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냐고, 철학이 내게 물었다 - 30인의 철학자가 오늘 나에게 건네는 철학의 말들
임재성 지음 / 필름(Feelm)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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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정말 너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냐”


“지금 내가 바라는 삶, 원하는 것, 이루고자 하는 그것은 진짜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부러움을 나의 목표로 착각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지난해 <몽테뉴 사유의 힘>으로 한번 읽었던 임재성 작가의 책이다. 타인의 부러움을 나의 목표로 착각하지 않았냐는 작가의 질문은 그때도 꽤 오래 남았다. 남들의 시선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고, 박수의 크기에 따라 방향을 틀어왔던 시간들. 작가는 몽테뉴의 입을 빌어 물었다. 그것이 정말 네 마음이냐고.


이번 책도 그렇다. 30명의 철학자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멈춤’을 묻는다. 그는 챕터마다 철학자를 소개하는 것보다 그의 질문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려낸다. 전작이 몽테뉴를 통해 자기 관찰의 힘을 보여주었다면 <괜찮냐고, 철학이 내게 물었다>는 이 사유를 더 넓게 확장한다.



다섯개의 질문을 따라 걷는 철학의 길


이 책은 불안과 의미, 고난과 관계, 그리고 성장이라는 다섯 개의 질문을 따라 걷는다. 1장에서 만나는 아우렐리우스와 세네카, 에픽테토스는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내어주지 말라고 말한다. 스피노자는 감정을 이해하는 일이 곧 자유로 가는 길이라 하고, 에피쿠로스는 작은 기쁨 속에서 평온을 찾는 법을 일러준다.(예전 도덕책에서 배운 그 에피쿠로스학파의 그 사람이 맞다) 여기서 철학은 거창한 어떤 것이 아니라 오늘을 버티는 기술이 된다.


2장에서는 빅터 프랭클이 인간이 고통 속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태도에 관해 일러주는데 어떤 것의 의미는 상황이 아니라 해석을 통해 달라질 수 있다고 그는 해석의 중요성을 우리게 말해준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능력이라 정의하며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느냐보다 어떻게 관계 맺느냐가 삶의 깊이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3장에서는 니체와 키르케고르, 사르트르가 등장해 불안에 관해 말한다. 불안은 나를 무너뜨리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자유롭다는 증거일 수 있고. 고난은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통로라고 말한다. 현재 실존주의를 가로지르는 이들의 시선은 낯설지만 묵직하다.


4장은 관계를 다룬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를 통해 오해의 본질을 드러내고, 라로슈푸코는 인간의 이기심을 날카롭게 비춘다. 한비자와 그라시안은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며 관계의 기술을 말하지만, 결국 책은 태도로 돌아온다. 관계를 바꾸기 전에 나의 시선을 먼저 돌아보라고.


5장에 이르면 질문은 더 근원으로 향한다. 아렌트는 생각하는 힘을 잃지 말라고 하고, 칸트는 스스로 판단하는 인간의 존엄을 말한다. 정약용과 파스칼은 삶을 깊이 성찰하는 태도를 통해 성장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생각하는 것. 그 말이 오래 남는다.



철학의 이유


각 장의 끝에는 ‘오늘을 바꾸는 철학 한 줄’과 ‘나만의 깨달음 한 줄’이라는 칸이 있다. 이 질문들에 답하다 보면 어느덧 철학은 읽는 자리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어떤 것으로 바뀐다. 책을 읽는다면 질문이 다 그저그렇지라고 넘기지말고 꼭 한번 답을 구해보길 바란다.


“나는 왜 이 일에 이렇게 예민해졌는가.”

“지금의 불안은 무엇을 잃을까 봐 두려운 마음인가.”

“내가 원하는 성공은 정말 나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가.”


생각보다 답은 쉽지 않다. 오히려 질문이 더 많아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질문들이 늘 불안해 하는 나를 위로했다.

확신이 없어도 괜찮다는 느낌. 당장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여유. 어쩌면 질문을 품고 사는 일은 미완의 상태를 견디는 일과 닮아 있었다.


