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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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딘가 우울한 사람들은 이렇게 글을 잘 쓸까? 라는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와.. 탄성을 내뱉게 할 정도로 글이 뛰어난 이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적당한 어둠을 지니고 있고 그 어둠 가운데서 실타래 뽑듯 글을 뽑아낸다. 첫번째 든 생각은 우울함이 곧 생각의 깊이로 이어진다는 결론이다. 우울한 사람들일수록 생각이 많다. 돌이켜 보면 나도 그랬다. 끊임없이 혼자만의 세계로 침잠해 가는 감정들이 하나씩 문장이 되었다. 물론 다음날 아침 그 글들은 대부분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지만 가끔 ‘와 이걸 내가 썼다고’ 싶어 두고두고 묵히다 다시 올라오는 글들도 있었다. 두번째는 (MBTI) NF계열의 작가들이 좀 그런 경향인데 우울할 때 감정이 극으로 올라오고 그 감정이 동력이 되어 글을 쓰게 한다. 주로 ‘그때 그럤다면 어땠을까’라는 느낌의 이야기가 많은데 글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 또한 ‘어땠을까’의 벽에 마주하게 된다. ‘만약에’는 이미 지나버린 부질 없는 소리일지 모르나 꽤 생각이 많아지고 깊어지게 하는 마법의 질문이다. 만약에 그때 내가 한번 더 붙잡았더라면, 만약에 그때 내가 먼저 헤어지자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내가 그 때 그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퍽, 정신차리고)  마지막은 우리가 이런 유의 글을 찾아 읽을 때의 정서가 주로 우울할 때일 경우가 많아서 일거다. 이별에 관한 노래를 듣거나 책을 읽을 때는 보통 이별을 경험했거나 경험하기 직전일 경우가 많다. 나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이들에게 감당하지 못할 지금의 내 감정을 맡겨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때 이런 글은 감정치유에도 꽤 도움이 되기도 한다. 


책은 표지부터 제목, 문장 하나까지 이러한 감정으로 가득차 있다. 사실 이제 ‘사랑’에 관한 이야기에 더 이상 별 감정이 없어진 나이에 어울리는 책은 아니다. 더 이상 설렐 일도, 또 지나간 인연에 어떤 후회를 남기는 것도 좀 이상한 나이일진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런 유의 글들이 좋다. 가끔 지나간 인연들을 떠올려본다. 어떤 지나간 연인들은 이제는 좋은 친구로 내 옆에 있기도 하고, 영 연락 닿을 길 없는 그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가끔 궁금해지기도 한다. 하긴 이것도 지금 작가가 보내고 있는 시간을 훨씬 넘어선 어느 순간에 느껴지는 감정일 것이다.


마치 10년 전의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읽는 내도록 마음이 먹먹했다.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러지 못했던 내 모습이 한심해지기도 하고, 또 그렇게 흘려보낼 수 밖에 없었던 나의 청춘이 아련해지기도 했다.

 

지금 누군가를 열열히 사랑하는 중이라면, 이별이 오지 않을거라 생각할지라도 한번쯤은 추천.

(모든 감정에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믿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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