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
신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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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앞에서 만나는 균열


좋은 서평을 쓴다는 건 무엇일까.

늘 고민하는데 쉽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부러웠다.


어떻게 하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니 나도 어쩌면 이런 글을 계속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나의 서평은 블로그 브런치 인스타 등에 올라간다.

이미 알고리즘이 지배해 버린 채널에서 선택받기 위해, 언젠가부터 내 글은 어느 정도의 모양을 포기한지 오래다.

그저 SEO에 걸리기 위해 GEO에 선택받기 위해 AI 선생님 가르침을 받고 내 글을 고친다.


이따금 현타가 올 때도 있다.

이게 맞나.

그러나 읽히지 않는 글은 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에 만난 글, 아니 이 책은 또 내 머리를 퉁치고야 말았다.

맞다. 이게 글이다.


일단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신유진의 <나를 균열내기>를 주저 없이 추천한다.


저자는 뒤라스의 감각과 욕망, 카뮈의 부조리와 실존, 에르노의 자기 해부와 기억의 서사 등 프랑스 작가들의 문장을 빌려 우리가 흔들리고 부서지고 다시 시작하는 삶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문학을 통해 일어나는 균열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세우는 여정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균열의 발견 – 고독과 부조리, 이름 없는 여백


첫 번째 장 <균열의 발견>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감정들에 관한 이야기다. 고독, 상실, 공허함 같은 것들 말이다.


우리는 이런 감정을 만나면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그 안을 들여다보자고 말한다. 카뮈와 뒤라스의 작품 속 인물들은 삶의 부조리와 사랑의 실패를 피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처를 극복하기보다 그 안에서 자신을 바라본다.


저자는 이런 순간을 '균열'이라 부른다. 벽에 금이 가면 무너질 것 같지만, 때로는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오기도 한다. 삶이 흔들리는 순간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원하는가 같은 질문들은 대개 평온한 시기가 아니라 균열의 순간에 시작된다.


결국 이 장은 고독과 상실을 실패가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바라본다.



해체와 붕괴 – 언어와 계급, 몸의 기억


2부는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여러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지 말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 계급의 경험, 사용하는 언어, 몸에 남은 상처와 습관은 모두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이것은 일관적이지 않다.

우리는 젠틀하면서도 비겁하고,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이렇게 여러 시간과 경험이 겹쳐진 우리는 무엇이라 정의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것을 어떤 존재로 규정하게 될 때,

어린 시절 속했던 세계와 지금 살아가는 세계가 충돌할 때, 익숙했던 언어와 가치관이 흔들릴 때 우리는 혼란을 겪는다.

하지만 저자는 이 모든 순간을 실패가 아닌 자신을 다시 읽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유예의 순간 – 창작과 욕망, 실패의 미학


3부 <유예의 순간>은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삶에는 성공인지 실패인지, 끝난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

저자는 그런 시간을 유예라고 부른다.


쿤데라는 인간의 삶을 거창한 철학이나 신화가 아니라 작고 우스운 것들에서 다시 바라본다.

이를테면 배꼽 같은 것.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소한 곳에서 오히려 인간의 근원을 묻는다.

슬리마니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욕망과 진실을 보여준다.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것들.

라가르스는 성공의 언어가 아니라 실패의 언어를 선택한다.


그의 인물들은 끝내 완벽하게 화해하지 못하고,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계속 어긋난다.

대신 실패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다시 말하고, 끝이 보이는데도 더 멀리 걸어간다.


저자는 그 모습에서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버팀을 발견한다.

그래서 이 장은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 삶의 태도를 이야기한다.



자아의 재구성 – 깨진 거울로 타자를 품다


마지막 4부는 흔들리고 부서진 이후 다시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인간이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살아가며 끊임없이 변하고, 기억을 새롭게 해석하며, 타인을 만나면서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된다.


페렉은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사물들을 바라본다. 너무 평범해서 잘 보지 않았던 것들. 방, 거리, 물건, 목록 같은 것들 말이다.

그는 그런 사소한 것들을 통해 묻는다. 우리는 정말 우리가 가진 것들 속에서 더 선명해지고 있을까. 아니면 그 많은 것들에 파묻혀 오히려 흐려지고 있는 걸까.


엘렌 식수는 언어 속에 숨어 있는 남성 중심의 질서를 흔든다. 우리가 당연하게 써온 말들이 어쩌면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질문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나를 설명하던 낡은 말들을 내려놓는 것이다.



균열 속에서 다시 나를 쓰기


이렇듯 <나를 균열내기>는 문학을 통해 ‘나’라는 존재의 균열을 발견하고, 해체하고, 유예하고, 재구성하는 여정을 담은 에세이다.

작가는 한 사람이 끝내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무엇을 부수고 다시 세울 수 있는지 탐색하며, 세계의 틈을 보는 일이 곧 문학이라는 믿음을 펼친다.

살짝 아쉬운 점은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한 사례가 많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다소 거리감 있게 느껴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읽고 쓰는 일만이 나의 막을 부수고 나를 건져 올리는 일"이라는 이라며 이 일을 소개한다.

균열은 파괴가 아니라 가능성이며, 무너진 자아의 잔해 속에서 다른 삶은 시작된다.


어쩌면 좋은 서평을 쓰는 일 또한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분절된 독서의 경험을 모아 글이라는 그릇에 담는 과정,

남들이 다 그렇다고 하는 것에 균열 내고 다시 만드는 일.


어렵지만 한 번 더 용기를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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