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가 -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파리의 관찰자 클래식 클라우드 24
이연식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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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드가의 그림을 벽에 걸어두며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그의 그림 몇 점을 좋아한다고 “에드가 드가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에드가 드가가 여성을 혐오한다는 말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이런 찜찜함은 근본적으로 내가 에드가 드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 잘은 모른다는 것에서 기인한 것인데, 이번에 아르테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클래식 클라우드 스물네 번째 책 <드가>를 읽으면서 일레르 제르맹 에드가르 드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서 알아가는 여행을 했다.



에드가르 드가(또는 에드가 드가)의 풀네임은 일레르 제르맹 에드가르 드가(Hilaire Germain Edgar Degas)인데, 책을 읽으며 그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보통 사람들이 화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는 퍽 다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그는 할아버지가 프랑스를 떠나 이탈리아 나폴리에 은행을 차려서 이룬 부 덕분에 경제적으로 아쉬울 것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심지어 어릴 때 음악과 미술을 좋아하는 아버지와 함께 미술품 수집가들을 만나러 다녔고, 그런 아버지이기 때문인지 드가가 화가가 된다고 했을 때 집안의 반대도 없었다고 하니 예술가로서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었던 셈이다.
덕분에 드가는 국비 유학에 목을 맬 필요 없이 미술의 본산으로 여겨지던 이탈리아에 가서 친척 집에 머무르며 거장의 작품을 직접 보고 연구하는 그림을 공부할 수 있었고, (나중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시기도 있었지마는) 대체로 예술가 활동을 하면서도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 다른 화가와 달리 경제적 이유로 압박 받는 일이 없었다.


(...)
이 대목에서 드러나는 것은 인상주의 예술가들이 예술적인 지향점 외에 계급적인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드가와 마네, 카유보트, 베르트 모리조, 커셋은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고, 모네와 르누아르는 형편이 안 좋았다. 특히 르누아르는 재봉사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돈을 벌기 위해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면서 예술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런데 가장 가난했던 르누아르의 그림이 가장 따스하고 행복한 느낌을 준다. 그에게는 대중의 사랑이 당장 필요했기 때문이다. 반면 드가와 커셋, 카유보트는 냉랭하고 세련된 스타일을 보여준다.

이처럼 대부분의 인상주의 예술가들이 지향했던 중심부에서 비켜나 주변부에서 움직이던 드가의 행보는 그의 부유한 배경과 관련있었다. 당장 작품을 팔지 않아도 되었던 그는 멀리 내다보면서 미술계에서 자신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존재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움직이려 했다.

p.102-105


그리고 그는 인상주의 모임에 속하면서도 밖으로 나가 햇빛 아래의 자연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화가들과는 다르게 도시 문명이 만들어낸 인공조명 아래인 실내에 있는 인물들을 그려냈다.


하지만 드가도 초반에 역사화를 그리던 때가 있었고, 나는 그런 면모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드가가 이런 그림도 그렸단 말이야?’하는 생각이 드는 그림도 볼 수 있었다.

사실 그림을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역사화는 드가에게는 맞지 않는 옷처럼 보였는데, 그렇게 어정쩡하게 역사화를 그리던 드가는 ‘자기 시대와 함께 보이는 걸 그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나간 일보다는 현재를 그렸던 에두아르 마네의 영향을 받아 일상적인 모습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네가 드가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 외에도 두 사람의 운명은 흥미롭게 엮여있었다.

한번은 드가가 마네 부부의 모습을 그려 마네에게 선물했다가, 며칠 뒤 마네의 집에 방문했을 때 자신이 선물한 그림이 잘려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그 그림을 가지고 나와야 했다.
드가는 소파에 앉아 있는 마네와 피아노를 치고 있는 마네의 배우자 쉬잔 렌호프를 그려서 줬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마네는 평소 쉬잔의 얼굴을 더 아름답게 그렸기 때문에 드가가 그린 쉬잔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쉬잔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그림을 일부 잘라버렸던 것이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 찢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같은 화가였던 마네가 나보다 더 잘 알았을 텐데, 이런 무례한 행동에 드가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지... 하지만 놀랍게도 드가는 마네에게 따지고 들지도 않았다고 한다.

