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책 -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 카피책 시리즈
정철 지음, 손영삼 비주얼 / 블랙피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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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름 행사명이나 제목 같은 걸 잘 짓는다고 스스로 생각한 적이 있다. 짓는 건 꽤 간단했다. 비슷한 예제를 책이든, 어디든(노래방 책이 이때 꽤 괜찮았다) 쭉 훑어보면 비슷한 예제들이 널려있었고 그걸 그대로 가져다 쓰던, 살짝 비틀든 하면 꽤 괜찮은 제목이 등장했다. 이때 마음 깊이 깨달았아. 하늘 아래 새 것은 없구나. 


물론 언제까지 베끼기로 연명할 수 없었으니 '나 생각보다 크리에이티브 하지 않다'는 걸 나이가 들어가며 그만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 광고학 수업 때 CF 카피를 보다 무릎을 치고 감탄한 적이 있는데 속이 시원해지는 카피에 이 사람 레퍼런스 찾아봐야겠다 싶어 카피라이터의 이름을 찾아 일부러 적어두었다. 그가 정철이었다. 그리고 한참을 잊어먹고 있다가 우연찮게 도서관에서 <내 머리 사용법>이라는 책을 발견했고 그길로 서점에 달려가 이 책 <카피책> 초판을 구입했다. 그리고 오늘 7년 만에 다시 썼다는 그 책의 그 개정판이 내 손에 들어왔다. 꽤 설렜다.


책을 구분할 때 일반적으로 주제에 따라 구분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번 읽고 마는 책, 두 세번은 더 읽을 필요가 있는 책,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고 시시때때로 꺼내보는 책으로 구분하곤 하는데 이 책은 인사이트가 막힐 때마다 꺼내 보는 책이다. 

나름 마케터다 보니 제품명을 짓거나 광고 카피 라이팅을 해야 할 일이 제법 되는데 그때마다 책 이곳 저곳을 펼쳐보면서 그가 코칭 하는 여러 방법들을 내 아이템에 대입해 보기도 하고 이미 결정된 아이템임에도 재고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정답이 짜잔 하고 튀어나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일러주는 생각을 전환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힘이 세다. 그렇게 생각을 돌리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답을 얻기도 한다. 


책은 좋은 카피를 쓰기 위한 프로 카피라이터의 32가지 조언이다. '나눠써라, 접속사를 줄여라, 공감하라, 리듬감을 가지라, 단정의 힘을 믿어라' 등 카피를 쓰는 실제적 조언들과 함께 예제가 제시되는데 사실 레퍼런스만으로도 감탄하고 감동할법한 카피들이 꽤 많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람이 먼저다'도 정철 님의 카피인데 초판에 이러한 정치 카피들이 많아 적잖이 불편했던 사람들을 위해 개정판에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장들을 가급적이면 제하려 노력한 흔적들도 보인다. 또 군데군데 연습문제를 두어 실습도 시켜주는데 읽다 말고 책을 덮고 한참을 예제를 풀라치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된다. 하긴 그게 쉬우면 모두 돈 벌지..


엄숙주의를 탈피하고 싶다는 그의 글은 유쾌하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어쩌면 나도 카피라이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던 찰나 그가 말한다.

당신이 쓰는 모든 것이 카피라고.


크리에이티브 한 모든 직종에 계시는 분들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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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 - 줍고 고치고 사고팔며 가끔 나누는 SF 작가의 신기한 중고생활
이건해 지음 / 에이치비프레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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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이 여기저기 유행처럼 쓰이는 건 알고 있었지만,(나도 가끔 써먹기는 하지만) 아끼는 날들이라니.. ‘줍고 고치고 사고팔며 가끔 나누는 SF 작가의 신기한 중고 생활’이라는 제목에 이건 소설인가, 에세이인가 싶었는데 책은 줍고 고치고 사고팔며 가끔 나누는 작가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읽으면서도 들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단언컨대 이 작가 ‘당근 마켓’을 수시로 열어보는 (그래서 주변에서 어플 좀 제발 지우라고 타박 받는)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아 이 묘한 동질감이라니.


