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고 미워했다 에프 영 어덜트 컬렉션
캐서린 패터슨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애증'은 나에게는 참 매력적인 감정이다.

그래서 애증관게에 있는 인물들이 나오면 그 이야기는 나에게 한층 더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처음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조금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책 제목처럼 사랑하고 미워하는 애증의 감정이 담겼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와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는 원작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이 두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의 소설이라는 것은 책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작가 캐서린 패터슨은 영화화된 위 두 소설과 이 소설로 무려 세 번이나 뉴베리상을 탔다고 한다.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와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에 이어 이 소설에는 또 어떤 아이의 성장이 그려졌을까 궁금해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랑했고 미워했다>는 체서피그만에 있는 작은 섬인 라스섬에 사는 사라 루이스 브래드쇼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라스섬 사람들은 남자들이 배를 타고 게를 잡고 굴을 따는 일로 생계를 이어갔고, 사라 루이스도 한 살 위의 친구 콜과 쪽배를 타고 게잡이를 하며 돈벌이를 했다.

사라 루이스에게는 쌍둥이이지만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동생 캐롤라인이 있다.

사라 루이스가 게 비린내가 밴 손으로 게 잡이를 하고 있을 때, 밝고 아름답고 목소리마저 감미로운 캐롤라인은 음악적 재능을 보여서 매주 토요일에 육지까지 연락선을 타고 나가 음악 수업을 받는다.

사실 성향 차이가 두드러지기 이전부터, 태어날 때부터 약하게 태어난 캐롤라인에게 모든 사람의 신경이 쏠렸기 때문에 사라 루이스는 태어나자마자 관심을 빼앗겼다.

이런 환경은 캐롤라인의 잘못도,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이 둘이 성장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라 루이스는 음악적 재능을 가진 캐롤라인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미워하는 감정을 가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섬에 한 할아버지가 찾아와 섬의 끝에 있는 빈 집에서 살기 시작한다.

섬사람들은 모두 오래전에 섬을 떠났던 그 집의 아들 하이럼 월리스라고 생각하지만, 소설 속 시대는 한창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때였으니 사라 루이스는 독일 간첩을 거라고 의심한다.

나중에는 그 할아버지를 선장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콜과 함께 셋이 자주 시간을 보내게 되며 유대감을 쌓게 되는데, 콜과 선장 할아버지마저 캐롤라인에게 빼앗기고 만다.

 "할머니 전 어땠어요? 제가 아기였을 때 이야기 좀 해 주세요."

 "그걸 어떻게 기억해? 얼마나 오래된 일인데."

 내가 비탄에 잠기는 모습을 보고는 엄마가 말했다.

 "루이스, 넌 착한 아기였어. 넌 단 1분도 우리를 걱정하게 만든 일이 없었단다."

 엄마는 나를 위로하려고 한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에 더 슬퍼졌다. 아무리 못해도 1분 정도는 내 걱정을 해 줬어야 하지 않나? 캐롤라인 삶이 우리 식구 모두에게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은 캐롤라인을 걱정했던 그 모든 시간들 때문이 아니었던가?


p.30

한편 사라 루이스는 섬 밖의 크리스필드의 기숙학교에 가기 위해 게잡이를 더 열심히 해서 반은 평소처럼 생활비에 보태고 나머지 절반은 따로 모으기로 한다.

하지만 사라 루이스가 아니라 캐롤라인이 그 음악적 재능 덕분에 볼티모어의 좋은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가족들뿐만 아니라 선장 할아버지도 이에 기뻐하며 들떠서 사라 루이스를 신경쓰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나중에 엄마가 사라 루이스에게 볼티모어 학교에 보내지는 못하더라도 크리스필드의 학교에는 보내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사라 루이스는 거절한다.


저자의 이력만큼 소설은 술술 읽혔고, 특히 사라 루이스에게 더욱 이입을 할 수 있는 부분은 책장이 더 빠르게 넘어갔다.

