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해방일지 - 내 마음을 알고 싶은 날의
이명수 지음 / 에이엠스토리(amStory)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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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분노조절장애, 조현병..


언젠가 들어는 봤지만 요즘처럼 이런 단어들이 흔하게 들리는 날들도 없는 것 같다. 세상은 계속 좋아진다는데 왜 우리 마음은 자꾸만 병들어 가는 걸까? 언젠가 나도 상담을 받아야겠다 결정하고 좋은 병원을 찾는 도중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진짜 상담받아야 할 사람들은 병원에 오지 않고, 그 사람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만 병원에 온다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책도 그렇다. 사실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사람은 상처받고 힘들어 하며 회복을 원하는 누군가보 공격하고 상처 주면서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1도 생각하지 않는. 

어쩌면 우리 모두이다. 


책은 상담과 의사의 상담 일지다. 저자는 매 챕터 분명히 현실에 있었던 것이 분명한 여러 상황과 질문에 나름의 대답을 이끌어 내며 책을 이어 나간다. 읽다 보면 내가 예전에 품었다 혼자 어느 정도 해결했던 질문도, 지금 하고 있는 나의 고민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언젠가 해결하지 못한 채 덮어두었던 그 옛날의 상처들이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책이 나의 문제 그대로를 풀어주지는 못하겠지만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답을 만날 수도 있다. 그리고 아직 풀지 못한 그 상처를 풀어낼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반대로 나도 알지 못했던 내 모습에 상처 받았을지도 모를 주변인들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나 또한 저자의 솔루션에 스스로를 점검해 보았다. 행여 나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이 있다면 지금부터 하나씩 찾아가 사과할 계획이다. 


워낙에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밑줄 치며 메모한 것 몇 가지.


1. 질문의 형태를 띤 나무람이 태움의 본질이다.(그게 왜 필요하죠? 따위의 질문) 혼을 내는 건 정확한 일을 가지고 정확한 언어로 해야 한다.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는 질문은 질문이 아닐뿐더러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다. 질문은 궁금할 때만 하자.


2. 나는 괴롭힘으로 발생하는 거의 모든 문제의 해결은 피해자(혹은 가해자까지도)의 자존감을 회복하는데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나는 할 수 없다는 무기력의 상태에 빠진 이를 동기부여해 다시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여전히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는 일. 사실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스스로를 좋아하는 것, 친절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 자신의 착함을 좋아하는 것.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고, 세상은 이들 때문에 행복해진다. 

가해자의 가학적 행동 또한 낮은 자존감에서 오는 콤플렉스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보통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를 타인에게서 찾는데,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예전에 나는 이런 이들을 만나면  깨부수기 바빴는데 요즘은 회피하는 편이다.


3. 세상에는 보통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나에게 양보를 부탁하는 사람과 양보를 강요하는 사람. 저자도 단언하듯이 후자, 즉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과감히 내 인생에서 쳐내는 것이 결국 모두에게 좋다. 이런 걸로 미안해 할 필요도 없다. 내 인생을 가장 위해야 할 사람은 나고 다른 이를 위해 내 인생을 갉아먹을 이유는 아무래도 없다.


4. 모든 일에 예측 불가능성을 낮출 필요가 있다. 두려움은 예측 불가능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내 MBTI 성향에 관계없이 내가 내일 있을 일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고 대비할 때 두려움은 현저히 줄어든다. 여유는 거기서 출발한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한다. 그만큼 잦고 또 많은 이들이 힘들어 하는 병. 감기는 그냥 던져둘 때 낫기도 하지만 덧나거나 다른 병으로 발전하면 걷잡을 수 없는 큰 병이 되기도 한다. 우울도 마찬가지다. 우울증은 반드시 치료해야 할 ‘병’이고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의 마음에 우울이 있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을 위해 가까운 정신의학과를 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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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크 -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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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폭력의 가해자 일까, 시스템의 도구일까?


