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은 여자가 필요해 - 268년 된 남자 학교를 바꾼 최초 여학생들
앤 가디너 퍼킨스 지음, 김진원 옮김 / 항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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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알다시피 예전에 고등교육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남성만이 받을 수 있었고 세계적인 명문대학들도 다르지 않았다.
(일부 나라에서는 여전히 차별이 진행되고 있다지만 대체로) 나는 운 좋게도 교육의 평등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에 태어나 교육 받았기 때문에 고등교육 기관이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었던 때를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이 책은 고등교육기관의 전환기를 예일이라는 한 대학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었다.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의 저자 앤 가디너 퍼킨스 역시 예일대 출신으로, 쉰두 살에 박사 학위를 따기로 하면서 수강한 고등교육의 역사 강의 과제물 주제를 생각하다가 자신이 다녔던 예일대에 최초로 입학한 여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가 예일대 기록 보관소를 여러 번 드나들며 수많은 자료와 문서를 읽고, 마흔두 명의 여성을 인터뷰한 끝에 이 책이 탄생했다.

268년 동안 남학생에게만 문을 열었던 예일 대학은1969년이 되어서야 여학생에게도 문을 (그것도 조금) 연다.
예일 대학과 함께 명문대학으로 꼽혔던 하버드 대학을 비롯한 몇 대학에서는 여학생도 강의를 들을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많은 명문대들이 여학생의 입학을 불허했다.
그리고 많은 예일대 남학생들은 주말에만 여학생들을 볼 수 있다는 데에 불만을 가지고 여학생을 받자고 외쳤고, 당시 예일대 총장이었던 킹먼 브루스터 주니어는 우수한 남학생은 인종, 종교, 계층과 상관없이 입학을 허용하라며 진보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음에도 성에 대해서는 보수적이어서 예일대를 남자들만의 섬으로 유지하자는 태도를 고수했다.
이런 킹먼 브루스터 주니어가 태도를 바꾸게 된 원인이 무엇이냐 하면, 연애가 고팠던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가까이에 두고 싶어하는 욕망이었다.
예일 대학 입학 허가를 받은 많은 수의 남학생들이 예일 대학에 여학생이 없다는 이유로 하버드와 같은 다른 대학을 선택했고, 프린스턴 대학도 남녀공학을 실시한다고 하자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그래서 예일대는 말 그대로 급하게 남녀공학으로 바뀌게 되었고, 10개월 만에 여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그렇게 고집 부리던 예일대가 여학생들에게 문을 열게 된 이유가 평등을 위한 것도 아니요, 여학생이 남학생과 동등한 교육 기회를 부여받는 것이 공정하다는 생각 때문도 아니었고, 전략적인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예일대가 남녀공학으로 전환되었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예일 대학이 남녀공학으로 바뀐 첫해에 575명의 여학생들이 등록했는데 남학생들의 지위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여학생은 적게 모집했기 때문에 남학생 대 여학생 비율이 7 대 1이었다.
게다가 킹먼 브루스터 주니어 총장은 ‘현 상태를 최대한 깨뜨리지 않으며’ 여학생을 받아들이려고 했기 때문에 최초로 예일대에 다니게 된 여학생들은 소수자이자 개척자로서 여러 문제에 직면했고, 남학생이었더라면 당연하게 주어졌을 것들을 위해 투쟁하며 대학을 바꿔나갔다.


(...) 예일 대학은 여학생에게 숙소와 수업 등록 자격은 주었지만 운동선수나 고적대원처럼 명망 높은 학생 활동은 여전히 남성들 차지로 두었다.
로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웃기시네, 절대 내 앞을 가로막지 못해.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오히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로리는 필드하키를 하는 다른 여학생을 만났고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었다. 며칠이 지난 뒤 손으로 쓴 전단지가 밴더빌트 홀 출입문에 나붙었다. “필드하키 하고 싶은 사람? 밴더빌트 홀 23호 제인 커티스나 밴더빌트 홀 53호 로리 미플린에게 알려주세요.” (...) 미국 필드하키의 개척자 콘스턴스 애플비는 선수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시키는 대로 하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이 교훈을 로리는 이미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p.87


