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별이 만날 때
글렌디 벤더라 지음, 한원희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9월
평점 :
일시품절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밤하늘을 볼 때면 느껴지는 아름다움, 저 너머에 내가 알지 못하는 무한한 세계가 있다는 데서 오는 신비감과 경외,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을 울리는 그 감상을 책 표지를 보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숲의 나무 사이에서 올려다 본 푸른 하늘에 쏟아질 듯 별이 수놓아져 있는 이 책의 표지는 실물을 보자마자 헉 하고 숨을 들이쉴 정도로 아름다웠고, 내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질반질한 표면은 맑은 호수 같아서 손을 대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지금까지 내가 본 책들 중 이보다 아름다운 책이 있었나 하고 곰곰히 생각해봐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첫인상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내용만큼이나 표지에 공을 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의 표지는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워서 책을 펼치기 전부터 소설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가다못해 내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서 소설에 아쉬움을 느끼게 될까 봐 걱정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고, 나는 오랜만에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다.

교수의 산장에서 혼자 지내면서 새 둥지를 관찰하며 연구를 진행 중인 대학원생 조(조애나 틸)의 집 앞에 꾀죄죄한 몰골에 맨발인 여자 아이 하나가 나타났는데, 열 살쯤 되어 보이는 그 아이는 자신이 북극곰 자리 꼬리에 위치한 바람개비 은하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믿지 않은 조는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노력하던 중에 아이의 몸에 있는 멍자국을 보고 아이가 학대를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경찰에 신고도 했지만 무신경한 경찰의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 외지인인 조는 노상에서 달걀을 판매하는 달걀 장수 게이브(개브리엘 내시)에게 도움을 청했었지만 그도 뾰족한 수를 생각해내지는 못했기 때문에,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이 온 별이 있는 큰곰자리(Ursa Major)에서 가져와 얼사(Ursa)라는 이름을 스스로 붙인 여자 아이는 조의 집과 게이브의 농장을 오가며 (조는 마치 이혼한 부부가 서로의 집에 아이를 넘겨주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내게 된다.
조가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면 얼사는 지구에서 다섯 가지 기적을 보게되면 돌아갈 것이라고 대답하곤 했기에 얼사가 다섯 가지 기적을 보거나 그들에게 마음을 열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집에 갈 시간 아니니?”
“난 지구에 집이 없어. 저기서 왔거든.”
아이가 가까이 다가오며 대답했다. 손가락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디라고?”
“얼사 메이저.”*
“큰곰자리를 말하는 거야?”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개비 은하에서 왔어. 꼬리쯤에 있는 거야.”

*Ursa Major. 큰곰자리를 일컬음.

p.10-11


“아직 돌아갈 수 없어. 다섯 개의 기적을 보기 전까지 지구에 머물러야 해. 나이가 차면 누구나 거쳐가는 훈련 중 하나야. 학교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꽤 오래 있겠네. 수천 년 동안 물이 와인으로 변하는 일은 없었거든.”
“성경에 나오는 그런 기적을 말하는 게 아니야.”
“그럼 어떤 기적?”
“어떤 거든 상관없어.”
아이가 말했다.
“언니도 기적이고, 저 강아지도 기적이야. 난 지금 새로운 세상에 왔어.”

p.14-15


처음에는 갑자기 나타나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얼사의 정체가 무엇일지, 맨발에 꾀죄죄한 모습이었고 몸에 멍까지 있는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고, 이야기에 판타지적 분위기를 부여하는 얼사라는 등장인물이 흥미로웠다.
10살로 추정되지만 그 나이의 아이보다 눈치가 빠르고 똑똑한 면모가 보일 때면 더욱 얼사의 과거가 알고 싶어졌고.
거기에다 계속해서 소설을 읽으면서 생긴, 어머니를 잃었다는 아픔뿐만 아니라 신체의 일부를 잃게 된 조의 사연과 겉보기와는 다르게 사회 불안, 우울증, 경미한 광장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게이브의 사연에 대한 궁금증도 책장을 계속해서 넘기게 했다.
얼사 때문에 왕래하게 된 조와 게이브의 대화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데, 이 둘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그 관계가 좋았다.


“얼사한테 괜찮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렇다고 말해줄 수 있겠어요? 얼사는 그쪽이 죽을까 봐 잔뜩 겁먹었어요.”
“모든 사람은 죽기 마련이에요.”
“아홉 살 버전으로 부탁해요.”
(...)
“제 사생활에 대해 얼사가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나요?”
“어떤 내의를 입는지는 미처 얘기 못 나눴네요.”
‘내의’라니. 그의 단어 선택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크게 미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제 트럭으로 함께 가시죠.”
“제 꼴이 말이 아닌데요.”
“제 트럭도 그래요.”

p.105


종류는 다를 수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나름의 상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각자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얼사, 조, 게이브 세 사람의 이야기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치유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얼사가 지구에서 작은 기적을 볼 때면 별 것 아닌 것이라 여기거나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내 주변의 작은 기적들을 찾아보게 된다.
그렇다, 이 책은 안팎으로 아름다운 책이었다.


“어떤 면에서 이 흉터들이 우리를 만나게 해 준 셈이에요.”
그가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내 흉터도 마찬가지예요. 이보다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요?”
“없어요.”

p.350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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