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괴물 백과 - 신화와 전설 속 110가지 괴물 이야기
류싱 지음, 이지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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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무서워하면서도 무서운 이야기를 해 달라고조르는 아이들처럼 허무맹랑하다거나 징그럽다고 생각하면서도 괴물 이야기를 찾아보게 된다.
그래서 <한국 요괴 도감>으로 다양한 우리나라 요괴를 만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세계 괴물 백과>로 더 넓은 세상의 더 다양한 괴물을들 만나보았다.

책을 펼치면 누르스름하게 바랜 효과를 주어 고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장 위에 고대 근동 신화, 이집트 신화, 그리스 신화, 종교 전설, 동방 여러 민족 전설, 유럽 전설과 괴이한 일, 이렇게 세계 곳곳의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괴물들에 대해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저자는 여러 기록에서 괴물들의 이야기를 가져왔는데, 각 괴물을 소개하기에 앞서 유물이나 과거 기록에 그려진 해당 괴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나오는 괴물인 무슈슈의 모습은 이슈타르의 문에 장식되어 있는 것이 가장 유명한데, 이슈타르의 문의 다른 동물들은 모두 실재했다니 일부 학자뿐만 아니라 나도 무슈슈 또한 실재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흥미로웠다.

무슈슈는 또 다른 전설인 ‘벨과 용(Bel and the Dragon)’에 등장하는 용으로 여겨지기도 했다고 한다.
종교 서적인 다니엘서의 제2경전 ‘벨과 용(Bel and the Dragon)’은 다니엘이라는 인물이 활약한 두 가지 이야기가 소개되는데 나는 용보다는 벨 신상에 대한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바빌로니아인들이 어마어마한 양의 제물을 바치던 벨 신상은 조각상에 불과하며 어떠한 제물도 먹지 않는다고 다니엘이 의문을 제기하자 왕은 벨이 제물을 먹는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사제들을, 증명한다면 다니엘을 죽일 것이라고 선포했다.
그러자 목숨이 걸려 마음이 급해진 사제들은 비밀 통로로 가족들을 들여보내 신전 안에 있는 제물을 모두 먹어치우게 했지만, 다니엘이 미리 바닥에 재를 뿌려두었기 때문에 그들의 발자국이 남는 바람에 사제들의 꼼수가 들통났다는 이야기다.
사제들과 벨 신상을 모시던 신전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또 기억에 남는 괴물 중 하나는 휘어진 뿔과 말처럼 갈귀가 있으며 들소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전설 속 동물 보나콘이다.
보나콘은 위험이 닥치면 무려 반경 200미터까지 똥을 발사하고 항문에서 축구장보다 더 넓을 만큼의 수증기를 분사한다는데, 똥과 열기에 닿는 즉시 그 어떤 동물이라도 타버리거나 타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니 우습다가도 그 위력에 놀라게 된다.

<세계 괴물 백과>는 전세계로 영역을 넓혀 다양한 문화의 괴물을 소개했다보니 110마리의 괴물 중 대부분은 이름조차 처음 보았지만 책이나 영화에서 보았던 괴물도 있었고, 그렇게 아는 괴물은 대부분 그리스 신화와 유럽의 전설 속 괴물이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어렸을 적부터 재미있게 보았던 홍은영 작가님의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와 영화 <해리 포터>시리즈의 이미지가 계속 떠올랐다.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를 보았다면 헤르미온느가 똑부러지게 맨드레이크(Mandrake, 만드라고라)를 설명하는 장면과 (게다가 헤르미온느도 맨드레이크라는 이름을 말한 뒤 바로 만드라고라라고 덧붙였다) 맨드레이크를 옮겨 심을 때 네빌이 귀마개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기절했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맨드레이크는 사람 같은 생김새도 그렇지만 땅에서 뽑힐 때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다는 것도 괴이한데, 그 비명을 들으면 죽는다고 한다.
더 끔찍한 것은 그렇기 때문에 맨드레이크를 채취할 때 인간들은 귀마개를 하고 개를 이용했다는 이야기였다.
맨드레이크 채취 이야기는 전설이지만 인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익을 위해서는 동물을 유린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인간들의 모습은 현실에서, 지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 과연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거울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괴물 이야기는 신화와 전설의 일부이기 때문에 신화와 전설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사람의 생각과 인식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