철학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바꾸기 위한 거창한 도구라기 보다는 매일의 나를 점검하며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연습.



오늘의 불안


나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나는 누구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는가. 나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책은 그리고 서른 명의 철학자들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생각하라고 권한다.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으로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힘. 그 힘은 거창하지 않지만 꽤 오래 간다.


오늘의 불안을 없애지 못해도 괜찮다. 그 불안을 바라보고 그것과 마주 앉을 수 있다면 어쩌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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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은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가 - 아침과 저녁, 나를 위한 인문학 30day 고윤(페이서스코리아)의 첫 생각 시리즈 3부작 3
고윤(페이서스 코리아)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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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방치하고 있던 시간에 대하여


살다 보면 바쁘다는 말이 습관이 된다. 해야 할 일은 많고, 책임은 늘어가고, 관계는 복잡해진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도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이 사라진다.

나는 괜찮은지, 지금 이 방향이 맞는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묻지 않는다. 그저 버틴다.


<왜 당신은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가>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린다.

저자는 현대인이 겪는 43가지 심리 증후군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소홀히 다루고 있는지 보여준다.

우울과 스트레스, 번아웃과 비교 의식, 과도한 소비와 인정 욕구.

사실 이것들은 특별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한 번쯤 겪는 감정의 이름들이다.


책이 흥미로운 점은 이것을 거창한 진단으로 몰아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당신은 이런 상태에 있지 않은가”라고 묻는다. 짧은 챕터마다 질문을 던지고, 독자가 스스로 답하게 한다. 설명 보다 성찰에 가깝다.



번아웃, 그리고 남의 기준으로 사는 삶


특히 공감이 갔던 부분은 번아웃을 다루는 장이었다.

우리는 번아웃을 단순한 과로로 이해하지만, 이 책은 그것이 ‘남의 기준에 맞추느라 나를 억누른 결과’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문장을 읽고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힘들었던 순간들은 단순히 일이 많아서였을까.


완벽주의 역시 비슷하다.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은 성장의 동력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압박이 된다.

책은 완벽주의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선택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내가 정한 기준으로 사는 삶.


짧은 문장들로 구성된 챕터들은 부담이 크지 않다. 몇 분이면 한 장을 읽을 수 있다.

철학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어렵거나 난해하지 않다.

각 잡고 읽지 않고 틈틈이 읽기 좋다.



소비와 비교, 결핍의 그림자


책은 최근에 유행처럼 번졌다가 사라졌다 하는 영끌 투자, 자극적인 소비, 타인의 인정에 매달리는 태도도 다룬다.

그리고 이것이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내면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무엇이 부족했기에 그렇게까지 붙잡고 있었는지 묻게 만든다.


칼럼을 묶어놓은 것 같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어떤 독자에게는 가볍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볍게 읽으면서도 책은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질문을 남긴다.


나는 지금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가. 내가 힘든 이유를 정말 알고 있는가.



선택하는 삶을 위하여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 책에 인용된 에머슨의 문장은 단순하지만 묵직하다.

내가 나를 신뢰하지 못하면, 타인의 말 한마디에도 쉽게 흔들린다. 그래서 저자는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라고 권한다.


그 시간이 물리적으로 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나를 관찰하는 시간, 나의 감정을 인정하는 시간.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삶은 단순하지 않다. 이해되지 않는 일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도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경험은 나를 이루는 일부다. 이 책은 그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혹시 요즘 이유 없이 지치고 있다면,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느라 스스로를 밀어두고 있다면.

한 번쯤 돌아볼법하다.


당신은 지금, 자신을 돌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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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 - 말보다 깊은 눈빛, 양조위의 삶·사랑·작품
주성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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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 없이 맑은 소년의 얼굴


부끄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홍콩 영화의 전성기가 한풀 꺾인 뒤에야 영화에 눈을 뜬 나는 아직 <중경삼림>도 <화양연화>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양조위라는 이름은 수없이 들어왔지만, 기억나는 작품은 <해피투게더>, <적벽대전>, <색, 계>, <텐링즈>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 내가 <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를 읽었다.


“티 없이 맑은 소년의 얼굴, 우리 시대의 ‘화양연화’ 양조위.”