마지막 장의 질문에 가슴이 훅 막혔다. <더티 워크>라 해서 청소 일이라든지 뭐 이런 3D업종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사회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책은 내 생각보다 더 깊이, 더 날카롭게 파고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그늘로 파고 들어간다.


저자는 미국 내에서도 조명 받지 못하는 세 집단의 더티 워커들을 조명한다. 교도소의 교도관들, 미군 특수부대인 드론 조종사들 그리고 도살장의 인부들. 책은 흡사 다큐멘터리처럼 진행되는데 그는 세 집단의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또 그들을 둘러싼 시스템을 살펴본 후 그들이 자신의 직을 수행하기에 따라오는 그들의 어려움에 대해 고발한다.


교도관들은 늘 재소자들의 폭력에 둘러싸인 집단이다. 이 정도야 그들도 각오하고 있는 바이긴 한데, 교도소라는 환경이 혐오시설로 낙인 찍히며 감내하게 된 지역사회의 소외 또한 이들에게는 만만찮은 문제였다. 코로나로 모두가 문을 걸어 잠그던 시절, 그들은 함께 교도소에 갇혀야 했다. 어떤 단체들은 이러한 감금 상황에 대해 재소자들의 인권에는 소리를 높였지만, 누구도 교도관들이 받는 비인간적인 처우에 대해 언급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교도소 내 인권침해를 자행하는 빌런일 뿐이었다.


전투 드론 조종사. 겉보기에 그들은 정밀하게 드론을 조종하는 임무를 수행지만, 최첨단 무기화 된 이들은 우리가 모르는 비밀 임무를 수행한다. 냉전시대는 끝났지만 911, 아프간을 거치며 미국이 주도한 전쟁의 역사는 더 세밀해지고 치열해졌다. 드론을 이용한 임무는 당연하기까지 한 수순에 이르렀는데 이들은 매일 드론이 비추는 카메라 너머로 사람을 죽이고,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맨 눈으로 마주한다. 총으로 눈 앞에 서 사람을 죽이는 건 매우 비윤리적이지만 드론이 목표를 타격하는 건 왜인지 꼭 허가된 일인 것만 같다. 아니 사실 우리는 이에 대해 단 한번도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미 공장화 되어 괜찮다고 생각하는 도살장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영화 <옥자>를 보았다면 동물들이 기계 속에서 어떻게 도축되는지 보았을 것이다. 이들의 업무는 살아있는 동물들이 기계 속으로 들어가기에 그것들이 가지런히 놓였는지 혹 도망치거나 삐뚤어진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제자리에 놓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소수의 인원이 좁은 공간에 웅크려 이 기계 저 기계를 왔다 갔다 하며 일한다. 불과 몇 초 전까지 숨이 붙어있던 돼지니 닭들이 분리되는 것을 마주하는 이들의 정서는 이들이 알아서 감내해야 할 문제다. 중요한 건 오늘 저녁 출하되어 마트로, 식당으로 팔려갈 고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비단 이런 직접적인 더티 워커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시추선 사고 후 생존한 노동자들에게는 그들의 안위보다 환경오염에 대해 입 다물 것을 요구하는 각서가 요구되었고, 실리콘 밸리의 개발자들에게는 민감한 정보 검열에 대한 함구령이 내려졌다. 그들이 가진 기술은 조직에 의해 비윤리적인 일에 사용되었고 한낱 도구로 소구되는 이들이 입은 내상에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말이다. 


