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전쟁 - 제국주의, 노예무역, 디아스포라로 쓰여진 설탕 잔혹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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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가장 즐겁게 배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마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 혹은 가까운 이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일게다. 교과서 속 건조한 문장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가 더 재미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어렵게 이야기하면 역사라고 불리는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 안에는 늘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혹은 절대 반복해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가 스며 있다. 이 책도 그렇다. 조금 어렵게 접근하면 역사책이다.


책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설탕이 어떻게 전 세계로 퍼져 나갔는지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러나 이야기는 단순히 식재료의 유통사나 식문화의 변천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달콤함의 뒤에 숨은 제국주의의 탐욕, 노예제도의 잔혹함, 원주민 문화의 파괴, 그리고 산업화의 그늘까지. 오늘날 거의 모든 음식에 들어가는 설탕은 사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착취와 지배의 산물이기도 했다.


유럽 열강이 설탕을 차지하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의 수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팔아넘겼고, 플랜테이션 농장에 일어난 폭력의 일상. 그들의 노동으로 채워진 배가 대서양을 오가며 설탕을 실어 나르고 동시에 또 다른 이들을 잡아오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제국주의를 등에 업은 설탕은 권력과 지배의 수단이었고 달콤함은 그렇게 잔혹함 위에 세워졌다.


나도 몰랐던 사실은 이 설탕 산업이 우리 민족의 역사와도 깊이 얽혀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이 망하고 하와이로 떠났던 조선인 이민자들의 여정 또한 설탕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들이 설탕 농장에서 혹독한 노동을 감내하며 만리타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다는 이야기는 따로 자료를 찾아보고 싶을 정도로 아팠다. 그랬다. 우리나라도 그 수탈의 역사에서 비켜가기 힘든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들 한다. 설탕 이야기에 무슨 역사씩이나 가느냐고도 할 수 있지만 이 작고 평범한 결정체 하나가 인류의 욕망과 권력, 폭력과 눈물, 그리고 이주와 생존의 역사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보고 있자니 쉽게 집어넣는 설탕 한 스푼이 꽤 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일상의 당연함이 사실은 누군가의 피와 땀 고통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까먹는다. 비단 설탕뿐 일까. 커피, 초콜릿 우리가 쉽게 집어 드는 거의 모든 것들이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무겁기만 한 건 아니다. 저자가 세계 곳곳을 누비며 들려주는 이야기는 흥미롭고 쉽게 읽힌다. 아프리카, 브라질, 쿠바 등 이름만 들어도 낯선 장소들이 설탕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연결되고, 낯설었던 지명이 달콤한 흔적과 연결되며, 어느새 머릿속에 설탕이 떠다니는 세계사의 지도 하나가 새롭게 그려진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역사 이야기는 이렇게 꽤 훌륭한 교양서가 된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작업이 아니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성찰하기 위한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역사를 박제된 사실로만 받아들이고 만다. 책은 그 틀을 깨고, 우리가 일상에서 늘 접하는 작은 사물을 통해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설탕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인류가 저지른 일들을 직시하게 하는 순간 우리 눈앞의 세계지도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과연 이 달콤한 역사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여전히 전 세계 곳곳에서 노동 착취와 불평등은 이어지고 여전히 누군가의 풍요는 또 다른 누군가의 결핍 위에 세워진다. 책이 던지는 이 질문은 꽤나 묵직하다. 달콤한 설탕 한 스푼을 입에 넣을 때마다 책은 묻는다. 그 결핍에 대해 여전히 침묵하고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것인가. 이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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