출판사의 이 표현은 아마 과장이 아닐 것이다. 실제 젊은 시절의 그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설명되지 않는 투명함이 있다.

연기를 덧입히지 않은 얼굴, 그러나 이미 감정이 차오른 눈동자.

이 책은 그 눈빛 속에 축적된 세월을 복원하듯 꺼내 보인다. 마치 오래된 필름을 디지털로 복원하듯, 한 배우의 시간과 도시의 기억을 겹쳐 보여준다.



끝나지 않은 화양연화


이 평전이 흥미로운 이유는 배우 개인의 성장기를 홍콩 영화 산업의 흥망과 교차시킨다는 점이다.

1980~90년대 홍콩은 아시아 영화산업의 심장이었다.

TVB의 스타 시스템은 안정적인 인재 공급 구조를 만들었고, 쇼브라더스와 골든하베스트는 장르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액션과 누아르, 멜로와 실험영화가 공존하던 독특한 생태계.

여기에 1997년 자유 서방세계에서 중국으로의 반환을 앞둔 아시아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의 불안과 정체성 혼란이 더해졌다.



변화하는 홍콩영화


TV 드라마 스타로 출발해 허우샤오시엔, 오우삼, 왕가위에 이르는 감독들과 작업하며 그는 단순한 흥행 배우를 넘어 시대의 얼굴이 되었다.

특히 왕가위 영화 속에서 그는 기다리는 인물, 남겨진 사람의 정서를 구현했다고 한다.

격정 대신 침묵으로, 대사 대신 호흡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

그는 홍콩 영화가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모색하던 과도기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홍콩 반환 이후 홍콩의 영화 산업은 빠르게 재편되었다. 제작 편수는 줄고 자본은 중국 본토로 이동했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블록버스터가 늘어났고, 홍콩 고유의 색채는 점차 옅어졌다.

많은 배우들이 중국 혹은 할리우드로 발길을 돌렸다. 그 변화 속을 유유히 유영하면서도 양조위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홍콩배우’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라, 하나의 정의처럼 느껴졌다.



우리 곁의 마지막 배우


양조위를 생각하면 말이나 행동의 화려함보다 꾹 다문 그의 입술, 그의 침묵이 먼저 떠오른다.

<무간도>의 흔들리는 눈빛, <색, 계>에서 감정이 스며드는 순간들.

그는 극적인 몸짓보다 미세한 표정 변화로 장면을 장악한다. 산업은 쇠퇴했고 시장은 바뀌었지만, 그의 연기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책은 그래서 배우를 영웅으로 치켜세우기보다, 한 시대를 통과해온 얼굴을 기록한다.

어린 시절의 결핍,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내향성, 작품을 선택하는 신중함. 그 모든 층위가 겹치며 지금의 양조위를 만든다.

우리가 홍콩 영화의 영광을 기억하게 하는 것은 할리우드의 거대한 서사가 아니라 결국 배우의 이런 얼굴 하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다시 양조위를 만나다


책을 덮고 나는 넷플릭스에 <중경삼림>, <화양연화>, <아비정전>을 봐야 할 영화로 저장했다.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라도 그 시간을 따라가보고 싶어졌다.

나는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지만 이 책 덕분에 그 시절의 공기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산업은 흥하고 쇠하지만, 어떤 이의 눈빛은 시간을 건너 남는다.

그리고 그 눈빛을 이제야 천천히 마주해 보려 한다.


홍콩 영화를 추억하는 이는 물론 그 영광의 시대를 함께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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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 시대의 귀환 -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과 무한 각축의 시작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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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뉴스가 되는 시대


요즘 뉴스를 보자하면 팩트가 아니라 감정이 남는 느낌이다. 관세 폭탄, 동맹 균열, 국제기구 탈퇴, 전쟁의 확산.

문명의 시대에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을 목도하고 그 일을 주고 하는 이들의 이야기에는 '화'만 남아있는 느낌이다.

설명은 길지만 그걸 바라보는 결론은 뭔가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야만시대의 귀환>은 비단 나만 느낀게 아닐 것 같은 그 느낌을 정리해주는 책이다.