다른 소설을 읽다 보면 간혹 이 인물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기도 한데, 이 소설은 그런 부분 없이 내가 사라 루이스의 행동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오히려 나는 사라 루이스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한 나머지 이야기의 흐름이 속상했고 결말에는 화가 났을 정도였다.

한번은 선장 할아버지가 사라 루이스에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에 사라 루이스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자 동생 캐롤라인은 원하는 것을 알았기에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선장 할아버지는 말했다.

그리고 후에 엄마는 섬을 떠나겠다는 사라 루이스의 말에 떠나도 된다고, 네가 떠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두 부분에 주요 메시지를 담고자 한 것 같다.

하지만 두 사람 다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사라 루이스에게 깨달음을 주었는데도 마치 지금까지 사라 루이스가 힘들어했던 이유가 사라 루이스 자신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어서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것은 결말이다.

나는 서평에서 소설의 결말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말을 아끼려고 하지만 이번에는 결말에 대해 말을 하고 싶다.




사라 루이스의 엄마는 그 시대에 대학까지 마친 교육 받은 여성이었지만 라스섬에 와서 아빠를 만나 정착했고, 넉넉지 않은 형편에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구박을 받아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사라 루이스는 결국 그런 엄마에게 분노를 표출했고, 엄마는 그저 자신이 선택한 삶이라고 차분하고 답한다.

여기까지는 작가가 어떠한 메시지를 주려고 했던 것임을 이해한다.

그런데 이렇게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사라 루이스를 엄마와 닮은 삶을 살게 하고 그로 인해 엄마를 인해하게 하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하지 않은가?


캐롤라인은 결혼 후에도 최고의 음대를 졸업하고 오페라 데뷔를 앞두고 있는데, 사라 루이스는 꿈을 좇아 섬을 떠났음에도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섬을 떠난 이후에도 캐롤라인과 대비되는 사라 루이스의 삶에 나는 씁쓸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혹자는 사라 루이스가 캐롤라인에게서 벗어났다는 것이 의미가 잇는 거라고, 엄마와의 대화에서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메시지이지만 아무튼 이런 삶도 자신이 선택한 삶이고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사라 루이스가 섬에서 꿈꾸었던 삶은 아니잖은가!

정말 너무하다고, 사라 루이스가 위처럼 엄마에게 분노를 표한 것에 대한 벌을 받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소설을 읽고 감정적이어서 더 큰 의미를 못 보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 밖에도 고양이를 대하는 모습이라든지 (잠시나마) 일흔이 넘은 선장 할아버지에게 품었던 감정 등 몇몇 거북한 요소가 있지만 작가의 필력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섬의 이야기는 자칫하면 지루해질 수 있는데 인물에 충분히 이입하며 지루함 없이 이야기를 읽을 수 있게 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에 들어서기도 전에 예상 가능한 그런 뻔한 결말이 아니라는 것도, 내가 사라 루이스에게 이렇게 마음을 쓰지 않았더라면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감리교를 믿는 섬이 배경이어서 곳곳에 기독교 색채가 있고 성경 구절이 몇 가지 등장하는 것도, 특히 에서와 야곱 이야기는 분위기를 고조시켜 이야기를 살리는 요소가 되었다.

사라 루이스 시점이 아니라 캐롤라인 시점으로는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되었을지 읽어보고 싶어진다.

