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 뇌과학자 - 괴물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제임스 팰런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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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뇌와 알츠하이머 병에 대해 연구하던 뇌과학자가 정상 대조군으로 찍어두었던 가족의 뇌 스캔 사진들을 분석하다 마지막 사진에 주목한다.
그 뇌 스캔 사진이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 뇌과학자는 평소 물건을 잘못 두곤 했기 때문에 스캔 사진이 섞인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익명을 유지하기 위한 암호를 풀어보니 문제의 뇌 스캔 사진은 뇌 과학자의 가족 것이 아니었다.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뇌는 바로 뇌 스캔 사진을 분석했던 뇌 과학자 본인의 것이었다!

어느 영화의 줄거리 같은 위 이야기는 사람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현실에 실재하며 이 책의 저자 제임스 팰런이 겪은 이야기이다.
영화라 해도 흥미로운데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니 제임스 팰런이 2008년에 TED강연에서 이 이야기를 한 뒤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각종 매체에서 관심을 가질 만하다.
나 또한 위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는데 사실 내가 이 이야기를 알게 된 건 <괴물의 심연>이라는 제목의 책 소개를 읽으면서였다.
그리고 <사이코패스 뇌과학자>는 <괴물의 심연>의 개정판이니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을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8장 제목에서 가져온 <괴물의 심연>이라는 제목이 마음에들지만 <사이코패스 뇌과학자>라는 제목이 직관적이어서 독자에게 다가가기가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제임스 팰런은 살면서 자신이 사이코패스일 거라는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책에서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부터 살펴보지만 우리가 사이코패스 하면 떠올리는 특별히 잔인하고 폭력적인 성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히려 형제들 중에서는 얌전한 편이었고 마을에 한두 명을 있을 법한 장난꾸러기 정도로 보였으며 동물에게 총을 쏘거나 못 같은 걸 박았다는 끔찍한 친구가 더 사이코패스로 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뇌 스캔 사진에서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발견한 것을 계기로 자신을 돌아보고 분석하며 연구를 시작한다.

제임스 팰런의 사촌인 계보학 애호가 데이비드 보러와 다른 사촌 아널드 팰런은 저자의 부계쪽 가계도에서 미국 식민지에서 일어난 최초의 모친 살해 사건 중 하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토머스 코넬이나 (하지만 증거는 빈약했다고 한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나도 알고 있던, 친부와 계모를 도끼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리지 보든 같이 살인 혐의를 받거나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보통 사이코패스 하면 방송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추적할 만한 범죄자의 싹을 떠올리는데 제임스 팰런은 어째서 자신의 조상들과 다른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일까?
심지어 사이코패스 성향은 치료로 그 성향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약물로 충동성과 공격성을 어느 정도 낮추거나 조기 개입으로 행동 문제를 줄일 수도 있다고 했는데 저자는 자신에게 사이코패스의 특징이 있다는 걸 몰랐기에 그런 치료마저 받지 않은 상태였다.

저자는 처음에는 자신이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지만, 자신의 뇌 스캔 사진을 숙고한 뒤에서야 사람들이 자신에게 했던 말과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보고 사이코패스의 조짐이 있었으며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 나는 옆에 있는 사람들이 비극적이거나 슬픈 사건으로 울고 있더라도 내가 눈물도 흘리지 않고 심장박동도 흔들리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내가 존 F. 케네디가 총에 맞은 때를 기억하는 이유는 내 주위 사람들이 동요했기 때문이고, 나는 사건의 경위에 대해 더 관심이 있었다. 나이로비대학교에서 일하던 어느 날은 시체보관소로 걸어 들어갔는데, 철제 시체 안치대 위에 흰색 드레스 차림의 여자 아이가 눕혀져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보고 유족들에게 한마디 했다. “드레스가 멋지네요.”

p.198”