저자 앤 가디너 퍼킨스는 예일대에 최초로 입학한 575명의 여학생들 중 셜리 대니얼스, 키트 매클루어, 코니 로이스터, 베티 스판, 그리고 로리 미플린, 이 다섯 명의 여학생들에게 집중한다.
키트 매클루어는 그녀의 부모가 여자애는 트롬본이 아니라 플루트나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피아노를 치라고 했지만 혼자서 트롬본을 부는 방법을 배워서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트롬본을 부는 유일한 여학생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베티 스판은 룸메이트가 장난으로 예일대 지원서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예일 대학에 다니게 되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예일대에서 베티 스판의 룸메이트가 된 코니 로이스터는 전미 유색인종 지위향상협회 뉴헤이븐 지부의 공동 창립자인 할머니와 미국 최초 흑인 연방 판사로 임명된 고모를 두고 있었고, 또 그녀의 집안은 전부터 예일 대학의 사교 클럽에서 일했기 때문에 예일 대학과 인연이 있었다.
셜리 대니얼스는 아프로아메리칸학을 공부하기 위해 예일대로 편입했으며, 로리 미플린은 키트 매클루어가 여자를 받지 않겠다는 예일대 고적대에 결국 들어간 것처럼 여학생의 운동 활동에 제한을 둔 예일의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고 필드하키 팀을 만들기로 하는 당찬 학생이었다.
이렇게 예일대 여학생들의 행보를 보면 과연 똑똑할 뿐만 아니라 기개가 좋은 여학생을 뽑았다는 말이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 여러 면에서 예일대의 최초 여학생들은 575개 집단인 듯 서로 달랐다. 하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이 여학생들은 모두 똑똑했다. 남학생보다 똑똑했다. 그건 첫 학기 성적이 여실히 보여줬다. 그리고 굳셌다. 적어도 이건 지원서에서 주장한 모습 그대로였다.
p.77


(...) 게다가 엘가와 촌시는 최초 여학생들에게서 남학생에게는 별로 요구하지 않은 자질을 찾으려 했다. 그들은 성적을 훑어본 다음 기개가 좋은 여학생을 뽑았다.
남자 형제가 넷인 여학생, 규모가 큰 고등학교에 다닌 여학생, 1년 동안 일을 한 여학생, 해외에 살아본 여학생, 운동을 한 여학생, 힘든 경험을 이겨낸 여학생, 이들이 엘가와 촌시가 바란 여학생이었다. 예일 대학이 맞이한 최초 여학생들은 자신 앞에 어떤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직 알지 못했지만, 엘가와 촌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촌시는 이렇게 말했다. “소심한 여학생을 뽑아서 이런 환경에 밀어넣은들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겨내지 못할 테니까요.”

p.79


예일 대학의 여성 관리자로서 고군분투한 엘가 와서먼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남편 해리와 같은 하버드 대학 화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여성에게는 연구 조교 자리 정도만 주어졌기 때문에 남편은 예일 대학에서 종신 교수가 된 반면에 엘가는 연구 조교로 커리어를 시작해야 했지만, 한정된 선택지 속에서도 항상 최선을 다했던 엘가는 남성의 전유물이던 예일대 대학원 과학 담당 부학과장까지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 엘가는 예일대 남녀공학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대학에서 여성을 관리직으로 고용하는 일이 드물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몇몇 남성 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예일 대학 부학장이 아닌 여성교육 총장 특임비서라는 단어 뭉치를 직함으로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남녀공학 임무에서 엘가는 뛰어난 일처리 능력을 발휘하며, 이후로도 계속해서 예일대를 변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비록 남성만 앉던 자리였지만. 엘가는 대학원 부학과장을 하다가 옮겨왔으니 다음 단계는 당연히 예일 대학 부학장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브루스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몇몇 남성 학장들이 이의를 제기했다며, 여성이 그런 직함을 달면 그들에게 모욕감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엘가는 ‘특임비서’가 되었다. 예일 대학의 위계질서를 헤치지 않는 직위였다.
엘가와 같은 수많은 여성이 감내하는 이런 모욕이 학생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예일 대학에서 엘가의 지위가 내려갈 때마다 이제 막 예일 대학에서 짐을 푸는 젊은 여학생을 옹호할 힘도 줄어들었다.

