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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소녀 ㅣ 우리같이 청소년문고 14
이정옥 지음 / 우리같이 / 2015년 4월
평점 :
제목이 담쟁이가 아니라 가위소녀인 이유가 뭘까?
자폐 엄마와 외삼촌, 자기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에게 지나치게 매달리는 할머니와 그런 가족의 가장이나 무기력한 할아버지, 아버지는? 없다.
겨우 중학생인 솔에게 세상은 어떤 곳이었을까?
이제 겨우 중2인 솔에게 세상은 철저하게 외롭고, 두렵고, 힘겹다.
가위를 든 위험한 소녀라서 '위소'가 아니라 위기의 소녀라서 '위소'다.
이 순간 내가 정말로 잘라 내고 싶어 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지 않는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머리밖에 없다는 사링 또한 모르지 않는 나는, 벼린 가위 날로 왼쪽 귀 위쪽 머리칼을 쓱, 스칠 뿐이다.
나를 좀 아는 사람들은 나를 '위소'라고 부른다. --22쪽--
삼촌이 가위질을 하는 게, 그렇게 해서라도 꽉 막힌 삼촌의 머릿속을 '풀어' 보려는 것으로 여겨졌으니까.
엄마의 옷을 훌렁훌렁 벗어 버리는 게, 그렇게 해서라도 꽉 막힌 머릿속을 '정리'하려는 것으로 생각되었으니까.
삼촌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나 먹먹하고 막막해서 견딜 수가 없었을 테니까....-162~163쪽--
솔이는 자신의 어깨에 얹힌 짐을 얼마나 잘라내고 싶었을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잘라낼 수 있는 것이 겨우 머리카락 뿐이라니....
솔이 끝내 외롭지 만은 않아 다행이다.
학교에선 친구 세영과 운, 마쌤과 유생각이 있고, 솔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증조할아버지와 지친 솔과 엄마를 품어주는 산할머니가 있어서 어쩌면 끝내 위기를 넘고, '절망이라 부르는 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와, 여기 좀 봐. 담쟁이가 어느새 이렇게 올라왔네."
"담쟁이?"
"그래 담쟁이. 이리 와서 봐."
"아, 담쟁이는 정말 담장 맨 밑에서 시작하는구나."
"그래, 정말 신기하지 않니? 맨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서 위로 쭉쭉 올라가는 게. 다 같이 손을 맞잡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니?"
--206쪽~207쪽--
제목이 담쟁이가 아니라 가위소녀인 이유가 무엇일까?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 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제목이 담쟁이였다면 청소년 소설이 아니라 고리타분한 소설이 될 수도 있었겠다 싶다.
제목의 힘이 이런건가?
그나저나 내겐 솔의 가족이 왜 이렇게 불편한지 모르겠다.
남매가 둘다 자폐인데다, 세상을 다시 살고 있다는 '산할머니'나 할아버지 보다 더 할아버지라고하는 오토바이족 증조할아버지, 강남의 고층 아파트에 살법한 보통의 할머니인 엘에이할머니, 자세한 언급은 없으니 필시 보통의 사연을 넘을것 같은 아빠까지.....
특이해도 이렇게 온 가족이 통째로 특이한 경우는 처음이다 싶을 만큼 특별한 가족의 이야기라서 그런가 너 복잡한 가족이 오히려 책속으로 빠져들기를 방해하고 있다.
가위를 든 중학생 소녀가 주인공이라서 학교폭력에 관한 이야기인가, 자폐와 같은 장애가족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가 하면 그런듯도 하고, 마쌤으로 이야기 되는 수업이야기가 나오길래 교육문제에 관한 이야기인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많이 나오니까 가족에 관한 이야기인가, 마지막엔 세월호까지 나오니까 세월호 이야기인가도 싶어지는 복잡한 이야기 구조. 부자집에서 일하는 엄마의 사연을 지닌 유생각은 빼더라도.
정말 내가 가위를 들었더라면 몇 군데는 잘라내고 싶은 책이다.
그랬더라면 솔이 하고 싶은 말에 더 집중해 줄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