나는 차를 준비하러 간다고 둘러대고 급히 부엌으로 갔다. 계속해서 선장 할아버지가 엄마와 캐롤라인에게 훌륭한 음악 프로그램이 있는 볼티모어의 학교에 대해 설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말들이 내 귓전에 폭풍처럼 울렸다. 나는 주전자를 불에 올리고 컵과 스푼을 준비했다. 모든 것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 들어올리기가 힘들었다. 찻잎이 든 통의 뚜껑을 열려고 애쓰고 있는데, 할머니가 부엌에 들어와 내 바로 뒤에 섰다. 할머니가 쉰 목소리로 속삭이는 소리에 나는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로마서 9장 13절. 성경에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


p.228-229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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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의 땅 1부 1 : 흩어진 무리 용기의 땅 1부 1
에린 헌터 지음, 신예용 옮김 / 가람어린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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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을 정말 좋아하는데, 얼마 전에 <알라딘>에 이어 <라이온 킹>이 실사 영화로 개봉하면서 다시 한번 나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그렇게 활활 타오르는 나의 눈에 이 책이 들어온 이유는, 순전히 <라이온 킹>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다음에야 <전사들 Warriors>로 유명한 작가의 소설이라는 것이 보였고, <전사들 Warriors>는 직접 읽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랑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는 걸 알기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이 소설은 <라이온 킹>과 닮은 부분이 있었다.

먼저 소설은 무리를 이끄는 독수리 윈드라이더의 눈을 통해 대초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영화 <라이온 킹>의 오프닝 곡인 <Circle of life>가 머릿속에 절로 울려 퍼졌다.

이어지는 주인공 셋 중 어린 사자 피어리스의 이야기는 심바를 떠올리게 했고, 특히 무리의 우두머리이자 피어리스의 아빠인 갈란트가 무리를 빼앗으려고 도전해 온 타이탄에게 죽임을 당하는 부분은... 눈물을 줄줄 흐르게 했던 <라이온 킹>의 바로 그 장면, 심바의 아빠 무파사가 스카에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절로 떠오르게 했다.

조상들의 법에 따라 1대 1로 정정당당하게 싸우던 갈란트에게 타이타나 무리 셋이 달려들어 공격하는 장면은 스카의 비열함과 꼭 닮아서 나를 더 화나게 했다.

그 외에도 자연의 법칙이나 조상에 대한 언급도 <라이온 킹>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였다.




이렇게 피어리스는 무리의 우두머리이자 아빠를 잃게 되었고, 갈란트의 후계자라는 이유 때문에 쫓기게 되는데, 엄마 스위프트와는 물론이고 함께 도망가돈 누나 베일러와도 헤어지게 된다.

그나마 다행으로 개코원숭이 무리와 함께 지내면서 머드와 쏜(주인공 셋 중 한 마리다)과 친구가 되지만 사자인 피어리스가 개코원숭이 무리에서 겉돌기도 하는 모습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타잔>의, 고릴라 무리에서 홀로 인간이었던 타잔이 생각나게도 했다.


이런 사연이 있는 피어리스가 누나 베일러와 엄마 스위프트를 구하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빠 갈란트의 복수를 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전개다.

이렇게 <라이온 킹>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지만, 2시간 내외의 영화보다 시리즈 소설이 더 세세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담을 수밖에 없으니 이 책 <용기의 땅>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라이온 킹>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피어리스가 합류하게 된 개코원숭이의 무리의 계급 사회라던가, '위대한 어머니'의 존재와 신비한 능력이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한다.

위대한 어머니는 용기의 땅의 지혜로운 존재로, 지금은 코끼리 스트라이더 무리의 우두머리이다.

그리고 주인공 셋 중 하나인 손녀 스카이는 뼈와 접촉하면 기억을 읽어낼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 <용기의 땅> 시리즈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출판사에서 출간되긴 했지만 <라이온 킹>을 좋아한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사자 피어리스, 개코원숭이 쏜, 코리끼 스카이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되니까.

피어리스는 엄마 스위프트를 구하고 아빠 갈란트의 복수를 어떻게 할까?

또 신비한 능력을 가진 코끼리 스카이가 본 끔찍한 환영 속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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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역사 : 소크라테스부터 피터 싱어까지 -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다
나이절 워버턴 지음, 정미화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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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밀접한 학문이라는 철학, 살면서 한 번은 철학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잠깐 살펴본 철학은 이해할 수 없는 단어의 연속이었고, 뜻을 검색해봐도 의미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아, 역시 철학은 어려운 거로구나 하고 뒤로 미뤄만 뒀었는데...