​1. 스티브 잡스가 오픈한 사과농장을 운영한지도 나도 어연 15년차다. 나도 아이폰 4부터 시작해(3GS는 당시 별난 앱등이들이 보기 싫어 안산..) 맥북, 아이패드, 애플워치까지 처음 나온 시리즈부터 지금까지 쭉 사과 제품만 사용 중인 유저다.(물론 중간에 삼성페이가 궁금해 한번 다녀오긴 했지만) 그러던 내가 얼마 전부터 10년 전에 산 아날로그 시계를 차고 다닌다. 이유는 단순했다. 손목에 자꾸 울리는 알림이 어느 날 갑자기 짜증스러워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에 와 서랍장을 열어보았는데 의외로 해결은 쉬웠다. 돌이켜보면 세 번째 애플워치를 갈아치우며 '더 이상 일반 시계를 찰 일은 없겠구나'라고 생각한 내가 ‘언젠가는 쓰겠지’라는 나조차 믿지 않을 소리를 해대며 저걸 버리지도 팔지도 않고 그냥 둔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날 줄이야. 인터넷으로 시계줄을 사서 셀프로 갈며 나름 이런 기술이 내게 있음이 뿌듯했는데, 시계 약을 직접 가신다고.. 아 작가님 뭔지 정말 나랑 비슷하다.


2. 사과농장주로 살아가며 가장 마음이 지랄맞을 때가 ‘미친 건가’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AS 비용 청구서를 받아들 때다. 휴대폰 액정을 깨먹을 때도 있고, 패드는 배터리가 켠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닳아 없어질 때도 있다. 구입한지 2년 이내의 기기는 웬만하면 수리를 맡기는 편이지만(높은 확률로 나와 같은 앱등이들은 무조건 정품을 선호한다), 2년을 기점으로는 나도 셀프 수리를 시도하곤 한다. '알리'에서 부품을 구입한 뒤 유튜브나 블로그의 성공기를 연습해 보며 몇 개의 휴대폰 액정 및 배터리 자가수리 해봤는데 왠열 성공! 신이 나버린 나는 함부로 배터리 교체를 위해 패드를 열었다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사과별로 보내기도 했다.. (하…) 그 다음부터는 함부로 기계를 열지 않는다.


3. 당근을 통해 만나게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그랬다. 내 중고거래에 대한 썰도 풀자면 끝도 없는데, 전자레인지 하나 팔고 봉투에 곱게 넣어 받은 만 원짜리 사연을 브런치에 올렸다 브런치 스타가 된 썰, 언젠가 전자피아노 나눔을 받으러 갔다가 네 명의 아이들이 멀뚱하게 에어컨도 없는 집에 앉아있는 걸 보곤, 아이스크림 한 봉다리를 가득 사서 피아노 값이라며 도로 넣어주고 온 썰. 지난주는 이미 거래 한지 한참 지난 분이 연락이 오셔서 당시 빠뜨렸던 물건과 함께 츄르 두 개를 넣어주셨는데 하필이면 그 때가 고양이가 아파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던 때라 그렇게 한참을 위로 받던 썰. 아끼고 나누다 보면 만나는 좋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이 세상 아직 살만하다.


4. 아! 이 작가님도 도대체 작가님을 좋아하는 것 같다.


5. 선물에 대한 로망도 비슷했다. 선물에 대한 지론이 있는데 어차피 필요한 건 제 돈 주고 살 테니 ‘갖고는 싶은데 내 돈 주고 사기는 좀 애매한 물건을 주는 이가 기가 막히게 찾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나조차 생일선물은 주로 ‘카톡 선물하기’에 올라온 리스트에서 골라주고 마는 편이 되어버렸다. 생일을 당한 이가 위시리스트에 넣어놓은 목록 중 가격이 맞으면 사기도 하고, 이도 저도 아니면 만만한 브랜드의 커피 2-3잔 선물하곤 한다.(큰 금액의 상품보다 이렇게 쪼개주는 게 사용하기 쉽다.) 뭐 이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왠지 언젠가 생일을 당한 이를 떠올리며 선물을 고르고, 사고, 포장하고 가끔은 작은 메모도 남기고 그걸 생일을 맞은 이가 눈앞에서 풀어보는 걸 뿌듯해하던 낭만이 이제는 없다는 게 제법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이 변한걸.


