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타고나는가 - 유전과 환경, 그리고 경험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케빈 J. 미첼 지음, 이현숙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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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의 추천이라니 믿지 말았어야 했다. 어쩌면 재밌겠다 싶었는데 뼛속까지 문송한 나에게 유전학과 뇌과학의 이야기는 멀고도 낯설었다. 그래도 책장을 덮기 좀 그랬다. 유전자 교과서 같은 책은 덮을라치면 반복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인간은 무엇을 타고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까지 스스로가 될 수 있는가. 사실 이 질문은 과학의 질문이 아니라 철학의 질문이가 우리 모두의 질문이다.


전반부는 인간 본성과 뇌의 구조 그리고 환경이 뇌의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차근차근 풀어낸다. 뇌의 가소성, 신경 발달의 원리, 유전 연구의 방법론 같은 이야기들이 어렵다면 그냥 눈으로만 읽자.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결국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살짝 졸리는 어떤 서론이라고 생각해도 괜찮겠다. 후반부로 넘어가면 성격 특성과 지능, 성별과 신경 발달 장애 같은 좀 더 우리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주제를 다룬다. 특이한 점은 과학자라는 포지션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본성과 양육이라는 오랜 논쟁에서 저자는 어느 한쪽의 절대성을 경계하며 균형을 잡으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현대 유전학은 종종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식의 단순한 신념으로 오해된다. 그러나 저자는 단호하다. 유전자는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지만 나의 미래까지 결정하지는 않는다. 즉, 우리는 타고난 어떤 것에 의해 출발선을 가지지만 걸어가는 길과 방향은 여전히 우리에게 열려 있다는 것이다.

즉 사람은 서로 다르게 태어나며, 그 차이는 계속 이어진다. 누군가는 세상에 쉽게 적응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하루하루 버티는 것조차 벅차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우리에게 이런 차이를 부정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오히려 그 차이를 환영하라고 그 다양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받아들이라고.


생각해 보면 내 삶도 그랬다. 나는 늘 앞에서 이끄는 이들은 부러워했고 그 모임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의 성격을 탓하기도 했다. 때로는 불안하고 충동적인 모습으로 스스로를 더 위축되게 만들었고 한없이 소심해진 순간에는 내가 싫어졌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이에게 말한다. 당신이 느끼는 그 복잡함 자체가 살아 있는 증거라고. 당신은 바뀌거나 또 다른 누군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결국 중요한 건 나를 바꾸려는 억지가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며 거기서 비로소 힘이 생긴다고.


저자는 계속해서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본성과 양육의 논쟁은 우생학을 극단으로 치닫게 해 최근 다시 불붙기 시작한 극단적 민족주의를 주도하기도 했다. 유전학의 성과는 과학에 유의미한 발자취를 남겼지만 동시에 '유전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위험한 신념을 낳기도 했다.

그래서 저자는 다시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타고나는가, 그리고 무엇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가.


분명히 과학 책인데 내가 모르는 것들 사이로 온기가 흘렀다. 유전자의 차가운 언어 속에서도 인간을 향한 이해와 환대는 흐르고 있다. 결국 이 책은 다름을 부정하지 말고, 오히려 환영하라고 말한다.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맞이하는 태도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고.

누가 과학이 차갑다고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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