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쓰다가 - 기후환경 기자의 기쁨과 슬픔
최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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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 전 경제적 이유로 구독을 취소한 메거진의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실 비슷한 전화를 몇 번이나 받아서 이젠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아야지 했는데 마음이 바쁘다 보니 덜컥 또 받아버렸다. 싱글일 때야 일 년에 20만 원이 큰 돈은 아닌지라 쉽게 그러마 할 수 있었지만 결혼을 하고(결혼을 한다는 건 모든 지출이 x2가 된다는 걸 의미한다), 모든 세금이 오르고, 고양이마저 아픈 요즘은 정말 가계가 빠듯하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나 어쨌든 그 잡지를 구독할 용기는 없었고 정말 미안한 마음에 ’죄송합니다. 고양이가 아파서요.‘라고 말했다. 상대방은 고맙게도 알았다 하고 전화를 끊어주셨다.


2. “월말을 걱정하는 이들은 종말을 걱정할 수 없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의 말이다. 정곡을 찔린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그랬다. 기후 위기 행동은 모두에게 요구 되는 것이지만,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실천하고 포기하기를 강요받는 이들은 높은 비율로 다가올 월말을 걱정하는 이들이다. 나도,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 대부분은 언제 올지 모르는 지구의 종말을 위해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제품보다 두세배나 비싼 환경보호 제품을 사용할 용기가 없다.(동물복지 계란은 왜 그렇게 비싼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은 늘 잔인하다.


3. 2022년 구글 검색어 순위 전체 1위라 ‘기후 위기’였다고 한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무슨 일이 있었지? 비가 좀 많이 왔던 것 같은데.. 그거 말고는 딱히 기후 위기라 할만한 증상이 떠오르지 않음에도 한국도 ‘기후 위기’를 궁금해했다. 기업의 CSR은 이제 거의 모두가 ESG로 대체 되고 있는데 ESG의 첫 글자는 Enviroment 즉, 환경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제 환경이 먼저다.


4. 책은 한겨레 기후 위기팀에서 근무하는 기자의 기후 위기 이야기다. 칼럼을 엮은 듯한 책은 적절하게 쉽게 읽힌다. 얼마 전 완전히 반대되는 기조의 책을 읽다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참고 난 뒤였나 이 글이 더 반갑고 좋았다. 저자는 어쩌다 '환경은 천덕꾸리가 되었나?'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부터, 기후 위기에 대한 크고 작은 오해, 그렇게 친절하게 우리 주위의 기후 위기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간다. 그 이야기가 꼭 내 질문에 대한 대답 같아서 어떤 글에는 공감이 되고 또 어떤 글에는 위로가 되었다. 나는 크레타 툰베리가 아니다.(걔는 이제 돈이나 많지) 언제까지 일회용품을 쓰는 동료에게 잔소리하다 관계를 해칠 마음도 없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좋았다.


5. 지금도 창밖으로는 미세먼지가 뿌옇게 내려 앉아있다. 회색빛의 콘크리트 바닥은 어쩌면 미세먼지와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쪽 길 너머 어린이집의 놀이터도 모래가 아닌 고무 재질의 바닥으로 뒤덮여있다. 누군가 땅이 숨 쉴 수 있는 공간도 남겨두어야 한다던데 여의도에는 이미 땅이 숨 쉴 공간은 없어 보인다. 건물마다 조경처럼 잔디나 나무를 심어놓긴 했는데 그 앞은 하나 같이 담배 피는 이들이 점령해있으니 나무도 싫을 것 같다.


6. 난 내 아이들에게 콘크리트가 아닌 흙을 딛고 두 발로 서는 경험을 주고 싶다. 우리가 숨 쉬듯 땅도 우리와 같이 숨 쉬는 걸 온전히 받아들이는 경험을 주고 싶다. 


7. 채식에 관한 글의 일부였는데 아마 이게 지금의 기후 위기를 맞이하는 내 마음과도 거의 같다.


