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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
홍대선 지음 / 푸른숲 / 2018년 7월
평점 :

#결정장애 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질병이다.
중고딩 시절 불고기버거와 치킨버거 사이에서 도진 이 병은
성인이 되어 라떼와 아메리카노를 사이에 두고서도 유효하다.
진단 가능한 병이라면 약이라도 있겠거니와 이런 유는 처방도 약도 없다.
더 심각한 건 이 결정장애는 단순히 메뉴선택 수준을 넘어 개인이 무얼 잘하고 원하는지조차 모르게 한다.
누구를 만나 사랑해야 하고 어떤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느냐 같은 우리 삶을 직접적으로 지배할 결정 앞에서조차 우리는 여전히 머뭇거리고 고민하고 때론 절망한다.
이 병을 고치기 위해 상담을 받고 책을 읽는 이들도 있다.
자본주의란 그런 것인지라, 감히 이 병을 고쳐주겠노라 약을 파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안타까운 건 그들이 파는 그 처방이 옳은 처방이면 다행이겠거니와 대부분의 경우, 검색 한 번이면 튀어나오는 뻔한 긍정 이론 몇 개와 함께 '할 수 있다’고 세 번 외치고 마는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그렇게 서문 몇 장을 읽고 그 자리에서 찢어발기고 팠던 자기개발서가 대체 몇 권이었던가.
가볍지 않은 고민을 위해, 가볍디가벼운 현대의 처방전들을 대하며 결국 돌아가게 되는 것은 고전이다.
만약 당신이 이 결정장애를 치유받을 목적으로 이 책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를 집어 들었다면 우리는 이 책에 세 번 배신을 당하게 된다.
첫째, 이 책은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지에 대해 사실 1도 알려주지 않는다.
단편적인 대답을 기대하고 책을 폈다면 우리는 고교시절 죽어라 암기했던 철학자들의 이름과 밑도 끝도 없는 그들의 인생사와 그가 왜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고 살았는지 마주하게 될 뿐이다.
(아, 사실 고등학교 윤리 선생님 보다 홍대선의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다. 선생님들이 이렇게만 가르쳐 줬더라도 '윤리=암기과목'이라는 공식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둘째,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영웅적 언어와 선언을 세상에 외친 철학자들의 실제 삶은 우리 상상 이하의 쪼다들이었다는 것이다.
부잣집에 태어났음에도 약해 빠진 체력에, 약한 여자와 하인들을 무시하고 그러면서도 입만 살아 말에서는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설령 졌다 할지라도 호시탐탐 복수할 기회만 엿보는.
전형적인 찐따의 조건을 모두 갖춘 이들의 입에서 근대의 사상적 혁명이 시작되었다는 건 아무래도 무언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그러려니 하고 살았던 시대에 (소심하게라도) 저항한 진따들의 고민이 오늘날 어쩌면 우리 같은 사람들의 결정장애의 해답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데카르트 는 끊임없이 의심했으며 그 의심의 끝에 더 의심할 수 없는 의심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의 대명제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여기서 탄생한다. 하지만 그는 체력적으로 너무 병약했고 자신이 사랑했던 이를 인형에 투시하여 그 인형과 살았던 편집증 환자였다.
#스피노자 는 유작 <에티카>를 통해 종교가 횡횡하던 시대에 감히 선과 악의 구분을 없애 버린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단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나고 그게 전부다.
물려받은 부를 스스로 거부한 그는 렌즈를 가공하는 노동을 하며 사는데 결국 그 노동이 그의 명을 재촉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노동,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철학으로 감히 신을 거부한 그의 시신의 행방은 아직도 그의 관에 눕지 못하고 있다.
정언명령으로 통칭되는 선의지, 마음속에 우러나는 도덕(양심)만이 정의라고 주창한 #칸트 는 전형적인 모범생 꼰대 스타일이다. 사람들은 그의 산책 시간으로 시계를 맞췄다고 하니 생각해보라. 그 주위의 사람들이 얼마나 피곤했을지.
정반합을 통해 역사는 진보한다고 선언한 #헤겔 은, 그의 선언이 무색할 만큼 독재자들에 의해 가장 많이 인용된 철학자가 되었다.
고독의 철학자, 표상의 세계를 설파한 #쇼펜하우어 는 세계를 단지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라 선언해 버린다. 그렇기에 누구나 불안하게 느껴지는 삶의 문제들에 대해 ‘괜찮다'고 말한다. 패배자들과 고독자들의 위로가 된 그의 따뜻한(?) 선언과 별개로, 밝은 세상을 거부하고 현실과 친구할 수 없었던 그는 평생 여자를 경멸하고, 여성인 어머니와 평생을 대립하고 사는 듯하였으나, 삶의 끝자락에 얻게 된 인기 덕에 인생의 말년을 푸들과 산책하며 살았다.
초인이란 이름으로 주관을 넘어 의지로 스스로 서는 인간을 주창하며 감히 신에게 사망신고를 내려버린 #니체 는 평생 여성 혐오를뱉어내다가 매독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물론 최근에 다른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책은 이 여섯 철학자의 삶을 부정하거나 변호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여섯의 삶과 인생의 문제들을 다루고 그 문제들을 통해 도출된 그들의 대답을 하나하나 설명해 나간다.
그들의 삶은 지금 나의 삶과 비교했을 때 결단코 유복하거나 훌륭하지 않았다.
나와 똑같이 찌질하며, 똑같이 질투하고 분노하며, 똑같이 모자랐다.
다만 그들은 끊임없이 저항했으며 또 철저하게 주체적 개인으로 남고자 싸웠다.
아마 이 싸움에서 당신은 세상을 살아갈 어떤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그 힌트는 해답은 아닐지언정 삶을 비추는 한 줄기 길잡이는 되어 줄 것이다.
책을 나가며 저자는 우리게 다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이 세상에 살아있어도 되는 존재인가'
이 질문에 나도 한 번 정직하게 마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