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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라는 위로 - 불안과 두려움을 지난 화가들이 건네는 100개의 명화
이다(윤성희) 지음 / 빅피시 / 2024년 4월
평점 :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궁에서 클림트의 키스 원화를 보았다. 그림을 잘 모르지만 저 그림이 클림트란 사람이 그린 키스라는 그림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그림 앞에서 있었지만 순간 나도 뭉클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유명한 그림 앞에 선 플라시보 같은거 였는지, 아니면 진짜로 그 그림이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그림에는 힘이 있다는 걸, 이 그림은 수백 년 동안 이 그림 앞에선 이들의 마음을 만지고 있었다는 점은 꽤나 명확해졌다. 한 번도 관심이 없던 미술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한국으로 돌아와 혼자 책을 보며 그림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는 척을 하고 싶었는데 공부를 하다 보니 정말로 그림을 알고 싶어졌다.
책에는 19명의 화가의 인생이 소개되어 있다. 그저 멋지기만 할 것 같았던 화가의 삶이 생각처럼 순탄치 않았다는 건 그렇게 새롭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처럼 가난했고, 자존감이 낮았으며, 자주 사랑에 실패했다. 타의에 의해 평생을 떠돌다 생을 달리한 이들도 있고, 생전에는 그저 그런 삼류 화가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죽고 난 이후에야 그 빛을 보기 시작한 경우도 많다. 물론 평생을 유복한 환경에서 그림만 그리다 간 이들도 있다.
이들의 삶에 대한 짧은 코멘트와 함께 이들의 그림 100여 점이 소개되어 있다. 그림들은 마치 미술관에 걸려있는 것처럼 각자의 소제목을 달고 어떤 그림은 한 페이지 가득, 어떤 그림은 액자처럼 걸려 있었다. 재미있는 건 나 역시 미술관에 온 것처럼 어떤 그림은 스쳐 지나가기도, 또 어떤 그림은 문진을 눌러놓고 한동안 쳐다보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모네의 그림이 책상 한편에 펼쳐져 있다.
책은 '지나간 일은 흘러가도록 두세요'라는 그랜마 모저스의 그림으로 시작해 '앞으로의 시간을 다정하게 바라보기 위하여'라는 알폰소 무하의 그림으로 끝난다. 풍경화로 시작한 책은 인간의 전신을 그려낸 인물화로 닫는다. "나는 예술을 위한 예술보다 사람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길 바란다"라는 알폰소 무하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글을 쓰기 위해 두어 번 책을 펼쳤다. 여전히 어떤 그림은 스쳐갔고, 또 어떤 그림 앞에선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꽤 많은 단어들을 떠올렸고, 여러 문장들을 썼다 지웠다. 하지만 여전히 클림트의 그림 앞에 섰을 때의 그 뭉클함을 표현하기는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도 부족했다.
다만 사람을 위한 그림을 그리겠다는 이야기만이 오래도록 남았다. 19명의 화가들은 아마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 의도가 무엇이던 그 그림을 마주하는 우리는 아니 나는 사람을 본다. 나는 한동안 그림을 보고, 미술관을 조금 더 찾아다닐 것 같다. 아직은 표현하기 어렵지만 결국은 표현해 내기 위해.
'좋다'를 넘어 그림이 주는 위로를, 미술의 진짜 모습을 언젠가는 나도 만족할 수 있는 글로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