그래도 지금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 있 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도시에서 직장인으로서 회식 문화 속에 살다 보면 성격을 크게 바꾸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p.59)


괜히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 뭐라도. 뭐라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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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희곡집 1 - 다섯 가지 이야기
박지수 지음 / 연극과인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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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 사회복지사 시절, 아동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연극교실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연극에 관심이 있는, 즉 연극을 하고 싶은 친구들을 모으고 선생님을 섭외해 일 년 동안 연극을 배우고 연말에 무대에 올리는 뭐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연극을 한 번도 안 해본 친구들이고 또 초등학생이니 내게 연극교실은 그저 방과 후 활동 중의 하나였다.


당시 세계 육상선수권대회가 대구에서 열렸고, 연극 선생님과 아이들은 관광객도 많으니 그 사람들이 모이는 거리에서 연극을 하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굳이?’ 싶었지만 하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으니 그러마 했었다. 공연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연극에 임하는 아이들의 눈이 내가 처음 보던 눈빛이었고 꽤 반짝거렸다. 극의 내용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꿈에 관한 것이었던 것 같고, 아이들 중 몇몇은 극을 마치고 현장의 스타가 되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졸업할 때까지 공부하러는 안 와도 연극하러는 왔다. 

어느 날 복지관 교실에서 그 녀석 중 하나가 종이를 너무 열심히 보는데. 얘가 언제부터 책을 읽었더라? 싶어 옆에 가 가만히 보니 연극 대본이다. 아니 얘가 뭘 이렇게까지 열심히 한다고? 


그 이후 한동안 연극 같은 거 잊고 살았다. 꼭 12년 만이다. 희곡집, 연극 대본이 내게로 왔고 난생 처음 희곡집이라는 걸을 차근차근 읽어 보았다. 이제껏 내가 읽은 책은 분위기나 흐름이 책이 지시문으로 그 느낌이나 환경 같은 것이 쓰여있다. 그런데 오직 대사와 지문으로 이루어진 대본은 이 무대 위의 분위기나 흐름을 내가 찾아가야 한다. 정확히는 무대를 상상하며 읽어야 한다.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배우, 배우들의 옷차림과 대사의 높낮이 크고 작음, 조명이 온 오프 되고 이 무대에서 어떠한 배경음악이 깔릴지 상상하며 읽는 글. 이것도 꽤 색다른 경험이었다. 


여기다 가족과 사랑, 꿈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가족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어떻건, 지금의 사랑이건 지나간 사랑이건, 그 꿈을 이루었던지 아직도 꾸고 있던지 간에 우리는 인생의 꽤 많은 순간을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하며 살아간다.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그가 들려주는 가족과 사랑, 꿈 이야기는 꽤 깊고 진득한데 사실 몇 이야기는 좀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로 여운이 깊고 진했다. 이런 경우 높은 확률로 본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은데 나중에 만나게 되면 묻고 싶기도 했다 :)


책은 대구의 극단 <에테르의 꿈>의 대표인 박지수 님의 대표작 5편을 묶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짚어가며 가족 이야기를 담아내는 <무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늘 궁금하게 하는 사랑 이야기 <마음속 사거리 좌회전>, 중남미 아이들의 꿈에 대해 그린 <12만 KM>, 아직도 꿈을 찾는 어른들 이야기 <어른 동화>,  그리고 못다 이룬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느 공원 이야기>까지.(사실 <어느 공원 이야기는> 좀 어려웠다..)


소설이랑 비슷한데 또 다른 느낌. 몇 년에 걸쳐서 쓰인 극이라던데 이 글을 써낸 작가의 역량에 새삼 감탄하기도 했다. 꽤 오랜만에 다른 형식의 글을 만나 새롭기도 했고, 또 사실 이런 글은 관계자가 아니면 읽기 힘든 글 같은데, 생각보다 즐겁게 읽혀서 다음에도 희곡집은 찾아 읽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아. 십 년 전에 그 연극 대본을 보던 아이에게 물었었다.


