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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 영어교실
신수영 지음 / 롤러코스터 / 2024년 8월
평점 :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게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버린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어쩌면 그 별이 우리 곁에 하나씩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영어에 관련된 내용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집어 든 책은 한 교사가 고등학교 현장에서 7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온 기록이었다. 책을 펼친 의도와는 사뭇 달랐지만 그래도 즐겁게 읽던 학교 이야기를 닫으며 결국 저자가 교직을 떠났다는 이야기에 괜히 마음이 좀 그랬다. 진심을 다한 사람의 끝은 늘 좋을 거라는 건 어쩌면 영화나 드라마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일까.
영어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저자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두 번째 영혼을 얻는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왜 나는 학창 시절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선생님이 없었을까. 살아보니 영어는 꼭 필요하다. 취업이나 승진 같은 부차적 용도를 제외하고서라도 언어는 다른 세상과 연결되는 길을 열어주는 도구다. 특히나 요즘 같은 세상에 영어로 된 콘텐츠를 볼 수 있다면 그의 세계는 몇 배는 넓어진다. 고작 오천만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수십억의 삶을 레퍼토리로 받을 수 있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왜 우리는 수능 말고 이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을까.
저자는 특성화고에서는 영화 <레미제라블>을 함께 보고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를 함께 불렀다. 일반고에서는 수능을 넘어 고등학생들의 수면 부족 문제, 태평양의 쓰레기 섬,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이유 등 아이들의 삶과 맞닿은 언어의 감각을 아이들에게 전해주었다. 대학도 물론 중요하지만 선생님은 언어가 시험지를 넘어 어떻게 우리 삶에 다가오는지 이해하길 원했고 그 진심은 아이들에게 가 닿았다. 교실 안의 공기는 바뀌었고 나오는 건 하품뿐인 수업 시간은 즐거워졌다.
아마 학교뿐 아니라 온 세상이 가장 깜깜했던 시기인 코로나19의 기록도 새로웠다. 교실은 텅 비었고 선생님은 수업 영상을 찍으며 아이들을 기다렸다. 이 시간은 교사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고통스러운 공백이었을 텐데 선생님은 아이들을 기다렸고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팬데믹은 모두에게 학교가 단지 공부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또래와 부딪히며 사회성을 배우고 최소한의 안전망을 확보하는 공동체임을 가르쳐 주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아주 잠깐 메타버스에서 모든 게 가능할 것처럼 살았지만 엔데믹 이후 모두가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자리로 돌아갔다.
특성화고와 일반고 그리고 코로나19, 환경은 변했고 아이들을 향한 마음만 남았다. 마치 일기장 같은 그의 기록들을 함께 보며 꽤 따뜻해졌다.
예전부터 학창 시절을 다룬 책들을 좋아했는데 아이들은 학교는 역시나 이상한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