미국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팍스 아메리카나는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됐는지, 트럼프주의는 단순한 일탈인지 아니면 구조적 귀결인지.

책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제1 패권국가인 미국을 파고들며 하나씩 설명해준다.


한때 미국은 단지 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달러를 기축통화로 세우고, 마셜 플랜으로 자본주의 진영을 재건하며, 군사와 금융, 소비를 하나의 순환 구조로 묶어낸 세계의 조정자였다.

저자는 설명한다. 그 거대한 구조를 유지하기에는 미국의 비용이 너무 컸다고. 그리고 패권을 영광이 아닌 비용으로 계산하는 이들이 등장했다고.



패권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세계 패권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패권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제국을 유지하는 비용, 전 세계에 군대를 배치하는 비용, 동맹을 설득하는 비용. 그 비용은 결국 미국 내부의 균열로 돌아왔다.

러스트벨트의 분노, 중산층의 붕괴, 금융 자본의 비대화,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대체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을지 모를 트럼프 시대를 맞는 이들에게 트황시대는 이벤트가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말이 설득력을 갖는 지점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는 향수이면서도 절박함이다.

문제는 그 절박함이 규범과 동맹을 벗어던지는 방식으로 나타났다는 거다.

국제 질서의 관리자에서, 자국 이익만을 계산하는 열강으로의 후퇴.


저자는 이 변화를 제국 말기의 징후로 읽는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그림자


저자는 트럼프에게서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그림자를 본다. 제국 유지 비용을 줄이려다 오히려 제국을 붕괴시킨 지도자들.

내부를 살리겠다는 선택이 외부 질서를 무너뜨리고, 그 균열이 결국 체제를 뒤흔드는 장면.


책은 말한다. 미국 패권의 몰락이 평화로운 다극 체제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오히려 힘의 논리만 남는 각축의 시대, ‘야만의 시대’가 열릴 수 있다고.

야만은 총성이 울리는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규범이 사라진 자리에서 시작된다.



멀리서 오는 균열


책은 단순히 미국 비판서가 아니라 세계 구조의 전환을 읽는 지도일짖도 모르겠다.

신자유주의의 끝, 일극 체제의 종언, 지정학의 귀환을 알려주는 지도.


사실 우리는 이미 그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금리, 환율, 에너지 가격, 전쟁 뉴스, 공급망 재편.

거대한 구조의 변화는 결국 우리의 일상으로 내려온다.

흔들리는 주식 차트로, 구조조정으로, 서두에서 이야기한 전쟁의 소식으로.


그래서 이 책은 머나먼 미국의 이야기를 하지만 이상하게도 개인적인 책으로 읽힌다.

세계 질서의 균열이 내 삶의 불안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시대를 건너가고 있는가


<야만시대의 귀환>은 낙관적이지 않다. 하지만 무책임한 비관도 아니다.

이해하면 적어도 방향을 읽을 수는 있다. 그들과 같이 감정에 휘둘리기보다 시대의 흐름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는 있다.


우리는 지금 전환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 제국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새로운 질서는 아직 윤곽을 드러내지 않았다.


행여 흔들리는 시대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있다면, 혹은 박노자라는 이름이 불편할지라도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우리가 어떤 시대를 건너가고 있는지. 꽤 괜찮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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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마음속에 나무를 심었다 - My Dog’s Diary
권남희 지음, 홍승연 그림 / 이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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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려동물이 떠난 자리


지난해, 소중한 나의 반려묘 짱고를 떠나보내고 한동안 아무 말도 쓸 수 없었다.

12년을 함께한 고양이는 집안 곳곳에 스며 있었다.

짱고가 좋아하던 의자, 자주 앉던 이불, 함께 앉아 그릉대던 소파의 자리, 그 흔적들을 한참이나 만지작거리다 울어버리는 날이 많았다.

더 잘해주지 못한 마음 짱고가 원했을지도 모를 걸 놓쳐버린 것 같다는 후회,

그리고 빈자리에 자꾸만 부딪히는 내 하루.


한동안은 반려동물을 다룬 책도 읽지 못했다.