p.75


이들의 모습은 책 앞쪽에 있는 사진 자료에서 볼 수 있는데, 처음에 책을 펼쳐서 앞의 사진 자료를 보니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책에 담긴 이야기가 실재한다는 것이 훅 느껴져서 뭉클했다.
그리고 본문을 읽으면서 지금의 대학이 있기까지 여성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알게 되니 가슴이 벅차올랐고, 지금도 단톡방 성희롱이나 불법촬영 등 대학 내 여성들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나도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년 전의 이야기에서 기시감이 느껴질 만큼 수십 년 전의 모습이 아직도 비슷한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었기에 더욱.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를 읽으면서 영화 <세상을바꾼 변호인>과 <모나리자 스마일>이 떠오르기도 했다.
두 영화는 1969년보다 이른 1950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에 다니는 단 9명의 여학생 중 한 명과 명문 여대를 다니는 여학생에게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려는 고군분투를 볼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리라.
그렇기에 반대로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이나 <모나리자 스마일>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다면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를 읽으면서도 감명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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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팬 사라진 그림자 - 원작 애니메이션과 함께 보는 디즈니 오리지널 노블 디즈니 오리지널 노블
리즈 브라즈웰 지음, 성세희 옮김 / 라곰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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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픽션이 아닌 디즈니 오리지널 노블이기 때문에 더욱 읽는 재미가 있는 <what if> 시리즈인 <피터 팬 사라진 그림자>가 국내에 출간되었다.
같은 시리즈인 <겨울왕국, 또 하나의 이야기>와 <뮬란 새로운 여정>이 영화 개봉에 맞추어 출간되었고 <피터팬>은 실사 영화가 만들어질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밀라 요보비치의 딸이 웬디 역으로 캐스팅 되었고 팅커벨 역으로는 흑인 배우가 캐스팅 되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피터팬>을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나중에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일찍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겨울왕국, 또 하나의 이야기>와 <뮬란 새로운 여정 >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피터 팬 사라진 그림자>도 놓칠 수 없었다.

<피터 팬 사라진 그림자>는 국내에 먼저 출간된 디즈니 오리지널 노블 <what if> 시리즈 두 권과는 다르게 양장본, 그것도 내가 선호하는 패브릭 재질의 양장본이 초판 한정으로 출간되었기 때문에 꽤나 신경 썼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손에 박이 묻어나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피터팬>이 변주된 이야기가 애니메이션 장면과 함께 펼쳐졌는데, 애니메이션 스틸 이미지가 선명하지는 않지만 영화가 1953년 작으로 거의 70년 가까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오히려 그 시절 애니메이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되었다.

이야기는 피터 팬이 웬디의 집에 그림자를 두고간 지 4년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된다.
웬디의 두 남동생 존과 마이클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었고, 열여섯 웬디는 당시의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니지 않고 가정교습을 받고 집안일을 하며 두 남동생을 보살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동생들과는 다르게 수첩에 피터 팬과 네버랜드의 이야기를 적으며 피터 팬이 그림자를 찾으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웬디를 보다못한 부모님이 무려 남자아이들 다섯 명을 돌보라며 아일랜드로 보내려고 한다.
그러자 웬디는 더는 피터 팬을 기다리지 않고 한밤 중에 집을 나와서 피터 팬의 그림자로 후크 선장과 거래하여 배를 타고 네버랜드로 향했다.

원하던 네버랜드에 도착한 웬디는 처음에 만들었던 이야기에서 구출했던 늑대 루나와 피터 팬과 함께했던 ‘잃어버린 소년들’을 만나고, 피터 팬의 그림자를 되찾아주기 위해 웬디를 찾아다니던 팅커벨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피터 팬에 대한 오해도 풀고 네버랜드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웬디는 네버랜드에 오기 위해 자신이 저지른 일을 바로 잡고 후크 선장을 막기로 결심하고 요정 팅커벨과 함께 피터 팬을 찾아 네버랜드를 모험한다.