(위 : 드가가 그린 <마네 부부>, 아래 :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피아노를 치는 쉬잔 렌호프>)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 난다면 드가와 마네의 운명이 흥미롭게 엮였다고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후에 마네의 그림 또한 잘리는 운명에 처하는데, 마네가 죽고 그의 그림을 정리하던 양아들이 <막시밀리안의 처형>을 판답시고 그 작품을 조각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조각난 마네의 <막시밀리안의 처형> 조각을 백방으로 애쓴 끝에 찾아내서 캔버스에 붙인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니라 드가였으니 참 흥미롭지 아니한가?
드가가 손님들에게 그렇게 붙인 <막시밀리안의 처형>을 보여줄 때마다 했다는 말도 재미있다.


드가는 손님들에게 이 그림을 보여줄 때마다 “하여튼 가족을 조심해야 하오!”라며 그림을 망친 마네의 가족을 성토했다. 마네는 드가의 그림을 잘랐다가 자신의 그림이 잘렸고, 그것을 드가가 다시 붙였으니 얄궂은 노릇이었다.

p.87



그림을 잘랐다니 말인데, 드가는 화면 속의 인물이나 사물을 신중하고 주의깊게, 그리하여 섬세하고 아름답게 절단했으며, 중심 인물이 한쪽으로 치우쳐있는 등 화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할 거라 기대한 요소와 부차적인 요소를 뒤바꿔 위계를 흐트러뜨리고, 화면 중심에 공백을 만들기도 하면서 역동적이고 전복적으로 화면을 구성했다는 것을 클래식 클라우드 드가편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자 드가의 작품에서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자는 한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고 했고(나도 그 말에 적극 동의한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면서 드가가 살던 19세기 프랑스가 겪었던 여러 차례의 혁명, 프로이센과의 전쟁과 파리코뮌, 파리 대개조, 드레퓌스 사건 등 역사에 대한 지식도 쌓을 수 있었다.

전쟁과 내전 때문에 경제적으로 위축되어 더 보수적인 취향과 기준을 고수할 테니 차라리 우리가 전시회를 열자며 만들어진 ‘무명의 화가, 조각가, 판화가 협회’가 바로 드가의 삶에도 미술사에도 빠질 수 없는 ‘인상주의’ 모임이었으니 당시 시대적 상황이 예술가 개인에게도 미술사 전체에도 큰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하다.
화가들에게 초상화 고객을 빼앗아가고 미술의 흐름을 바꾼 사진의 등장이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미친 영향도 빼놓을 수 없겠다.


무엇보다 클래식 클라우드 <드가>를 읽음으로써 얻게 된 큰 수확은 드가의 그림을 깊고 폭넓게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함께 드가에 대한 오해를 풀게된 것이 아닐까.


여성들을 그려냈다는 것이 내가 드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였건만 반대로 드가가 트라우마 때문에 여성을 혐오했다는 이야기가 세상에 떠돌고 있다.
마치 거의 정설인 것처럼 네이버 검색창에 ‘드가 여성혐오’를 검색해보면 검색 결과가 주르륵 뜨니 여간 신경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에도 여성에 대한 드가의 시선과 생각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드가는 메리 커셋과 베르트 모리조라는 여성 예술가들을 자신이 있는 인상주의 모임에 합류시키고 예술 활동을 격려했으며, 특히 메리 커셋과는 잘 맞아서 곧잘 함께 다녔다는 것을 그림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성의 누드화를 그릴 때 관음적인 시선에서 그렸다는 것에서 한계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저자는 관음증의 대상이 되려면 이상적인 육체여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드가의 많은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 위해 연습하고, 서커스를 하고, 다림질 하는 등 자기 일에 몰두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아냈다는 것을 생각하면 드가는 어쨌든 여성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이렇게 드가가 여성을 혐오했다는 오해를 풀 수 있었고, 또 내가 알고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여성들을 그려낸 드가의 작품들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 책을 읽은 것은 드가의 작품이 더 좋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대표 매력은 단연 ‘한 예술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이다.

