 하고 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조금쯤 더, 나를 보여 줄 수 있었고, 똑바로 설 수 있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인 가족, 어머니, 아버지에게도 그는 존재하는지 조차 의문인 존재. 사랑하는 애인인 유부남 민수 형에게 조차 숨겨져야 하는 존재다.
"이거 다 가짜잖아. 결국엔 다, 깨지는 거잖아. 없어지는 거잖아. 진짜인 건, 아무것도 없잖아. 나는 이렇게 있잖아. 나만, 여기에, 이렇게, 있잖아."
죽음,
"내가 정말로 두려워하고 또 무서워했던 것, 그것은 바로 삶이었다. 죽도록 도망치고 싶지만 죽어도 도망쳐지지 않는 이 현실, 내가 서 있는 이곳, 나, 라는 인간, 나, 라는 인간의 더럽고 구질구질한 한 생애가 두렵고 무서워 이가 덜덜 떨렸다....나는 늘 잠들어 있었고, 죽어 있었다."
그래서 성재는 목을 매달았다.
성재에게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생아, 동성애자, 비정규직 노동자, 사랑하는 사람조차 아내가 없는 집에 몰래 가야 하는 숨겨진 정부.
생명,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은 순간만 자꾸 이어졌는데 그런데, 그런데, 나는 또 자꾸만 살고 있었다. 살아가고 있었다. ....돌이키고 돌아선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이 있지도 않다는 사실을 잘 아는 까닭이었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
늘 죽은듯이 잠만 자던 엄마는 성재가 목을 매는 순간 그를 구했고, 아버지의 죽음을 전하면서 엄마의 방에 나왔다.
"나는 단 한 번도 혼자인 적 없었다. 언제고 어디서고, 생명이 내 곁에 있었고, 그것을 둘러싼 아버지의 생명 또한 단 한 번도 나에게서 떨어져 있지 않았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간 성재는 한 번도 불러보지 않았던 아버지를 불러 본다.
'아빠, 아버지...."
세상 사람 모두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그런 인생들도 자꾸만 살고 있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도 모두가 어떤 때는 찬란한 생명이던 시기가 있다.
두껍지 않은 이 한 권에 동성애까지 다루고 있으나 문학적 짜임새가 허술한 것도 아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
동성애를 다루면서도 비평가 특정 독자의 눈치를 보거나 구질구질 변명하지 않는다.
단도직입이라 오히려 편안하다.
근래 읽은 젊은 작가의 경장편 소설 중에 담백하게 잘 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