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죽음 피처링 시리즈
이희단 외 지음 / 카논(CANON)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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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뭐가 그렇게 불만이었는지 나는 줄곧 죽음을 떠올렸다.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그림자였는지, 혹 인간이 원래 우울에 빠져 살아가는 모양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여하튼 그랬다. ‘오늘 내가 사라진다면 누가 슬퍼할까’, ‘기왕 죽는 거라면 고통 없이 한 번에 가면 좋겠다’ ‘제사상 위에서 내 가족, 내 친구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쓸데 없는 공상은 꽤 오래 내 유년시절을 지배했다.

대학에 가서 읽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 공상을 부채질 했다. 죽음만이 완성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이라니. 피 끓는 나이에 나는 그런 사랑을 부던히도 찾아 부던히도 헤멨다다. 


마블 히어로물을 애정하는데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 끝내 내 무릎을 치게 만들었던 대목도 전쟁신도 아이언맨의 퇴장도 아닌 이 부분이었다. 냉동인간이 되어 수십년의 죽음을 깨고 되돌아온 캡틴은 이 땅에서의 미션을 완수하고, 2차 대전이 한창인 그곳으로 연인 페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떠난다. 영화 속에서 한 순간 할아버지가 된 캡틴의 눈에 후회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사랑을 위해 죽음을 두 번 넘나들었다.


책은 죽음에 대한 일곱 개의 각기 다른 색깔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고독사, 냉동인간, 유품, 사고사라는 단어로 생긴 오해 등 다양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한동안 잊어버린 죽음을 다시 생각했다. <퓨처 스트림>은 죽음을 담보로 미래로 가려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기술의 힘을 빌어 우리는 미래에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50년뒤에 지금의 모습으로 눈 뜬 다면 그건 나일까 다른 사람일까? <군산의 감정>은 기다리는 이가 ‘장례식장’에 있다는 오해에서 시작된다. 불륜관계라지만 사랑하는 이가 죽었다. 알고보니 그의 딸의 죽음이지만 그 또한 나 때문인 듯하다. 어떻게 해야할까?

죽음에 얽힌 일곱개의 단편을 읽고 이상하게도 생기는 감정은 죽음이 아니라 아무래도 삶이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죽음을 차용하고, 죽음을 딛고 삶을 다시 그려나간다. 그래서 읽으며 계속 살고 싶어졌다. 지금 내가 무언가를 읽고 사유한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 결국 기록은 살아있는 자들의 영유물이며 생이 있는 자의 특권이다.


베르테르가 내민 죽음의 손길을 넘어 이십 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언젠가 그냥 알게 되었다. 삶과 죽음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걸. 살아있어도 이미 죽은 이가 있고, 죽었어도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 살면서 죽은 척은 실컷 했으니 이제 죽어도 살아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마 실제 내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아마 나는 이렇게 살아갈 것 같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면 한번은 가볍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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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말 - 작고 - 외롭고 - 빛나는
박애희 지음 / 열림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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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무래도 이런 책은 좋은 책이라는 나태주 시인의 말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아무래도 좋은 책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좋은 사람일 수 밖에 없다.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박애희 작가님. 좋은 사람이다.


2. 놀이터 하나 변변히 없던 어린 시절, 동네에 큰 부자 아파트 단지 그리고 놀이터가 생겼다. 지금이야 흔하지만 그때만 해도 층층으로 쌓인 미끄럼이 너무 신기하고 좋아 보였던 나와 내 친구들은 어느 날 그곳에 숨어 놀이동산에나 있었던 그 큰 미끄럼을 탔다. 이윽고 시퍼런 방망이를 들고 나타난 경비 아저씨는 식식거리며 우리를 쫓아냈고, 나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그저 서럽다. 아이가 미끄럼 좀 탄 게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니었을 텐데 나는 왜 그때 그렇게 혼났던 것일까.


4. 모두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린 시절이 중요하다고. 거의 모든 대한민국의 어른들은 그 중요한 어린 시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어린이에게 한글보다 영어를 먼저 가르치고, 피아노와 태권도 등을 가르쳐 꽉 찬 육각형의 사람을 만들려 한다. 정말 모두가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보다 그가 잘(돈을 많이 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먼저 살아 본 어른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결과를 우리는 매일 뉴스에서 목도하고 있다.


5. 아이들을 돕는 NGO에서 일하고 있다. TV에 보이는 그들의 한 쪽 면은 가난 앞에서 기를 쓰고 삶을 버티며, 피부색, 성별, 장애에서 오는 차별과 편견에 맞서 무수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모습이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지없이 어린이다. 축구공을 좋아하고, 예쁜 인형을 갖고 싶어 하는. 가끔 터무니 없는 무언가가 되고 싶어하는 그런 어린이. 그 눈이 좋아서 나는 자꾸 아프리카를 그리워 한다.