아무튼 맨드레이크뿐만 아니라 <해리 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괴물들이 더 소개가 되지만 영화와 소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해리 포터> 시리즈 안에서 신화와 전설 속 괴물들의 특징이 잘 구현되었다는 것 외에는 말을 아껴야겠다.

<세계 괴물 백과>를 읽는 것은 모르는 괴물 이야기를 알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알고 있는 괴물에 대해서도 더 알아가는 일이었다.
예를 들면 스핑크스는 이집트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들 중 하나일 정도로 잘 알려져 있고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것은 무엇이냐’는, 스핑크스가 내는 수수께끼 이야기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텐데, 책에서는 두 번째 수수께끼가 등장하는 판본도 소개했다.
두 번째 수수께끼는 ‘두 자매가 있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낳고, 다른 하나가 또다시 다른 하나를 낳는 것은 무엇인가?’인데 나는 처음에는 ‘닭과 달걀’을 떠올렸지만 자매라는 전제가 있으니 정답은 그게 아니었고, 정답을 알고 나자 과연 첫 번째 수수께끼처럼 지혜로운 질문과 답이라고 생각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괴물 이야기는 신화와 전설의 일부이기 때문에 신화와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문화의 괴물이지만 많이 닮은 이야기들도 볼 수 있었다.
그리스 신화 속의 악타이온(Actaeon)이야기가 그러한데,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안다면 “아아~” 할지도 모르겠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사냥을 하던 악타이온이 목욕을 하고 있던 아르테미스 신을 훔쳐봤고 아르테미스는 악타이온을 사슴으로 변하게 했는데 악타이온이 사슴으로 변한 것을 모르는 사냥개들이 사슴으로 변한 악타이온을 물어 죽였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이슈타르 신이 양치기 목자를 늑대로 만들었고 늑대로 변한 양치기 목자는 다른 양치기들과 양치기 개들에게 쫓기다가 죽게 되었다는,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로 유명한 대홍수 신화도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여러모로 신비하고 여러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했다

우연이든 아니면 한 문화에서 여러 문화로 전파되며 영향을 준 것이든, 비슷한 괴물 이야기를 읽고 그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역시 흥미로운 일이었다.
내가 괴물 이야기를 읽고 나름대로 분석을 하듯 과거 여러 사람들도 나름대로 전설을 설명하려고 했는데, 고대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 루크레티우스(Titus Lucretius Carus)가 켄타우로스(Centaurs)를 분석한 내용이 재미있었다.


(...) 그의 설명에 따르면, 말은 3살이면 이미 어른 말로 성장하는데 비해 인간은 3살이면 고작 갓난아기보다 조금 클 뿐이다. 이처럼 각기 다른 발육 주기를 고려할 때 인간과 말이 합쳐진 생물이 존재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p.85


<세계 괴물 백과>에는 내가 처음 보는 괴물 이야기가 많았으며 책을 읽으면서 이미 알고 있는 괴물에 대해서도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어 내 상상력의 반경이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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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컷 프로 X으로 시작하는 유튜브 동영상 편집 - 따라 하기만 하면 나도 유튜버!
남시언 지음 / 비제이퍼블릭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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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영상 편집도 부상해서 영상 편집에 대한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스마트폰으로도 간단한 동영상 편집은 할 수 있다지만 아무래도 퀄리티 있는 영상은 파이널 컷 프로나 프리미어 프로 같은 영상 편집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컴퓨터 영상 편집 프로그램의 양대 산맥은 프리미어 프로와 파이널 컷 프로지만 파이널 컷 프로는 맥북이나 아이맥에 쓰이는 Mac OS에서만 사용이 가능한데 우리나라는 윈도우 사용자가 훨씬 많으므로 프리미어 프로에 대한 정보 또한 더 많은 것 같다.
당장 온라인 서점에 ‘프리미어’와 ‘파이널 컷’을 검색하면 검색 결과 숫자가 다르니까 말이다.

