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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마들렌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평점 :
읽는 걸 좋아한다. 읽는다는 행위는 내가 가장 익숙하고 편한 행위다. 퇴근 후 소파에 앉아 작은 불을 켜고 읽어야 하는 숙제 같은 책을 읽는다, 출퇴근하는 길엔 스마트폰으로 어제 있었던 뉴스를 읽는다, 대구와 서울을 오가는 기차에서 전자책을 꺼내 미뤄둔 읽고 싶었던 책을 읽는다. 이 모든 행위는 내가 고른 책을 읽고 보통 예측 가능한 책을 읽기에 심심할지언정 언제나 편안히 기 마련이다. 이야기는 생각대로 흘러가고 예외를 두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 첫장 부터 강렬했는데 아주 끝까지 마음 쫄깃하게 했다. 자기 전 잠깐 읽고 자야지 했는데 결국 끝까지 보고 그날 잠들지 못했다. 뭐랄까. 와 근데 이걸 한 사람이 썼다고???
미스터리, SF, 로맨스, 드라마? 여하튼 딱히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여러 장르의 단편들이 연타로 내려 꽂히는데 읽다 보면 훅 빠져들어 꽤 빠져나오기 힘들다. 호흡이 짧은 단편 소설들의 모음인데도 그랬다. 요즘이야 디지털 싱글이 대세라지만 예전에 정성 들여 만든 정규앨범을 듣다 보면 1번부터 10번까지 순서와 감정까지 생각하여 만든 라인업에 음악을 듣다 그만 울음이 터져 나왔던 언젠가가 생각나기도 했다. 좀비 이야기로 포문을 여는 그의 글은 트랜스젠더, 여성의 노화, 자아 분열, 계급, 성적 욕망, 애도 등 한 글에 담기도 힘든 소재들을 다양한 문체로 그려낸다. 그리고 일곱 개의 이야기는 묘하게 한군데 모여 사람을 그려낸다.
읽는 건 하룻밤이었지만 며칠을 이 책과 박서련 작가를 생각했다. 디스토피아에서 살아남는 게 쉬울까 지금 내가 선 곳에서 살아남는 게 쉬울까. 결론은 둘 다 어렵고 어쨌거나 우리는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는 조금 고상하고 많이 상스럽고
쓸데없이 비장하며
매우 구체적으로 실없는 농담이다.
작가는 이렇게 책을 닫는다.
내내 이대로일 거라 믿는 마음과 영영 이대로일까 두려워하는 마음. 어느 쪽이 낙관이고 어느 쪽이 비관인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나는 살아 있다.
가끔은 믿어지지 않지만 정말로 그렇다.
어쨌거나 살자. 나도, 당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