“용감하고도 숭고한 행동이었어. 나를 위해 너의 그림자를 포기하다니. 고마워. 내가 널 그렇게 대했는데도....... 난 그럴 자격이 없는데. 이제 넌 런던으로 돌아갈 수 없잖아.”
“뭐라고?”
웬디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림자가 없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
“하지만 왜? 피터는 런던에 그림자를 두고 이곳에 돌아왔잖아!”
“피터는 요정과 다름없는 존재잖아. 넌 인간이고. 이곳은 달라. 런던에서처럼 그림자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 하지만 인간 세상에선 그림자에 대해 굉장히 엄격하잖아. 미안해.”
“난 런던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는데 뭐.”
웬디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조금 거짓말이었다. 웬디는 늘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p.223


<피터 팬 사라진 그림자>는 피터 팬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주인공은 피터 팬이 아닌 웬디이며 웬디와 팅커벨의 우정이 돋보이는 이야기로, 웬디와 팅커벨은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고 모험 중 위기를 함께 겪으면서 단단한 관계가 된다.


“어쨌든, 난 피터나 너 없이, 혼자 여기까지 올 방법을 찾아야 했어. 대가나 결과 같은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 비록 내가 원했던 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난 마침내 나의 모험을 하고 있어. 난 정말 진심으로, 친구로서 너와 함께 여행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야. 나는 네 적이 아니야, 팅커벨. 내가 너에 대해 알았더라면, 아마도 너의 굉장한 팬이 되었을 거야.”

p.196


그리고 <피터 팬>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여자들에게 요구되는 것들을 나름대로 피하려고 하고, 피터 팬을 기다리는 웬디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피터 팬을 찾아 모험을 하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웬디가 되었다는 것도 좋았다.
이렇듯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피터 팬> 속의 웬디와 요정 팅커벨의 다른 모습을 보고 싶다면 동심으로 돌아가 읽는 <피터 팬 사라진 그림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웬디는 남을 돌봐주는 일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소녀가 아니라, 모험과 도전을 하고 싶고,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와 인생의 목적을 찾고 싶은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웬디기 런던의 삶도 바꿀 수 있을까? 그래서 네버랜드로 도망쳐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무엇으로 웬디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런던에서, 웬디가 할 수 있는 일들 중에 무엇이 웬디를 행복하게 할까?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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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별이 만날 때
글렌디 벤더라 지음, 한원희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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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밤하늘을 볼 때면 느껴지는 아름다움, 저 너머에 내가 알지 못하는 무한한 세계가 있다는 데서 오는 신비감과 경외,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을 울리는 그 감상을 책 표지를 보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숲의 나무 사이에서 올려다 본 푸른 하늘에 쏟아질 듯 별이 수놓아져 있는 이 책의 표지는 실물을 보자마자 헉 하고 숨을 들이쉴 정도로 아름다웠고, 내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질반질한 표면은 맑은 호수 같아서 손을 대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지금까지 내가 본 책들 중 이보다 아름다운 책이 있었나 하고 곰곰히 생각해봐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첫인상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도 내용만큼이나 표지에 공을 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의 표지는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워서 책을 펼치기 전부터 소설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가다못해 내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서 소설에 아쉬움을 느끼게 될까 봐 걱정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고, 나는 오랜만에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다.