<콩코르드 광장, 르피크 자작과 딸들>의 무대인 콩코르드 광장, 드가가 자주 드나들며 발레리나(무용수)의 모습을 그렸다는 오페라가르니에와 같이 드가가 그림으로 그려내거나 머문 장소를 비롯한 파리 곳곳을 저자와 함께 거니는 것은 코로나19 때문에 오랜 기간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는 와중에 코에 바람을 넣어주듯 나를 환기 시켜주었다.
책 앞쪽에 위치한, 주요 장소들을 콕 찝어놓은 그림 지도를 보며 따라가면 더욱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또한 파리의 심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방대한 작품을 소장했고 거대한 규모를 가진 루브르, 그리고 관학파와 (드가가 포함된) 인상주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어 드가의 조각 작품도 볼 수 있는 (루브르보다 규모는 작아서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알찬) 오르세 미술관에 대해서도 즐겁게 읽었다.


특히 드가가 디아고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판화로 옮기다가 마네를 만났던 그 루브르에서 지금도 모사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당연히 원하는 사람 모두가 루브르에서 모사 작업을 할 수는 없고, 루브르 박물관 측에서 전 세계 사람들 가운데 매년 150명에서 200명을 선정해서 허가를 해준다고 한다.
그리고 관람객이 많은 일요일은 작업을 할 수 없으며 위작으로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원작보다 20퍼센트 작은 화면에 작업하고 캔버스 뒷면 나무틀에 박물관 인장을 찍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나중에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에 가면 미술사에 획을 그은 거장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명화를 모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에드가르 드가라는 한 예술가를 통해 그의 작품을 알아가고, 그의 작품을 통해 에드가르 드가라는 예술가를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면서 드가의 작품을 더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통해 드가를 만난 것과 같이 만나고 싶은 예술가가 한 명 생겼다.
바로 ‘오귀스트 르누아르’다.
가난했기 때문에 대중의 사랑이 가장 필요했고, 그렇기에 따스하고 행복한 느낌을 주는 그림을 그린 화가라는, 드가와 대비되었던 르누아르에 대한 문장이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책이 출간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로 거장 100인을 만날 수 있다고 했으니) 앞으로 클래식 클라우드를 통해 독자들과 만날 수십 명의 거장 중에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클림트>에 이어 <드가>를 읽으면서 클래식 클라우드에 대한 신뢰가 더 공고해졌기에 클래식 클라우드 <르누아르>를 읽는 것도 기대된다.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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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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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란 이런 것이었군요. 그리스 원전을 번역하여 각색되지 않은 이솝 우화의 참맛을 알 수 있었고, 각 우화가 가진 교훈이 정리된 데다 친절한 각주 덕분에 우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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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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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는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도 그 내용을 알고 있을 정도로 잘 알려졌지만 이솝 우화의 이솝이라는 이름은 아이소포스라는 고대 그리스 작가이자 연설가의 영어식 이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만 해도 막연히 이솝은 유럽 어딘가의 사람일 거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이번에 알게 된 이솝의 정체가 의외였는데, 또 현대지성 출판사의 <이솝 우화 전집>을 읽으면서 고대 그리스의 우화답게 제우스나 아프로디테나 아테나나 헤르메스 같은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이솝 우화는 정말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현대지성 클래식의 32번째 도서인 <이솝 우화 전집>은 1927년에 에밀 샹브리가 그리스어 원문과 프랑스어 번역문을 함께 수록하여 간행한 판본을 바탕으로 해서 무려 358개의 우화를 담았다.

이솝 우화는 많아야 수십 개쯤 될 줄 알았는데 358개의 우화가 수록되었다니!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무척 많겠다 싶었는데 역시나 <이솝 우화 전집>을 읽으면서 처음 읽은 우화도 있었고, 내용은 알고 있지만 이솝 우화에 속하는 줄은 몰랐던 의외의 이야기도 마주했다.

대표적으로, 사내가 나무를 하다 산 속 연못에 낡은 도끼를 빠뜨리자 연못 속에서 나타난 산신령이 금도끼와 은도끼를 차례로 보여주며 사내의 도끼냐 물었고, 사내는 둘 다 자기 도끼가 아니며 낡은 도끼가 자기 도끼라고 정직하게 말해서 감동 받은 산신령으로부터 금도끼와 은도끼를 모두 선물 받았다는 ‘금도끼와 은도끼’가 있다.
우리나라 설화로 알고 있던 이 이야기의 원제는 ‘나무꾼과 헤르메스’로, 산신령이 아니라 그리스 신 헤르메스가 등장한다는 것 외에는 또옥같다.
우리 것인 줄 알았는데 우리 것이 아니었다는 데 약간의 배신감(?)이 들기도 하더라.


