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해력, 어떻게 가르칠까 - 미국의 사례와 시사점
김민정 외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역사문해력, 어떻게 가르칠까. (김민정 외, 사회평론아카데미, 2025, 초판 1)

외우는 것을 좋아해서 역사 교사가 되었다. 평생을 좋아하는 것만 암기하며 살 수 있을 테니까 언제나 행복할 거라 믿었다. 아마도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역사 교사가 되고, 역사 교수가 되고, 우리나라 역사 교육과정을 이렇게 만들었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들도 나처럼 암기하는 역사가 즐거웠으리라. 교사가 되고 난 뒤에 깨닫게 되었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것인데, 나는 즐기고 있는데,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다. 대다수 학생은 역사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하는 말들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나는 나만의 세계에 고립되어 있었다. 지금 일반고 중에서도 여고에서 근무하고 있다.

 

어떻게 가르칠까.’ 교직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해온 고민이다. 하지만 이 고민은 아직도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처음 교단에 섰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마음속에 품고 있는 질문이다. 아마도 교단에 서는 마지막 날까지 이 질문은 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학생과 소통하고 교과서를 재구성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목표나 방향이 필요한데, 이 책은 바로 그 목표와 방향을 담고 있었다. 바로 역사가처럼 읽고, 탐구하고, 쓰기. 학생도 역사가처럼 읽고 쓸 수 있게 된다면 역사 문해력을 갖추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해력은 흔히 사용하는 개념인데, 역사 문해력과 무엇이 다른지 궁금했다.

 

역사 문해력은 정보의 진위와 출처를 확인하고, 저자의 의도와 저술 맥락을 파악하며, 자료 간 비교와 교차 검토를 통해 합리적 판단과 성찰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문해력과 구분된다.”(5, 머리말)

 

위 머리말을 읽자마자 덜컥 겁부터 났다. 내 역사 수업에서는 절대로 역사 문해력을 위한 수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근차근 책을 읽을수록 저자들의 분석에 공감할 수 있었고, 조금씩 용기를 얻어갈 수 있었다. 나도 약간만이라도 흉내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저자분들이 교육과정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실제로 수업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그 방안까지도 생각해보도록 내용을 정리해주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역사 수업에서 역사적 사고를 실천하고, 역사를 탐구하며, 역사 문해력을 기르는 학습 과정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 질문에 대한 탐색의 일환으로, 국외에서 개발되고 실행되고 있는 다양한 역사 문해력 교육과정을 검토하였다.”(6, 머리말)

 

 

-역사 문해력을 기르는 수업-

 

역사 문해력을 기르는 역사 수업은 내 수업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우선 내가 담당하는 고등학교 1학년 한국사 수업을 묘사해보자면, 한마디로 학생이 모르는 개념어, 사건이 너무 많다. 개념을 설명하고, 사건 간 인과 관계와 시간 순서를 확인하다 보면 50분 수업 대부분을 교사 강의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 절대적 시험인 수능에 출제되는 내용을 모두 학습하려면, 교사의 압축적 설명이 없이는 절대로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

하지만 역사 문해력을 기르는 수업은 사고하는 능력을 기르기 때문에 개념이나 사건 이해보다 훈련의 시간에 가깝다. 하나의 개념, 하나의 사건, 하나의 질문, 하나의 사료에 대해 반복적으로, 꾸준하게 학습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역사가처럼 읽기> 교육과정은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미국사를 기준으로 전체 8개의 대주제를 주고, 그 안에 중심 질문이 제시되는데,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학생이 사고하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하게 된다. 과연 우리나라 한국사 수업 시간에도 구석기 시대부터 현대까지를 8개의 대주제로만 묶어서 가르칠 수 있을까. 개념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는 훈련을 하려면 학생이 스스로 연습하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과연 이게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

마찬가지로 <읽기, 탐구하기, 쓰기> 교육과정에서도 학생이 사료를 근거로 논증하는 글쓰기로 이어지려면 장기간의 훈련과 지도가 필요하다. 고등학교 1년의 과정이 아니라 3년의 과정을 모두 활용할 수 있다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교육과정이 도입될 수 있다면, 교양 교과 중 논술이나 글쓰기 수업을 역사와 융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존 시간표처럼 교과목별로 나뉜 수업이 아니라 2~3시간 정도를 함께 묶어서 운영한다면 충분한 시간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빅히스토리와 역사-

 

일단 융합이다. ‘빅히스토리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을 때 받았던 충격이 떠오른다. 나는 빅히스토리가 역사가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가능성을 부여했다고 평가했다.