교수의 산장에서 혼자 지내면서 새 둥지를 관찰하며 연구를 진행 중인 대학원생 조(조애나 틸)의 집 앞에 꾀죄죄한 몰골에 맨발인 여자 아이 하나가 나타났는데, 열 살쯤 되어 보이는 그 아이는 자신이 북극곰 자리 꼬리에 위치한 바람개비 은하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믿지 않은 조는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노력하던 중에 아이의 몸에 있는 멍자국을 보고 아이가 학대를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경찰에 신고도 했지만 무신경한 경찰의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 외지인인 조는 노상에서 달걀을 판매하는 달걀 장수 게이브(개브리엘 내시)에게 도움을 청했었지만 그도 뾰족한 수를 생각해내지는 못했기 때문에,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이 온 별이 있는 큰곰자리(Ursa Major)에서 가져와 얼사(Ursa)라는 이름을 스스로 붙인 여자 아이는 조의 집과 게이브의 농장을 오가며 (조는 마치 이혼한 부부가 서로의 집에 아이를 넘겨주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내게 된다.
조가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면 얼사는 지구에서 다섯 가지 기적을 보게되면 돌아갈 것이라고 대답하곤 했기에 얼사가 다섯 가지 기적을 보거나 그들에게 마음을 열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집에 갈 시간 아니니?”
“난 지구에 집이 없어. 저기서 왔거든.”
아이가 가까이 다가오며 대답했다. 손가락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디라고?”
“얼사 메이저.”*
“큰곰자리를 말하는 거야?”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개비 은하에서 왔어. 꼬리쯤에 있는 거야.”

*Ursa Major. 큰곰자리를 일컬음.

p.10-11


“아직 돌아갈 수 없어. 다섯 개의 기적을 보기 전까지 지구에 머물러야 해. 나이가 차면 누구나 거쳐가는 훈련 중 하나야. 학교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꽤 오래 있겠네. 수천 년 동안 물이 와인으로 변하는 일은 없었거든.”
“성경에 나오는 그런 기적을 말하는 게 아니야.”
“그럼 어떤 기적?”
“어떤 거든 상관없어.”
아이가 말했다.
“언니도 기적이고, 저 강아지도 기적이야. 난 지금 새로운 세상에 왔어.”

p.14-15


처음에는 갑자기 나타나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얼사의 정체가 무엇일지, 맨발에 꾀죄죄한 모습이었고 몸에 멍까지 있는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고, 이야기에 판타지적 분위기를 부여하는 얼사라는 등장인물이 흥미로웠다.
10살로 추정되지만 그 나이의 아이보다 눈치가 빠르고 똑똑한 면모가 보일 때면 더욱 얼사의 과거가 알고 싶어졌고.
거기에다 계속해서 소설을 읽으면서 생긴, 어머니를 잃었다는 아픔뿐만 아니라 신체의 일부를 잃게 된 조의 사연과 겉보기와는 다르게 사회 불안, 우울증, 경미한 광장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게이브의 사연에 대한 궁금증도 책장을 계속해서 넘기게 했다.
얼사 때문에 왕래하게 된 조와 게이브의 대화를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데, 이 둘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그 관계가 좋았다.


“얼사한테 괜찮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렇다고 말해줄 수 있겠어요? 얼사는 그쪽이 죽을까 봐 잔뜩 겁먹었어요.”
“모든 사람은 죽기 마련이에요.”
“아홉 살 버전으로 부탁해요.”
(...)
“제 사생활에 대해 얼사가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나요?”
“어떤 내의를 입는지는 미처 얘기 못 나눴네요.”
‘내의’라니. 그의 단어 선택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크게 미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제 트럭으로 함께 가시죠.”
“제 꼴이 말이 아닌데요.”
“제 트럭도 그래요.”

p.105


종류는 다를 수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나름의 상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각자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얼사, 조, 게이브 세 사람의 이야기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치유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얼사가 지구에서 작은 기적을 볼 때면 별 것 아닌 것이라 여기거나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내 주변의 작은 기적들을 찾아보게 된다.
그렇다, 이 책은 안팎으로 아름다운 책이었다.


“어떤 면에서 이 흉터들이 우리를 만나게 해 준 셈이에요.”
그가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내 흉터도 마찬가지예요. 이보다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요?”
“없어요.”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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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뇌과학자 - 괴물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제임스 팰런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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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뇌와 알츠하이머 병에 대해 연구하던 뇌과학자가 정상 대조군으로 찍어두었던 가족의 뇌 스캔 사진들을 분석하다 마지막 사진에 주목한다.
그 뇌 스캔 사진이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 뇌과학자는 평소 물건을 잘못 두곤 했기 때문에 스캔 사진이 섞인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익명을 유지하기 위한 암호를 풀어보니 문제의 뇌 스캔 사진은 뇌 과학자의 가족 것이 아니었다.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뇌는 바로 뇌 스캔 사진을 분석했던 뇌 과학자 본인의 것이었다!