그러다가 이 책 <철학의 역사>는 입문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라고 해서 읽어보게 됐다.

다른 것도 아니고 철학의 역사라는 지루해 보이는 책을 먼저 읽기로 했냐면, 나는 어떤 분야를 알아갈 때 그 분야의 역사부터 알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흐름을 읽고, 발전 과정을 아는 것은 해당 분야를 이해하는 데에, 그리고 지식의 얼개를 짜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 책은 철학자 소크라테스부터 피터 싱어까지 약 40명의 철학자를 통해 철학의 역사를 훑어보는데, 일단 책을 읽으면서 입문자에게 잘 맞는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 챕터가 (대부분 한 챕터당 한 철학자에 대해 다룬다) 몇 페이지 되지 않아서 부담감이 없는데 그렇다고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균형을 잘 잡았고,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철학책은 지루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책을 읽으면서 흥미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 나이절 워버턴이 철학자의 삶 그리고 그의 사상의 핵심을 잘 짚어내면서 보다 이해하기 수월하도록 예시를 들어서 설명해줬기 때문에, 그리고 필력도 좋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어렵게만 보이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한국어의 탈을 쓴 단어들도 저자가 하나하나 설명해주니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이 지루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의 다양한 사상과 여러 생각들을 만나는 건 세상을 여러 각도에서 요리조리 바라보는 것이었고 세상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관념론과 유물론이라던가, 악이 있더라도 지금 이 세상은 최선이라고 보는 라이프니츠와 그에 반론을 제기하는 볼테르를 보면서 같은 세상도 이렇게 달리볼 수 있구나 싶어 재미있었다.



행복이나 죽음, 도덕 같은 주제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가 방향을 제시하고 고민을 덜어주기도 했다.

행복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여러 철학자가 행복은 자기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달렸고, 스토아학파 철학자는 또 생각은 우리에게 달렸다고 했다.

이런 관점은 책을 읽기 전에 여러 번 보기도 했고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기도 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그리고 시간에 대한 세케나의 생각은 나를 뜨끔하게 만들어 기억에 남았다.

이런 부분 때문에 철학은 자기계발에도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 다들 인생이 너무 짧다고 말한다. 할 일은 너무 많고 시간은 너무 없다.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의 말처럼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죽음을 앞둔 노인들은 종종 인생에서 진정 원했던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몇 년만 더 살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대개 너무 늦었고,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아쉬워할 뿐이다. (...)


세네카는 이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 그는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가 아니라 우리들 대부분이 시간을 얼마나 헛되이 사용하는가를 문제로 보았다. 역시나 세네카에게도 인간 조건의 피할 수 없는 측면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가장 중요했다. 우리는 인생이 짧다고 화낼 게 아니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인생을 두고 그러는 것처럼 천 년의 시간도 쉽사리 허비할 거라고 그는 지적했다. (...)


p.49

그 외에도 철학자들이 가진 궁금증과 고민은 우리가 한 번쯤은 생각해본 것들, 예를 들면 기독교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가졌던 의문인 신은 왜 악을 만들었나 하는 것들이었는데, 그에 대해 사유한 끝에 철학자들이 내놓은 자기 나름대로의 답은 고개를 끄덕이게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 나는 철학은 심리치료법 중 하나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여러 철학자들을 통한 철학의 역사를 읽으며 배운 것도 많았지만, 그들의 생각이 공감되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왜 철학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철학이 왜 삶과 밀접한 학문이라고 하는지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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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필리파 피어스 지음, 에디트 그림, 김경희 옮김 / 길벗어린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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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라는 동명의, 카네기 상을 받은 소설을 그래픽 노블로 재탄생시킨 책이다.

