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따라 공간 따라 역사 문화 산책 - 신병주 교수의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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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신병주 교수의 인물 따라 공간 따라 역사 문화 산책 (신병주, 매일경제신문사, 2025, 초판 1)

 

역사과의 꽃은 현장답사다!”

 

대학 학부생 때 늘 들었던 말이다. 역사 전공자들만 갖는 어떤 자부심이 있는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뭔지 모를 동질감 같은 것이 있어 답사의 중요성을 대부분 인정한다.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역사 전공자 집단은 다른 전공보다 조금이라도 앞서야 하고, 단합해야 하며, 뚜렷한 정체성을 공유해야 한다. 그래서 쉽게 동질감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전공자들은 역사 전공자들을 보면 뭔지 모를 이상한 시선을 던진다.) 저자도 역사를 전공했고, 현장답사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는다는 사실에 묘한 감정을 느꼈다. 사실 나는 신병주 교수를 오래전부터 방송에서 자주 봐왔다. 내가 좋아하는 역사 프로그램의 고정 패널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방송이 폐지되면서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내가 가장 즐겨보던 역사 교양 프로그램이었다.

 

나도 현장답사야말로 역사 학습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현장답사를 다니고 있고, 기록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답사를 따라다니던 인연으로 인해 현재 서울중등교육연구회 중 한 단체의 총무도 맡고 있다. 현장답사를 왜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물으면 생생함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교과서보다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더 몸으로 와 닿는다라고 표현하면 정확할 것이다. 공간이 주는 느낌이나 감정이 더욱더 생생하다. 게다가 교과서 속 인물들이 사실은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에 가면 역사 인물처럼 생각하고 행동해볼 수 있다. 그래서 역사 인물의 인간적 고뇌에서는 동질감을, 그의 위대한 행동에서는 경외감을 느낄 수 있다.

 

 

-현장답사와 인물-

 

이 책은 역사적 현장과 인물을 연결하고 있다. 답사를 통해 역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답사할 때 무엇을 공부하고 가면 좋은지를 가장 잘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조선사를 전공해서 조선 시대 인물을 중심으로 현장답사를 하고 있어서 조선사를 공부한 직후나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답사를 하면 더 도움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조선의 중심 공간인 궁궐에서 출발하여 서울, 경기, 경상, 전라, 충청, 강원과 제주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으니, 지금 독자가 생활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조선사를 공부할 때 활용 가치가 높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인 창덕궁 시대를 맞이하면서, 창덕궁의 후원 영역은 정조가 가장 애착을 가지며 활용하는 공간이 되었다.”(26, 1부 왕실의 역사, 궁궐 속으로)

 

지금도 창덕궁 후원에 가면 이 공간을 활용했던 정조의 흔적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그 흔적의 의미를 저자처럼 따라갈 수 있다면 더는 역사가 암기 과목이 아닐 것이다. 쉽게 몸으로 느끼고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우리 이웃 사람의 이야기로 변화할 수 있다. (물론 정조가 이웃에 살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ㅋㅋㅋ)

 

 

-현장답사와 수학여행-

 

역사 학습에서 현장답사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역사 전공자들은 매년 매 학기 현장답사를 한다. 나도 학부생 때 현장답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 기억은 너무도 강렬해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모두 포함한다.) 학부생이 준비한 현장답사 내용을 답사지에서 지도교수들이 듣고 강하게 비판했다는 정도만 이야기하고 싶다. 그날의 기억은 죽을 때까지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현장답사를 통해 배우는 것이 많으면서 동시에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현장답사가 중고등학생의 교육과정에 반영될 수 있으면 좋겠다. ‘학문을 갈고닦는다는 목적으로 시행되는 수학여행에 현장답사가 반드시 포함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학생들이 학교를 벗어나 해방감을 느끼는 동시에 학문을 생생하게 체득하여 오랜 시간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길 수 있을 것이다.

 

현장답사는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찾는 현장이 누구(인물)’와 관련된 것인지에 따라 소설가가 될 수도 있고, 음악가가 될 수도 있으며, 수학자나 물리학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현장답사는 학교가 교육 활동으로 충분히 계획하고 실행해나갈 수 있게 보장된다면 충분히 다양한 학문적인 의미를 담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현장답사가 매년 매 학기 교육과정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놀이공원이나 관광지를 아무 의미 없이 순서대로 돌면서 단순히 즐기는 형태는 이제 지양해야 한다.

