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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의 가성비 - 대한민국, 누가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
정욱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평점 :
평화가 답이라는 건 알겠는데
한미군사훈련, 전시작전통제권, 확장억제, 자주국방.
누군가는 뉴스에서 수도 없이 들었겠지만 이런 단어가 여전히 낯선 이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책이다.
아니 낯설지 않아도 조금 어렵다. 평화가 답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어려운 건 어려운거다.
<자주국방의 가성비>를 읽고 난 뒤의 감상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딱 이 정도일 것 같다.
사실 한반도 평화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다.
이 땅에서 전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고, 남북의 긴장은 외교와 경제, 일상의 불안에 계속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평화라는 말은 고루하게 들린다.
국방이라는 단어는 무기 도입, 군사훈련, 핵 위협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가 아니라 청춘들의 무용담으로 소비된다.
우리는 왜 싸우고 있고, 또 왜 싸우지 않아야 하는지, 전쟁을 피하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 누군가는 꾸준히 말하지만 누군가는 꾸준히 듣지 않는다.
중요한 이야기가 전문가의 언어 안에서만 오간다면 시민은 찬성과 반대 중 하나를 고를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난감함은 그래서 내용의 난도만을 뜻하지는 않는 것 같다.
자주국방은 그렇게 쉬운 단어가 아니다
자주국방이란 우리 나라를 우리 힘으로 지키자는 뜻처럼 보인다.
이 당연한 이야기가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우리나라, 아니 동아시아 전체는 늘 예외인 이야기가 되었다.
이미 전쟁이 끝난지 70년이 지났고 한국도 여느 국가 못지 않은 국방비와 군사력을 키웠지만, 전쟁이 벌어졌을 때 우리 군을 지휘할 권한은 아직도 한미연합 체계에 묶여 있다.
강한 무기를 갖추었지만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의존은 커지는 모순이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깨놓고 해버린다.
돈을 더 쓰고 무기를 더 사면 언젠가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 그는 역대 정부의 핵 개발 구상과 전작권 환수 과정을 따라가며 설명해준다.
무엇을 위협으로 정하고 어디까지 방어할지에 따라 우리에게 필요한 힘과 비용은 달라진다.
국방에도 가성비가 필요하다
맞다. 국방에도 가성비가 필요하다.
저자가 계산하는 가성비는 무기의 가격표보다 넓은 개념이다.
자꾸만 한정된 국가 예산을 군사비에 더 배분하면 복지와 돌봄, 기후위기 대응에 쓸 몫은 줄어든다.
이제 자주 국방을 핑계로 국방비를 무한 증액할 것이 아니라 전쟁 가능성과 군비 수요를 함께 낮출 필요가 있다.
책은 선제공격보다 반격 능력에 집중하고, 국방의 범위를 실제 행정력이 미치는 지역으로 설정하며, 흡수통일 계획을 재검토하자고 제안한다.
꽤 논쟁적인 주장이다.
북핵 위협 앞에서 관계 개선이 안보를 보장할 수 있느냐는 반론도 피하기 어렵다.
이에 저자는 군사적 억제를 없애자는 대신 자주국방과 평화공존이 만나는 목표를 ‘전쟁 방지’ 즉 '평화협정'으로 좁혀 정한다.
위협이 줄면 대응 비용도 줄어든다.
얼핏 당연한 계산인데 우리는 더 비싼 무기와 강한 훈련을 가져야만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전쟁을 막건 강한 힘보다 어쩌면 외교와 신뢰 구축이 더 가성비 있는 전략일 수 있다.
그리고 지금같은 경제위기의 시대에 이는 또 다른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어렵다
서두에 언급했듯 이 책은 이 이야기에 관심없는 이들에게는 어렵다.
전작권 전환의 시점, 정부별 정책 변화, 핵 억제와 확장억제의 차이, 헌법 영토조항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범위를 따라가려면 상당한 집중과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모르긴 몰라도 매일 뉴스를 들여다 보는 이들도 저자의 논리를 곧바로 소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여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일수도 있지만 입문자용 안내서라기보다 정책 논쟁에 참여하기 위한 압축 강의나 칼럼으로 읽혔다.
핵심 용어를 먼저 풀어 주는 설명이나 쟁점별 찬반 비교, 정부별 흐름을 보여 주는 연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고 저자의 제안이 논쟁적인 만큼 반대 논리를 조금 더 충분히 소개했다면 설득력도 커졌을 것 같다.
그렇지만 필요한 책
책을 덮으며 한 가지 바람이 먼저 떠올랐다.
한반도 평화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임에도 언제부턴가 고루한 이야기로 들리는데, 이런 이야기 좀 더 재미있게 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자주국방의 가성비>는 필요한 책이다.
하지만 이런 내 바람에 완전히 답하는 책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강한 군대는 반드시 더 많은 무기에서 시작하는가.
우리 힘으로 지킨다는 말은 누구의 판단으로 어디까지 지킨다는 뜻인가.
평화를 위한 돈은 왜 국방을 위한 돈보다 쉽게 낭비로 취급되는가.
라는 질문에 한번쯤 의문을 품었던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정독을 권한다.
이런 이슈가 어렵기에 판단을 정치인이나 전문가에게 전부 맡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런 책은 필요하다.
우리가 곧잘 듣는 평화는 이상적인 구호이고 국방은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구분부터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다.
전쟁을 피하고 시민의 삶을 지키는 것이 국방의 목적이라면, 평화협정과 군비 통제도 이제는 이 국방의 계산표 안에 들어와야 한다.
우리에게 남은 예산도 시간도 사실은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