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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
고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평점 :
1.책을 펼치기 전, 다시 꺼내본 질문
아버지 없는 아들들이라..
책을 읽기 전부터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아버지’라는 단어는 여전히 무겁고, '여성성'이라는 단어와 달리 '남성성’이라는 말은 쉬 정의되지 않는다.
서문에서 저자는 묻는다.
'오랜 세월 가부장제와 그 병리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제 물음을 달리해보자. 남성성의 본질적 힘과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마음이 놓였다고 해야 하나.
여성성과 남성성을 이야기할 때 늘 죄인의 자리에 가 있던 남성성에 대해 그는 새롭게 정의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그리스 신화 속 남자들을 따라나설 채비가 되었다.
2.잡아먹는 아버지를 지나, 다시 아버지
책의 신화 속 아버지들은 잔인하다.
자식을 삼키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 그것이 자식일지언정 괴롭히고 죽이기까지 한다.
우리게 익숙한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 또한 마찬가지다.
찌질하고 불완전하며, 애초에 이런 양반이 어떻게 신이 되었는지 신기하기조차 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그런 그의 리더십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인정한다.
여성성을 받아들이고 다양한 존재들과 공존하는 리더.
그조차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기에,
균열을 끌어안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아버지로서의 제우스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랬다.
어쩌면 우리가 필요했던 건 완벽한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파괴하지 않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고.
3.상처를 다루는 방식이 인간을 만든다
헤파이스토스는 버려진 존재, 부족한 존재,
그리고 그 결핍을 숨길 수 없는 존재다.
사실 이는 우리 현대인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매번 비교하고 무너지고 마는 부족한 우리는
그 결핍을 마음 깊숙이 감정을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책은 말한다.
같은 상처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이 된다고.
결핍이 분노로 흘러가면 과장된 허세가 되지만
이 결함이 창조 에너지로 승화되면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헤파이스토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성과 우연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것
이성과 합리의 신 아폴론.
우리는 어쩌면 너무 오래 아폴론처럼 살아왔다.
명확하게, 논리적으로, 틀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삶은 늘 그 틀을 벗어나고야 만다.
그리고 책은 그 틀을 넘나드는 존재
설명되지 않는 것들을 기꺼이 품는 존재인 헤르메스를 함께 이야기한다.
물론 우리 삶의 기준과 원칙, 이성은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
하지만 쉽게 실패라 표현되는 우리 생의 많은 순간들.
그것들을 삶의 흐름으로 읽어내는 태도가 우리에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지금보다 조금 더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틀렸다고 생각했던 선택들이 지금은 옳은 순간들을 꽤 많이 경험한다.
그리고 그 수많은 실패들이 어쩌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을지도 모른다.
4.내려가야 만나는 것들, 그리고 우리가 되어가는 과정
마지막 장에서 책은 우리를 지하세계 죽음의 신 하데스에게로 데려간다.
우리는 모두 한 번쯤은 삶의 위기를 앞에 마주 선다.
그곳이 우리가 하데스와 마주할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자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살아가는 현대인을 비판하며
하데스를 만나 방황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는 이야기를 이 책의 마지막에 배치함으로
우리에게 실패란, 방황이란 아니 어쩌면 삶이라는 질문을 다시 부여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여섯 명의 남성 신들의 모습을 통해 결국 저자가 말하고 싶은 건
잃어버린 이 남성의 질문들을 되찾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거창한 답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 태도,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선,
내 안의 균열을 받아들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고 그는 말한다.
"남성성의 본질에 대한 저마다의 답을 구하려 매진할 때 두려움보다는 희망으로, 우려보다는 설렘으로 새 세상을 창조해 나가게 될 것이다."
책을 읽고 남자로 어떻게 이 땅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괜히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답은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다.
이 질문을 놓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반드시 우리는 더 좋은 남자 아니 더 좋은 인간이 되어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