역자의 해제에 따르면 우리가 보통 접하는 어린이를 위한 이솝 우화는 원래의 이솝 우화를 개작한 것이고 영어로 번역된 이솝 우화도 각색되고 분칠되었다고 하니,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미묘하게 다른 점들

이 눈에 들어온 것은 당연하다.
하나만 말해보자면 우리가 ‘개미와 베짱이’로 알고 있는 우화의 원제는 ‘매미와 개미들’로, 베짱이가 아닌 매미가 등장하는 것 외에는 같은 결의 이야기인데, 여름에 개미가 열심히 일할 때에는 일도 하지 않고 노래만 하다가 겨울에는 먹을 것이 없다고 한 곤충으로는 베짱이보다 올 여름에도 귀가 따갑도록 우는 소리를 들려준 매미가 더 와닿았다.


현대지성 출판사의 <이솝 우화 전집>의 또다른 특징으로는 (교훈이 없는 소수를 제외하고) 각 우화마다 본문 아래에 교훈이 딱 정리되어 적혀있고 고대 그리스 우화임에도 각주로 설명이 잘 되어 있어 내용을 파악하기 좋다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매미가 날개 아래에 있는 진동막으로 소리내는 것을 우화에서는 피리로 비유했는데, 각주의 설명을 읽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피리가 춤과 노래를 반주하는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개미가 매미에게 ‘여름철에는 피리를 불었으니 겨울에는 춤을 추면 되겠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제물의 내장을 먹은 아이’라는 우화를 읽고는 이이야기가 담은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서 그저 농담으로만 보였지만, 아래에 적힌 교훈을 읽고 맥락을 알고나서는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제물의 내장을 먹은 아이

시골에 사는 목자들이 염소를 신에게 제물오 바치고 나서 잔치를 베풀어 이웃을 초대했다. 이웃들 중에는 자기 아이를 데려온 가난한 여자도 있었다. 잔치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고기를 너무 많이 먹은 아이가 배가 빵빵해지며 아파오자 말했다. “엄마, 내장을 토할 것 같아요.” 그러자 어머니가 아이에게 말했다. “얘야, 그건 너의 내장이 아니라 네가 먹은 내장이란다.”

남의 돈을 가져다 쓸 때는 좋아하면서도, 정작 그 돈을 돌려줄 때는 마치 자기 돈을 주는 것처럼 속상해하는 사람에게 들려주는 우화다.

p.351


각 우화 아래에 적힌 교훈은 이솝이 아니라 우화를 수집한 사람들이 덧붙인 것이라고 하는데, 연설이나 웅변에서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실용적으로 우화의 주제를 짤막하게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도 이 <이솝 우화 전집>을 곁에 두고 필요한 주제의 우화를 찾아서 멋지게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실은 <이솝 우화 전집>을 읽기 전에는 아무래도 이솝 우화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이미지가 있었고 어렸을 적에 이솝 우화 책을 읽었던 적도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 조금 되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358개의 우화가 수록되었다보니 몰랐던 우화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리스 원전을 그대로 번역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우화도 새롭게 보였다.


또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하며 3대 일러스트레이터로 불린 아서 래컴을 포함한 그림 작가들의 일러스트도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삽화로 잘 어울렸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여 각색된 이솝 우화와는 달리 조금 잔인한 면도 있고 거칠어 날것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색다른 느낌으로 읽기도 했다.


책을 펴고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등장하는 ‘독수리와 여우’ 우화만 봐도 그렇다.
독수리와 여우는 서로 가까운 곳에 살기로 했을 만큼 친한 사이였음에도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독수리가 여우의 새끼들을 물어다 자기 새끼들의 먹이로 주었는데, 여우는 높은 나무에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에 복수를 할 수 없었지만 어느 날 독수리의 실수로 둥지에 불이 붙자 새끼 독수리들이 나무 아래로 떨어져 죽어서 여우가 보란듯이 그 새끼들을 다 먹어치웠다는 이야기다.
참고로 교훈은 ‘우정을 모독한 자는 힘없는 피해자의 보복은 피할 수 있을지라도 신에게서 오는 응징은 피할 수 없음’이었다.