 

빅히스토리는 호주 매쿼리대학교의 크리스천 교수가 창안한 새로운 과목으로, 특정 학문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여러 학문 분야를 융합하여 빅뱅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내려티브를 설명하는 과목이다.”(121)

 

빅뱅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이라는 표현이 가능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시공간적으로 역사의 앞뒤 외연을 확장한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 영역을 역사에 융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표현이다. 내가 이 개념을 처음 본 이후 융합 주제를 찾아 이것저것 기웃거리다 이 책을 만났다. <세계사 프로젝트> 교육과정에서는 빅히스토리의 아이디어를 활용한 교과 간 연계 활동이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 내용이 현재 내 방향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2단원에서 농업혁명 중단원 내의 마케팅 101 소단원은 농업혁명 이후 수렵채집 생활이 더 좋았는지 아니면 농경 생활이 더 좋았는지를 비교하는 활동을 제시한다. 농업혁명에 대해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학생들은 수렵채집 생활과 농경 생활을 홍보하는 광고를 만든다.”(129)

 

구석기 시대 수렵 채집과 신석기 시대 농업, 그리고 그 둘을 비교하여 마케팅 광고를 만드는 활동까지 연결할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빅히스토리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역사 교과서는 매우 단선적이다. 구석기의 수렵 채집이 신석기의 농업과 목축으로 발전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분명 지금까지도 두 생활 방식은 공존한다. 그리고 그 둘은 비교할 수 있다. 정답으로서만 존재하는 교과서의 권위를 무너뜨려야만 학생들은 사고할 수 있다.

 

 

-미국의 사례에서 배울 점-

 

저자들은 왜 미국의 사례를 분석했을까. 우리나라의 현실과 매우 다른 미국의 교육과정을 선택한 데에는 분명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역사 가르치기, 시민성 배우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전근대사 비중이 매우 높다.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한국사 교과서 내용에 따르면, 전체 분량 중 전근대사가 무려 3분의 1을 차지한다. 너무 먼 시대의 역사가 너무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당연히 학생들은 1,000년 전에 사용된 수많은 개념과 사건이 생소하다. 현재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전근대사 비중이 크지 않다. 미국 건국 이전의 역사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현재 미국인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기 힘들다. 이 책에서 다루는 대부분 내용은 현재 미국의 삶을 직접적으로 형성한 배경들이다. 그래서 미국 교육과정에서는 역사 가르치기가 곧 현재와 매우 밀접한 성격을 가질 수 있다. 바로 시민성이다.

 

시민 참여란 지역사회, 학교, 국가 또는 세계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필요한 사항이 생길 때, 이를 파악하고 시정하는 활동이다.”(169)

 

우리 역사는 과거성이 현재성을 압도한다. 아직도 김구의 국적이 한국인지 일본인지를 가지고 논란이 발생한다. 이런 모습으로는 역사교육이 현재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 분란만 조장할 뿐이다. 우리 역사도 현재성을 중점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근현대사의 비중을 높이되, 일제 강점기의 서술을 줄이고 독립 운동사에 대한 교육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역사가 현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주지시킬 수 있을 것이며, 역사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역사교육이 근현대에 발생한 논쟁을 중심으로 역사가처럼 읽고, 탐구하고, 쓰며, 교과 간 연계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사고할 수 있는 훈련을 하도록 구성될 수 있다면, 분명 우리 교육도 미국의 교육과정처럼 시민성을 배우는 기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역사 교과는 애매하게 사회 교과군에 묶여 있다. 오늘도 사회과 교과 협의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면서 이 이상하고도 애매한 동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왜 역사는 사회 교과군에 묶여 있는가. 역사와 사회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바람직한가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곧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을 이 책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