아이히만은 유대인 500만 명을 학살한 나치의 장교였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잡혀 재판에 회부된 그는 자신은 그저 상부의 지시에 따른 평범한 공무원이었음을 주장했다. 상명하복의 군조직에서 감히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 것. 나아가 자기가 한 일이 얼마나 큰 일인지조차 몰랐다는 아이히만을 가리켜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고 불렀다. 악은 언제나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늘 나의 일상이, 크게 보면 악을 구성하는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는 거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가? 재소자들을 교도관에게만 맡긴 채 혐오시설로 규정하고,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하는 적을 드론 조종사의 손을 빌어 죽이고, 오늘 저녁 우리 식탁에 오를 고기를 위해 누군가에게 그 일을 대신 시키는 것. 시스템 속에 당연시 되는, 차마 내가 저질렀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이 평범한 폭력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 최근 아이히만이 그의 주장처럼 단순 공무원이 아니라 학살의 주체자였음을 밝히는 문건들이 하나둘씩 밝혀지고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렌트의 이야기가 의미 없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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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T 사피엔스 - 인공지능을 가장 잘 활용하는 신인류의 탄생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14
홍기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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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며칠 전 네이버 웹툰에 작은(?) 논쟁이 하나 있었다. 한 작가가 그린 웹툰이 'AI가 그린 웹툰인 것 같다. 그렇다 카더라'로 돌던 썰은 디즈니가 참전하며 실제로 확인되었고, 거기다 디즈니의 저작권 소송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하필이면 그린 병사들 중 하나가 그루트였던 것이었다(무인도에서 구조 받고 싶다면 바닥에 미키마우스를 그려라. 그리하면 디즈니 법무팀에서 데리러 올 것이다 라는 오래된 농담은 허언이 아니다). 어쩌면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사건이지만 이 에피소드는 꽤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AI가 작가(그것도 웹툰)을 대처할 수 있는가? 그렇다. 그 수준이 일반인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정교해졌는가? 아직 그거까지는 아닌 것 같다. 


2. 지난해 추석 즈음이었던 것 같다. 챗 GPT 관련 영상이 유튜브 알고리즘을 지배하더니 너도나도 챗 GPT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사안이 워낙에 핫하다 보니 관련 서적도 꽤 여러 권 등장했는데 워낙에 속도전 이었던 탓에 '이게 뭐야??'를 남기고 몇 페이지 펼치지도 않은 책을 집어 던진 적이 나도 몇 번이나 된다. 타임라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너도나도 AI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곤 이내 시들해졌다.(사실 이는 한글로 질문한 탓이 더 크기도 하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내린 결론은 챗 GPT는 아직 인간의 지능을 따라올 수 없다. 그럼으로 너도나도 기계에 뒤지지 않는 전문가가 되자는 이상한 결론.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미덕은 여기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3. 이제는 출판사 혹은 시리즈만으로 브랜드가 되어버린 브랜드 라인이 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이 그렇고 한겨레에서 출판한 거의 대부분의 책이 실패 확률이 낮다. 그리고 여기 21세기 북스의 <서가명강>, <인생명강> 시리즈도 그렇다. 우연찮게 리뷰를 부탁받거나 이 책 좋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어 읽은 책들의 타율이 꽤 높다. 


4. 책은 GPT의 기능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등장하기까지의 사회 문화적 관점, 그리고 이를 어떻게 우리 사회에 접목해 갈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터넷이라는 게 없던 시절, 문헌정보학은 꽤 중요한 학문이었다. 당시 정보라는 건 글을 쓸 수 있고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사람 혹은 기관만이 정보를 독점할 수 있었고 이것이 권력이던 시절이었다. 인쇄업의 발전으로 인해 이가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지만 지금의 인터넷과 비교할 순 없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이제 누구나 인터넷에서 글을 쓰고, 퍼트릴 수 있고, 찾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검색 기능은 점차 발전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블로그나 메신저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정보를 기록하고 공유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웹 2.0, 집단 지성의 시대다. 사람들은 단순한 구글링에 그치지 않았다. AI 즉 인공지능의 등장은 굳이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내가 원하는 걸 알아서 주는 시대가 되었다. 검색창에 '운동화'를 검색한 날은 내 모든 광고 창에 '운동화'가 표시되는 경험 정도는 한 번 정도 해봤을 것이다. 그거다. 웹 3.0. 이 시기에  챗 GPT가 우리에게 왔다.