여기까지 쓰고 나니 이 책, 리뷰가 아니라 내가 새로 쓰는 것처럼 애정이 가는 글이 되어버렸다. 딱히 지구를 위한 삶이라는 거대한 이유는 아니지만 ‘웬만하면 이제 새 옷은 사지 말자’라는 다짐을 중고거래를 하다 문득 해버린 적이 있다. 내 옷장에도 옷이 쌓여있고, 중고 장터에도 입을만한 옷이 널려있다. 내가 무슨 대단한 패셔니스타라고 나를 위한 새 옷은 이제 지구가 만들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사실 옷 뿐 아니라 모든 것이 과하다 못해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잘 들여다보면 누군가의 손때 묻은 모든 것에는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꽤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사람 냄새랄까. 가끔 잊어버리고 사는 그 냄새를 중고 물건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새삥’을 노래하며 사는 삶도 좋은 삶이지만, 누군가의 손때를 어루만지며 사는 삶도 나쁘진 않다. 아니 나는 사실 이 삶이 더 정겹고 내 삶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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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중국은 왜 성장하는가 - 부패의 역설이 완성한 중국의 도금 시대
위엔위엔 앙 지음, 양영빈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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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사회과학 논문은 일반적으로 재미가 없다. 아니 논문이 재미있다는 분들도 가끔 계시기는 하지만(여기도 그 사람 추가) 와 근데 이 책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1. 비즈니스 해본 분들은 아는 단어이지만, 중국에는 꽌시 문화라는 게 있다. 설명하기 좀 복잡하긴 하지만 줄여 말하면 인맥이 형성되지 않은 사람과는 어떠한 비즈니스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이 좋아 꽌시지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이거 부패의 전형 아닌가?

2.2013년 시진핑은 대대적으로 반부패 운동을 표방하며 중국 내 부패 척결을 시작했다. 2018년까지 35만여 명의 공직자가 처벌받았으며, 이 시기에 장쩌민 시지보다 3배, 후진타오 시기보다는 7배 많은 고위급 인사가 처벌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반부패운동 국제투명성기구의 2017년 국가별 부패인식 지수에서 중국은 77위에 그쳤다.


저자의 근원적 질문은 제목과 같다. 부패한 나라든 조직이든 성장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고 사실 상식에 부합하는 이야기인데 왜 중국은, 그렇게 부패가 많다고 하는 중국은 성장하고 있는가? 


저자는 재밌는 비유로 책을 시작하는데 '모든 부패는 나쁘지만 모든 유형의 부패가 동일하게 경제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p.24)며 부패를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1) 바늘도둑:비엘리트, 도둑질, 불법 / 유해약물

2) 소도둑:엘리트, 도둑질, 불법 / 유해약물

3) 급행료(소규모 뇌물):비엘리트, 교환, 불법/진통제

4) 인허가료(비즈니스 뇌물):엘리트, 교환, 불법과 합법/스테로이드


1~3의 경우는 여지 없는 범죄지만 사실이 4번 인허가료는 불법적인 리베이트 뿐 아니라 합법적인 교환도 포함하기에 케이스에 따라 구분이 애매한 경우도 있다. 여하튼 그는 중국의 부패를 이 네 가지로 분류하고 독이 되는 부패와 약이 되는 부패로 나누어 부패를 설명한다. 그리고 중국과 비슷한 수준의 인도와 비교하여 중국을 성장시킨 부패와 시스템이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들은 그것들을 어떻게 이겨내고(함께?) 성장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을 다니며 그들의 정치 경제적인 상황을 알게 되었는데 비슷한 사회주의, 독재국가(심지어 시장경제 도입도 비슷함, 시장경제와 동떨어진 나라는 현재 북한, 쿠바 정도가 유일)임에도 계속 내리막을 걷는 국가들과의 차이점을 생각하며 읽을 수 있어 꽤 새롭고 신선했다. 