 

 

-현장답사와 융복합 프로그램-

 

학교 교육과정에 현장답사가 포함되려면 다양한 의미와 목표를 담은 융복합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을 전국적으로 공유하면서 활용한다면 더 많은 프로그램이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장소에서 어떤 학문적 의미를 발견해낼 수 있도록 현장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국가적 지원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단순히 개인이나 지역, 학교와 교사의 노력만으로 유지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도 이런 부분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적절한 아이디어를 이곳저곳에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이곳(압구정 표지석)을 볼 때마다 겸재 정선의 그림 압구정을 활용하여, 원래 위치에 그림을 확대해 놓거나, 야간에는 조명을 설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81, 2부 갈등과 변화의 공간, 서울)

 

이외에도 표지판에서 오타로 볼 수 있는 글자들이 많았다. 역사 유적을 설명하는 표지판 제작에는 보다 세심한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125, 2부 갈등과 변화의 공간, 서울)

 

역사 유적지에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다.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장소를 발굴하고, 관리하며, 알리는 모든 작업을 담당하는 주체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의미를 우선 학습해야 할 대상은 학생들이다. 그래서 나는 교육부가 이 역할을 담당하면 좋겠다. 학문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 많은 사람이 방문한다면 그 지역을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발전시켜나갈 수도 있다.

 

낙산공원에 있는 홍덕이 밭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알기 위해 답사를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지금은 그 밭에서 더는 배추를 기르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역사적 이야기를 답사 과정에서 학습하고, 그 의미를 담은 활동을 그 장소에서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계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홍덕이 밭에서 배추를 기르거나 김치를 담궈보고, 이것을 상품화하거나 다양한 매체로 이 이야기를 웹툰이나 소설, 그림과 음악으로 표현해보는 것이다. 장소의 현장성을 느끼게 하면서도 다양한 진로와 활동으로 연계하는 것이다. 이를 단순히 교사와 지역 사회에만 맡기지 말고 국가 교육과정이나 지역 교육과정으로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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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해력, 어떻게 가르칠까 - 미국의 사례와 시사점
김민정 외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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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역사문해력, 어떻게 가르칠까. (김민정 외, 사회평론아카데미, 2025, 초판 1)

외우는 것을 좋아해서 역사 교사가 되었다. 평생을 좋아하는 것만 암기하며 살 수 있을 테니까 언제나 행복할 거라 믿었다. 아마도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역사 교사가 되고, 역사 교수가 되고, 우리나라 역사 교육과정을 이렇게 만들었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들도 나처럼 암기하는 역사가 즐거웠으리라. 교사가 되고 난 뒤에 깨닫게 되었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것인데, 나는 즐기고 있는데,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다. 대다수 학생은 역사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하는 말들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나는 나만의 세계에 고립되어 있었다. 지금 일반고 중에서도 여고에서 근무하고 있다.

 

어떻게 가르칠까.’ 교직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해온 고민이다. 하지만 이 고민은 아직도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처음 교단에 섰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마음속에 품고 있는 질문이다. 아마도 교단에 서는 마지막 날까지 이 질문은 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학생과 소통하고 교과서를 재구성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목표나 방향이 필요한데, 이 책은 바로 그 목표와 방향을 담고 있었다. 바로 역사가처럼 읽고, 탐구하고, 쓰기. 학생도 역사가처럼 읽고 쓸 수 있게 된다면 역사 문해력을 갖추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해력은 흔히 사용하는 개념인데, 역사 문해력과 무엇이 다른지 궁금했다.

 

역사 문해력은 정보의 진위와 출처를 확인하고, 저자의 의도와 저술 맥락을 파악하며, 자료 간 비교와 교차 검토를 통해 합리적 판단과 성찰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문해력과 구분된다.”(5, 머리말)

 

위 머리말을 읽자마자 덜컥 겁부터 났다. 내 역사 수업에서는 절대로 역사 문해력을 위한 수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근차근 책을 읽을수록 저자들의 분석에 공감할 수 있었고, 조금씩 용기를 얻어갈 수 있었다. 나도 약간만이라도 흉내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저자분들이 교육과정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실제로 수업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그 방안까지도 생각해보도록 내용을 정리해주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역사 수업에서 역사적 사고를 실천하고, 역사를 탐구하며, 역사 문해력을 기르는 학습 과정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한 탐색의 일환으로, 국외에서 개발되고 실행되고 있는 다양한 역사 문해력 교육과정을 검토하였다.”(6, 머리말)

 

 

-역사 문해력을 기르는 수업-

 

역사 문해력을 기르는 역사 수업은 내 수업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우선 내가 담당하는 고등학교 1학년 한국사 수업을 묘사해보자면, 한마디로 학생이 모르는 개념어, 사건이 너무 많다. 개념을 설명하고, 사건 간 인과 관계와 시간 순서를 확인하다 보면 50분 수업 대부분을 교사 강의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 절대적 시험인 수능에 출제되는 내용을 모두 학습하려면, 교사의 압축적 설명이 없이는 절대로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