5. 아마 인공지능은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을 바꿀 것이다. 인공지능은 기존의 획일화 된 교육을 철저하게 개인에 맞출 것이며 군사 분야에서 또한 효율성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또 여느 변화가 그렇듯 AI는 몇 개의 직업을 없애겠지만 또 그만큼의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낼 것이다. 저자가 집중하는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6. 나아가 저자는 챗 GPT에 대한 세간의 환상은 신기루라고 단언한다. 그는 현재의 챗 GPT는 고도화 된 검색엔진 이상의 무엇을 가져다 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 물론 3.0에서 4,0으로 진화하는 챗GPT는 지금보다 더 고도화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이 인류의 모든 것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거기다 고도화 된 AI는 저작권, 사생활 보호, 윤리 적 가치판단의 문제 등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할 것이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그루트의 변형을 AI는 아직까지 걸러내지 못한다. 첨예하게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윤리적 딜레마 또한 그러하다.


7.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책임 있게 사용하라. 그가 인공지능에 대해 내리는 결론이다. 그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발전한 것인가라는 궁극적 질문에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난 이 대답이 정말이지 마음에 들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각을 경계하는 것. 어쨌거나 새로운 세상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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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망 - 미니멀리즘 탐구
카일 차이카 지음, 박성혜 옮김 / 필로우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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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책이다. 최근 미니멀리즘에 대한 말랑말랑한 책들이 넘쳐나지만 이 책은 별 삽화 없이 글씨로만 주석 빼고 317페이지, 주석만 40여 페이지에 달한다. 책의 첫 문장에서 선언 하듯이 저자는 여느 책에서 언급하는 한 달 동안 쓰지 않는 물건은 버려라, 버릴 것을 정하고 새 물건을 사라, 할인을 조심하라 따위의 미니멀리즘 설명서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미니멀리즘의 근원을 파악하는데서 출발해서 미니멀리즘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의도,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는 다양한 사람과 문화에서 나타나는 삶의 태도를 톱아보고 나아가 우리가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물질적 한계를 딛고 이 땅에서 살아갈 새로운 방법에 대한 보고서다. 인류는 산업사회를 기점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유하고 소비하려고만 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지구는 그 맥시멀리즘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괌에 들이닥친 태풍이 괌의 모든 것을 쓸어가 버렸다고 말하고 있고, 어젯밤부터 내린 비는 더 세차게 내리고 있다. 기후 위기와 맥시멀리즘 또한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줄임, 비움, 침묵, 그늘 네 개의 챕터로 나누어진 책은 그 목차 마저 미니멀하다.


1. 줄임 : 줄이고자 하는 이들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옷장이나 방을 잘 정리하느냐가 아니다. 줄여야 하는 이유, 가지지 않은 삶을 선택한 이들의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어떻게 현대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가?’ 실존적 질문 앞에서, 그들은 삶의 원칙을 찾으려 한다. 그것의 시작점이 줄임이다.


2. 비움 : 두 번째 챕터에서 저자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꽤 상세하게 설명한다. 언제나 가득했던 미술과 건축, 음악들이 어떻게 가벼워지고 덜어냄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현대화 된 예술에 미니멀리즘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저자는 들려주는데 안타까운 건 상품화를 거부하며 급진적으로 이룩한 미니멀리즘이 오늘날에는 되려 상품화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3. 침묵 :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물건의 부재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이를 추구하는 이들은 세상의 소리를 거부하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이들이다. 침묵은 창조적이고 영적인 사고의 근원이 되는데, 이러한 침묵을 경험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들의 깊이에 대해서도 저자의 연구는 계속된다. (한국의 강원도 홍천에 이런 자발적 침묵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책에 안내되어 있는데 사실 한국에는 이런 곳이 꽤 많다;)


