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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 붕괴
해도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평점 :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 진공 붕괴 (해도연, 한겨레출판, 2025, 초판 1쇄)
저자는 소설을 쓰는 우주과학 연구원이다. 물리학과 천문학을 전공했다. 그래서일까. 분명 소설이고, 가상의 상황임에도 너무 생생한 실제처럼 느껴졌다.
“발아래에도 아득하도록 먼 밤하늘이 있다. 눈앞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기둥, 그리고 일말의 원근감도 느낄 수 없는 바닥없는 하늘 사이의 경계가 라미의 균형 감각을 흩트린다.”(11쪽, 검은 절벽)
‘일말의 원근감도 느낄 수 없는 바닥없는 하늘’. 우주 공간에 내던져진 주인공의 막막한 상황을 너무도 절실하게,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우주와 천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여러 소설 중 특히 우주를 배경으로 한 ‘검은 절벽’과 ‘텅 빈 거품’에서 이런 생생함을 자주 느꼈다. 마치 곧 실제로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런 가까운 미래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상반되는 두 상황을 아주 잘 어울리게 묘사한다는 점이다. 특히 나는 매우 무서울 수밖에 없는 우주를 아름답게 묘사하는 부분이나, 부모에게는 끔찍한 고통일 수밖에 없는 장애를 예술작품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항성 간 공간을 가로지르는 고에너지입자(우주 방사선)가 라미의 망막을 때린 것이다. …… 지금은 오히려 이 낯섦에 홀릴 것만 같다. 아름답기 그지없다.”(31쪽, 검은 절벽)
“눈 봤어? 너무 예뻐. 홍채가 고흐 그림 같아. <별이 빛나는 밤>을 담아 놓은 거 같아.…… 콜러스 신드롬의 특징 중 하나가 독특하고 화려한 홍채였다.”(219쪽, 콜러스 신드롬)
-선택, 인간의 숙명-
여러 소설 속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상황 속에 있지만 모두 유사한 딜레마를 맞이한다. 그들이 맞이하는 상황은 조금만 방향이 틀어져도 모든 것이 부서질 수밖에 없는 매우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결국 주인공들은 도망치지 않고 ‘선택’한다.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상미는 밤과 낮이라는 두 시간의 경계를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만 방향을 틀어도 깨지고 흩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균형. 하지만 결국 시간은 밤을 향해 쓰러질 거라는 걸 상미는 알았다.”(86쪽, 텅 빈 거품)
‘무엇이 옳은가, 그른가.’, ‘나는(소설 속 주인공)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만나고, 결국은 ‘선택’을 한다. 그래서 생각했다. ‘과학자도 엄정한 논리적 근거 속에서 명확한 결론만 도출해내는 컴퓨터가 아니구나. 결국, 역설적 상황에서 선택해야 하는 인간이구나.’ 그래서 이 소설 속 인물에 쉽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힘든 상황에 부닥치면 응원하고 싶어졌고, 그들의 선택이 잘못된 것을 알게 되면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었다.
‘검은 절벽’ 속 주인공 라미는 인공지능 러브조이와 인간 노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심지어 약물에 의해 기억이 지워진 극한의 상황 속에서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가를 판단해야 했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 귀에 달콤하게 들리는 말,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선택을 할 것인가, 확신은 없지만 내 마음이 끌리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래서 나는 라미의 힘든 선택을 응원했다. 지구에서 1.6광년이나 떨어진 우주에서 영원히 떠돌게 될지라도 말이다.
‘텅 빈 거품’ 속 주인공 상미는 140년 뒤 미래를 알게 된다. 파멸적인 미래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엄청난 딜레마다. 그것도 애매하게 10년 뒤가 아니라, 내가 죽고 난 뒤 내 자손들에게 다가올 미래다. 상미는 선택해야 한다. 나만 안락한 삶을 누리다 파멸적 미래를 후손에게 넘기고 죽을 것인지, 아니면 파멸적 미래를 피하려고 영원히 우주 공간을 떠돌아야 하는지 말이다. 사실 나는 이 선택에 약간 집중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항성을 연료로 삼는 거대한 구조물과 거기에 기생하는 비행선의 정체가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언급은 더 없었다. 약간 그 부분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의 선택은 매우 명확하면서도 단호하다. 이른바 갈팡질팡하는 흔들리는 모습조차 없다. 그래서 나는 이들이 든든하면서도 무섭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 누군가 내게 같은 이유로 고민을 이야기해 온다면, 나는 누구의 말에도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선택하라고 말할 것이다.”(200쪽, 콜러스 신드롬)
“내 걱정은 하지마. 자기 선택에 대한 책임은 질 수 있는 사람이니까. 너처럼(아내 유슬)”(237쪽, 콜러스 신드롬)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래서 저자는 주인공들의 선택에 책임을 붙였다. 아마 나는 그 책임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택을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가족, 그 소중함에 대한-
작가도 남편이자 아버지다. 그래서 이 두 작품은 나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도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
‘마리 멜리아스’의 주인공 유진은 인공 신체와 뇌를 이용해 죽은 아내 서월을 만들어낸다. 이 ‘만들어낸다’는 행위 자체가 약간 이상하게 느껴지는데, 죽은 이를 살려내는 행위는 살아남은 사람의 영원한 딜레마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이는 죽은 자를 그리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문제는 죽은 이의 기억이 완전히 복제된 인공 육체와 뇌는 죽은 자의 의식을 가진 존재로 인정할 수 있느냐이다. 이 소설에서처럼 새롭게 태어난 인공 육체 마리는 죽은 이의 복제된 존재란 걸 아는 순간 많은 혼란을 겪는다. 복제된 내가 내가 아니라는 자의식이 생긴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얼마 전 본 영화 ‘미키17’에서도 그 비슷한 생각을 했다. 실수로 잘못 복제된 내가 살아서 내 옆에 있다면, 나는 정말로 법을 지키기 위해 그를 살해할 수 있을까. 나와 동일한 뇌와 육체로 복제되었다고 하지만, 전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나는 정말로 나와 동일한 존재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콜로스 신드롬’의 주인공은 아내 유슬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 이 상황은 쉽게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만약 내 아이가 장애가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과정이다. 수없이 많은 감정과 생각이 교차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이는 아주 쉽게 천사와 악마 사이를 오간다. 부모는 당연히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며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아이를 만드는 것과 그 아이를 키워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재호는 몰랐던 것 같다.”(220쪽, 콜러스 신드롬)
솔직히 나도 재호와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내 유슬처럼 행동할 자신이 없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선택이 주어진다면 단호하게 포기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하지만 아내 유슬이 남편 재호를 악마로 규정하고 영원히 고통받게 하는 처벌을 내렸다는 점은 조금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호는 아내 유슬과 딸 윤하를 사랑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SF의 새로운 차원-
지금껏 읽어본 SF는 대부분 새로운 기술이나 창의적 아이디어가 난무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뭔가 새롭다. 내가 알고 있던 기존 SF의 공식을 뛰어넘은 것 같다고 해야할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에일-르의 마지막 손님’에 나오는 문장과 비슷하다.
“세상에 이처럼 극적으로 아름다운 괴물이 있었던가.”(279쪽)
“끔찍한 재료(매우 식상한 소재)로 만든 맛있는 음식(새로운 SF)”(294쪽)
“에일-르(해도연 소설집) 이후로는 모든 것이 식상했다.”(301쪽)
놀라운 소설이다. 이 느낌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