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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크 -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평점 :
그들은 폭력의 가해자 일까, 시스템의 도구일까?
마지막 장의 질문에 가슴이 훅 막혔다. <더티 워크>라 해서 청소 일이라든지 뭐 이런 3D업종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사회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책은 내 생각보다 더 깊이, 더 날카롭게 파고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그늘로 파고 들어간다.
저자는 미국 내에서도 조명 받지 못하는 세 집단의 더티 워커들을 조명한다. 교도소의 교도관들, 미군 특수부대인 드론 조종사들 그리고 도살장의 인부들. 책은 흡사 다큐멘터리처럼 진행되는데 그는 세 집단의 다양한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또 그들을 둘러싼 시스템을 살펴본 후 그들이 자신의 직을 수행하기에 따라오는 그들의 어려움에 대해 고발한다.
교도관들은 늘 재소자들의 폭력에 둘러싸인 집단이다. 이 정도야 그들도 각오하고 있는 바이긴 한데, 교도소라는 환경이 혐오시설로 낙인 찍히며 감내하게 된 지역사회의 소외 또한 이들에게는 만만찮은 문제였다. 코로나로 모두가 문을 걸어 잠그던 시절, 그들은 함께 교도소에 갇혀야 했다. 어떤 단체들은 이러한 감금 상황에 대해 재소자들의 인권에는 소리를 높였지만, 누구도 교도관들이 받는 비인간적인 처우에 대해 언급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교도소 내 인권침해를 자행하는 빌런일 뿐이었다.
전투 드론 조종사. 겉보기에 그들은 정밀하게 드론을 조종하는 임무를 수행지만, 최첨단 무기화 된 이들은 우리가 모르는 비밀 임무를 수행한다. 냉전시대는 끝났지만 911, 아프간을 거치며 미국이 주도한 전쟁의 역사는 더 세밀해지고 치열해졌다. 드론을 이용한 임무는 당연하기까지 한 수순에 이르렀는데 이들은 매일 드론이 비추는 카메라 너머로 사람을 죽이고,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맨 눈으로 마주한다. 총으로 눈 앞에 서 사람을 죽이는 건 매우 비윤리적이지만 드론이 목표를 타격하는 건 왜인지 꼭 허가된 일인 것만 같다. 아니 사실 우리는 이에 대해 단 한번도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이미 공장화 되어 괜찮다고 생각하는 도살장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영화 <옥자>를 보았다면 동물들이 기계 속에서 어떻게 도축되는지 보았을 것이다. 이들의 업무는 살아있는 동물들이 기계 속으로 들어가기에 그것들이 가지런히 놓였는지 혹 도망치거나 삐뚤어진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제자리에 놓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소수의 인원이 좁은 공간에 웅크려 이 기계 저 기계를 왔다 갔다 하며 일한다. 불과 몇 초 전까지 숨이 붙어있던 돼지니 닭들이 분리되는 것을 마주하는 이들의 정서는 이들이 알아서 감내해야 할 문제다. 중요한 건 오늘 저녁 출하되어 마트로, 식당으로 팔려갈 고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비단 이런 직접적인 더티 워커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시추선 사고 후 생존한 노동자들에게는 그들의 안위보다 환경오염에 대해 입 다물 것을 요구하는 각서가 요구되었고, 실리콘 밸리의 개발자들에게는 민감한 정보 검열에 대한 함구령이 내려졌다. 그들이 가진 기술은 조직에 의해 비윤리적인 일에 사용되었고 한낱 도구로 소구되는 이들이 입은 내상에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말이다.
아이히만은 유대인 500만 명을 학살한 나치의 장교였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잡혀 재판에 회부된 그는 자신은 그저 상부의 지시에 따른 평범한 공무원이었음을 주장했다. 상명하복의 군조직에서 감히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 것. 나아가 자기가 한 일이 얼마나 큰 일인지조차 몰랐다는 아이히만을 가리켜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고 불렀다. 악은 언제나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늘 나의 일상이, 크게 보면 악을 구성하는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는 거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가? 재소자들을 교도관에게만 맡긴 채 혐오시설로 규정하고,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하는 적을 드론 조종사의 손을 빌어 죽이고, 오늘 저녁 우리 식탁에 오를 고기를 위해 누군가에게 그 일을 대신 시키는 것. 시스템 속에 당연시 되는, 차마 내가 저질렀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이 평범한 폭력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 최근 아이히만이 그의 주장처럼 단순 공무원이 아니라 학살의 주체자였음을 밝히는 문건들이 하나둘씩 밝혀지고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렌트의 이야기가 의미 없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