하지만 프리미어 프로보다 사용이 편하다거나 매달 결제해서 사용하는 프리미어 프로와 달리 한 번 구매하면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장점 때문에 파이널 컷 프로도 영상 편집 프로그램으로 많이들 선호하고, 나 또한 이런 이유로 프리미어 프로가 아닌 파이널 컷 프로로 영상 편집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프리미어 프로를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쏟아지는 동안 묵묵히 내가 원하는 파이널 컷 프로를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출간되기를 기다렸다.
기초부터 심화까지 한 권에 있으며 어렵지 않게 따라할 수 있도록 사진과 그림 자료가 많은 책을.

그리고 그 조건을 충족하고도 남는 책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이 <파이널 컷 프로 X으로 시작하는 유튜브 동영상 편집>이다.
<파이널 컷 프로 X으로 시작하는 유튜브 동영상 편집>은 파이널 컷 프로를 사용하는 방법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영상을 이해하기 위한 원리와 기초부터 시작해서 기본적인 영상 편집 방법을 지나 영상 퀄리티를 더욱 높힐 수 있은 보정과 다양한 효과를 적용하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거기에다 많은 사진과 그림 자료를 활용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어려워보이기만 했던 파이널 컷 프로가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있는 ‘꿀팁’, ‘궁금해요’, ‘초보탈출’, ‘레벨업’ 코너에서는 궁금했던 점을 시원하게 긁어주거나 파이널 컷 프로를 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알찬 정보들이 담겨있다.
일부는 유튜브 동영상 강좌 QR코드가 함께 있기도 하고.
600여 페이지로 백과사전급 두께인 덩치값을 할 만큼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고 보면 된다.

장점이 두드러지는 파이널 컷 프로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글로 정식 번역되지 않아서 영어 메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일 텐데, 이 책에서는 꼭 필요한 기능의 메뉴는 당연히 살펴보고 넘어가며 그 뒤에 영상 편집 방법을 설명할 때도 파이널 컷 프로 화면 사진 자료가 있기 때문에 책을 보고 차근차근 따라하면 영어 메뉴도 잘 사용하게 될 것이다.
찾아보기도 한글과 영어 둘 다 준비되어 있다.

< 파이널 컷 프로 X으로 시작하는 유튜브 동영상 편집>은 한마디로 파이널 컷 프로의 교과서 같아서 책상 한편에 두면 든든한 책이다.
첫 장부터 차근차근 따라하며 파이널 컷 프로 사용법을 배우는 데에도 좋고, 영상 편집을 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찾아보기에도 좋다고 생각한다.

참, 온라인에 동영상 편집을 하려면 맥북 사양이 어때야 하는지 묻는 글이 꽤 많은데, 이 책에서 파이널 컷 프로로 동영상 편집을 하기 위해 필요한 사양과 그에 따른 맥북 선택 방법을 알려주니 맥북을 구매하기 전에 책부터 읽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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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은 여자가 필요해 - 268년 된 남자 학교를 바꾼 최초 여학생들
앤 가디너 퍼킨스 지음, 김진원 옮김 / 항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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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두 알다시피 예전에 고등교육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남성만이 받을 수 있었고 세계적인 명문대학들도 다르지 않았다.
(일부 나라에서는 여전히 차별이 진행되고 있다지만 대체로) 나는 운 좋게도 교육의 평등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에 태어나 교육 받았기 때문에 고등교육 기관이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었던 때를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이 책은 고등교육기관의 전환기를 예일이라는 한 대학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었다.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의 저자 앤 가디너 퍼킨스 역시 예일대 출신으로, 쉰두 살에 박사 학위를 따기로 하면서 수강한 고등교육의 역사 강의 과제물 주제를 생각하다가 자신이 다녔던 예일대에 최초로 입학한 여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가 예일대 기록 보관소를 여러 번 드나들며 수많은 자료와 문서를 읽고, 마흔두 명의 여성을 인터뷰한 끝에 이 책이 탄생했다.