-재밌어?

-네.


세상에 재밌는 거라곤 하나도 없던 아이들이 재밌다고 했다. 그리고 그 녀석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쯤 성인이 되었을텐데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살고 있는지 새삼 궁금해졌다. 그 꿈 이루고 살고 있는지. 아니면 곱게 간직하고 오늘을 버티고 있는지. 아무렴 어떠랴. 우리게 꿈이 있었고 그 꿈으로 행복했으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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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생존 코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 비즈니스의 미래를 재설계하는 혁신의 비밀 서가명강 시리즈 29
유병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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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신이 그것을 보여주기 전까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스티브 잡스만 이런 말을 한 줄 알았는데 자동차 왕 헨리 포드도 똑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자동차가 없었을 당시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면 사람들은 그저 '더 빠른 말'이라고 대답했을 거라고.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코로나가 촉발시킨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은 몇 년 전부터 업계의 유행어가 되었다. 모두가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이하 디트)해야 한다고 말하고 온갖 것을 디트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이 시기가 당겨져 우왕좌왕하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는 이제 오프라인이 아닌 디지털에서 비지니스 모델을 찾고 또 만들어야 한다는데는 모두가 큰 이견은 없을 것이다.

당장에 <교차로>로 대표되던 종합 정보지가 인터넷으로 들어와 각종 플랫폼이 되고, 냉장고에 붙어있던 전단지가 모바일과 만나 지금의 <배민>이 된 것은 이미 우리가 목도한 디트의 일환이다. 하지만 디트에는 이런 성공한 사례들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아직 실패했다고 단정 짓긴 뭐 하지만 유비쿼터스, 사물인터넷 최근에 메타버스까지 그리고 성급히 배민 등의 사례를 흉내 내다 가열차게 망한 각종 정부의 플랫폼들까지. 디트가 우리의 미래일 것처럼 반짝거렸으나 지금은 되려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버린 사례도 성공 사례만큼이나 많고 사실 이러한 레퍼런스 또한 무시하기 힘들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디트로의 방향성은 분명히 하되 천천히, 제대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시절 리서치는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비대면이 대세가 될 것이라 대답했지만 정작 코로나가 해제되자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졌다. 디트에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동반된다. 코로나 이후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는 지금 우리가 디트 앞에 조금은 신중해야 할 이유다.


책은 '마지막 생존 코드'라는 부제를 붙일 정도로 디트에 적극적이다. 개인적으로 디트의 큰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그 변화가 너무 빠른 것은 아닌지 논쟁 중이었는데 이 책을 만나며 사실 그 고민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저자는 디트를 추진하는 첫 번째 방향과 전략으로 오프라인과의 공존을 이야기 한다. 실제로 예전 옷 가게가 성황 하던 상권은 이미 카페와 디저트 집으로 모두 간판을 바꾸어 달았다. '더현대 서울'이 예전 백화점에서 제공하던 패션, 가전, 명품 중심이 아니라 먹거리, 볼거리를 잔뜩 쌓아놓고 쇼핑거리를 덤으로 제공해 성공했다는 점은 앞으로의 오프라인 매장의 미래에 꽤 정확한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이제 사람들은 오프라인에서 경험하고, 인터넷으로 구매를 결정 한다. 이 둘의 조화를 저자는 애플스토어를 예로 들며 매우 적확하게 설명한다.