6. 책에는 세상 모든 어린이의 말이 빼곡히 쓰여있다. 그곳에는 빨간 머리 앤도, 허클베리핀도, 시험을 망치고도 환한 사랑스러운 아이와, 웃는 게 너무 예뻤던 에티오피아 아이의 모습도 보였다. 누군가 이 책의 소개에 써놓았듯 크리스마스 트리의 작은 불들이 하나씩 켜지듯 어린이기에 할 수 있는 작은 이야기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리고 글을 볼 수록 행복해진다. 작가는 말한다. 어린이는 어떤 환경에 처해있던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그리고 간곡하게 부탁한다. 언제나 문제는 그들을 불안하게 하는 어른의 말이고, 그것들로부터 아이를 지키는 것이 어른의 의무라고 말이다.


7. 얼마 전 집 근처에 큰 아파트가 생겼다. 산책길에 보이는 단지 안 놀이터는 어린 시절의 그것보다 더 크고 화려하고 안전해 보였지만 언제나 텅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이와 엄마가 사이좋게 그네를 타고 있었다. 괜스레 웃음이 났다. 따뜻했다. 이 책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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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심리학 3 - YES를 끌어내는 설득의 60가지 비밀, 10주년 기념 전면 개정판 설득의 심리학 시리즈 3
로버트 치알디니.스티브 마틴.노아 골드스타인 지음, 윤미나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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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많은 직업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은 크게 2가지로 갈라진다. 연구, 개발, 서비스 직군과 영업하는 직군. 좀 러프하게 구분하자면 세상 모든 일은 개발자와 마케터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게 중 우리 대부분은 마케터로 살아가는데 개발자의 영역에 속한다 할지라도 마케팅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내가 정의하기에 마케팅은 '설득'하는 일이다. 고객을 설득하는 일, 파트너사를 설득하는 일 그리고 내가 기획한 일에 대해 동료와 상사를 설득하는 일. 그렇기에 굳이 마케터란 직함을 가져야만 마케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작게는 내 SNS를 어떻게 알릴 것인가에서부터 크게는 상품을 더 정확하고 빠르게 알리고 판매하기까지 설득할 것인가. 우리 모두는 마케터다. 어쩔 수 없다.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이 질문 앞에 20년 전 로버트 치알디니는 아래와 같은 6가지 대답에 최근 한 가지를 더해 7가지 대답을 했다. 이는 지난번에 소개한 <설득의 심리학 1>에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기도 하다. 


1. 사회적 증거 원칙_다수의 행동이 '선'이다 

2. 상호성 원칙_호의는 호의를 부른다 

3. 일관성 원칙_하나로 통하는 기대치를 만들어라 

4. 호감 원칙_끌리는 사람을 따르고 싶은 이유 

5. 희소성 원칙_부족하면 더 간절해진다

6. 권위 원칙_전문가에게 의존하려는 경향

7. 연대감 원칙_‘우리’라는 집단을 더 신뢰하는 경향


사실 목차를 읽으며 좀 당혹스러웠다. 아니 이거 1권과 대체 뭐가 다른 거야?? 읽다 보니 알게 되었다. 6개의 목차 아래 있는 60개의 이야기는 이 원칙들을 우리가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실제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를테면 저자는 상호성 원칙을 설명하며 부탁할 때 작은 포스트잇 하나에 약간의 개인적인 부탁을 적고 설문지를 부탁했을 때 두 배 이상의 회수율을 보였음을 알려준다. 호감 원칙을 설명하며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더 호감을 느낀다는 점을 설명하며, 희소성의 원칙을 설명하며 가질 수 없다고 느끼게 할 것, 가끔은 'no'라고 말할 것을 들려준다. 설득하기 전에는 차를 대접할 것도 권한다. 이런 소소한 60개의 이야기 중 어떤 이야기는 당장이라도 적용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책으로 배우는 건 아니라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우리는 설득할 방법이 필요하고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60개나 들려준다면 투자할 법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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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음악 - 날마다 춤추는 한반도 날씨 이야기
이우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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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호츠크해 고기압, 저기압, 장마전선, 제트기류 어디선가 들어는 봤는데(아마 학교 과학시간에서도 배웠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뭔지 잘은 모르는 단어들이 있다. 그렇지만 또 매일 일기예보를 보며 듣기에 그다지 낯설지는 않은데 이 단어들이 뭘까 생각하다 결국 결론으로 직행한다. 그래서 오늘 비가 온다는 거야? 안 온다는 거야?