4. 그늘 : 마지막 챕터에서 저자는 일본으로 향한다. 아마도 그는 서양문명을 빛으로 그 반대의 그늘을 동양의 오리엔탈리즘으로 생각한 것 같다. 그는 일본의 무인양품이나 유니클로, 캡슐호텔 등에서 발견한 미니멀리즘의 뿌리를 동양 불교에서 찾아 교토까지 흘러들어가는데, 사실 동양의 불교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물론 저자가 단순하다는 건 아니다). 철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동양철학 특히 불교철학이 비움을 강조하는 건 맞지만 여느 철학이 그렇듯 이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조금 논쟁의 여지가 있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미니멀리즘에 관한 이야기는 유효하고 의미 있다. 저자는 강조한다. "(미니멀리즘은) 올바른 것을 소비하자는 이야기도, 잘못된 것을 내다 버리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물에 몰입하기 위한 시도로서 가장 깊숙한 믿음에 도전하자는 이야기다."

그는 자기 계발식의 한없이 가벼운 미니멀리즘에 대해서도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우리의 침실은 깨끗해졌을지 몰라도 세상은 여전히 형편없다“고.


미니멀리즘에 대해 보다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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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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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딘가 우울한 사람들은 이렇게 글을 잘 쓸까? 라는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와.. 탄성을 내뱉게 할 정도로 글이 뛰어난 이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적당한 어둠을 지니고 있고 그 어둠 가운데서 실타래 뽑듯 글을 뽑아낸다. 첫번째 든 생각은 우울함이 곧 생각의 깊이로 이어진다는 결론이다. 우울한 사람들일수록 생각이 많다. 돌이켜 보면 나도 그랬다. 끊임없이 혼자만의 세계로 침잠해 가는 감정들이 하나씩 문장이 되었다. 물론 다음날 아침 그 글들은 대부분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지만 가끔 ‘와 이걸 내가 썼다고’ 싶어 두고두고 묵히다 다시 올라오는 글들도 있었다. 두번째는 (MBTI) NF계열의 작가들이 좀 그런 경향인데 우울할 때 감정이 극으로 올라오고 그 감정이 동력이 되어 글을 쓰게 한다. 주로 ‘그때 그럤다면 어땠을까’라는 느낌의 이야기가 많은데 글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 또한 ‘어땠을까’의 벽에 마주하게 된다. ‘만약에’는 이미 지나버린 부질 없는 소리일지 모르나 꽤 생각이 많아지고 깊어지게 하는 마법의 질문이다. 만약에 그때 내가 한번 더 붙잡았더라면, 만약에 그때 내가 먼저 헤어지자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내가 그 때 그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퍽, 정신차리고)  마지막은 우리가 이런 유의 글을 찾아 읽을 때의 정서가 주로 우울할 때일 경우가 많아서 일거다. 이별에 관한 노래를 듣거나 책을 읽을 때는 보통 이별을 경험했거나 경험하기 직전일 경우가 많다. 나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이들에게 감당하지 못할 지금의 내 감정을 맡겨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때 이런 글은 감정치유에도 꽤 도움이 되기도 한다. 


책은 표지부터 제목, 문장 하나까지 이러한 감정으로 가득차 있다. 사실 이제 ‘사랑’에 관한 이야기에 더 이상 별 감정이 없어진 나이에 어울리는 책은 아니다. 더 이상 설렐 일도, 또 지나간 인연에 어떤 후회를 남기는 것도 좀 이상한 나이일진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런 유의 글들이 좋다. 가끔 지나간 인연들을 떠올려본다. 어떤 지나간 연인들은 이제는 좋은 친구로 내 옆에 있기도 하고, 영 연락 닿을 길 없는 그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가끔 궁금해지기도 한다. 하긴 이것도 지금 작가가 보내고 있는 시간을 훨씬 넘어선 어느 순간에 느껴지는 감정일 것이다.


마치 10년 전의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읽는 내도록 마음이 먹먹했다.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러지 못했던 내 모습이 한심해지기도 하고, 또 그렇게 흘려보낼 수 밖에 없었던 나의 청춘이 아련해지기도 했다.

 

지금 누군가를 열열히 사랑하는 중이라면, 이별이 오지 않을거라 생각할지라도 한번쯤은 추천.

(모든 감정에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믿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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