그렇다면 <이솝 우화 전집>은 어른만을 위한 우화인가 하면, 나는 아이들이 읽기에도 좋다고 본다.

(내 기억으로는 두 우화를 제외한) 대부분의 우화는한 페이지 분량이며 심지어 대여섯 줄을 넘지 않는 경우도 많아 부담이 없고, 아이들에게 맞춘다며 각색된 우화보다 오히려 이쪽을 더 재미있게 읽으며 기억에도 오래 남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녀노소 모두의, 특히 잠자리에서 몇 페이지 읽거나 듣고 잘 수 있는 일명 베드타임 스토리로도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서너 줄의 짧은 이야기에도 굵직한 촌철살인 교훈을 담고 있는 이솝 우화를 읽다보면 과연 소크라테스가 사형 집행을 앞두고도 이솝 우화를 노래로 바꾸려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거나 아리스토텔레스나 헤로도토스 같이 유명한 철학자와 역사가가 이솝(아이소포스)에 대한 기록을 남긴 이유를 알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책을 읽을 때 즐겁기만 하다면 좋다고 하지만 혹자는 ‘배울 것’이 없으면 책을 읽는 의미가 없다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솝 우화 전집>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으면서 배워갈 수 있으니 두 사람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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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멘탈 - 마음 근육을 길러주는 스포츠 멘탈코칭
이영실 외 지음 / 예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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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에 단 한 번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조금만 삐끗하면 4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올림픽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흔들림 없이 기량을 발휘하는지 궁금했는데, 스포츠 멘탈 코치 전문가 6명이 쓴 이 책 <프로멘탈>을 보면서 그 비결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프로멘탈(Pro Mental)’이란 ‘예상하기 힘든 실전에서, 달라진 환경 속에서도 평점심을 유지하고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다.
누구나 예상했던 것과 다른 상황을 맞닥뜨려 멘탈이 흔들리거나 붕괴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흔히 말하는 멘붕도 마냥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절반이 넘는 사람들에게는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고 하니 너무 상심하지는 말자.
그리고 멘탈도 근육처럼 키울 수 있다고 하니 이 책에서 차근차근 알려주는대로 실천한다면 우리도 쉽게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멘탈을 가지게 될 것이다.

<프로멘탈> 집필진은 먼저 ‘너 자신을 알라’고 제안하며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에서 바라보며 자신을 알아갈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참,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더 말하기에 앞서 이 책의 특징을 먼저 말해야겠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교과서’ 같은 책이다.
큼직한 글씨에 군더더기 없는 글은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고, 본문 다음에 위치한 ‘워크북’ 코너에서 질문에 답을 하며 알려준 바를 실천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했다.
게다가 워크북은 답변 예시도 적혀 있어서 혼자서도 길을 잃지 않도록 배려했고, ‘선수에게 주는 코칭tip’에서는 주의할 점이나 핵심을 콕 찝어주었다.

이런 방식으로 이어서 멘탈 근육을 키울 수 있는 방법, 경기에서 가진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방법,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 및 관련 직원을 모두 포함하여 서로 협력하는 팀의 비결 등을 알려준다.
또 이승엽, 라파엘 나달, 박태환, 박상영 등 유명 스포츠 선수들의 사례를 곁들여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파악하기도 쉽고 글을 더 흥미롭게 다가가도록 했다.

