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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내가 원한 것
서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책을 읽다 몇 번이나 글쓴이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서하나.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어딘가에 꼭 적어두고 싶어졌다.
첫 장을 읽는 순간부터 뭐랄까 감각이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참 오랜만에 글을 읽으며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을 꼭꼭 씹어 삼키듯 읽다 보면, 혀끝에 남는 여운이 오래도록 맴돈다.
이건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기도 했다.
한 번쯤 이렇게 써보고 싶다고, 하지만 감히 손이 닿지 않아 부러움만 쌓아왔던 그런 글.
책을 읽으며 여름의 다양한 얼굴을 계속 떠올렸다.
어떤 글은 꿉꿉하고 숨이 턱턱 막히는 반지하 자취방의 여름을 그렸다.
작은 선풍기가 허공을 허무하게 긁어대는 소리, 눅눅한 침대 시트의 감촉, 창밖 골목을 타고 스며드는 볕 냄새.
어떤 글은 반대로 시원하고 뻥 뚫린 바닷가의 여름은 파도와 바람, 햇살이 뒤섞여 속을 한 번에 비워낸다.
또 어떤글은 이국의 어느 도시에서 맞이하는 낯선 여름을 그려주었다.
언어도 풍경도 어색한 그곳에서 나는 지도 한장 꼭 쥐고 어지러이 시장 한 가운데 서있다.
그런가하면 글은 그 여름에만 듣던 음악을 떠올리게 했다.
쿨이나 비치보이즈의 같이 마치 당장이라도 떠나야 할 것 같은 음악들부터
이름도 잘 모르는 어느 재즈 연주를 빗소리와 함께 들려주기도 했다.
거품이 입술을 감싸는 생맥주의 첫 모금과
거대한 얼음이 둥둥 떠 있는 위스키 한 잔.
잘 어울리지 않는 내가 지나온 여름의 모든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듯 읽혔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이거다.
우리는 흔히 ‘열심히 하라’는 말 속에서 살아간다. 나 역시 그 말에 길들여져, 뭐든 조금이라도 게을러지면 불안해했다.
그런데 이 책의 이야기들은 느슨함과 헤이함에 관해 우리게 들려준다.
그냥 그 계절에 머물러 있어도 된다는 허락. 맞다. 여름은 그런 계절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계절.
한번쯤은 그렇게 보내도 괜찮은 계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내도록 창밖으로 빗방울이 거세게 내린다.
눅눅함에 괜스레 내 지난 여름들을 더듬어본다.
나도 지금 내 아이처럼 부모 품에 안겨 보냈을 여름이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여행지로 향하던 여름이 있었고,
하루 종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만 읽던 여름이 있었다.
에어컨 밑에서 마감에 쫓기던 여름도,
휴가지에서 정신없이 키보드만 두드리던 여름도 있었다.
그렇게 흘려보낸 여름들이 어느새 마흔 번이 지났다.
그 시간 속에서 어떤 여름은 유난히 찬란했고, 또 어떤 여름은 묵직하게 내 마음을 짓눌렀다.
올여름 역시 그렇게 하나의 조각이 되어 기억 속 어딘가에 있겠지.
그리고 나는 이 책을 기억하며 아마도 어느날 빗소리를 들을 때 문득 지금 이 작은 카페를 떠올릴 것이다.
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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