책은 이러한 디지털로의 전환을 위해 4가지 변화를 요구한다. 첫째, 디지털 시프트. 당신의 기업이 어떤 기업이든 IT인프라를 확충해 정체성을 뚜렷이 하라는 거다. 둘째, 비유기적 성장. 기존의 성장 모델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성장 동력을 흡수하라고 권한다. 셋째, 디지털 수준에 맞는 조직문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권한다. 성과 공유 인센티브, 사내 창업 등 기존의 조직문화와는 다른 새로운 시도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며 아마 우리는 앞으로 보지 못한 새로운 조직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기계를 사용할 줄 아는 인간으로의 조직원의 성장시켜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 밖에도 저자는 디트를 위한 다양한 조언들을 하는데 꽤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이후 잠시 오프라인이 활발해졌다고 다시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에서 손을 뗄 수는 없다. 14년차 직장인. 어쩌다 이런 시기에 중간관리자가 되었나라고 한탄하기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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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애니 라이언스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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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동안 만이라도, 삶을 선택해 주시겠어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중요하니까요(p.167)


안락사를 결정한 할머니에게 의사는 부탁한다. 그 결정을 내리는 순간만이라도 삶을 선택해 달라고. 사실 할머니는 안락사를 다시 생각해 보라는 병원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읍소했다. 이런 삶을 더 이상 유지하고 싶지 않다고. 유도라 허니셋이라 불리는 그녀의 사정은 꽤 기구했다.


유도라는 전쟁에 아버지를 잃었다. 남은 가족은 이제 본인이 돌아보아야 할 엄마와 이기적인 여동생 스텔라. 어머니를 돌보고 여동생에 치이며 살아가던 여인, 결혼하면 행복해 질 줄 알았건만 결혼을 앞두고는 약혼자가 여동생과 도망가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 행복이란 없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지나고 도망간 여동생은 아이가 생겼다며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하이재킹한 것도 모자라 도와달라니.. 그녀는 이 손길을 거절하는데 이후 스텔라와 아이는 남편의 폭력으로 죽고 만다. 가뜩이나 상처투성이인 영혼에 덧입혀진 이 트라우마는 꽤 길고 싶었다. 어느 날은 첫사랑 샘이 이혼 후 유도라를 찾아오기도 했다. 다시 찾은 기회. 하지만 유도라는 홀로 남겨진 엄마 때문에 내미는 샘의 손을 잡지도 못한다. 결국 샘도 떠나 보내고 유도라는 어머니와 남은 생을 홀로 살아간다.

그리고 오랜 병원 생활을 마감하고 아흔이 넘는 나이에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고 비로소 유도라는 홀로 남겨진다. 그리고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삶의 권리. 그녀는 철저히 혼자가 된 후에야 생을 스스로 마감할 권리를 찾기 시작한다. 안락사가 가능한 국가와 병원을 찾았고, 그 후에도 이어진 병원의 집요한 설득 끝에도 그녀는 결국 안락사가 가능하다는 승낙을 받아 내고야 만다.

삶을 정리하기로 한 순간에야 보였던 것일까. 이웃에 이사 온 로즈라는 열 살짜리 꼬마 아이가 눈에 밟히기 시작하고 언제부턴가 스탠리라는 남자 노인이 친절을 베풀기 시작하는 것. 그리고 이들은 유도라의 마지막 선택을 마음 놓고 방해하기 시작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질문이기도 한 이 질문에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대답을 해야 한다. 누군가는 가족, 또 누구는 사랑, 어떤 이는 돈이라 대답할 수도 있겠다. 설령 바로 대답하지 못할지라도 우리 모두는 이 질문에 마음을 다해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답이 우리의 삶을 지속하게 한다.

죽기로 결정한 유도라의 인생에 수긍하는 편이다. 모든 삶이 고통의 연속이었던 그녀에게 그 지옥 같은 굴레를 스스로 끊을 수 있는 권리 그녀의 권리를 지지한다. 그런데 그 삶의 끝자락에서 그녀는 살기로 결정한다. 이미 끊어진 줄 알았던 희망의 끈을 로즈에게서 스탠리에게서 발견한 그녀는 건조하고 퍽퍽한 남은 삶이나마 최선을 다해 행복해 보기로 결정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행복은 환경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의 결심일는지도 모르겠다.