꽤 많은 연구결과들이 있지만 이 짧은 글에서 다 요약할 수는 없고,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부패는 항상 나쁘지만, 모든 유형의 부패는 똑같이 나쁘지 않고 같은 종류의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다. 둘째, 자본주의는 부패를 박멸함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 부패를 진화시키면서 발전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의 성장기를 되짚어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러니 하게 중국은 소련의 길이 아니라 옛날 미국의 길을 걷는 중이고, 매년 급성장하며 이제는 명실상부한 G2로 올라서 있다. 이들이 더 무서운 저은 아직도 그 성장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순히 부패국가로 낙인찍어 중국을 평가절하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연한 부패에도 중국은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또 어떤 종류의 부패 때문에 중국이 오히려 성장하는 것인지 이제는 찬찬히 뜯어볼 필요가 있다. 후속 연구들이 계속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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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쓰다가 - 기후환경 기자의 기쁨과 슬픔
최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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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 전 경제적 이유로 구독을 취소한 메거진의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실 비슷한 전화를 몇 번이나 받아서 이젠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아야지 했는데 마음이 바쁘다 보니 덜컥 또 받아버렸다. 싱글일 때야 일 년에 20만 원이 큰 돈은 아닌지라 쉽게 그러마 할 수 있었지만 결혼을 하고(결혼을 한다는 건 모든 지출이 x2가 된다는 걸 의미한다), 모든 세금이 오르고, 고양이마저 아픈 요즘은 정말 가계가 빠듯하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나 어쨌든 그 잡지를 구독할 용기는 없었고 정말 미안한 마음에 ’죄송합니다. 고양이가 아파서요.‘라고 말했다. 상대방은 고맙게도 알았다 하고 전화를 끊어주셨다.


2. “월말을 걱정하는 이들은 종말을 걱정할 수 없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의 말이다. 정곡을 찔린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그랬다. 기후 위기 행동은 모두에게 요구 되는 것이지만,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실천하고 포기하기를 강요받는 이들은 높은 비율로 다가올 월말을 걱정하는 이들이다. 나도,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 대부분은 언제 올지 모르는 지구의 종말을 위해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제품보다 두세배나 비싼 환경보호 제품을 사용할 용기가 없다.(동물복지 계란은 왜 그렇게 비싼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은 늘 잔인하다.


3. 2022년 구글 검색어 순위 전체 1위라 ‘기후 위기’였다고 한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무슨 일이 있었지? 비가 좀 많이 왔던 것 같은데.. 그거 말고는 딱히 기후 위기라 할만한 증상이 떠오르지 않음에도 한국도 ‘기후 위기’를 궁금해했다. 기업의 CSR은 이제 거의 모두가 ESG로 대체 되고 있는데 ESG의 첫 글자는 Enviroment 즉, 환경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제 환경이 먼저다.


4. 책은 한겨레 기후 위기팀에서 근무하는 기자의 기후 위기 이야기다. 칼럼을 엮은 듯한 책은 적절하게 쉽게 읽힌다. 얼마 전 완전히 반대되는 기조의 책을 읽다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참고 난 뒤였나 이 글이 더 반갑고 좋았다. 저자는 어쩌다 '환경은 천덕꾸리가 되었나?'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부터, 기후 위기에 대한 크고 작은 오해, 그렇게 친절하게 우리 주위의 기후 위기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간다. 그 이야기가 꼭 내 질문에 대한 대답 같아서 어떤 글에는 공감이 되고 또 어떤 글에는 위로가 되었다. 나는 크레타 툰베리가 아니다.(걔는 이제 돈이나 많지) 언제까지 일회용품을 쓰는 동료에게 잔소리하다 관계를 해칠 마음도 없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좋았다.


5. 지금도 창밖으로는 미세먼지가 뿌옇게 내려 앉아있다. 회색빛의 콘크리트 바닥은 어쩌면 미세먼지와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쪽 길 너머 어린이집의 놀이터도 모래가 아닌 고무 재질의 바닥으로 뒤덮여있다. 누군가 땅이 숨 쉴 수 있는 공간도 남겨두어야 한다던데 여의도에는 이미 땅이 숨 쉴 공간은 없어 보인다. 건물마다 조경처럼 잔디나 나무를 심어놓긴 했는데 그 앞은 하나 같이 담배 피는 이들이 점령해있으니 나무도 싫을 것 같다.


6. 난 내 아이들에게 콘크리트가 아닌 흙을 딛고 두 발로 서는 경험을 주고 싶다. 우리가 숨 쉬듯 땅도 우리와 같이 숨 쉬는 걸 온전히 받아들이는 경험을 주고 싶다. 


7. 채식에 관한 글의 일부였는데 아마 이게 지금의 기후 위기를 맞이하는 내 마음과도 거의 같다.