어느 영화의 줄거리 같은 위 이야기는 사람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현실에 실재하며 이 책의 저자 제임스 팰런이 겪은 이야기이다.
영화라 해도 흥미로운데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니 제임스 팰런이 2008년에 TED강연에서 이 이야기를 한 뒤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각종 매체에서 관심을 가질 만하다.
나 또한 위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는데 사실 내가 이 이야기를 알게 된 건 <괴물의 심연>이라는 제목의 책 소개를 읽으면서였다.
그리고 <사이코패스 뇌과학자>는 <괴물의 심연>의 개정판이니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을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8장 제목에서 가져온 <괴물의 심연>이라는 제목이 마음에들지만 <사이코패스 뇌과학자>라는 제목이 직관적이어서 독자에게 다가가기가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제임스 팰런은 살면서 자신이 사이코패스일 거라는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책에서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부터 살펴보지만 우리가 사이코패스 하면 떠올리는 특별히 잔인하고 폭력적인 성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히려 형제들 중에서는 얌전한 편이었고 마을에 한두 명을 있을 법한 장난꾸러기 정도로 보였으며 동물에게 총을 쏘거나 못 같은 걸 박았다는 끔찍한 친구가 더 사이코패스로 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뇌 스캔 사진에서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발견한 것을 계기로 자신을 돌아보고 분석하며 연구를 시작한다.

제임스 팰런의 사촌인 계보학 애호가 데이비드 보러와 다른 사촌 아널드 팰런은 저자의 부계쪽 가계도에서 미국 식민지에서 일어난 최초의 모친 살해 사건 중 하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토머스 코넬이나 (하지만 증거는 빈약했다고 한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나도 알고 있던, 친부와 계모를 도끼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리지 보든 같이 살인 혐의를 받거나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보통 사이코패스 하면 방송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추적할 만한 범죄자의 싹을 떠올리는데 제임스 팰런은 어째서 자신의 조상들과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일까?
심지어 사이코패스 성향은 치료로 그 성향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약물로 충동성과 공격성을 어느 정도 낮추거나 조기 개입으로 행동 문제를 줄일 수도 있다고 했는데 저자는 자신에게 사이코패스의 특징이 있다는 걸 몰랐기에 그런 치료마저 받지 않은 상태였다.

저자는 처음에는 자신이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지만, 자신의 뇌 스캔 사진을 숙고한 뒤에서야 사람들이 자신에게 했던 말과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보고 사이코패스의 조짐이 있었으며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 나는 옆에 있는 사람들이 비극적이거나 슬픈 사건으로 울고 있더라도 내가 눈물도 흘리지 않고 심장박동도 흔들리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내가 존 F. 케네디가 총에 맞은 때를 기억하는 이유는 내 주위 사람들이 동요했기 때문이고, 나는 사건의 경위에 대해 더 관심이 있었다. 나이로비대학교에서 일하던 어느 날은 시체보관소로 걸어 들어갔는데, 철제 시체 안치대 위에 흰색 드레스 차림의 여자 아이가 눕혀져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보고 유족들에게 한마디 했다. “드레스가 멋지네요.”

p.198”


