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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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태백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원래 계획은 눈 조각을 보러 가는 거였는데 꽤 잘 준비했지만 오전 이후로는 그다지 볼 게 없었다.(작은 도시가 그렇지 머..) 어디 갈까 고민하다 우연찮게 지금은 문을 닫은 탄광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탄광에 관심이 있었다기 보다 잘 보기 힘든 일본식 가옥이 눈에 띄었고 다가가니 역시나 거기도 나름 관광지로 꾸며놓은 곳이었다. 눈 축제 중이어서 태백에 사람이 꽤 많을 시기였는데도 그곳은 꽤 황량했다. 그러고 보니 태백의 관광책자에 여기가 소개되었는지도 가물가물했다. 그랬다면 몰랐을 리 없었을 텐데.. 

뭐 어쨌거나 나는 그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곳에는 박물관처럼 리모델링 한 몇몇 건물을 제외하곤 지난 반세기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일구었던 영광의 역사. 동네 개들도 천 원짜리를 물고 다녔던 영광의 흔적들이 손때 묻은 채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물론 지금은 반쯤 폐가가 되었다는 말이다. 나는 지금도 태백을 여행하다는 이들에게 꼭 여기를 들러보라고 권한다.

얼마 전 우연찮게 경남 창녕을 지날 일이 있었다. 맞다. 우리가 아는 그 부곡하와이. 아직도 몇몇 가게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꼭 유령마을. 차나 사람이 지나지 않는 거리, 떨어져 나간 간판, 예전의 영광을 기억하는 듯한 커다란 주차장이 을씨년스럽게 있었다. 원래도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 새삼 깨달았다. 나 이런 갬생이구나.


책은 이렇듯 한때 영광의 시절을 간직했으나 핵, 자연재해, 전쟁, 화재, 파산 혹은 안전과 보안의 문제 등을 이유로 더 이상 사람들은 찾지 않는(혹은 찾을 수 없는) 폐허가 되어버린 40곳을 소개한다. 어떤 장소들은 아직도 아름답고, 어떤 곳은 으스스하기도 하다. 우유니 사막의 열차무덤 같이 이제 다시 사람이 찾는 관광지로 복원된 곳도 있으며 체르노빌처럼 영원히 그대로 묻어 버려야만 하는 곳도 있다. 어쨌거나 이 장소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고 우리는 그 행간을 읽을 필요는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우유니니 체르노빌이 워낙에 유명한 곳이라 모두가 알고 있지만 책에서 소개 되는 40군데의 장소들은 대부분 생소한 장소들이었다. 심지어 그 동네를 여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몰랐던 건물도 있었다. 그리고 난 이런 이야기들이 진짜 좋았다.

저자도 이야기 하듯이 아직까지 이 장소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바가 크다. 방치는 그 자체로 회생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열심히 생각해야 한다. 그 버려진 곳에서 우리가 건져올려야 하는 건 무엇인지, 다가올 세상에 이 장소들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또 세상에는 굳이 알 필요 없지만 알게 될 때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 이야기들은 때론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한데 이런 이야기들이 쌓였을 때 우리는 조금 더 깊어지고 따뜻해진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무대가 된 악명 높은 바다 위의 교도소 앨커트래즈는 갈 수 있다면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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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빈칸 - 당신의 생활 속에 반짝이는 크리에이티브 조각들
최장순 지음 / 더퀘스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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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쓴 <기획자의 습관>은 지금도 내 최애책. 후배들에게 추천하는 책의 리스트 최상단에 있다. 아마 내 기억에 이 책에서도 강조되었던 것 같은데, 우리가 영감을 얻기 위해 하는 모든 행위 중 가장 중요한 곳은 어느 여행지나, 웨이팅이 무지막지한 어느 핫플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바로 지금, 이 공간이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면서부터 출근하는 지하철, 사무공간, 점심을 먹으러 찾은 식당, 회의하며 괜히 굴려보는 볼펜 한 자루, 다이어리 종이 재질, 퇴근 후 친구들과의 만남을 가지는 핫한 카페 , 집에 오는 길에 들른 편의점에 진열된 물건들의 이름까지. 우리는 일상을 살며 수도 없는 콘텐츠와 마주한다. 그것을 읽어내느냐 지나치느냐는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책은 이런 일상들을 하나씩 들추며 내가 매일 만나는 것들에 숨겨진 행간을 짚어준다. 화장실에 어지럽게 붙은 전단지, 길 위의 맨홀 뚜껑, 지겹게도 보아온 초코파이, 어느 순간 극장에 걸린 넷플릭스 광고까지.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어?' 싶은 것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당신의 곁에는 어떤 이야기가, 어떤 콘텐츠가 숨어있는지 묻는다. 사실 그랬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사실 내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면 충분히 캐치할 수 있는 것들이고, 한 번 더 구글링했다면 당신이나 나도 충분히 포스팅 할 수도 있었던 것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사실 내 주위에 널리고 깔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초코파이를 알게 된 게 적잡아 35년은 되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 저자는 그 것을 '빈칸'이라고 부른다. 일상의 빈칸. 그랬다. 우리는 보통 삶에 '빈칸'이라 불리는 여유가 있을 때 다른 이의 삶 그리고 놓쳐버린 주위의 일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채우려 하지 않고 놓아야만 보이는 것들. 가지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고 조용히 둘러보아야 알게 되는 것들. 그 빈칸을 충분히 발견하고 그리고 그것을 채워나갈 때 우리 삶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일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터전이다. 그 터전에 익숙해질수록 우린 권태에 빠진다. 권태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상으로 만들기 위한 모든 생각과 행동이 우리의 생활을 찬란하게 빛나게 할 거라 믿는다.(p.9)