268년 동안 남학생에게만 문을 열었던 예일 대학은1969년이 되어서야 여학생에게도 문을 (그것도 조금) 연다.
예일 대학과 함께 명문대학으로 꼽혔던 하버드 대학을 비롯한 몇 대학에서는 여학생도 강의를 들을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많은 명문대들이 여학생의 입학을 불허했다.
그리고 많은 예일대 남학생들은 주말에만 여학생들을 볼 수 있다는 데에 불만을 가지고 여학생을 받자고 외쳤고, 당시 예일대 총장이었던 킹먼 브루스터 주니어는 우수한 남학생은 인종, 종교, 계층과 상관없이 입학을 허용하라며 진보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음에도 성에 대해서는 보수적이어서 예일대를 남자들만의 섬으로 유지하자는 태도를 고수했다.
이런 킹먼 브루스터 주니어가 태도를 바꾸게 된 원인이 무엇이냐 하면, 연애가 고팠던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가까이에 두고 싶어하는 욕망이었다.
예일 대학 입학 허가를 받은 많은 수의 남학생들이 예일 대학에 여학생이 없다는 이유로 하버드와 같은 다른 대학을 선택했고, 프린스턴 대학도 남녀공학을 실시한다고 하자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그래서 예일대는 말 그대로 급하게 남녀공학으로 바뀌게 되었고, 10개월 만에 여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그렇게 고집 부리던 예일대가 여학생들에게 문을 열게 된 이유가 평등을 위한 것도 아니요, 여학생이 남학생과 동등한 교육 기회를 부여받는 것이 공정하다는 생각 때문도 아니었고, 전략적인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예일대가 남녀공학으로 전환되었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예일 대학이 남녀공학으로 바뀐 첫해에 575명의 여학생들이 등록했는데 남학생들의 지위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여학생은 적게 모집했기 때문에 남학생 대 여학생 비율이 7 대 1이었다.
게다가 킹먼 브루스터 주니어 총장은 ‘현 상태를 최대한 깨뜨리지 않으며’ 여학생을 받아들이려고 했기 때문에 최초로 예일대에 다니게 된 여학생들은 소수자이자 개척자로서 여러 문제에 직면했고, 남학생이었더라면 당연하게 주어졌을 것들을 위해 투쟁하며 대학을 바꿔나갔다.


(...) 예일 대학은 여학생에게 숙소와 수업 등록 자격은 주었지만 운동선수나 고적대원처럼 명망 높은 학생 활동은 여전히 남성들 차지로 두었다.
로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웃기시네, 절대 내 앞을 가로막지 못해.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오히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로리는 필드하키를 하는 다른 여학생을 만났고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었다. 며칠이 지난 뒤 손으로 쓴 전단지가 밴더빌트 홀 출입문에 나붙었다. “필드하키 하고 싶은 사람? 밴더빌트 홀 23호 제인 커티스나 밴더빌트 홀 53호 로리 미플린에게 알려주세요.” (...) 미국 필드하키의 개척자 콘스턴스 애플비는 선수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시키는 대로 하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이 교훈을 로리는 이미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p.87