하지만 역사 문해력을 기르는 수업은 사고하는 능력을 기르기 때문에 개념이나 사건 이해보다 훈련의 시간에 가깝다. 하나의 개념, 하나의 사건, 하나의 질문, 하나의 사료에 대해 반복적으로, 꾸준하게 학습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역사가처럼 읽기> 교육과정은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미국사를 기준으로 전체 8개의 대주제를 주고, 그 안에 중심 질문이 제시되는데,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학생이 사고하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하게 된다. 과연 우리나라 한국사 수업 시간에도 구석기 시대부터 현대까지를 8개의 대주제로만 묶어서 가르칠 수 있을까. 개념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는 훈련을 하려면 학생이 스스로 연습하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과연 이게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

마찬가지로 <읽기, 탐구하기, 쓰기> 교육과정에서도 학생이 사료를 근거로 논증하는 글쓰기로 이어지려면 장기간의 훈련과 지도가 필요하다. 고등학교 1년의 과정이 아니라 3년의 과정을 모두 활용할 수 있다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교육과정이 도입될 수 있다면, 교양 교과 중 논술이나 글쓰기 수업을 역사와 융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존 시간표처럼 교과목별로 나뉜 수업이 아니라 2~3시간 정도를 함께 묶어서 운영한다면 충분한 시간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빅히스토리와 역사-

 

일단 융합이다. ‘빅히스토리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을 때 받았던 충격이 떠오른다. 나는 빅히스토리가 역사가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가능성을 부여했다고 평가했다.

 

빅히스토리는 호주 매쿼리대학교의 크리스천 교수가 창안한 새로운 과목으로, 특정 학문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여러 학문 분야를 융합하여 빅뱅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내려티브를 설명하는 과목이다.”(121)

 

빅뱅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이라는 표현이 가능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시공간적으로 역사의 앞뒤 외연을 확장한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 영역을 역사에 융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표현이다. 내가 이 개념을 처음 본 이후 융합 주제를 찾아 이것저것 기웃거리다 이 책을 만났다. <세계사 프로젝트> 교육과정에서는 빅히스토리의 아이디어를 활용한 교과 간 연계 활동이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 내용이 현재 내 방향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2단원에서 농업혁명 중단원 내의 마케팅 101 소단원은 농업혁명 이후 수렵채집 생활이 더 좋았는지 아니면 농경 생활이 더 좋았는지를 비교하는 활동을 제시한다. 농업혁명에 대해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학생들은 수렵채집 생활과 농경 생활을 홍보하는 광고를 만든다.”(129)

 

구석기 시대 수렵 채집과 신석기 시대 농업, 그리고 그 둘을 비교하여 마케팅 광고를 만드는 활동까지 연결할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빅히스토리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역사 교과서는 매우 단선적이다. 구석기의 수렵 채집이 신석기의 농업과 목축으로 발전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분명 지금까지도 두 생활 방식은 공존한다. 그리고 그 둘은 비교할 수 있다. 정답으로서만 존재하는 교과서의 권위를 무너뜨려야만 학생들은 사고할 수 있다.

 

 

-미국의 사례에서 배울 점-

 

저자들은 왜 미국의 사례를 분석했을까. 우리나라의 현실과 매우 다른 미국의 교육과정을 선택한 데에는 분명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역사 가르치기, 시민성 배우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전근대사 비중이 매우 높다.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한국사 교과서 내용에 따르면, 전체 분량 중 전근대사가 무려 3분의 1을 차지한다. 너무 먼 시대의 역사가 너무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당연히 학생들은 1,000년 전에 사용된 수많은 개념과 사건이 생소하다. 현재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전근대사 비중이 크지 않다. 미국 건국 이전의 역사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현재 미국인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기 힘들다. 이 책에서 다루는 대부분 내용은 현재 미국의 삶을 직접적으로 형성한 배경들이다. 그래서 미국 교육과정에서는 역사 가르치기가 곧 현재와 매우 밀접한 성격을 가질 수 있다. 바로 시민성이다.