2.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장마가 지는 6주 동안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가 다시 살아 돌아와 두 번째 사랑을 겪게 되는 로맨스다. 두 시간 동안 비는 쉼 없이 내리는데 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비를 본 적이 있을까 싶었다. 비가 그치면 떠난다는 이를 바라며 비가 그치지 않기를 얼마나 바랬던가. 이 영화는 한국에서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


3. 그러고 보면 날씨만큼 과학의 영역에 속하지만 그 결과물이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는 것도 없다. 슈퍼컴퓨터는 건조한 글자로 오늘 비가 온다고 예측하지만, 비가 내린 오늘 우리의 점심은 파전에 막걸리로 바뀐다. 비 오는 날 문득 누군가가 갑자기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언젠가 과학이 더 발달하면 날씨도 인간이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 오는 날의 음악까지는 컴퓨터가 어떻게 할 수 없지 않을까.


4. 기상학자의 날씨, 그리고 음악 이야기는 그래서 흥미롭다. 날씨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한다. 그 변화들에는 일정한 운율이 있다. 때론 잔잔하게, 때론 강력하게. 그 리듬을 저자는 음악에 빗대어 들려준다. 때론 왈츠로 때론 강력한 변주곡으로. 과학시간에 들어온 재미없는 날씨 이야기와 문학 시간에 나 나올 법한 갬성적인 이야기들을 음악을 매개로 자유롭게 오가며 풀어내는 저자의 내공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처음이라 좀 신선하기도 했다. 


5. 날씨와 음악의 대화. 콜라보가 대세인 요즘 이 둘의 교집합이 꽤 흥미로웠는데 읽을수록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문가의 포스가 문득 부럽기도 했다. 사회복지와 책, 마케팅과 고양이, NGO와 사진을 엮어낼 수 있는 능력이 내겐 있을까? 아직 멀었는가보다. 에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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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마들렌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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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걸 좋아한다. 읽는다는 행위는 내가 가장 익숙하고 편한 행위다. 퇴근 후 소파에 앉아 작은 불을 켜고 읽어야 하는 숙제 같은 책을 읽는다, 출퇴근하는 길엔 스마트폰으로 어제 있었던 뉴스를 읽는다, 대구와 서울을 오가는 기차에서 전자책을 꺼내 미뤄둔 읽고 싶었던 책을 읽는다. 이 모든 행위는 내가 고른 책을 읽고 보통 예측 가능한 책을 읽기에 심심할지언정 언제나 편안히 기 마련이다. 이야기는 생각대로 흘러가고 예외를 두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 첫장 부터 강렬했는데 아주 끝까지 마음 쫄깃하게 했다. 자기 전 잠깐 읽고 자야지 했는데 결국 끝까지 보고 그날 잠들지 못했다. 뭐랄까. 와 근데 이걸 한 사람이 썼다고???


미스터리, SF, 로맨스, 드라마? 여하튼 딱히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여러 장르의 단편들이 연타로 내려 꽂히는데 읽다 보면 훅 빠져들어 꽤 빠져나오기 힘들다. 호흡이 짧은 단편 소설들의 모음인데도 그랬다. 요즘이야 디지털 싱글이 대세라지만 예전에 정성 들여 만든 정규앨범을 듣다 보면 1번부터 10번까지 순서와 감정까지 생각하여 만든 라인업에 음악을 듣다 그만 울음이 터져 나왔던 언젠가가 생각나기도 했다. 좀비 이야기로 포문을 여는 그의 글은 트랜스젠더, 여성의 노화, 자아 분열, 계급, 성적 욕망, 애도 등 한 글에 담기도 힘든 소재들을 다양한 문체로 그려낸다. 그리고 일곱 개의 이야기는 묘하게 한군데 모여 사람을 그려낸다.


읽는 건 하룻밤이었지만 며칠을 이 책과 박서련 작가를 생각했다. 디스토피아에서 살아남는 게 쉬울까 지금 내가 선 곳에서 살아남는 게 쉬울까. 결론은 둘 다 어렵고 어쨌거나 우리는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는 조금 고상하고 많이 상스럽고

쓸데없이 비장하며

매우 구체적으로 실없는 농담이다.


작가는 이렇게 책을 닫는다.


내내 이대로일 거라 믿는 마음과 영영 이대로일까 두려워하는 마음. 어느 쪽이 낙관이고 어느 쪽이 비관인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나는 살아 있다.

가끔은 믿어지지 않지만 정말로 그렇다. 


어쨌거나 살자. 나도,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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