그래도 지금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 있 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도시에서 직장인으로서 회식 문화 속에 살다 보면 성격을 크게 바꾸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p.59)


괜히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 뭐라도. 뭐라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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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희곡집 1 - 다섯 가지 이야기
박지수 지음 / 연극과인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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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 사회복지사 시절, 아동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연극교실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연극에 관심이 있는, 즉 연극을 하고 싶은 친구들을 모으고 선생님을 섭외해 일 년 동안 연극을 배우고 연말에 무대에 올리는 뭐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연극을 한 번도 안 해본 친구들이고 또 초등학생이니 내게 연극교실은 그저 방과 후 활동 중의 하나였다.


당시 세계 육상선수권대회가 대구에서 열렸고, 연극 선생님과 아이들은 관광객도 많으니 그 사람들이 모이는 거리에서 연극을 하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굳이?’ 싶었지만 하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으니 그러마 했었다. 공연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연극에 임하는 아이들의 눈이 내가 처음 보던 눈빛이었고 꽤 반짝거렸다. 극의 내용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꿈에 관한 것이었던 것 같고, 아이들 중 몇몇은 극을 마치고 현장의 스타가 되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졸업할 때까지 공부하러는 안 와도 연극하러는 왔다. 

어느 날 복지관 교실에서 그 녀석 중 하나가 종이를 너무 열심히 보는데. 얘가 언제부터 책을 읽었더라? 싶어 옆에 가 가만히 보니 연극 대본이다. 아니 얘가 뭘 이렇게까지 열심히 한다고? 


그 이후 한동안 연극 같은 거 잊고 살았다. 꼭 12년 만이다. 희곡집, 연극 대본이 내게로 왔고 난생 처음 희곡집이라는 걸을 차근차근 읽어 보았다. 이제껏 내가 읽은 책은 분위기나 흐름이 책이 지시문으로 그 느낌이나 환경 같은 것이 쓰여있다. 그런데 오직 대사와 지문으로 이루어진 대본은 이 무대 위의 분위기나 흐름을 내가 찾아가야 한다. 정확히는 무대를 상상하며 읽어야 한다.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배우, 배우들의 옷차림과 대사의 높낮이 크고 작음, 조명이 온 오프 되고 이 무대에서 어떠한 배경음악이 깔릴지 상상하며 읽는 글. 이것도 꽤 색다른 경험이었다. 


여기다 가족과 사랑, 꿈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가족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어떻건, 지금의 사랑이건 지나간 사랑이건, 그 꿈을 이루었던지 아직도 꾸고 있던지 간에 우리는 인생의 꽤 많은 순간을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며 살아간다.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그가 들려주는 가족과 사랑, 꿈 이야기는 꽤 깊고 진득한데 사실 몇 이야기는 좀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로 여운이 깊고 진했다. 이런 경우 높은 확률로 본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은데 나중에 만나게 되면 묻고 싶기도 했다 :)


책은 대구의 극단 <에테르의 꿈>의 대표인 박지수 님의 대표작 5편을 묶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짚어가며 가족 이야기를 담아내는 <무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늘 궁금하게 하는 사랑 이야기 <마음속 사거리 좌회전>, 중남미 아이들의 꿈에 대해 그린 <12만 KM>, 아직도 꿈을 찾는 어른들 이야기 <어른 동화>,  그리고 못다 이룬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느 공원 이야기>까지.(사실 <어느 공원 이야기는> 좀 어려웠다..)


소설이랑 비슷한데 또 다른 느낌. 몇 년에 걸쳐서 쓰인 극이라던데 이 글을 써낸 작가의 역량에 새삼 감탄하기도 했다. 꽤 오랜만에 다른 형식의 글을 만나 새롭기도 했고, 또 사실 이런 글은 관계자가 아니면 읽기 힘든 글 같은데, 생각보다 즐겁게 읽혀서 다음에도 희곡집은 찾아 읽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아. 십 년 전에 그 연극 대본을 보던 아이에게 물었었다.


-재밌어?

-네.


세상에 재밌는 거라곤 하나도 없던 아이들이 재밌다고 했다. 그리고 그 녀석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쯤 성인이 되었을텐데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살고 있는지 새삼 궁금해졌다. 그 꿈 이루고 살고 있는지. 아니면 곱게 간직하고 오늘을 버티고 있는지. 아무렴 어떠랴. 우리게 꿈이 있었고 그 꿈으로 행복했으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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