 

시민 참여란 지역사회, 학교, 국가 또는 세계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필요한 사항이 생길 때, 이를 파악하고 시정하는 활동이다.”(169)

 

우리 역사는 과거성이 현재성을 압도한다. 아직도 김구의 국적이 한국인지 일본인지를 가지고 논란이 발생한다. 이런 모습으로는 역사교육이 현재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 분란만 조장할 뿐이다. 우리 역사도 현재성을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근현대사의 비중을 높이되, 일제 강점기의 서술을 줄이고 독립 운동사에 대한 교육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역사가 현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주지시킬 수 있을 것이며, 역사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역사교육이 근현대에 발생한 논쟁을 중심으로 역사가처럼 읽고, 탐구하고, 쓰며, 교과 간 연계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사고할 수 있는 훈련을 하도록 구성될 수 있다면, 분명 우리 교육도 미국의 교육과정처럼 시민성을 배우는 기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역사 교과는 애매하게 사회 교과군에 묶여 있다. 오늘도 사회과 교과 협의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면서 이 이상하고도 애매한 동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왜 역사는 사회 교과군에 묶여 있는가. 역사와 사회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바람직한가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곧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을 이 책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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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혜라고 부르는 것의 비밀 - 더 일찍 더 많이 현명해지기 위한 뇌과학의 탐구
딜립 제스테.스콧 라피 지음, 제효영 옮김 / 김영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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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우리가 지혜라고 부르는 것의 비밀 (딜립 제스테, 김영사, 2025, 11)

늘 지혜를 가진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문제와 정답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던 학생 때는 이런 불안감이 없었는데, 나이가 늘어갈수록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많아져서다. 그래서 이 책에 더 끌렸는지 모른다. 20년이 넘게 지혜를 연구해온 저자는 지혜의 비밀을 풀어낼 수 있고, 나이가 들지 않아도 더 일찍, 더 빠르게 현명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렇게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꼼꼼하게 책을 살폈다. 더 지혜롭고, 더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문과적 주제, 이과적 설명-

 

지혜는 무엇일까. 저자는 지혜를 매우 깔끔하게 정의하며 이 책을 시작한다.

 

지혜는 성격특성이며, 총 일곱 가지로 구성된다는 것이 과학계의 공통 의견이다. 그 일곱 가지는 성찰, 친사회적 행동, 감정조절,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는 능력, 결단력, 사회적 조언을 제공하는 능력, 영성이다.”(15, 한국 독자들에게)

 

지혜로운 사람들은 대체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데 내겐 그 모습이 막연하기만 했다. 사실 누가 지혜롭다고 말하기는 쉬운데, 그 사람이 어떤 점에서 지혜롭다고 할 수 있는지 정의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그런 면에서 저자가 이렇게 지혜를 깔끔하게 정의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막연한 영역을 정확한 개념으로 풀어쓴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그 덕분에 지혜를 구성하는 요소에 따라 어떤 특성이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고, 무엇을 노력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전형적인 문과 주제를 전형적인 이과 방식으로 풀어낼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이 대중에게 쉽게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학술 논문의 표준적 방식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서론에서 개념을 정의하고, 주제를 밝히며, 선행 연구를 정리하는 것까지 말 그대로 논문이나 탐구 보고서를 쓰는 전형적인 순서를 따르고 있었다.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이런 부분을 따라 읽어가는 것만으로도 탐구 과정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주제가 철학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다 보니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1부 지혜란 무엇인가-

 

1부에서는 지혜를 과학적 탐구 대상으로 보고 이를 측정할 수 있는 과학적 도구들을 소개한다. 특히 저자는 신경과학, 뇌영상 기술, 신경화학이 발전하면서 생물학에 기반한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나이가 들지 않고서도 지혜로워질 방법이 있다고 제시하는데, 생물학적 성격 특성이라고 하더라도 주어진 환경이나 노력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의 과학 발전을 기준으로 할 때, 지혜의 각 구성요소를 나타내는 행동에 관해 당사자가 직접 밝히게 하는 것이 지혜를 평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언젠가는 지혜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이 개발될 수도 있지만, 그때도 당사자의 주관적인 평가로 보완해야 할 것이다.”(112~3, 4. 지혜를 측정하는 법)

 

뇌영상 기술은 완벽하지 않고 절대적이지도 않다. …… 뇌는 너무나 복잡하고 여러 부분이 서로 연결된 기관이라 어떤 기능을 어디서 담당하는지 아직 불확실한 점이 많다.”(215, 6. 감정이 머무는 곳)

 

그런데 약간 의아한 부분은 이 과학적 측정 도구들이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 철학적 영역에서 과학적 영역으로 넘어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연구와 과학적 도구들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지혜를 정량화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한계 속에서도 지혜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려는 저자의 도전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나는 이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아무도 하지 않는 연구, 남들이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연구를 저자는 계속 끌고 나가고 있다. 그 끈기만큼은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2, 지혜의 구성 요소-

 

2부에서는 지혜의 각 구성 요소를 소개하고 이를 분석한 연구와 대표적인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지혜의 핵심 요소인 연민, 감정조절, 균형 잡힌 결단력, 불확실성의 수용, 성찰, 호기심, 유머감각, 영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중요한 지점은 균형이었다.