하지만 수감된 사이코패스 중에 유아기에 신체적/감정적/성적 학대를 당한 사람이 많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 사이코패스 중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은 사람이 99%이를 것이라는 추론을 하면서 저자는 자신이 사이코패스의 조짐을 보였음에도 범죄자가 되지 않고 ‘친사회적 사이코패스’가 된 이유는 학대를 당하기는커녕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제임스 팰런은 인격과 행동은 본성(유전)이 80퍼센트 정도를 결정하고 양육(성장 환경)은 20퍼센트밖에 결정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키우느냐’가 범죄자를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 그렇지만 나는 운 좋은 사이코패스라는 편이 가장 정확한 답일성 싶다. 친절하고 자애로운 아버지와 통찰력 있는 어머니가 일찍부터 아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아보고 아들을 잘 이끌어주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내게서 눈을 떼지 않는 동안 나는 역경을 헤쳐나갔다. 2013년 늦겨울, 어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자서전 하나 쓰는 데 얼마나 걸리는 게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엄마, 난 지금 내 자서전이 아니라 엄마의 자서전을 쓰고 있는 거예요.” 어머니는 대번에 알아들었다. 내 정체성의 많은 부분은 어머니가 나를 기른 방식에서 왔다. 나의 이야기는 나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어머니됨과 아버지됨과 부모됨과 양육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p.292”


저자는 사이코패스를 만드는 세 가지 요인을 ‘세 개의 다리’라고 불렀는데, 세 개의 다리란 안와전두피질과 편도체를 포함한 전측두엽의 유별난 저기능, 전사유전자로 대표되는 고위험 변이 유전자 여러 개, 그리고 어린 시절 초기의 감정적/신체적/성적 학대를 말한다.
그래서 발달단계와 정신 장애의 관계에 주목했고, 이러한 부분 때문에 저자가 원했던 것처럼 이 책은 양육에도 큰 쓸모가 있다고 생각했다.


“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온 세상이 내가 유서 깊은 미치광이 폭력배들의 후손임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 걸어다니고 말하는 증거가 되어 ‘우리는 태어난 대로 살아간다’는 내 이론을 스스로 반박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공격적이고 기이한 행동을 유발하는 온갖 고위험 유전자 변이를 굉장이 많이 물려받았고 뇌 역시 전형적으로 교도소에서 갓 나온 뇌처럼 생겼지만, 나는 지나치게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p.152”


저자의 말에 따르면 모든 문화권에 사이코패시(psychopathy)가 약 2퍼센트의 비율로 실재하니 싸이코패스는 모든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불안을 잘 못 느끼고 스트레스가 적기 때문에 면역계가 최고 효율로 작동해서 병을 피할 수 있다거나 많은 사람이 원하는 사랑과 헌신을 가장할 수 있어 짝을 찾는 데 선수이기 때문에 사이코패스 특성이 진화와 생존에 이점이 있어서 지금까지 그 유전자가 전달될 수 있었다는 시각은 재미있다.
하지만 그 뒤 글은 사이코패스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며 모두가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촌철살인이었다.


“가족, 특히 어머니와 아내가 사이코패스을 용인하는 이유는 자기가 그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 누구나 자기가 다른 사람의 행동과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와 특별한 관계라서 그의 안에 있는 선한 사람을 볼 수 있어. 난 그가 착한 남자라는 걸 알아.” 사이코패스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는 법을 알고 있다. 사람을 끌어들여 낚은 다음, 구타하고 굴욕을 준 뒤 “사랑해”란 말을 덧붙이는 경우도 있다. 가족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도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나도 그의 내면에 짐승이 있는 줄은 알지만, 그를 다를 수 있어요.” 그래서 아내와 어머니는 그를 감싼다.

p.281-282”


자신이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사이코패스을 연구해 온 저자는 사이코패스를 어떻게 생각할까?
제임스 팰런은 사이코패시와 그 유전자를 사회에서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생애 초기에 확인하고 그들이 어려움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이코패스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있지만 거시적으로는 사회에 보탬이 된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에게 취약해 보이면 안 되며 잠시 마주친 거라면 엮이지 말고 미소만 짓고 지나가버리라고 조언했다.


