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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은 여자가 필요해 - 268년 된 남자 학교를 바꾼 최초 여학생들
앤 가디너 퍼킨스 지음, 김진원 옮김 / 항해 / 2020년 9월
평점 :
모두 알다시피 예전에 고등교육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남성만이 받을 수 있었고 세계적인 명문대학들도 다르지 않았다.
(일부 나라에서는 여전히 차별이 진행되고 있다지만 대체로) 나는 운 좋게도 교육의 평등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에 태어나 교육 받았기 때문에 고등교육 기관이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었던 때를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이 책은 고등교육기관의 전환기를 예일이라는 한 대학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었다.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의 저자 앤 가디너 퍼킨스 역시 예일대 출신으로, 쉰두 살에 박사 학위를 따기로 하면서 수강한 고등교육의 역사 강의 과제물 주제를 생각하다가 자신이 다녔던 예일대에 최초로 입학한 여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가 예일대 기록 보관소를 여러 번 드나들며 수많은 자료와 문서를 읽고, 마흔두 명의 여성을 인터뷰한 끝에 이 책이 탄생했다.
268년 동안 남학생에게만 문을 열었던 예일 대학은1969년이 되어서야 여학생에게도 문을 (그것도 조금) 연다.
예일 대학과 함께 명문대학으로 꼽혔던 하버드 대학을 비롯한 몇 대학에서는 여학생도 강의를 들을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많은 명문대들이 여학생의 입학을 불허했다.
그리고 많은 예일대 남학생들은 주말에만 여학생들을 볼 수 있다는 데에 불만을 가지고 여학생을 받자고 외쳤고, 당시 예일대 총장이었던 킹먼 브루스터 주니어는 우수한 남학생은 인종, 종교, 계층과 상관없이 입학을 허용하라며 진보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음에도 성에 대해서는 보수적이어서 예일대를 남자들만의 섬으로 유지하자는 태도를 고수했다.
이런 킹먼 브루스터 주니어가 태도를 바꾸게 된 원인이 무엇이냐 하면, 연애가 고팠던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가까이에 두고 싶어하는 욕망이었다.
예일 대학 입학 허가를 받은 많은 수의 남학생들이 예일 대학에 여학생이 없다는 이유로 하버드와 같은 다른 대학을 선택했고, 프린스턴 대학도 남녀공학을 실시한다고 하자 마음이 급해진 것이다.
그래서 예일대는 말 그대로 급하게 남녀공학으로 바뀌게 되었고, 10개월 만에 여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그렇게 고집 부리던 예일대가 여학생들에게 문을 열게 된 이유가 평등을 위한 것도 아니요, 여학생이 남학생과 동등한 교육 기회를 부여받는 것이 공정하다는 생각 때문도 아니었고, 전략적인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예일대가 남녀공학으로 전환되었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예일 대학이 남녀공학으로 바뀐 첫해에 575명의 여학생들이 등록했는데 남학생들의 지위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여학생은 적게 모집했기 때문에 남학생 대 여학생 비율이 7 대 1이었다.
게다가 킹먼 브루스터 주니어 총장은 ‘현 상태를 최대한 깨뜨리지 않으며’ 여학생을 받아들이려고 했기 때문에 최초로 예일대에 다니게 된 여학생들은 소수자이자 개척자로서 여러 문제에 직면했고, 남학생이었더라면 당연하게 주어졌을 것들을 위해 투쟁하며 대학을 바꿔나갔다.
(...) 예일 대학은 여학생에게 숙소와 수업 등록 자격은 주었지만 운동선수나 고적대원처럼 명망 높은 학생 활동은 여전히 남성들 차지로 두었다.
로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웃기시네, 절대 내 앞을 가로막지 못해.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오히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로리는 필드하키를 하는 다른 여학생을 만났고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었다. 며칠이 지난 뒤 손으로 쓴 전단지가 밴더빌트 홀 출입문에 나붙었다. “필드하키 하고 싶은 사람? 밴더빌트 홀 23호 제인 커티스나 밴더빌트 홀 53호 로리 미플린에게 알려주세요.” (...) 미국 필드하키의 개척자 콘스턴스 애플비는 선수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시키는 대로 하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이 교훈을 로리는 이미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p.87
저자 앤 가디너 퍼킨스는 예일대에 최초로 입학한 575명의 여학생들 중 셜리 대니얼스, 키트 매클루어, 코니 로이스터, 베티 스판, 그리고 로리 미플린, 이 다섯 명의 여학생들에게 집중한다.