저자 앤 가디너 퍼킨스는 예일대에 최초로 입학한 575명의 여학생들 중 셜리 대니얼스, 키트 매클루어, 코니 로이스터, 베티 스판, 그리고 로리 미플린, 이 다섯 명의 여학생들에게 집중한다.
키트 매클루어는 그녀의 부모가 여자애는 트롬본이 아니라 플루트나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피아노를 치라고 했지만 혼자서 트롬본을 부는 방법을 배워서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트롬본을 부는 유일한 여학생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베티 스판은 룸메이트가 장난으로 예일대 지원서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예일 대학에 다니게 되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예일대에서 베티 스판의 룸메이트가 된 코니 로이스터는 전미 유색인종 지위향상협회 뉴헤이븐 지부의 공동 창립자인 할머니와 미국 최초 흑인 연방 판사로 임명된 고모를 두고 있었고, 또 그녀의 집안은 전부터 예일 대학의 사교 클럽에서 일했기 때문에 예일 대학과 인연이 있었다.
셜리 대니얼스는 아프로아메리칸학을 공부하기 위해 예일대로 편입했으며, 로리 미플린은 키트 매클루어가 여자를 받지 않겠다는 예일대 고적대에 결국 들어간 것처럼 여학생의 운동 활동에 제한을 둔 예일의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고 필드하키 팀을 만들기로 하는 당찬 학생이었다.
이렇게 예일대 여학생들의 행보를 보면 과연 똑똑할 뿐만 아니라 기개가 좋은 여학생을 뽑았다는 말이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 여러 면에서 예일대의 최초 여학생들은 575개 집단인 듯 서로 달랐다. 하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이 여학생들은 모두 똑똑했다. 남학생보다 똑똑했다. 그건 첫 학기 성적이 여실히 보여줬다. 그리고 굳셌다. 적어도 이건 지원서에서 주장한 모습 그대로였다.
p.77


(...) 게다가 엘가와 촌시는 최초 여학생들에게서 남학생에게는 별로 요구하지 않은 자질을 찾으려 했다. 그들은 성적을 훑어본 다음 기개가 좋은 여학생을 뽑았다.
남자 형제가 넷인 여학생, 규모가 큰 고등학교에 다닌 여학생, 1년 동안 일을 한 여학생, 해외에 살아본 여학생, 운동을 한 여학생, 힘든 경험을 이겨낸 여학생, 이들이 엘가와 촌시가 바란 여학생이었다. 예일 대학이 맞이한 최초 여학생들은 자신 앞에 어떤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직 알지 못했지만, 엘가와 촌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촌시는 이렇게 말했다. “소심한 여학생을 뽑아서 이런 환경에 밀어넣은들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겨내지 못할 테니까요.”

p.79


예일 대학의 여성 관리자로서 고군분투한 엘가 와서먼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남편 해리와 같은 하버드 대학 화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여성에게는 연구 조교 자리 정도만 주어졌기 때문에 남편은 예일 대학에서 종신 교수가 된 반면에 엘가는 연구 조교로 커리어를 시작해야 했지만, 한정된 선택지 속에서도 항상 최선을 다했던 엘가는 남성의 전유물이던 예일대 대학원 과학 담당 부학과장까지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 엘가는 예일대 남녀공학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대학에서 여성을 관리직으로 고용하는 일이 드물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몇몇 남성 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예일 대학 부학장이 아닌 여성교육 총장 특임비서라는 단어 뭉치를 직함으로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남녀공학 임무에서 엘가는 뛰어난 일처리 능력을 발휘하며, 이후로도 계속해서 예일대를 변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비록 남성만 앉던 자리였지만. 엘가는 대학원 부학과장을 하다가 옮겨왔으니 다음 단계는 당연히 예일 대학 부학장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브루스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몇몇 남성 학장들이 이의를 제기했다며, 여성이 그런 직함을 달면 그들에게 모욕감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엘가는 ‘특임비서’가 되었다. 예일 대학의 위계질서를 헤치지 않는 직위였다.
엘가와 같은 수많은 여성이 감내하는 이런 모욕이 학생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예일 대학에서 엘가의 지위가 내려갈 때마다 이제 막 예일 대학에서 짐을 푸는 젊은 여학생을 옹호할 힘도 줄어들었다.

