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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리터러시 - 혐중을 넘어 보편의 중국을 읽는 힘
김유익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평점 :
1. 우스개로 중국과 일본을 무시하는 전 세계의 유일한 민족이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예로부터 한반도의 국가가 조공을 보내던 국가였고 이제는 G2로 불리며 미국과 세계를 양분한 중국이지만 우리는 아직도 중국을 '짱개'라 부르며 가난하고 미개한 민족의 대명사처럼 생각한다. 그게 비하면 일본은 사정이 좀 낫지마는 뭐 매한가지다. 메이지 이후 동양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 된 국가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일본놈'이다. 전통의 대국과 근대화가 가장 먼저 시작된 경제대국, 아이러니하게 이 두 강국 사이에 끼여있는 (그것도 심지어 반으로 쪼개진) 우리만 그런 건 모르겠고 일단 중국놈과 일본놈이니 어쩌면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멋진 나라일는지도 모르겠다.(;)
2. 20년쯤 된 이야기다. 군대를 다녀오니 학교에 중국 유학생들이 쏟아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몇몇과는 친해지게 되었고 중국 친구의 기숙사 방에서 우연히 그 가족과 영상통화(말이 좋아 영상통화지 컴퓨터 통신)을 하는 걸 옆에서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카메라 너머 벽이나 방문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카메라 너머의 벽과 문은 너무 멀고도 멀었다. '저기 너희 집이야?', '아니 내 방이야' '응? 방문이 저렇게 멀어?' '아 하하하하 응 내 방이 좀 커' 중국 사람들이 가난하다고? 아마 당신 옆에 온 중국 사람이 있다면 아마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경제력을 지녔을 가능성이 높다.
3. 2018년 상해와 항주를 여행했다. 상하이와 항저우, 이름만 들어도 아는 꽤 큰 도시답게 공항에서부터 호텔에 이르기까지, 도시를 여행하는 내도록 내가 무슨 걱정을 했나 싶을 정도로 여행이 편했다. 스모그가 좀 거슬리긴 했지만, 여느 도시와 같이 거리는 깨끗했으며 지하철, 버스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거리에는 스타벅스가 널려있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먹는 것, 자는 것, 타는 것 모두 감탄하던 찰나, 극장에서 이 모든 긍정이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나름 비싼 돈을 내고 들어간 공연, 중국 말을 하는 공연장의 태반이 휴대폰을 들고 공연을 동영상으로 찍고 있었다. 휴대폰 빛이 번쩍거려 무대를 제대로 볼 수도 없었는데, 개중에는 대놓고 영상통화를 하며 공연을 쉐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거 뭐냐... 두 얼굴의 중국 앞에 나는 꽤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중국 친구에게 하소연 하자 그가 그러더라. 이것도 저것도 모두 중국이라고.
4. 중국에서 사업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일찍이 중국에 진출해 크게 성공하신 그분이 늘 하시는 말씀이다. 거기는 단위가 다르다.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가 다 사도 겨우 오천 만인데, 중국은 성의 젊은 친구들에게 조금만 인기를 끌어도 쉽게 백만, 이백만을 넘어간다. 기회는 널렸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한국 시장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만약 네가 중국 말을 할 줄 안다면, 네 인생에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다. 사실 어릴 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조금 크고 그 말 뜻을 알았다. 이미 너무 늦은 것 같지만 말이다.
5. 책은 이렇듯 우리가 조금 알고, 오해하는 중국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정치인도, 무역상도 아닌 중국의 몇몇 도시를 그저 여행할 따름인 우리가 중국에 대해 크게 궁금해 하거나 알아야 할 이유는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이 책이 나는 좋았다. 그랬다. 중국과 상관없는 오늘을 살지라도 이 책의 이야기는 꽤 들어볼 법하다.
6.'리터러시'는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요즘은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들을 리터러시 하여 가짜 뉴스 등을 걸러내고 진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인 '차이나 리터러시'는 꽤 적확하다.
7. 중국인 아내를 맞아 광저우에 살면서 양국을 오가는 저자는 진짜 중국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국과 한국은 근대에 공산혁명이 이루어지며 길을 달리했지, 사실 역사와 문화적 전통이 거의 유사하거나 같은 국가다. 이를 매개로 저자는 두 나라 사이에서 내려오는 공통의 혹은 서로 마주해야 보이는 문제들을 끄집어 내는데, 이것들은 비단 지금 중국의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함께 남아있는 숙제임을 저자는 알려준다. 나아가 함부로 '짱깨' '오랑캐'라 부르며 애써 중국을 깎아내리는 우리의 모습이 어쩌면 커져가는 중국 앞에서 다시 변방으로 밀려나는 우리의 조바심은 아닌지라는 도발적인 질문도 던진다.
8. 그렇게 저자는 권한다. 중국을 가치 판단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플랫폼으로 바라보자고.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듯 중국은 이미 거기 있는 나라다. 그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그와 어떤 관계를 맺어가며 공존할 것인가는 이제 우리의 숙제다.
9. 사실 이건 중국과 한국의 거대담론이지만, 사소한 우리 삶에도 크게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나의 플랫폼은 어디인가. 꽤 생각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