“사실 나는 ‘사랑에 빠졌다’라고 말하지만, 다이앤에게 완전히 감정적으로 연결되었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와 다이앤 사이에 유대가 생겨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공감을 통해 그녀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이앤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매혹적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우리에게는 공통의 목표와 가치(가족, 자유의지론, 불가지론)가 있어서 동지애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나에게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다행이도 나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고도 남았다.

p.178-179”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가진 당사자로서(아내인 다이앤을 두고 바람핀 것도 썼을 정도로) 솔직하게 쓴 자전적 이야기와 사이코패스를 연구한 신경과학자로서 전달하는 뇌 과학이나 유전학 등 전문적인 과학 지식이 어우러져 책을 흥미롭게 읽으며 사이코패스(그리고 양극성 장애)에 대한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만약 싸이코패스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사이코패스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하는 게 아니더라도 저자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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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종말 - 과학으로 보는 지구 대재앙
밥 버먼 지음, 엄성수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기후 변화가 두드러지고 세계적인 전염병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미래 전망이 어두워지고 지구 종말을 그리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때에 이런 책의 출간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최고 천문학 작가 중 한 명이라는 밥 버먼이 대격변과 재앙을 과학적인 시각에서 이야기하는 이 책은 내게도 흥미로웠다.



1부 ‘우주의 대격변들’에서는 끝 없이 팽창하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우주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렇다고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

나는 지구를 혼혈 행성이라고 설명한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은하수 안에서 태어난 지구에 처음 10억 년동안 허구한 날 소행성과 혜성들이 충돌했는데, 어느 날은 테이아(Theia)라고 이름 붙여진, 화성만 한 행성과 정면충돌했고 그때 지구 지각 전체가 산산조각나면서 지구의 잔해와 테이아의 잔해가 섞여서 지금의 지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지구와 테이아가 섞인 혼혈 행성인 셈이다.

지구에 테이아라는 행성이 충돌했을 때 지구만 대격변을 겪은 것이 아니었다.
충돌 시 양쪽 행성에서 떨어져 나온 큰 덩어리가 지구 주위를 돌다가 합쳐졌는데 그게 바로 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행성간의 충돌만 해도 난리가 났으니 은하계들이 충돌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일이 일어나면얼마나 큰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지 않은가?
실제로 은하계끼리 충돌한 적이 있고 과학자들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도 했는데, 두 은하계는 결국 하나의 핵을 가진 거대한 타원형 은하가 되겠지만 별들은 너무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에 서로 충돌하기는커녕 접촉도 하지 않을 거라고 한다.
규모가 너무 커지면 이런 의외의 결과가 나온다니 재미있다.



2부 ‘지구의 대격변들’에서는 우리에게 좀 더 가깝게 느껴지는 대격변과 재앙을 이야기한다.

대양의 표면 온도가 욕조 온수 온도처럼 40도에 달하고 지구 대기 중 이산화 탄소가 2,000ppm 정도까지 치솟았다는 (지금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404ppm으로 우려스러운 수준이라고) 대멸종 때 지구 상황이나, 지구 전체가 빙하로 덮여 있는 상태인 눈덩이 지구(Snowball Earth)가 7억년 전에 실제로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앞서 읽었던 행성 충돌 같은 거대한 재앙보다도 더 거대하게 다가왔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전염병에 의한 재앙은 말할 것도 없고, 핵이 관련된 대재앙도 그동안 체르노빌이나 일본의 핵발전소 사고를 생각하면 너무도 현실적인 문제여서 소름이 돋는다.

3부 ‘내일의 대격변들’에서는 우리 앞으로 다가올 대격변과 재앙들을 알려준다.
1910년 핼리 혜성이 다가왔을 때나 20세기 말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밀레니엄 버그(Y2K)나 2012년 마야 달력 소동과 비슷하데 앞으로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줄 사건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는데, 가장 가까운 사건은 2020년 12월 21일, 즉 올해 말에 있다.
하지만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양한 대격변과 재앙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은 흥미롭고 어떤 때는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과학을 바탕으로 이러한 것들을 아는 것이 그저 상상력을 발휘했을 때보다 두려움을 경감시키며 과거에 있던 대격변과 재앙을 통해 배우고 앞으로를 대비하면 (물론 은하계 충돌 같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대격변도 있지만) 재앙을 미루거나 어쩌면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당장 직면한 기후 변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들, 그리고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문제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외면해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것의 종말>은 요즘 같은 때에 더 적절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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