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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희곡집 1 - 다섯 가지 이야기
박지수 지음 / 연극과인간 / 2023년 3월
평점 :
품절
복지관 사회복지사 시절, 아동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연극교실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연극에 관심이 있는, 즉 연극을 하고 싶은 친구들을 모으고 선생님을 섭외해 일 년 동안 연극을 배우고 연말에 무대에 올리는 뭐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연극을 한 번도 안 해본 친구들이고 또 초등학생이니 내게 연극교실은 그저 방과 후 활동 중의 하나였다.
당시 세계 육상선수권대회가 대구에서 열렸고, 연극 선생님과 아이들은 관광객도 많으니 그 사람들이 모이는 거리에서 연극을 하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굳이?’ 싶었지만 하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으니 그러마 했었다. 공연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연극에 임하는 아이들의 눈이 내가 처음 보던 눈빛이었고 꽤 반짝거렸다. 극의 내용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꿈에 관한 것이었던 것 같고, 아이들 중 몇몇은 극을 마치고 현장의 스타가 되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졸업할 때까지 공부하러는 안 와도 연극하러는 왔다.
어느 날 복지관 교실에서 그 녀석 중 하나가 종이를 너무 열심히 보는데. 얘가 언제부터 책을 읽었더라? 싶어 옆에 가 가만히 보니 연극 대본이다. 아니 얘가 뭘 이렇게까지 열심히 한다고?
그 이후 한동안 연극 같은 거 잊고 살았다. 꼭 12년 만이다. 희곡집, 연극 대본이 내게로 왔고 난생 처음 희곡집이라는 걸을 차근차근 읽어 보았다. 이제껏 내가 읽은 책은 분위기나 흐름이 책이 지시문으로 그 느낌이나 환경 같은 것이 쓰여있다. 그런데 오직 대사와 지문으로 이루어진 대본은 이 무대 위의 분위기나 흐름을 내가 찾아가야 한다. 정확히는 무대를 상상하며 읽어야 한다.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배우, 배우들의 옷차림과 대사의 높낮이 크고 작음, 조명이 온 오프 되고 이 무대에서 어떠한 배경음악이 깔릴지 상상하며 읽는 글. 이것도 꽤 색다른 경험이었다.
여기다 가족과 사랑, 꿈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가족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어떻건, 지금의 사랑이건 지나간 사랑이건, 그 꿈을 이루었던지 아직도 꾸고 있던지 간에 우리는 인생의 꽤 많은 순간을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며 살아간다.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그가 들려주는 가족과 사랑, 꿈 이야기는 꽤 깊고 진득한데 사실 몇 이야기는 좀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로 여운이 깊고 진했다. 이런 경우 높은 확률로 본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은데 나중에 만나게 되면 묻고 싶기도 했다 :)
책은 대구의 극단 <에테르의 꿈>의 대표인 박지수 님의 대표작 5편을 묶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짚어가며 가족 이야기를 담아내는 <무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늘 궁금하게 하는 사랑 이야기 <마음속 사거리 좌회전>, 중남미 아이들의 꿈에 대해 그린 <12만 KM>, 아직도 꿈을 찾는 어른들 이야기 <어른 동화>, 그리고 못다 이룬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느 공원 이야기>까지.(사실 <어느 공원 이야기는> 좀 어려웠다..)
소설이랑 비슷한데 또 다른 느낌. 몇 년에 걸쳐서 쓰인 극이라던데 이 글을 써낸 작가의 역량에 새삼 감탄하기도 했다. 꽤 오랜만에 다른 형식의 글을 만나 새롭기도 했고, 또 사실 이런 글은 관계자가 아니면 읽기 힘든 글 같은데, 생각보다 즐겁게 읽혀서 다음에도 희곡집은 찾아 읽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아. 십 년 전에 그 연극 대본을 보던 아이에게 물었었다.
-재밌어?
-네.
세상에 재밌는 거라곤 하나도 없던 아이들이 재밌다고 했다. 그리고 그 녀석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쯤 성인이 되었을텐데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살고 있는지 새삼 궁금해졌다. 그 꿈 이루고 살고 있는지. 아니면 곱게 간직하고 오늘을 버티고 있는지. 아무렴 어떠랴. 우리게 꿈이 있었고 그 꿈으로 행복했으면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