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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혜라고 부르는 것의 비밀 - 더 일찍 더 많이 현명해지기 위한 뇌과학의 탐구
딜립 제스테.스콧 라피 지음, 제효영 옮김 / 김영사 / 2025년 4월
평점 :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 우리가 지혜라고 부르는 것의 비밀 (딜립 제스테, 김영사, 2025, 1판 1쇄)
늘 지혜를 가진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문제와 정답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던 학생 때는 이런 불안감이 없었는데, 나이가 늘어갈수록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많아져서다. 그래서 이 책에 더 끌렸는지 모른다. 20년이 넘게 지혜를 연구해온 저자는 ‘지혜’의 비밀을 풀어낼 수 있고, 나이가 들지 않아도 더 일찍, 더 빠르게 현명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렇게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꼼꼼하게 책을 살폈다. 더 지혜롭고, 더 현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문과적 주제, 이과적 설명-
지혜는 무엇일까. 저자는 지혜를 매우 깔끔하게 정의하며 이 책을 시작한다.
“지혜는 성격특성이며, 총 일곱 가지로 구성된다는 것이 과학계의 공통 의견이다. 그 일곱 가지는 성찰, 친사회적 행동, 감정조절,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는 능력, 결단력, 사회적 조언을 제공하는 능력, 영성이다.”(15쪽, 한국 독자들에게)
지혜로운 사람들은 대체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데 내겐 그 모습이 막연하기만 했다. 사실 누가 지혜롭다고 말하기는 쉬운데, 그 사람이 어떤 점에서 지혜롭다고 할 수 있는지 정의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그런 면에서 저자가 이렇게 지혜를 깔끔하게 정의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막연한 영역을 정확한 개념으로 풀어쓴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그 덕분에 지혜를 구성하는 요소에 따라 어떤 특성이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고, 무엇을 노력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저자는 전형적인 문과 주제를 전형적인 이과 방식으로 풀어낼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이 대중에게 쉽게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학술 논문의 표준적 방식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서론에서 개념을 정의하고, 주제를 밝히며, 선행 연구를 정리하는 것까지 말 그대로 논문이나 탐구 보고서를 쓰는 전형적인 순서를 따르고 있었다.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이런 부분을 따라 읽어가는 것만으로도 탐구 과정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주제가 철학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다 보니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1부 지혜란 무엇인가-
1부에서는 지혜를 과학적 탐구 대상으로 보고 이를 측정할 수 있는 과학적 도구들을 소개한다. 특히 저자는 신경과학, 뇌영상 기술, 신경화학이 발전하면서 생물학에 기반한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나이가 들지 않고서도 지혜로워질 방법이 있다고 제시하는데, 생물학적 성격 특성이라고 하더라도 주어진 환경이나 노력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의 과학 발전을 기준으로 할 때, 지혜의 각 구성요소를 나타내는 행동에 관해 당사자가 직접 밝히게 하는 것이 지혜를 평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언젠가는 지혜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이 개발될 수도 있지만, 그때도 당사자의 주관적인 평가로 보완해야 할 것이다.”(112~3쪽, 4. 지혜를 측정하는 법)
“뇌영상 기술은 완벽하지 않고 절대적이지도 않다. …… 뇌는 너무나 복잡하고 여러 부분이 서로 연결된 기관이라 어떤 기능을 어디서 담당하는지 아직 불확실한 점이 많다.”(215쪽, 6. 감정이 머무는 곳)
그런데 약간 의아한 부분은 이 과학적 측정 도구들이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철학적 영역에서 과학적 영역으로 넘어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연구와 과학적 도구들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지혜를 정량화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한계 속에서도 지혜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려는 저자의 도전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나는 이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아무도 하지 않는 연구, 남들이 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연구를 저자는 계속 끌고 나가고 있다. 그 끈기만큼은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2부, 지혜의 구성 요소-
2부에서는 지혜의 각 구성 요소를 소개하고 이를 분석한 연구와 대표적인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지혜의 핵심 요소인 연민, 감정조절, 균형 잡힌 결단력, 불확실성의 수용, 성찰, 호기심, 유머감각, 영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중요한 지점은 ‘균형’이었다.
“우리는 감정과 이성이 각각 양 끝에 있는 스펙트럼 안에서 살아간다. 지혜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 즉 항상성과 관련이 있다.”(190쪽, 6. 감정이 머무는 곳)
지혜를 구성하는 요소를 연구한 사례들은 대체로 양극단에 치우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저자는 그 양극단에서 벗어나 중간 범위에 머무르는 것, 즉 균형을 이루는 것을 중요하다고 보았고, 균형이 무너지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경우에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회복력, 낙관성을 강조했다. 일종의 회복탄력성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2부에 제시된 다양한 연구들은 꼭 지혜가 아니더라도 학습과 인지 작용에 도움을 주는 내용도 많았는데, 이 부분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들을 따로 정리하여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머리를 아주 많이 써야 하는 까다로운 일을 마치고 나면 잠시 쉬면서 지금까지 한 일을 검토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밖으로 나가 거닐면서 그런 시간을 보내면 더욱 좋다.”(285쪽, 8. 생각은 사소하지 않다.)
옛 성현이 제자와 함께 산책하면서 문답을 주고받는 모습이 떠오른다. 소요학파만 그런 모습이었겠는가. 지혜로움과 배움은 모두 이와 같은 모습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우리 교육도 이런 지혜를 가르칠 수 있는 수업의 모습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3부, 실용적, 사회적 지혜를 강화하는 법-
3부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지혜의 구성요소를 실제로 강화하는 방법에 대해 살펴본다. 저자의 주장대로 더 일찍, 더 현명해지기 위한 노력의 구체적 실천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는데, 우리 삶과 생활에서 직접 활용해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런데 신경정신과 전문의로서 약물이나 전자기기 사용과 같은 방법도 소개하는데, 사뭇 그 부분이 인상적이다. 꾸준한 연습과 노력을 약물치료보다 더 높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자는 약물과 전자기기를 활용한 치료법을 부정적으로 보기까지 한다. 이는 저자가 동양 문화권 출신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지혜는 약물의 조력을 받는 것보다 본인의 노력으로 체득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미래의 지혜”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지 제시한다. 개인적 지혜, 집단적 지혜, 국가적 지혜는 이제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고 보고, 사회적 지혜로서 “인공 지혜”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다.
“모든 구성원을 현명하게 포용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우리의 목표이자 꿈이 되어야 한다.”(442쪽, 12. 더 현명하면 덜 외롭다)
저자가 20년 동안 지혜를 연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책에서 개인적 차원의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그 기대가 너무 수준이 낮았다. 이 책 덕분에 나만 지혜롭게 홀로 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지혜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