저자도 이야기 하듯 뭐 이 책 한 권 읽는다고 당신의 삶이 놀랍도록 크리에이티브 해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얇은 책 한 권이 내가 생각하는 방향을 바꾸고 그 삶에 여유를 불어넣을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글자도 크고 책도 쉽게 쉽게 읽힌다.

오늘 아침 출근길, 놓치고 살던 꽤 많은 풍경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어제까지 나도 5분이 소중해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사무실을 뛰어다니던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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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해방일지 - 내 마음을 알고 싶은 날의
이명수 지음 / 에이엠스토리(amStory)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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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분노조절장애, 조현병..


언젠가 들어는 봤지만 요즘처럼 이런 단어들이 흔하게 들리는 날들도 없는 것 같다. 세상은 계속 좋아진다는데 왜 우리 마음은 자꾸만 병들어 가는 걸까? 언젠가 나도 상담을 받아야겠다 결정하고 좋은 병원을 찾는 도중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진짜 상담받아야 할 사람들은 병원에 오지 않고, 그 사람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만 병원에 온다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책도 그렇다. 사실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사람은 상처받고 힘들어 하며 회복을 원하는 누군가보 공격하고 상처 주면서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1도 생각하지 않는. 

어쩌면 우리 모두이다. 


책은 상담과 의사의 상담 일지다. 저자는 매 챕터 분명히 현실에 있었던 것이 분명한 여러 상황과 질문에 나름의 대답을 이끌어 내며 책을 이어 나간다. 읽다 보면 내가 예전에 품었다 혼자 어느 정도 해결했던 질문도, 지금 하고 있는 나의 고민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언젠가 해결하지 못한 채 덮어두었던 그 옛날의 상처들이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책이 나의 문제 그대로를 풀어주지는 못하겠지만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답을 만날 수도 있다. 그리고 아직 풀지 못한 그 상처를 풀어낼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반대로 나도 알지 못했던 내 모습에 상처 받았을지도 모를 주변인들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나 또한 저자의 솔루션에 스스로를 점검해 보았다. 행여 나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이 있다면 지금부터 하나씩 찾아가 사과할 계획이다. 


워낙에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밑줄 치며 메모한 것 몇 가지.


1. 질문의 형태를 띤 나무람이 태움의 본질이다.(그게 왜 필요하죠? 따위의 질문) 혼을 내는 건 정확한 일을 가지고 정확한 언어로 해야 한다.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는 질문은 질문이 아닐뿐더러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다. 질문은 궁금할 때만 하자.


2. 나는 괴롭힘으로 발생하는 거의 모든 문제의 해결은 피해자(혹은 가해자까지도)의 자존감을 회복하는데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나는 할 수 없다는 무기력의 상태에 빠진 이를 동기부여해 다시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여전히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는 일. 사실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스스로를 좋아하는 것, 친절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 자신의 착함을 좋아하는 것.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고, 세상은 이들 때문에 행복해진다. 

가해자의 가학적 행동 또한 낮은 자존감에서 오는 콤플렉스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보통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를 타인에게서 찾는데,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예전에 나는 이런 이들을 만나면  깨부수기 바빴는데 요즘은 회피하는 편이다.


3. 세상에는 보통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나에게 양보를 부탁하는 사람과 양보를 강요하는 사람. 저자도 단언하듯이 후자, 즉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과감히 내 인생에서 쳐내는 것이 결국 모두에게 좋다. 이런 걸로 미안해 할 필요도 없다. 내 인생을 가장 위해야 할 사람은 나고 다른 이를 위해 내 인생을 갉아먹을 이유는 아무래도 없다.