p.75


이들의 모습은 책 앞쪽에 있는 사진 자료에서 볼 수 있는데, 처음에 책을 펼쳐서 앞의 사진 자료를 보니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책에 담긴 이야기가 실재한다는 것이 훅 느껴져서 뭉클했다.
그리고 본문을 읽으면서 지금의 대학이 있기까지 여성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알게 되니 가슴이 벅차올랐고, 지금도 단톡방 성희롱이나 불법촬영 등 대학 내 여성들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나도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년 전의 이야기에서 기시감이 느껴질 만큼 수십 년 전의 모습이 아직도 비슷한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었기에 더욱.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를 읽으면서 영화 <세상을바꾼 변호인>과 <모나리자 스마일>이 떠오르기도 했다.
두 영화는 1969년보다 이른 1950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에 다니는 단 9명의 여학생 중 한 명과 명문 여대를 다니는 여학생에게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려는 고군분투를 볼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리라.
그렇기에 반대로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이나 <모나리자 스마일>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다면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를 읽으면서도 감명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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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팬 사라진 그림자 - 원작 애니메이션과 함께 보는 디즈니 오리지널 노블 디즈니 오리지널 노블
리즈 브라즈웰 지음, 성세희 옮김 / 라곰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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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픽션이 아닌 디즈니 오리지널 노블이기 때문에 더욱 읽는 재미가 있는 <what if> 시리즈인 <피터 팬 사라진 그림자>가 국내에 출간되었다.
같은 시리즈인 <겨울왕국, 또 하나의 이야기>와 <뮬란 새로운 여정>이 영화 개봉에 맞추어 출간되었고 <피터팬>은 실사 영화가 만들어질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밀라 요보비치의 딸이 웬디 역으로 캐스팅 되었고 팅커벨 역으로는 흑인 배우가 캐스팅 되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터팬>을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나중에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일찍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겨울왕국, 또 하나의 이야기>와 <뮬란 새로운 여정 >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피터 팬 사라진 그림자>도 놓칠 수 없었다.

<피터 팬 사라진 그림자>는 국내에 먼저 출간된 디즈니 오리지널 노블 <what if> 시리즈 두 권과는 다르게 양장본, 그것도 내가 선호하는 패브릭 재질의 양장본이 초판 한정으로 출간되었기 때문에 꽤나 신경 썼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손에 박이 묻어나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피터팬>이 변주된 이야기가 애니메이션 장면과 함께 펼쳐졌는데, 애니메이션 스틸 이미지가 선명하지는 않지만 영화가 1953년 작으로 거의 70년 가까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오히려 그 시절 애니메이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되었다.

이야기는 피터 팬이 웬디의 집에 그림자를 두고간 지 4년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된다.
웬디의 두 남동생 존과 마이클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었고, 열여섯 웬디는 당시의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니지 않고 가정교습을 받고 집안일을 하며 두 남동생을 보살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동생들과는 다르게 수첩에 피터 팬과 네버랜드의 이야기를 적으며 피터 팬이 그림자를 찾으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웬디를 보다못한 부모님이 무려 남자아이들 다섯 명을 돌보라며 아일랜드로 보내려고 한다.
그러자 웬디는 더는 피터 팬을 기다리지 않고 한밤 중에 집을 나와서 피터 팬의 그림자로 후크 선장과 거래하여 배를 타고 네버랜드로 향했다.

원하던 네버랜드에 도착한 웬디는 처음에 만들었던 이야기에서 구출했던 늑대 루나와 피터 팬과 함께했던 ‘잃어버린 소년들’을 만나고, 피터 팬의 그림자를 되찾아주기 위해 웬디를 찾아다니던 팅커벨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피터 팬에 대한 오해도 풀고 네버랜드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웬디는 네버랜드에 오기 위해 자신이 저지른 일을 바로 잡고 후크 선장을 막기로 결심하고 요정 팅커벨과 함께 피터 팬을 찾아 네버랜드를 모험한다.