하지만 수감된 사이코패스 중에 유아기에 신체적/감정적/성적 학대를 당한 사람이 많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 사이코패스 중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은 사람이 99%이를 것이라는 추론을 하면서 저자는 자신이 사이코패스의 조짐을 보였음에도 범죄자가 되지 않고 ‘친사회적 사이코패스’가 된 이유는 학대를 당하기는커녕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제임스 팰런은 인격과 행동은 본성(유전)이 80퍼센트 정도를 결정하고 양육(성장 환경)은 20퍼센트밖에 결정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키우느냐’가 범죄자를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 그렇지만 나는 운 좋은 사이코패스라는 편이 가장 정확한 답일성 싶다. 친절하고 자애로운 아버지와 통찰력 있는 어머니가 일찍부터 아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아보고 아들을 잘 이끌어주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내게서 눈을 떼지 않는 동안 나는 역경을 헤쳐나갔다. 2013년 늦겨울, 어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자서전 하나 쓰는 데 얼마나 걸리는 게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엄마, 난 지금 내 자서전이 아니라 엄마의 자서전을 쓰고 있는 거예요.” 어머니는 대번에 알아들었다. 내 정체성의 많은 부분은 어머니가 나를 기른 방식에서 왔다. 나의 이야기는 나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어머니됨과 아버지됨과 부모됨과 양육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p.292”


저자는 사이코패스를 만드는 세 가지 요인을 ‘세 개의 다리’라고 불렀는데, 세 개의 다리란 안와전두피질과 편도체를 포함한 전측두엽의 유별난 저기능, 전사유전자로 대표되는 고위험 변이 유전자 여러 개, 그리고 어린 시절 초기의 감정적/신체적/성적 학대를 말한다.
그래서 발달단계와 정신 장애의 관계에 주목했고, 이러한 부분 때문에 저자가 원했던 것처럼 이 책은 양육에도 큰 쓸모가 있다고 생각했다.


“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온 세상이 내가 유서 깊은 미치광이 폭력배들의 후손임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 걸어다니고 말하는 증거가 되어 ‘우리는 태어난 대로 살아간다’는 내 이론을 스스로 반박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공격적이고 기이한 행동을 유발하는 온갖 고위험 유전자 변이를 굉장이 많이 물려받았고 뇌 역시 전형적으로 교도소에서 갓 나온 뇌처럼 생겼지만, 나는 지나치게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p.152”


저자의 말에 따르면 모든 문화권에 사이코패시(psychopathy)가 약 2퍼센트의 비율로 실재하니 싸이코패스는 모든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불안을 잘 못 느끼고 스트레스가 적기 때문에 면역계가 최고 효율로 작동해서 병을 피할 수 있다거나 많은 사람이 원하는 사랑과 헌신을 가장할 수 있어 짝을 찾는 데 선수이기 때문에 사이코패스 특성이 진화와 생존에 이점이 있어서 지금까지 그 유전자가 전달될 수 있었다는 시각은 재미있다.
하지만 그 뒤 글은 사이코패스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며 모두가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촌철살인이었다.


“가족, 특히 어머니와 아내가 사이코패스을 용인하는 이유는 자기가 그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 누구나 자기가 다른 사람의 행동과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와 특별한 관계라서 그의 안에 있는 선한 사람을 볼 수 있어. 난 그가 착한 남자라는 걸 알아.” 사이코패스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는 법을 알고 있다. 사람을 끌어들여 낚은 다음, 구타하고 굴욕을 준 뒤 “사랑해”란 말을 덧붙이는 경우도 있다. 가족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도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나도 그의 내면에 짐승이 있는 줄은 알지만, 그를 다를 수 있어요.” 그래서 아내와 어머니는 그를 감싼다.

p.281-282”


자신이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사이코패스을 연구해 온 저자는 사이코패스를 어떻게 생각할까?
제임스 팰런은 사이코패시와 그 유전자를 사회에서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생애 초기에 확인하고 그들이 어려움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이코패스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있지만 거시적으로는 사회에 보탬이 된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에게 취약해 보이면 안 되며 잠시 마주친 거라면 엮이지 말고 미소만 짓고 지나가버리라고 조언했다.


“사실 나는 ‘사랑에 빠졌다’라고 말하지만, 다이앤에게 완전히 감정적으로 연결되었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와 다이앤 사이에 유대가 생겨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공감을 통해 그녀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이앤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매혹적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우리에게는 공통의 목표와 가치(가족, 자유의지론, 불가지론)가 있어서 동지애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나에게 외계인처럼 느껴졌다. 다행이도 나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고도 남았다.

p.178-179”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가진 당사자로서(아내인 다이앤을 두고 바람핀 것도 썼을 정도로) 솔직하게 쓴 자전적 이야기와 사이코패스를 연구한 신경과학자로서 전달하는 뇌 과학이나 유전학 등 전문적인 과학 지식이 어우러져 책을 흥미롭게 읽으며 사이코패스(그리고 양극성 장애)에 대한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만약 싸이코패스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사이코패스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하는 게 아니더라도 저자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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