 

우리는 감정과 이성이 각각 양 끝에 있는 스펙트럼 안에서 살아간다. 지혜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 즉 항상성과 관련이 있다.”(190, 6. 감정이 머무는 곳)

 

지혜를 구성하는 요소를 연구한 사례들은 대체로 양극단에 치우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저자는 그 양극단에서 벗어나 중간 범위에 머무르는 것, 즉 균형을 이루는 것을 중요하다고 보았고, 균형이 무너지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경우에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회복력, 낙관성을 강조했다. 일종의 회복탄력성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2부에 제시된 다양한 연구들은 꼭 지혜가 아니더라도 학습과 인지 작용에 도움을 주는 내용도 많았는데, 이 부분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들을 따로 정리하여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머리를 아주 많이 써야 하는 까다로운 일을 마치고 나면 잠시 쉬면서 지금까지 한 일을 검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밖으로 나가 거닐면서 그런 시간을 보내면 더욱 좋다.”(285, 8. 생각은 사소하지 않다.)

 

옛 성현이 제자와 함께 산책하면서 문답을 주고받는 모습이 떠오른다. 소요학파만 그런 모습이었겠는가. 지혜로움과 배움은 모두 이와 같은 모습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우리 교육도 이런 지혜를 가르칠 수 있는 수업의 모습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3, 실용적, 사회적 지혜를 강화하는 법-

 

3부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지혜의 구성요소를 실제로 강화하는 방법에 대해 살펴본다. 저자의 주장대로 더 일찍, 더 현명해지기 위한 노력의 구체적 실천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는데, 우리 삶과 생활에서 직접 활용해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런데 신경정신과 전문의로서 약물이나 전자기기 사용과 같은 방법도 소개하는데, 사뭇 그 부분이 인상적이다. 꾸준한 연습과 노력을 약물치료보다 더 높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자는 약물과 전자기기를 활용한 치료법을 부정적으로 보기까지 한다. 이는 저자가 동양 문화권 출신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지혜는 약물의 조력을 받는 것보다 본인의 노력으로 체득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미래의 지혜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지 제시한다. 개인적 지혜, 집단적 지혜, 국가적 지혜는 이제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고 보고, 사회적 지혜로서 인공 지혜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다.

 

모든 구성원을 현명하게 포용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우리의 목표이자 꿈이 되어야 한다.”(442, 12. 더 현명하면 덜 외롭다)

 

저자가 20년 동안 지혜를 연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책에서 개인적 차원의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그 기대가 너무 수준이 낮았다. 이 책 덕분에 나만 지혜롭게 홀로 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지혜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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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 붕괴
해도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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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진공 붕괴 (해도연, 한겨레출판, 2025, 초판 1)

저자는 소설을 쓰는 우주과학 연구원이다. 물리학과 천문학을 전공했다. 그래서일까. 분명 소설이고, 가상의 상황임에도 너무 생생한 실제처럼 느껴졌다.

 

발아래에도 아득하도록 먼 밤하늘이 있다. 눈앞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기둥, 그리고 일말의 원근감도 느낄 수 없는 바닥없는 하늘 사이의 경계가 라미의 균형 감각을 흩트린다.”(11, 검은 절벽)

 

일말의 원근감도 느낄 수 없는 바닥없는 하늘’. 우주 공간에 내던져진 주인공의 막막한 상황을 너무도 절실하게,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우주와 천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여러 소설 중 특히 우주를 배경으로 한 검은 절벽텅 빈 거품에서 이런 생생함을 자주 느꼈다. 마치 곧 실제로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런 가까운 미래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상반되는 두 상황을 아주 잘 어울리게 묘사한다는 점이다. 특히 나는 매우 무서울 수밖에 없는 우주를 아름답게 묘사하는 부분이나, 부모에게는 끔찍한 고통일 수밖에 없는 장애를 예술작품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항성 간 공간을 가로지르는 고에너지입자(우주 방사선)가 라미의 망막을 때린 것이다. …… 지금은 오히려 이 낯섦에 홀릴 것만 같다. 아름답기 그지없다.”(31, 검은 절벽)

 

눈 봤어? 너무 예뻐. 홍채가 고흐 그림 같아. <별이 빛나는 밤>을 담아 놓은 거 같아.…… 콜러스 신드롬의 특징 중 하나가 독특하고 화려한 홍채였다.”(219, 콜러스 신드롬)

 

 

-선택, 인간의 숙명-

 