“용감하고도 숭고한 행동이었어. 나를 위해 너의 그림자를 포기하다니. 고마워. 내가 널 그렇게 대했는데도....... 난 그럴 자격이 없는데. 이제 넌 런던으로 돌아갈 수 없잖아.”
“뭐라고?”
웬디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림자가 없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
“하지만 왜? 피터는 런던에 그림자를 두고 이곳에 돌아왔잖아!”
“피터는 요정과 다름없는 존재잖아. 넌 인간이고. 이곳은 달라. 런던에서처럼 그림자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 하지만 인간 세상에선 그림자에 대해 굉장히 엄격하잖아. 미안해.”
“난 런던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는데 뭐.”
웬디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조금 거짓말이었다. 웬디는 늘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p.223


<피터 팬 사라진 그림자>는 피터 팬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주인공은 피터 팬이 아닌 웬디이며 웬디와 팅커벨의 우정이 돋보이는 이야기로, 웬디와 팅커벨은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고 모험 중 위기를 함께 겪으면서 단단한 관계가 된다.


“어쨌든, 난 피터나 너 없이, 혼자 여기까지 올 방법을 찾아야 했어. 대가나 결과 같은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 비록 내가 원했던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난 마침내 나의 모험을 하고 있어. 난 정말 진심으로, 친구로서 너와 함께 여행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야. 나는 네 적이 아니야, 팅커벨. 내가 너에 대해 알았더라면, 아마도 너의 굉장한 팬이 되었을 거야.”

p.196


그리고 <피터 팬>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여자들에게 요구되는 것들을 나름대로 피하려고 하고, 피터 팬을 기다리는 웬디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피터 팬을 찾아 모험을 하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웬디가 되었다는 것도 좋았다.
이렇듯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피터 팬> 속의 웬디와 요정 팅커벨의 다른 모습을 보고 싶다면 동심으로 돌아가 읽는 <피터 팬 사라진 그림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웬디는 남을 돌봐주는 일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소녀가 아니라, 모험과 도전을 하고 싶고,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와 인생의 목적을 찾고 싶은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웬디기 런던의 삶도 바꿀 수 있을까? 그래서 네버랜드로 도망쳐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무엇으로 웬디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런던에서, 웬디가 할 수 있는 일들 중에 무엇이 웬디를 행복하게 할까?

p.268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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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별이 만날 때
글렌디 벤더라 지음, 한원희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밤하늘을 볼 때면 느껴지는 아름다움, 저 너머에 내가 알지 못하는 무한한 세계가 있다는 데서 오는 신비감과 경외,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을 울리는 그 감상을 책 표지를 보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숲의 나무 사이에서 올려다 본 푸른 하늘에 쏟아질 듯 별이 수놓아져 있는 이 책의 표지는 실물을 보자마자 헉 하고 숨을 들이쉴 정도로 아름다웠고, 내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질반질한 표면은 맑은 호수 같아서 손을 대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지금까지 내가 본 책들 중 이보다 아름다운 책이 있었나 하고 곰곰히 생각해봐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첫인상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내용만큼이나 표지에 공을 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의 표지는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워서 책을 펼치기 전부터 소설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가다못해 내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서 소설에 아쉬움을 느끼게 될까 봐 걱정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고, 나는 오랜만에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다.