<프로멘탈>은 스포츠 선수를 대상으로 했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분야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기에 스포츠 선수들의 멘탈 관리 방법이 그 외의 사람들, 그러니까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나 일반인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가 평소에 정신을 다잡으려고 했던 행동들이 책에서 소개되기도 했고, 스포츠 선수들의 상황에 공감이 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연습 때는 잘만 하다가 실전에서는 긴장해서 연습 때만큼 못한 경험 역시 무대만 경기장이 아닐 뿐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하거나 시험을 보는 등의 경우에 여러 사람들이 경험했을 텐데, 이 책이 낯설거나 긴장되는 상황에서도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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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입속에서
마이클 모퍼고 지음, 바루 그림, 이원경 옮김 / 밝은미래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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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살 생일을 맞아 가족과 지인 모두에게 축하받는 하루를 보낸 뒤 잠자리에 든 남자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 점차 흐려져가는 기억을 더듬으며 밤을 보낸다.
이 남자의 이름은 프랜시스 카마츠인데,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온 그는 평생을 놓고 본다면 짧지만 당시에는 길게 느껴졌을 기간 동안 아주 특별한 일을 했다.
바로 제2차 세계 대전 때 영국 특수 작전국에서 ‘로저’라는 암호명의 비밀 요원으로 활동했던 것이다.
이 소설은 프랜시스 카마츠가 아흔 살 생일을 보내고 아버지 에밀, 남동생 피터, 배우자 낸시, 동료 교사이자 마음의 스승 해리, 특수 작전국 동료들로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오귀스트와 크리스틴과 폴, 이렇게 기억 속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거는 형식으로 대부분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전쟁 상황에서 비밀 요원으로서 레지스탕스 활동을한 이력을 가지고 있지만 프랜시스는 평화주의자여서 전장에 나가기를 거부하고 대신 농장에서 일을 했을 정도였는데, 그를 바꾼 것은 동생 피터였다.
교사였던 프랜시스와는 정반대로 무대 위에서 배우로 활약하던 피터는 평화주의로는 히틀러를 막지 못한다며 공군 항법사가 되어 전장에 나갔고, 그가 타고 있던 전투기가 대공포를 맞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피터의 죽음은 평화주의자 프랜시스를 전쟁에 뛰어들게 했고 그의 삶을 바꾸어 놓는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네가 스물한 살이라는 젊디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소식은 내 삶의 방향을 바꿔 놓았어. 너는 죽음으로써 나를 이긴 거야. 나는 평화주의를 옆으로 치우고 어떻게든 전쟁에 뛰어들 길을 찾아야 했어. 너를 죽인 자들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했어.

결국 너는 별에 다다랐어, 피터. 내 방 창문 밖으로 북두칠성이 보여. 너는 언제나 북두칠성을 제일 좋아했지. 지금 넌 저 위 어디선가 별자리를 거닐고 있겠지. 이따금 지상을 내려다보고 나를 보살피면서. 지금껏 넌 항상 나를 보살펴 줬어. 그날 이후로 줄곧.

p.42


이후 프랜시스는 동료 교사 해리의 소개로 훈련을 받고 영국 특수 작전국 비밀 요원이 되어 동료들과 프랑스에서 활동하는데, 당시 비밀 요원을 비롯한 레지스탕스가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일을 겪기도 했는지 프랜시스가 예전 일을 추억하며 혼잣말로 친구들에게 건네는 말을 통해 알 수 있게 했다.


여인네들은 우리를 도와 궤짝을 뜯고 폭약과 총기와 탄약을 노새에 실은 다음 산 아래로 전부 옮겼어.
그리고 여인네들은 자기 집과 농장에 그것들을 모두 숨겼다가 산과 들을 가로질러 레지스탕스 조직들에게 운반했어. 때로는 걸어서 또는 자전거를 타고 아니면 말이나 마차로, 무기를 짚 더미나 포도 밑에 혹은 치마 속에 숨기거나 유모차에 싣고서.
그리고 여인네들은 숲속과 산속에 숨어 사는 남자들에게 식량을 가져다주었어. 독일군 코앞에서 말이야. 그 여자들에게 바치는 훈장은 없었어. 그들은 아무도 모르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영웅들이었어. 그게 진정한 용기야. 그 여인네들이 없었다면 레지스탕스도 없었겠지.

p.95


특히 프랜시스가 말을 건낸 사람들 중 특수 작전국 동료 중 하나로 엄청난 용기와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프랜시스의 목숨을 구한 크리스틴에 대해서는 더 알고 싶어지는데, 크리스틴은 정말이지 소설이나 영화 주인공으로도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 이날 우리는 늑대의 입속에서 탈출했습니다.

p.139



이 책은 글 작가 마이클 모퍼고가 삼촌 프랜시스 카마츠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책 말미에 소설에 등장한 주요 인물들의 짧은 소개와 사진이 실려 있는데, 책을 다 읽고 그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찡해진다.

그리고 펜션을 번지게 하여 세계 대전 당시의 회색빛 공기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 작가 바루의 삽화와 함께 프랜시스를 비롯한 인물들이 전쟁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아픔과 위기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전쟁의 무서움과 슬픔을 곱씹고, 나였다면 전시에 어떤 행동을 했을 것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보냈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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