여러 소설 속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상황 속에 있지만 모두 유사한 딜레마를 맞이한다. 그들이 맞이하는 상황은 조금만 방향이 틀어져도 모든 것이 부서질 수밖에 없는 매우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결국 주인공들은 도망치지 않고 선택한다.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상미는 밤과 낮이라는 두 시간의 경계를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만 방향을 틀어도 깨지고 흩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균형. 하지만 결국 시간은 밤을 향해 쓰러질 거라는 걸 상미는 알았다.”(86, 텅 빈 거품)

 

무엇이 옳은가, 그른가.’, ‘나는(소설 속 주인공)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만나고, 결국은 선택을 한다. 그래서 생각했다. ‘과학자도 엄정한 논리적 근거 속에서 명확한 결론만 도출해내는 컴퓨터가 아니구나. 결국, 역설적 상황에서 선택해야 하는 인간이구나.’ 그래서 이 소설 속 인물에 쉽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힘든 상황에 부닥치면 응원하고 싶어졌고, 그들의 선택이 잘못된 것을 알게 되면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었다.

 

검은 절벽속 주인공 라미는 인공지능 러브조이와 인간 노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심지어 약물에 의해 기억이 지워진 극한의 상황 속에서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가를 판단해야 했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 귀에 달콤하게 들리는 말,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선택을 할 것인가, 확신은 없지만 내 마음이 끌리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래서 나는 라미의 힘든 선택을 응원했다. 지구에서 1.6광년이나 떨어진 우주에서 영원히 떠돌게 될지라도 말이다.

 

텅 빈 거품속 주인공 상미는 140년 뒤 미래를 알게 된다. 파멸적인 미래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엄청난 딜레마다. 그것도 애매하게 10년 뒤가 아니라, 내가 죽고 난 뒤 내 자손들에게 다가올 미래다. 상미는 선택해야 한다. 나만 안락한 삶을 누리다 파멸적 미래를 후손에게 넘기고 죽을 것인지, 아니면 파멸적 미래를 피하려고 영원히 우주 공간을 떠돌아야 하는지 말이다. 사실 나는 이 선택에 약간 집중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항성을 연료로 삼는 거대한 구조물과 거기에 기생하는 비행선의 정체가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언급은 더 없었다. 약간 그 부분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의 선택은 매우 명확하면서도 단호하다. 이른바 갈팡질팡하는 흔들리는 모습조차 없다. 그래서 나는 이들이 든든하면서도 무섭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 누군가 내게 같은 이유로 고민을 이야기해 온다면, 나는 누구의 말에도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선택하라고 말할 것이다.”(200, 콜러스 신드롬)

 

내 걱정은 하지마. 자기 선택에 대한 책임은 질 수 있는 사람이니까. 너처럼(아내 유슬)”(237, 콜러스 신드롬)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래서 저자는 주인공들의 선택에 책임을 붙였다. 아마 나는 그 책임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택을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가족, 그 소중함에 대한-

 

작가도 남편이자 아버지다. 그래서 이 두 작품은 나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도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

 

마리 멜리아스의 주인공 유진은 인공 신체와 뇌를 이용해 죽은 아내 서월을 만들어낸다. 만들어낸다는 행위 자체가 약간 이상하게 느껴지는데, 죽은 이를 살려내는 행위는 살아남은 사람의 영원한 딜레마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이는 죽은 자를 그리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죽은 이의 기억이 완전히 복제된 인공 육체와 뇌는 죽은 자의 의식을 가진 존재로 인정할 수 있느냐이다. 이 소설에서처럼 새롭게 태어난 인공 육체 마리는 죽은 이의 복제된 존재란 걸 아는 순간 많은 혼란을 겪는다. 복제된 내가 내가 아니라는 자의식이 생긴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얼마 전 본 영화 미키17’에서도 그 비슷한 생각을 했다. 실수로 잘못 복제된 내가 살아서 내 옆에 있다면, 나는 정말로 법을 지키기 위해 그를 살해할 수 있을까. 나와 동일한 뇌와 육체로 복제되었다고 하지만, 전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나는 정말로 나와 동일한 존재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콜로스 신드롬의 주인공은 아내 유슬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이 상황은 쉽게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만약 내 아이가 장애가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과정이다. 수없이 많은 감정과 생각이 교차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이는 아주 쉽게 천사와 악마 사이를 오간다. 부모는 당연히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며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아이를 만드는 것과 그 아이를 키워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재호는 몰랐던 것 같다.”(220, 콜러스 신드롬)

 

솔직히 나도 재호와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내 유슬처럼 행동할 자신이 없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선택이 주어진다면 단호하게 포기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하지만 아내 유슬이 남편 재호를 악마로 규정하고 영원히 고통받게 하는 처벌을 내렸다는 점은 조금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호는 아내 유슬과 딸 윤하를 사랑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SF의 새로운 차원-

 

지금껏 읽어본 SF는 대부분 새로운 기술이나 창의적 아이디어가 난무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뭔가 새롭다. 내가 알고 있던 기존 SF의 공식을 뛰어넘은 것 같다고 해야할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에일-르의 마지막 손님에 나오는 문장과 비슷하다.