키트 매클루어는 그녀의 부모가 여자애는 트롬본이 아니라 플루트나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피아노를 치라고 했지만 혼자서 트롬본을 부는 방법을 배워서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트롬본을 부는 유일한 여학생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베티 스판은 룸메이트가 장난으로 예일대 지원서를 보낸 것이 계기가 되어 예일 대학에 다니게 되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예일대에서 베티 스판의 룸메이트가 된 코니 로이스터는 전미 유색인종 지위향상협회 뉴헤이븐 지부의 공동 창립자인 할머니와 미국 최초 흑인 연방 판사로 임명된 고모를 두고 있었고, 또 그녀의 집안은 전부터 예일 대학의 사교 클럽에서 일했기 때문에 예일 대학과 인연이 있었다.
셜리 대니얼스는 아프로아메리칸학을 공부하기 위해 예일대로 편입했으며, 로리 미플린은 키트 매클루어가 여자를 받지 않겠다는 예일대 고적대에 결국 들어간 것처럼 여학생의 운동 활동에 제한을 둔 예일의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고 필드하키 팀을 만들기로 하는 당찬 학생이었다.
이렇게 예일대 여학생들의 행보를 보면 과연 똑똑할 뿐만 아니라 기개가 좋은 여학생을 뽑았다는 말이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 여러 면에서 예일대의 최초 여학생들은 575개 집단인 듯 서로 달랐다. 하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이 여학생들은 모두 똑똑했다. 남학생보다 똑똑했다. 그건 첫 학기 성적이 여실히 보여줬다. 그리고 굳셌다. 적어도 이건 지원서에서 주장한 모습 그대로였다.
p.77
(...) 게다가 엘가와 촌시는 최초 여학생들에게서 남학생에게는 별로 요구하지 않은 자질을 찾으려 했다. 그들은 성적을 훑어본 다음 기개가 좋은 여학생을 뽑았다.
남자 형제가 넷인 여학생, 규모가 큰 고등학교에 다닌 여학생, 1년 동안 일을 한 여학생, 해외에 살아본 여학생, 운동을 한 여학생, 힘든 경험을 이겨낸 여학생, 이들이 엘가와 촌시가 바란 여학생이었다. 예일 대학이 맞이한 최초 여학생들은 자신 앞에 어떤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직 알지 못했지만, 엘가와 촌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촌시는 이렇게 말했다. “소심한 여학생을 뽑아서 이런 환경에 밀어넣은들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겨내지 못할 테니까요.”
p.79
예일 대학의 여성 관리자로서 고군분투한 엘가 와서먼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남편 해리와 같은 하버드 대학 화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여성에게는 연구 조교 자리 정도만 주어졌기 때문에 남편은 예일 대학에서 종신 교수가 된 반면에 엘가는 연구 조교로 커리어를 시작해야 했지만, 한정된 선택지 속에서도 항상 최선을 다했던 엘가는 남성의 전유물이던 예일대 대학원 과학 담당 부학과장까지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 엘가는 예일대 남녀공학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대학에서 여성을 관리직으로 고용하는 일이 드물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몇몇 남성 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예일 대학 부학장이 아닌 여성교육 총장 특임비서라는 단어 뭉치를 직함으로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남녀공학 임무에서 엘가는 뛰어난 일처리 능력을 발휘하며, 이후로도 계속해서 예일대를 변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비록 남성만 앉던 자리였지만. 엘가는 대학원 부학과장을 하다가 옮겨왔으니 다음 단계는 당연히 예일 대학 부학장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브루스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몇몇 남성 학장들이 이의를 제기했다며, 여성이 그런 직함을 달면 그들에게 모욕감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엘가는 ‘특임비서’가 되었다. 예일 대학의 위계질서를 헤치지 않는 직위였다.
엘가와 같은 수많은 여성이 감내하는 이런 모욕이 학생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예일 대학에서 엘가의 지위가 내려갈 때마다 이제 막 예일 대학에서 짐을 푸는 젊은 여학생을 옹호할 힘도 줄어들었다.
p.75
이들의 모습은 책 앞쪽에 있는 사진 자료에서 볼 수 있는데, 처음에 책을 펼쳐서 앞의 사진 자료를 보니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책에 담긴 이야기가 실재한다는 것이 훅 느껴져서 뭉클했다.
그리고 본문을 읽으면서 지금의 대학이 있기까지 여성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알게 되니 가슴이 벅차올랐고, 지금도 단톡방 성희롱이나 불법촬영 등 대학 내 여성들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나도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년 전의 이야기에서 기시감이 느껴질 만큼 수십 년 전의 모습이 아직도 비슷한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었기에 더욱.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를 읽으면서 영화 <세상을바꾼 변호인>과 <모나리자 스마일>이 떠오르기도 했다.
두 영화는 1969년보다 이른 1950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에 다니는 단 9명의 여학생 중 한 명과 명문 여대를 다니는 여학생에게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려는 고군분투를 볼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리라.
그렇기에 반대로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이나 <모나리자 스마일>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다면 <예일은 여자가 필요해>를 읽으면서도 감명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