교수의 산장에서 혼자 지내면서 새 둥지를 관찰하며 연구를 진행 중인 대학원생 조(조애나 틸)의 집 앞에 꾀죄죄한 몰골에 맨발인 여자 아이 하나가 나타났는데, 열 살쯤 되어 보이는 그 아이는 자신이 북극곰 자리 꼬리에 위치한 바람개비 은하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믿지 않은 조는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노력하던 중에 아이의 몸에 있는 멍자국을 보고 아이가 학대를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경찰에 신고도 했지만 무신경한 경찰의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 외지인인 조는 노상에서 달걀을 판매하는 달걀 장수 게이브(개브리엘 내시)에게 도움을 청했었지만 그도 뾰족한 수를 생각해내지는 못했기 때문에,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이 온 별이 있는 큰곰자리(Ursa Major)에서 가져와 얼사(Ursa)라는 이름을 스스로 붙인 여자 아이는 조의 집과 게이브의 농장을 오가며 (조는 마치 이혼한 부부가 서로의 집에 아이를 넘겨주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내게 된다.
조가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면 얼사는 지구에서 다섯 가지 기적을 보게되면 돌아갈 것이라고 대답하곤 했기에 얼사가 다섯 가지 기적을 보거나 그들에게 마음을 열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집에 갈 시간 아니니?”
“난 지구에 집이 없어. 저기서 왔거든.”
아이가 가까이 다가오며 대답했다. 손가락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디라고?”
“얼사 메이저.”*
“큰곰자리를 말하는 거야?”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개비 은하에서 왔어. 꼬리쯤에 있는 거야.”

*Ursa Major. 큰곰자리를 일컬음.

p.10-11


“아직 돌아갈 수 없어. 다섯 개의 기적을 보기 전까지 지구에 머물러야 해. 나이가 차면 누구나 거쳐가는 훈련 중 하나야. 학교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꽤 오래 있겠네. 수천 년 동안 물이 와인으로 변하는 일은 없었거든.”
“성경에 나오는 그런 기적을 말하는 게 아니야.”
“그럼 어떤 기적?”
“어떤 거든 상관없어.”
아이가 말했다.
“언니도 기적이고, 저 강아지도 기적이야. 난 지금 새로운 세상에 왔어.”

p.14-15


처음에는 갑자기 나타나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얼사의 정체가 무엇일지, 맨발에 꾀죄죄한 모습이었고 몸에 멍까지 있는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고, 이야기에 판타지적 분위기를 부여하는 얼사라는 등장인물이 흥미로웠다.
10살로 추정되지만 그 나이의 아이보다 눈치가 빠르고 똑똑한 면모가 보일 때면 더욱 얼사의 과거가 알고 싶어졌고.
거기에다 계속해서 소설을 읽으면서 생긴, 어머니를 잃었다는 아픔뿐만 아니라 신체의 일부를 잃게 된 조의 사연과 겉보기와는 다르게 사회 불안, 우울증, 경미한 광장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게이브의 사연에 대한 궁금증도 책장을 계속해서 넘기게 했다.
얼사 때문에 왕래하게 된 조와 게이브의 대화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데, 이 둘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그 관계가 좋았다.


“얼사한테 괜찮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렇다고 말해줄 수 있겠어요? 얼사는 그쪽이 죽을까 봐 잔뜩 겁먹었어요.”
“모든 사람은 죽기 마련이에요.”
“아홉 살 버전으로 부탁해요.”
(...)
“제 사생활에 대해 얼사가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나요?”
“어떤 내의를 입는지는 미처 얘기 못 나눴네요.”
‘내의’라니. 그의 단어 선택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크게 미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제 트럭으로 함께 가시죠.”
“제 꼴이 말이 아닌데요.”
“제 트럭도 그래요.”

p.105


종류는 다를 수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나름의 상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각자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얼사, 조, 게이브 세 사람의 이야기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치유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얼사가 지구에서 작은 기적을 볼 때면 별 것 아닌 것이라 여기거나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내 주변의 작은 기적들을 찾아보게 된다.
그렇다, 이 책은 안팎으로 아름다운 책이었다.


“어떤 면에서 이 흉터들이 우리를 만나게 해 준 셈이에요.”
그가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내 흉터도 마찬가지예요. 이보다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요?”
“없어요.”

p.350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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