 

세상에 이처럼 극적으로 아름다운 괴물이 있었던가.”(279)

끔찍한 재료(매우 식상한 소재)로 만든 맛있는 음식(새로운 SF)”(294)

에일-(해도연 소설집) 이후로는 모든 것이 식상했다.”(301)

 

놀라운 소설이다. 이 느낌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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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해변에서 - 아메리카 원주민, 대항해 시대의 또다른 주인공
캐럴라인 도즈 페넉 지음, 김희순 옮김 / 까치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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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야만의 해변에서 (캐럴라인 도즈 페턱, 까치, 2025, 초판 1)

익숙한 유럽인의대항해 시대에 살았던 낯선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저너스를 만나다.

 

이 책의 부제 아메리카 원주민, 대항해 시대의 또다른 주인공에도 잘 드러나 있듯, “시선을 조금만 옆으로 옮기는행위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일방적으로 유럽인에 의해 만들어진 아메리카 원주민의 정체성을 인디저너스라는 호칭으로 되살리고, 그들이 대항해 시대로 명명된 유럽인의 역사에 어떻게 깊은 영향을 미쳤는지 세심하게 살폈다. 특히 첫 부분부터 저자의 세심함이 돋보인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영역이 표시된 지도와 그들의 역사를 담은 연대기는 시공간적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호칭이 중요한 이유에서는 왜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디저너스라고 지칭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그가 이 책을 통해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는 불친절하고 일방적인 유럽인의 기록 속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지고, 야만이라 폄훼된 인디저너스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한한 생명력을 부여하면서 대항해 시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완전히 뒤집는다. 저자는 인디저너스야말로 대항해 시대의 광대한 연결망을 만든 주체였고, 오늘날 우리가 사는 현대 세계의 씨앗이었다고 주장한다. 인디저너스가 있었기에 유럽인의 대항해 시대가 가능했다는 저자의 주장을 우리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충분히 고민해볼 만한 내용이다. 마치 일본 제국주의 침략이 한국인의 활약 덕분에 가능했다는 주장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청교도들의 메이플라워 호가 플리머스 바위에 처음 발을 내딛던 순간보다 무려 한 세기 이전, 인디저너스들이 조성하고 향유했던 광대한 연결망, 즉 그들이 무역하고 약탈하고 협상하고 결혼하고 어울리고 싸웠던 그 광대한 연결망은 오늘날 우리가 사는 범세계주의적인 현대의 씨앗이 되었다.”(25, 들어가며)

 

 

-인디저너스, 대서양 양안의 정체성-

 

이 책의 1장부터 3장까지는 주로 인디저너스의 삶을 조망하고 있다. (1장은 노예, 2장은 중재자들, 3장은 가족과 친척이다.) 디저너스가 유럽과 조우한 이후 대서양 양안에서 만든 새로운 정체성이 광대한 연결망으로 작동한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많은 사람이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관계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극도로 혼란스럽고 파괴적인 시대를 살아남은 인디저너스들은 매우 다채로운 삶을 살았다.

대체로 우리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대항해 시대 초기 유럽에 노예로 끌려온 인디저너스의 삶에 주목한다. 16세기 이베리아반도는 인디저너스를 포함해 포르투갈인, 무어인, 아프리카인 등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아가는 다채로운 사회였다. 그래서 노예 인디저너스의 삶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었다.

 

이는 당시 인디저너스들의 상황이 얼마나 변화무쌍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103, 1장 노예)

 

다채로웠던 인디저너스 노예의 삶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두 가지였다.