4. 모든 일에 예측 불가능성을 낮출 필요가 있다. 두려움은 예측 불가능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내 MBTI 성향에 관계없이 내가 내일 있을 일에 대해 철저히 준비하고 대비할 때 두려움은 현저히 줄어든다. 여유는 거기서 출발한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한다. 그만큼 잦고 또 많은 이들이 힘들어 하는 병. 감기는 그냥 던져둘 때 낫기도 하지만 덧나거나 다른 병으로 발전하면 걷잡을 수 없는 큰 병이 되기도 한다. 우울도 마찬가지다. 우울증은 반드시 치료해야 할 ‘병’이고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의 마음에 우울이 있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을 위해 가까운 정신의학과를 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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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크 -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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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폭력의 가해자 일까, 시스템의 도구일까?


마지막 장의 질문에 가슴이 훅 막혔다. <더티 워크>라 해서 청소 일이라든지 뭐 이런 3D업종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사회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책은 내 생각보다 더 깊이, 더 날카롭게 파고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그늘로 파고 들어간다.


저자는 미국 내에서도 조명 받지 못하는 세 집단의 더티 워커들을 조명한다. 교도소의 교도관들, 미군 특수부대인 드론 조종사들 그리고 도살장의 인부들. 책은 흡사 다큐멘터리처럼 진행되는데 그는 세 집단의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또 그들을 둘러싼 시스템을 살펴본 후 그들이 자신의 직을 수행하기에 따라오는 그들의 어려움에 대해 고발한다.


교도관들은 늘 재소자들의 폭력에 둘러싸인 집단이다. 이 정도야 그들도 각오하고 있는 바이긴 한데, 교도소라는 환경이 혐오시설로 낙인 찍히며 감내하게 된 지역사회의 소외 또한 이들에게는 만만찮은 문제였다. 코로나로 모두가 문을 걸어 잠그던 시절, 그들은 함께 교도소에 갇혀야 했다. 어떤 단체들은 이러한 감금 상황에 대해 재소자들의 인권에는 소리를 높였지만, 누구도 교도관들이 받는 비인간적인 처우에 대해 언급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교도소 내 인권침해를 자행하는 빌런일 뿐이었다.


전투 드론 조종사. 겉보기에 그들은 정밀하게 드론을 조종하는 임무를 수행지만, 최첨단 무기화 된 이들은 우리가 모르는 비밀 임무를 수행한다. 냉전시대는 끝났지만 911, 아프간을 거치며 미국이 주도한 전쟁의 역사는 더 세밀해지고 치열해졌다. 드론을 이용한 임무는 당연하기까지 한 수순에 이르렀는데 이들은 매일 드론이 비추는 카메라 너머로 사람을 죽이고,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맨 눈으로 마주한다. 총으로 눈 앞에 서 사람을 죽이는 건 매우 비윤리적이지만 드론이 목표를 타격하는 건 왜인지 꼭 허가된 일인 것만 같다. 아니 사실 우리는 이에 대해 단 한번도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미 공장화 되어 괜찮다고 생각하는 도살장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영화 <옥자>를 보았다면 동물들이 기계 속에서 어떻게 도축되는지 보았을 것이다. 이들의 업무는 살아있는 동물들이 기계 속으로 들어가기에 그것들이 가지런히 놓였는지 혹 도망치거나 삐뚤어진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제자리에 놓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소수의 인원이 좁은 공간에 웅크려 이 기계 저 기계를 왔다 갔다 하며 일한다. 불과 몇 초 전까지 숨이 붙어있던 돼지니 닭들이 분리되는 것을 마주하는 이들의 정서는 이들이 알아서 감내해야 할 문제다. 중요한 건 오늘 저녁 출하되어 마트로, 식당으로 팔려갈 고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비단 이런 직접적인 더티 워커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시추선 사고 후 생존한 노동자들에게는 그들의 안위보다 환경오염에 대해 입 다물 것을 요구하는 각서가 요구되었고, 실리콘 밸리의 개발자들에게는 민감한 정보 검열에 대한 함구령이 내려졌다. 그들이 가진 기술은 조직에 의해 비윤리적인 일에 사용되었고 한낱 도구로 소구되는 이들이 입은 내상에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말이다. 


