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프란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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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언 피즈 체니, 그는 이 책의 저자 파스칼 키냐르의 말에 따르면 그가 살던 사제관 정원의 새들이 지저귀는 노래를 모두 기보한 최초의 작곡가라고 한다.

자연의 소리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소리를 음악으로 여기는 그의 모습은 저자가 왜 시미언 피즈 체니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살아있는 생명체인 새들의 소리뿐만 아니라 무생물인 사물들, 걸어놓은 옷 사이로 들리는 바람 소리나 양동이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도 소리에서 음악으로 받아들이는 포용력, 그리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저자의 표현력이 악보와 그 악보를 연주하는 악기와 같은 책이었다.



"Even inanimate things have their music. Listen to the water dropping from a faucet into a bucket partially filled 생명이 없는 사물에게도 나름의 음악이 있다. 수도꼭지에서 반쯤 찬 양동이 속으로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에 귀 기울여 보시라."


p.13

또한 시미언 피즈 체니의 아내 에바에 대한 사랑과 절절한 그리움은 이 책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아내를 그리워하는 그를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너무도 사랑하는 아내 에바는 딸 로즈먼드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딸을 충분히 사랑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자라나면서 아내를 닮아가는 딸을 보며 괴로움에 딸에게 집을 떠나기를 요청하는 장면은 나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무조건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특히 자녀가 잘못한 일이 아닌 것을 이유로 사랑하지 못하겠다는 그의 고백은 다름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로즈먼드가 안타까웠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그런 모진 말을 들었지만 로즈먼드도 아버지를 이해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건 아버지를 사랑해서일까, 그녀는 그 일로 아버지와 인연을 끊거나 하지도 않았고, 노래와 첼로를 가르치고 받은 레슨비를 모아 아버지의 악보를 자비로 출판하기도 했다.

그게 바로 드보르자크가 휴가 때 읽었다는 시미언 피즈 체니의 유고집 <야생 숲의 노트 Wood Notes Wild>이다.



나는 책을 펼치기 전에, 아니 서문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를 소설로, 아니면 에세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장에 들어서자마자 내 앞에 있는 것은 무대였다.

그 무대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극이 바로 파스칼 키냐르가 시미언 피즈 체니에 대해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파스칼 키냐르가 쓴 희곡은 시나 노래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차마 떠날 수 없어 벤치에 앉아 있는 거야.

내 몸이 어둠에 휩싸일 때까지.

슬픈 가운데서도 불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나도, 소위 말하는 마법에 걸렸나 봐,

아내가 사랑했던 이 정원에서,

내가 사랑하는 이 정원에서,

그리고 남아 있는 노래 안에서

나는 행복해.


그녀의 정원에서 내가 정말로 행복해지는 이유는 심지어 이렇게 말할 수 있어.

아내가 사랑했던 정원에 있으면 나 자신이 그녀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살아 있는

그녀의 내면에

살아 있는 나.


p.29-30


마지막으로 이 책의 디자인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알게 된, 파스칼 키냐르의 다른 책인 <음악 혐오>는 인상적인 제목이 눈길을 끌고 책 디자인이 시선을 빼앗았고, 도서관에서 책 실물을 만져봤을 때는 손에 착 붙는책을 손에서 쉽사리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같은 출판사에서 마치 시리즈처럼 통일성 있는 디자인으로 출간된 이 책,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역시 적당한 크기의 하드커버, 손끝에 느껴지는 천을 씌운 듯한 표지의 거친 감촉, 그 위에 꾹꾹 눌러 새겨진 글자가 무척 매력적인 책이었다.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가 프란츠 Franz 출판사에서 <음악 혐오>에 이어 출판한 파스칼 키냐르의 두 번째 책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도 이런 디자인으로 책이 출간된다면 모아서 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할 것 같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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