그리고 사실 동화책인 줄 알고 집에 든 이 책.

권남희의 <어느 날 마음속에 나무를 심었다>

집어 든 김에 읽기 시작했는데 김금희 소설가의 추천사에서 그만 마음이 무어지고 말았다.


“최선을 다해 다른 존재를 사랑한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자책과 슬픔 대신

소중한 추억과 자신이 행한 돌봄에 대한 마땅한 긍지를 안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의 반려동물 친구들이 자기 삶 전체를 통해 주려고 한 선물이므로.”



2. 반려동물이 변화시킨 삶


<어느 날 마음속에 나무를 심었다>는 처음 강아지를 무서워했던 번역가가

나무라는 시추와 가족이 되며 하루하루 삶이 바뀌는 과정을 그린다.


작고 여린 생명을 안고 시작된 관계는 길고양이를 바라보는 시선,

임보를 자처하는 용기, 낯선 생명과도 눈을 마주칠 수 있게 만든다.


그 모든 변화의 중심엔 ‘나무’라는 강아지와 그와 함께한 14년의 세월이 밝은 그림처럼 책 속에 담겨 있다.

우연히 이 가정에 입양되어 천천히 노견이 되어가는 나무, 백내장과 간암을 겪는 모습까지.

작가는 그저 담담히 건조하지 않게 그려나간다.



3. 무지개다리, 그 뒤편의 풍경


반려동물을 잃어본 사람은 안다.

그 황망한 이별이 얼마나 사람을 무너지게 하는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슬픔을 어떻게 풀어낼지 몰라 답답해하는 그 마음을.


물론 작가의 며칠도 그랬겠지만, 결국 작가는 나무가 떠나간 뒤 그의 이름을 행복하게 부른다.

나무와 함께 웃었던 기억을 먼저 꺼내든다.


“나무가 떠난 뒤, 이렇게 행복하게 나무 이름을 말하게 될 줄 몰랐다.

슬픔보다 아픔보다 상실감보다 행복했던 기억을 먼저 떠올릴 줄 몰랐다.

이 모든 게 착한 나무가 주고 간 선물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반려동물의 죽음을 말하면서도 결국 ‘살았던 시간’을 더 오래 이야기한다.

함께했던 나날들을 슬픔의 증거로만 남기지 않겠다는 다짐.

이 헤어짐이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했던 날들이 너무나 빛났기에 돌아가더라도 나무를 선택하겠다는 다짐.



4. 짱고와 나, 그리고 남은 마음


짱고가 떠나고 한동안 늘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이렇게 보낼 줄 알았다면, 더 자주 안아줄걸.’

‘그날 왜 짜증을 냈을까.’

'차라리 발령 같은 거 집어치우고 대구에서 늘 함께 살껄'


풀리지 않는 감정들이 이 책을 읽으며 조금씩 해소되었다.

그리고 내가 이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했는지 다시 알게 되었다.

또 하나 내가 한 사랑이 엉망이 아니라 충분히 ‘최선’이었다는걸,

짱고도 알고 있었을 거라고 막연히 믿게 되었다.


짱고와의 시간은 여전히 그립지만 이제는 조금은 덜 아프게 그리워할 수 있을 것 같다.



5. 짱고에게


내가 너무 사랑했던 내 고양이 짱고야,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 속에 항상 다정한 고양이로 네가 있어줘서 고마워.

알고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너를 더 좋아하고 사랑했나봐.

그리고 너도 그렇게 나를 바라봐 주었다는 걸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아.


지금도 현관문을 열 때면 네가 그 앞에 있을 것만 같아서 마음이 쿵쾅거려.

그런데 이런 마음도 결국 우리가 함께였던 날들이 너무 좋고 행복해서 였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아.


난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아,

내 무릎에서 갸릉대던 그때의 온기와 너의 눈빛을.


이제는 사진속에만 있지만

나도 너를 마음에 나무로 심고 가끔 들어다 볼게.

너무 슬퍼만하지 않고 좋았던 기억들 떠올리면서 행복해 할게.

정말로 고마웠어.

사랑해. 내 고양이 짱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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