첫째, 노예도 법을 통해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인디저너스 노예를 통해 부를 축적하려는 무리도 분명 존재했지만, 그것을 막고자 했던 힘도 유럽 사회에 있었다. 물론 그것이 시혜적인 성격이거나, 포르투갈, 스페인 왕실이 인디저너스를 신민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디저너스들이 소송을 통해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과 아메리카로 귀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 우리에게 낯선 역사다.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분명 인디저너스도 다른 사람들처럼 유럽에서 어울려 살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둘째, 인디저너스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거나, 개종을 강요하거나, 노예로 만들려는 사람들은 모두 합법적수단에 집착했다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절대로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합법을 운운했다는 것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마도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상세하게 소개함으로써 현대 문명의 합법적 폭력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법치주의는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에는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자비한 폭력이 난무한다. 법은 상류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도구이면서도 동시에 하층민의 권리를 최소한으로 보장하는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재자로서 인디저너스의 삶도 매우 독특했다. 붙잡혀 통역사가 된 네판틀레라스(132)’라 지칭된 인디저너스의 삶도 인상적이었지만, 아메리카 해변에서 조난당한 유럽인 비치코머(132)’의 삶도 매우 독특했다. 중재자라는 표현에도 내포된 의미이지만, 이들은 대서양 양안에서 정체성을 형성한 대표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인디저너스와 유럽인 간 상호작용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에 대한 이중적 평가다. 이들은 유럽의 침략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배신자인가, 아니면 폭력 앞에 어쩔 수 없이 억압받은 노예들인가. 백인 영국인으로서 저자는 이에 관한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피압박민족의 후예인 나는 이를 보며 가슴이 답답했다. 우리 역사에서 친일파는 어떤 평가를 받는지, 그리고 그들에 대한 평가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어떤 부작용을 낳고 있는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인디저너스가 유럽 고위층의 가족이 되거나, 고위층 인디저너스가 유럽인과 친척이 되거나 하는 사례도 매우 흥미로웠다. 목테수마(아즈텍 제국 마지막 황제 몬테수마)의 후손이 스페인에서 지금까지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어렸을 적 보았던 디즈니 영화 포카혼타스가 유럽인에 의해 만들어진 왜곡된 정체성을 유포했다는 점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점은 노예나 중재자들로 유럽 압제자에게 복역했던 사람들에게는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지만, 유럽 고위층의 가족이나 고위층 인디저너스들은 현재 라틴 아메리카 곳곳에서 종교적, 문화적 상징이나 영웅으로 숭앙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럽인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정체성이 현재 인디저너스 후예들에 의해 전통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상황은 분명 슬픈 일이다. 역사적 실제가 중요한지, 현재 만들어진 전통이 중요한지는 우리가 좀 더 생각해볼 문제다.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이방인으로서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인디저너스 후예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 논란을 피하는 가장 중립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대서양을 건넌 물건들-

 

저자는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물건들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그는 인디저너스와 유럽인의 가치 체계의 차이점을 강조하면서 이 물건들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인들은 아메리카에서 발견한 모든 것들을 상품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그것을 약탈해 부를 축적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인디저너스들은 자연을 삶의 일부로 인식했다. 마치 동양 철학의 한 단면을 보는 것과 같이 자연은 인간의 삶을 포함하는 우주적 질서였다. 그래서 그들은 유럽인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베풀었다.

 

서로 다른 두 세계의 만남에서 사람과 물건이 서로 교환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물건들을 상품으로만 보는 유럽의 인식에서 벗어나 인디저너스의 의식과 문화가 끼친 영향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케찰 새 깃털이나 카카오 열매다. 이와 관련된 인디저너스의 문화가 현재 우리가 쓰는 언어에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저자가 소개한 단어는 생각보다 많다. 초콜릿, 바비큐, 허리케인, 해먹, 카누 등은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인디저너스의 단어들이다.

 

다만 이 부분에서 조금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 부분은 바로 인디저너스의 선물문화다. 작년에 읽었던 벽돌 책, “불평등의 창조(2015)”에서는 이 부분을 조금 다르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책에는 아메리카에서 있었던 사례들을 바탕으로 불평등의 기원을 소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참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책에서는 불평등으로 나아가려는 개인의 야망과 평등을 유지하려는 공공선 사이에서는 항상 긴장 관계가 형성된다고 본다. 그래서 개인의 야망이 공공선을 무너뜨리면 불평등이 심화되고, 그것이 제국의 질서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나는 인디저너스의 선물문화가 아메리카 전체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유럽인들도 마찬가지다.

 

 

-단조로운 Vs 다채로운 역사-

 

오늘도 한국사 수업을 하면서 단조로움을 느꼈다. 교과서에는 다양한 굵은 글씨의 개념어들이 정답으로만 존재한다. 다른 예외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선택형 문제로 출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교과서에 실릴 수 없는 다채로운 사실들이 분명 공존하고 있을 것이다. 교과서에서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내용 정도는 손쉽게 반박할 수 있는 다채로운 사실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살필 여유와 능력이 부족하다. 왜 우리는 저자처럼 시선을 조금만 옆으로 옮길수 없을까. 왜 우리는 이토록 다채롭고 아름다운 역사를 배울 수 없을까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백인 영국인으로서 역사에서 강제로 지워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해낸 점이 매우 고맙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은 이토록 논쟁적일 수밖에 없는 내용을 다루면서 한발짝 물러나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 부분이다. 아마도 이 아쉬움은 내가 유럽인보다는 인디저너스의 삶에 더 깊이 공감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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