아이히만은 유대인 500만 명을 학살한 나치의 장교였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잡혀 재판에 회부된 그는 자신은 그저 상부의 지시에 따른 평범한 공무원이었음을 주장했다. 상명하복의 군조직에서 감히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 것. 나아가 자기가 한 일이 얼마나 큰 일인지조차 몰랐다는 아이히만을 가리켜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고 불렀다. 악은 언제나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늘 나의 일상이, 크게 보면 악을 구성하는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는 거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가? 재소자들을 교도관에게만 맡긴 채 혐오시설로 규정하고,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하는 적을 드론 조종사의 손을 빌어 죽이고, 오늘 저녁 우리 식탁에 오를 고기를 위해 누군가에게 그 일을 대신 시키는 것. 시스템 속에 당연시 되는, 차마 내가 저질렀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이 평범한 폭력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 최근 아이히만이 그의 주장처럼 단순 공무원이 아니라 학살의 주체자였음을 밝히는 문건들이 하나둘씩 밝혀지고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렌트의 이야기가 의미 없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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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T 사피엔스 - 인공지능을 가장 잘 활용하는 신인류의 탄생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14
홍기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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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며칠 전 네이버 웹툰에 작은(?) 논쟁이 하나 있었다. 한 작가가 그린 웹툰이 'AI가 그린 웹툰인 것 같다. 그렇다 카더라'로 돌던 썰은 디즈니가 참전하며 실제로 확인되었고, 거기다 디즈니의 저작권 소송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하필이면 그린 병사들 중 하나가 그루트였던 것이었다(무인도에서 구조 받고 싶다면 바닥에 미키마우스를 그려라. 그리하면 디즈니 법무팀에서 데리러 올 것이다 라는 오래된 농담은 허언이 아니다). 어쩌면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사건이지만 이 에피소드는 꽤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AI가 작가(그것도 웹툰)을 대처할 수 있는가? 그렇다. 그 수준이 일반인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정교해졌는가? 아직 그거까지는 아닌 것 같다. 


2. 지난해 추석 즈음이었던 것 같다. 챗 GPT 관련 영상이 유튜브 알고리즘을 지배하더니 너도나도 챗 GPT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사안이 워낙에 핫하다 보니 관련 서적도 꽤 여러 권 등장했는데 워낙에 속도전 이었던 탓에 '이게 뭐야??'를 남기고 몇 페이지 펼치지도 않은 책을 집어 던진 적이 나도 몇 번이나 된다. 타임라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너도나도 AI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곤 이내 시들해졌다.(사실 이는 한글로 질문한 탓이 더 크기도 하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내린 결론은 챗 GPT는 아직 인간의 지능을 따라올 수 없다. 그럼으로 너도나도 기계에 뒤지지 않는 전문가가 되자는 이상한 결론.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미덕은 여기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3. 이제는 출판사 혹은 시리즈만으로 브랜드가 되어버린 브랜드 라인이 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이 그렇고 한겨레에서 출판한 거의 대부분의 책이 실패 확률이 낮다. 그리고 여기 21세기 북스의 <서가명강>, <인생명강> 시리즈도 그렇다. 우연찮게 리뷰를 부탁받거나 이 책 좋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어 읽은 책들의 타율이 꽤 높다. 


4. 책은 GPT의 기능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등장하기까지의 사회 문화적 관점, 그리고 이를 어떻게 우리 사회에 접목해 갈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터넷이라는 게 없던 시절, 문헌정보학은 꽤 중요한 학문이었다. 당시 정보라는 건 글을 쓸 수 있고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사람 혹은 기관만이 정보를 독점할 수 있었고 이것이 권력이던 시절이었다. 인쇄업의 발전으로 인해 이가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지만 지금의 인터넷과 비교할 순 없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이제 누구나 인터넷에서 글을 쓰고, 퍼트릴 수 있고, 찾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검색 기능은 점차 발전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블로그나 메신저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정보를 기록하고 공유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웹 2.0, 집단 지성의 시대다. 사람들은 단순한 구글링에 그치지 않았다. AI 즉 인공지능의 등장은 굳이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내가 원하는 걸 알아서 주는 시대가 되었다. 검색창에 '운동화'를 검색한 날은 내 모든 광고 창에 '운동화'가 표시되는 경험 정도는 한 번 정도 해봤을 것이다. 그거다. 웹 3.0. 이 시기에  챗 GPT가 우리에게 왔다.


5. 아마 인공지능은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을 바꿀 것이다. 인공지능은 기존의 획일화 된 교육을 철저하게 개인에 맞출 것이며 군사 분야에서 또한 효율성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또 여느 변화가 그렇듯 AI는 몇 개의 직업을 없애겠지만 또 그만큼의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낼 것이다. 저자가 집중하는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6. 나아가 저자는 챗 GPT에 대한 세간의 환상은 신기루라고 단언한다. 그는 현재의 챗 GPT는 고도화 된 검색엔진 이상의 무엇을 가져다 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 물론 3.0에서 4,0으로 진화하는 챗GPT는 지금보다 더 고도화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이 인류의 모든 것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거기다 고도화 된 AI는 저작권, 사생활 보호, 윤리 적 가치판단의 문제 등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할 것이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그루트의 변형을 AI는 아직까지 걸러내지 못한다. 첨예하게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윤리적 딜레마 또한 그러하다.


7.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책임 있게 사용하라. 그가 인공지능에 대해 내리는 결론이다. 그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발전한 것인가라는 궁극적 질문에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난 이 대답이 정말이지 마음에 들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지나치게 낙관적인 시각을 경계하는 것. 어쨌거나 새로운 세상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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