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음의 서재 - 정여울 감성 산문집, 개정판
정여울 지음, 이승원.정여울 사진 / 천년의상상 / 2015년 2월
평점 :

정여울의 감성 산문집이라고 하지만 산문집을 가장한 계발서가 넘쳐나는 시절인지라, 뭐 기대 없이 '그책이 그책이겠지'라는 심숭생숭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1/3을 넘기면서 책읽는 자세를 고쳐 읽는다.
4월 16일이다.
세월호의 아이들아!
"지못미"
지못미 속에 말로는 다 못할 슬픔이 담겨 있지 않다면, 지못미는 결국 타인을 지켜주지 못한 자신의 죄를 향해 스스로 발급하는 면죄부가 아닐까. 지못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교묘하게 정당화한다. 죽은 것만으로 충분히 처벌받은 사람마저 '지켜줘야 할 무력한 대상'으로 타자화시킨다. 무엇보다 지못미는 너무 즉각적이며 간단명료하다. 애도는 그렇게 인스턴트식품처럼 편리하게 대체될 수 없다.
진정 타인의 죽음을, 떠남을, 사라짐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지못미라는 간단한 세 글자로는 상실감을 표현할 수 없다. 정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사람들은 지못미는 커녕 오히려 '나 때문에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이 상실감을 견딜 수 없는 존재가 취할 수 있는 윤리적 태도다. --85쪽~86쪽--
정여울은 이렇게 묻는다.
"이미 죽은 자의 고통을 뒤늦게 아파하는 대신.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죽어가는 자의 고독을 함께 아파해야 하지 않을까."
--89쪽--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이미 작년에 죽은 세월호의 아이들이지만 나는 지금도 아프다. 또한 이순간 팽목항과 광장과 거리에서 죽어가고 있는 자의 고독도 잊지 않고 함께 아파하겠다."
지켜야 할 이가 있다면 선심 쓰듯 지켜주지 말고, 그냥 묵묵히 지켜내자. 그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지킨다는 의식조차 없이, 그저 곁에 함께 있자, 살자, 울자. 슬픔은 우리를 파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끔찍한 슬픔 때문에 우리는 비로소, 아직은, 우리 자신일 수가 있다.
--89쪽--

애도를 인스턴트식품처럼 쓰는 자, 지못미를 선심 쓰듯 남발하는 자들의 악어의 눈물을 오늘만은 보고싶지 않다.
"인간의 본성이란 자신과 동시대 사람들의 완성을 위해, 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일할 때에만 자기의 완성을 달성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101쪽 --
카를 마르크스 선생이 방년 17세의 나이에 남긴 문장이시란다.
개인의 행복과 집단의 행복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어떤 행복도 완전할 수 없음을, 전 생애를 통해 증명하는 것이 그의 글쓰기였다.
--101쪽--
지금쯤이면 라틴아메리카를 향해 하늘을 날고 있을 그분께 전해드리고 싶은 문장이다.

가벼운 책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읽었으나 4월 16일 오늘 하루만은 천근만근의 무게를 주는 책이다.
옷깃을 여미고, 자세를 바르게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다시 읽어본다.
세월호의 아이들과 같은 나이를 살고 있는 아들의 책장에 꽂아두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