카네기 상 수상작이라고는 하지만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였는데, 책소개를 보고 읽고 싶은 마음이 팍 생겨서 처음으로 그래픽 노블을 읽어보게 되었다.



주인공 톰은 동생 피터가 홍역에 걸려서 옮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 때문에 이모와 이모부 집에서 방학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톰도 홍역 잠복기일 수 있기에 밖에 나가서 마음껏 놀지도 못했고, 다세대 주택으로 개조된 건물 알에만 있는 것은 한창 뛰어놀 나이의 톰에게는 너무 지루했다.

그러니 다른 때라면 관심도 주지 않았을, 주택 현관에 고정된 시계가 톰의 관심을 끌 수밖에.

그 시계는 원래는 매 시 정각마다 종이 울려야 하는데, 오래되어서인지 어쩐지 제때 종이 울리지 않고 중구난방이라고 했다.

어느 날 톰이 잠 못 이루는 밤에는 열 세 번 종이 울렸고, 호기심에 시계를 확인하러 내려간 톰이 시계를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실내를 밝게 하기 위해 집 뒤편으로 연결된 문을 열었다가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엄청 넓고 푸르고 예쁜 정원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 정원은 밤에만 갈 수 있는 마법 같은 곳이어서 낮에는 뒤편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도 황량하고 좁은 뒤켠만 마주할 수 있었고, 톰은 동생 피터에게만 편지로 그 정원의 존재를 알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한다.



그 정원에 여러 번 찾아가면서 알게 된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톰을 보거나 듣지 못한다는 것과 톰은 그곳에서는 유령처럼 벽을 지나갈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아하니 정원은 톰이 사는 시대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톰은 그 정원에서 자신을 보고 들을 수 있는 해티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해티가 사는 그곳은 해티 큰어머니 집으로, 고아가 된 해티는 그곳에서 겉돌고 있던 중에 톰을 만난 것이다.

이 둘은 함께 정원에서 뛰놀며 우정을 쌓게 되는데, 문제가 있었다.

정원의 시간 흐름과 톰이 사는 시대의 시간 흐름이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톰은 아직 어린아이지만, 해티는 톰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간다.



놀림을 당하더라도 사람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며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톰과 놀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던 해티는, 어른이 되어서도 톰을 반가워하며 친구로 생각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다르느 사람 앞에서 톰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시간 흐름의 차이로 달라진 해티와 톰을 보면서는 어렸을 때와 달라진 지금의 내가 비쳐 슬픈 기분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톰의 동생 피터가 홍역이 나아서 톰은 집에 돌아가야 하게 된다.

톰은 정원과 해티 때문에 이모의 집에서 계속 머물고 싶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날을 뒤로 좀 미룰 수 있었을 뿐 계속 이모 집에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해티가 있는 정원과 톰이 사는 시대의 시간 흐름이 다르다는 것에 착안해서 톰은 마법의 정원에 오래도록 머물 계획을 한다.

그리고 톰이 친 작은 사고에 집주인 할머니인 바살러뮤 부인은 톰을 직접 보기를 원하는데, 왜일까?


작은 반전과 이야기의 흐름이 읽는 사람을 긴장하게도 했다가, 슬프게도 했다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결말을 알고 봐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책소개를 읽으며 결말을 미리 알게 되었고, 심지어 결말을 알지 못했다면 이 책을 지나쳤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시간을 뛰어넘은 우정'이라 할 수 있는데, 이건 마법의 정원과 톰이 사는 시대의 시간차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앉은 자리에서 책을 다 보고 나는 왜 어렸을 때 이 이야기를 만나지 못했을까 하며 지금이라도 이 이야기를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 1959년에 카네기 상을 받았으니 쓰인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이야기였음에도 여전히 재미있게 볼 수 있고, 원작이 아동 문학 고전이지만 어른인 내가 보기에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귀여운 해티와 톰 그리고 넓은 정원이 구불구불한 선을 가진 그림체로 그려져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그래픽 노블은 그 자체로도 예쁜 책이고, 원작 소설까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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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프란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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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언 피즈 체니, 그는 이 책의 저자 파스칼 키냐르의 말에 따르면 그가 살던 사제관 정원의 새들이 지저귀는 노래를 모두 기보한 최초의 작곡가라고 한다.

