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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의 습격 -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관하여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원진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6월
평점 :
나의 오랜 친구 <드래곤볼> 속 손오공과 그의 친구들은 죽기 직전까지까지 그 극한의 상황을 넘기고 난 후에는 그 고비를 넘어선 후에는 소위 한 단계 레벨업하게 된다. 물론 우리 중 다수는 레벨업을 위해 살지는 않는다. 레벨업 따위와 상관없는 이들에게 도전과 불편함은 우리가 피해야만 하는 제 1과제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SNS와 각종 공부를 통해 매일 레벨업을 외치는 이들의 공부가 사실은 우리의 렙업과 반대되는 행위였다면?
책이 던지는 묵직한 변화구는 제법 힘이 있다. 따분함, 배고픔, 죽음. 노동 같은 것들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어떠한가?
책의 첫 번째 챕터의 제목은 "아주 힘들어야 한다. 그러나 죽지 않아야 한다"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챕터의 주제는 따분함, 배고픔, 죽음, 노동같이 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는 것들뿐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불편함이야말로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 말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인간을 살아 있게 하고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편안함이 아닌 불편함이라고 생각해왔다. 나의 삶은 내가 초대한 불편들로 채워져 있고 나는 그 속에서 편안하다. 불편함은 우리의 감각을 깨우고 우리를 진정으로 살아 있게 한다."
이 추천사를 펴들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아이와 함께 씨름하는 시간 혹은 어떤 과제를 붙들고 끝내 해결하지 못할 것 같은 난제를 붙잡고 씨름하던 시간. 그 불편한 순간들이 지나고 나면 언제나 나는 깊어지고 단단해졌다. 결국 나를 성장하게 했던 건 편안한 휴식이 아니라 감당하기 버거운 불편함이었던 것 같다.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 내가 피하고만 있는 불편은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나를 위해 기꺼이 그 불편을 초대할 용기가 있는가?
전체적으로 불편함에 관한 이야기지만 현대인의 문제가 되어버린 따분함과 외로움에 대한 저자의 통찰도 꽤 깊고 단단하다. 인류는 인터넷을 통해 80억 명에 가까운 사람들과 연결되었음에도 외로움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차마 제목도 볼 수 없는 수많은 콘텐츠의 홍수 속에 진짜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러니 오히려 외롭지 않으려면 혼자가 되는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저자는 말한다.
"따분함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따분함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따분함을 좋게도, 나쁘게도 만드는 겁니다."
읽던 책을 내려놓고 한참이나 멍하게 있었다. 우리가 멍 때리기라고 부르는 그 시간은 결코 공허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이 단순해지고 잊고 있던 나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우리가 도망치는 따분함 속에 사실은 삶의 깊은 결이 숨어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누가 나를 봐달라고 바깥만 바라보며 사는 우리에게 저자는 '내가 나를 지켜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결국 중요한 건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불편을 스스로 선택할 것인가? 아니 굳이 그런 거 없이 지금처럼 살아도 괜찮지 않은가?
어떤 삶이든 본인이 선택할 문제지만 단단해지기 위해 혹은 반대의 경우라도 스마트폰을 이제는 내려놓을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