고약한 세월을 견뎌냈고, 그 끝을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한. 스스로 행복하기로 결정한 유도라에게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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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가 - 타인 지향적 삶과 이별하는 자기 돌봄의 인류학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28
이현정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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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남학생 집단으로 끔찍한 성폭행을 당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타인의 욕망의, 폭행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이 날 이후 되려 남들이 욕망하지 못하도록 자신을 망치는 걸 선택한다. 그녀는 먹고 또 먹었다. 거구가 되자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을 성적으로 보지 않았지만 이제 그녀는 사람들에게 게으르고 모자란 사람이 되어버렸다. 모두가 그녀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비행기를 탈 때도, 예쁜 옷을 입을 때도 타인으로부터 기피와 멸시의 대상이 된다. 그녀는 이 경험을 책으로 적어 사회를 고발했다. 록산 게이의 이야기다.


1. 몸에 관하여

라캉은 모든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 말했다. 내가 무엇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욕망은 '나의 욕망'이라기 보다 '타인이 자신에게 바라는 욕망'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라캉의 욕망으로 내 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이야기 한다. 이를테면 바디프로필 전성시대를 살며 우리는 내 몸을 가꾸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는지, 타인의 눈에 의해 잘 보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것이 나의 원이 아닌 사회적 요구에 의한 것이라면 이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우리가 갖는 우울감이나 타인에게 보내는(혹은 받는) 혐오나 경멸의 시선은 과연 어떠한지. 저자는 우리 몸을 대하는 태도, 진짜 자기 돌봄에 대해 말한다.


2. 가족에 관하여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떤 가족>에는 원 가족에게 버림받은 이들이 어쩌다 모여 가족의 모습을 띠고 살아가는 처음 보는 형태의 가족의 모습이 나온다. 누구보다 서로를 위하지만 소매치기 등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들을 소위 '정상'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다시 해체시켜 버리며 영화는 끝나는데, 이 긴 이야기 끝에 영화는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는가?

영화가 묻는 질문을 저자는 그대로 이어받는다. 예전에는 결손가정이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사용했다. 아빠, 엄마, 자녀 둘 이상. 외동도 정상으로 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 중 하나라도 없다면 우리는 그 가정을 결손가정이라 부르고 너무 쉽게 뭔가 그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은 무언가 문제가 있는 사람일 거라 재단했다. 시간이 흘러 삶이 퍽퍽해질수록 출산율은 내려가고 다들 결혼을 기피하는 세상이 왔다. 인식은 변해 이제는 결손가정이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가의 결합이 전제된 결혼에는 소위 '정상적이지 않은' 가정이 불리한 위치에 있곤 한다.

우리보다 이 결혼의 사회적 제약이 약한 프랑스에서도 이제 결혼보다 '시민연대계약'이라는 결혼보다 낮은 형태의 가족을 국가가 인정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후 출산율이 높아지기 시작했다는데, 우리도 이제 이런 것들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3. 젠더

몇 년 전 세간의 중심이 된 강남역 살인사건. 이 사건의 여파는 지난해 대선까지 연결되었고, 지금 우리나라는 젠더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는 나라 중 하나다.(사실 젠더 갈등 뿐 아니라 온갖 갈등이 판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렇게 갈등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집단이나 개인 간의 차이와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옳고 우월하다는 관점이 너무 분명하고 고정적으로 자리 잡아서라고 진단한다. 경제적인 측면 뿐 아니라 성별로 인해 구분 지어지고 강요되는 삶이 질투와 혐오의 문화를 유발했고 지금은 그 끝을 모르는 열차처럼 서로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큰 단위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이제는 무언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아니고 싶어도 타인의 시선을 신경 끄지 않을 수 없는 사회기도 하다. 어떤 스탠스를 가지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을 맞이할 것인가. 행복한 삶은, 더 좋은 삶은 사실 이에 대한 스스로의 결정에서부터 올는지도 모르겠다. 꽤 괜찮은 세 개의 인문학 강의를 들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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