자연의 소리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소리를 음악으로 여기는 그의 모습은 저자가 왜 시미언 피즈 체니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살아있는 생명체인 새들의 소리뿐만 아니라 무생물인 사물들, 걸어놓은 옷 사이로 들리는 바람 소리나 양동이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도 소리에서 음악으로 받아들이는 포용력, 그리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저자의 표현력이 악보와 그 악보를 연주하는 악기와 같은 책이었다.



"Even inanimate things have their music. Listen to the water dropping from a faucet into a bucket partially filled 생명이 없는 사물에게도 나름의 음악이 있다. 수도꼭지에서 반쯤 찬 양동이 속으로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에 귀 기울여 보시라."


p.13

또한 시미언 피즈 체니의 아내 에바에 대한 사랑과 절절한 그리움은 이 책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아내를 그리워하는 그를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너무도 사랑하는 아내 에바는 딸 로즈먼드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딸을 충분히 사랑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자라나면서 아내를 닮아가는 딸을 보며 괴로움에 딸에게 집을 떠나기를 요청하는 장면은 나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무조건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특히 자녀가 잘못한 일이 아닌 것을 이유로 사랑하지 못하겠다는 그의 고백은 다름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로즈먼드가 안타까웠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그런 모진 말을 들었지만 로즈먼드도 아버지를 이해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건 아버지를 사랑해서일까, 그녀는 그 일로 아버지와 인연을 끊거나 하지도 않았고, 노래와 첼로를 가르치고 받은 레슨비를 모아 아버지의 악보를 자비로 출판하기도 했다.

그게 바로 드보르자크가 휴가 때 읽었다는 시미언 피즈 체니의 유고집 <야생 숲의 노트 Wood Notes Wild>이다.



나는 책을 펼치기 전에, 아니 서문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를 소설로, 아니면 에세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장에 들어서자마자 내 앞에 있는 것은 무대였다.

그 무대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극이 바로 파스칼 키냐르가 시미언 피즈 체니에 대해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파스칼 키냐르가 쓴 희곡은 시나 노래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차마 떠날 수 없어 벤치에 앉아 있는 거야.

내 몸이 어둠에 휩싸일 때까지.

슬픈 가운데서도 불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나도, 소위 말하는 마법에 걸렸나 봐,

아내가 사랑했던 이 정원에서,

내가 사랑하는 이 정원에서,

그리고 남아 있는 노래 안에서

나는 행복해.


그녀의 정원에서 내가 정말로 행복해지는 이유는 심지어 이렇게 말할 수 있어.

아내가 사랑했던 정원에 있으면 나 자신이 그녀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살아 있는

그녀의 내면에

살아 있는 나.


p.29-30


마지막으로 이 책의 디자인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알게 된, 파스칼 키냐르의 다른 책인 <음악 혐오>는 인상적인 제목이 눈길을 끌고 책 디자인이 시선을 빼앗았고, 도서관에서 책 실물을 만져봤을 때는 손에 착 붙는책을 손에서 쉽사리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같은 출판사에서 마치 시리즈처럼 통일성 있는 디자인으로 출간된 이 책,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역시 적당한 크기의 하드커버, 손끝에 느껴지는 천을 씌운 듯한 표지의 거친 감촉, 그 위에 꾹꾹 눌러 새겨진 글자가 무척 매력적인 책이었다.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가 프란츠 Franz 출판사에서 <음악 혐오>에 이어 출판한 파스칼 키냐르의 두 번째 책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도 이런 디자인으로 책이 출간된다면 모아서 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할 것 같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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