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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여름휴가
안녕달 글.그림 / 창비 / 201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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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할머니가 되면 『할머니의 여름휴가』 속 할머니처럼 요렇게 이쁜 휴가를 보내고 싶어요.
20여 년 만의 폭염이라고 했던가요?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휴가는 그곳이 바닷가였든 계곡이었든 수영장이었든 물속에서 절대로 나오고 싶지 않은 여름이었습니다.
수박을 무진장 좋아하는 우리 집 녀석들은 수박을 입에 달고선 에어컨 바람 앞에서 절대 떠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수박만 보면 안녕달 님의 수박 수영장이 떠올라 피식피식 웃음이 절로 났는데, 올여름 출간된 『할머니의 여름휴가』는 웃음보다는 제겐 반성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작품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이가 들고 힘이 없어서 자식들의 휴가에 함께 하지 못하는 게 아니구나!'
'어쩌면 더 간절히 가고 싶은 게 아닐까?'
쓸쓸하기까지 한 할머니의 작은 옥탑방과 대비되는 바닷가 풍경들.
누런 똥강아지 메리(이름과 생김새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와 고장 난 선풍기, 텔레비전이 친구인 할머니의 옥탑방 풍경은 쓸쓸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런 쓸쓸한 날들을 보내고 계시겠지요.)
그때 찾아온 손주가 휴가 갔던 바닷가에서 주워온 선물, 뿔소라는 그냥 소라가 아니라 바로 마법의 소라입니다.
이 소라를 따라 들어갔더니 멋진 바다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바다 소리를 들려주던 뿔소라는 현실과 마법의 세계를 넘나드는 비밀 장치인가 봅니다.
마법의 세계를 발견한 할머니가 헐렁하고 낡은 할머니 표 원피스를 휘리릭 벗어버리고 핑크빛 수영복을 갈아입는 순간, 할머니는 변신합니다.
쨍쨍한 햇볕을 받으며 물개들과 온몸을 앞뒤로 뒤집어 가며 선탠도 하고, 갈매기들과 사이좋게 수박도 나눠먹고(와우 수박에 한눈이 팔린 갈매기들의 눈초리가 무섭습니다.), 흰머리 날리며 바닷바람도 맞으며 멋진 휴가를 보냅니다.
손주가 선물한 소라 너머의 바닷가에서 페이지마다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숨겨진 작가의 장난기 가득한 그림은 수박 수영장의 기발함에 이어 또다시 감탄하고 말았습니다.
색연필로 대충대충 그린 듯한 그림이지만 할머니가 보고 계신 텔레비전 화면이며 아이의 표정까지 허투루 볼 게 하나도 없습니다.
몇 년 간의 여름휴가를 우리도 『할머니의 여름휴가』에 나오는 엄마처럼 아이들만 데리고 다니다가 올해는 마음먹고 아이들 외 할아버지를 모시고 다녀왔습니다. 즐거운 볼 거리, 먹을거리, 특별한 즐길 거리도 없지만 조용히 쉬다가 오는 것이 다인 휴가였지만 그저 아이들 노는 거 보는 재미, 자식들 속닥이며 이야기하는 거 보는 재미,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맛있게 먹는 거 지켜보느라 그저 흐뭇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행복해하시는데 왜 진작 그걸 못해 드렸나 반성했지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까 책 속에 나오는 며느리의 모습이 딱 나의 모습이더란 거지요.
더 마음이 아프고 후회가 됩니다.
참, 아이들 그림책 보면서 반성해보기도 오랜만입니다.
이러니 그림책이 아이들만의 책이라 말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어른에게도 따뜻한 감동을 주는 책으로 강력 추천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