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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듀엣
김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고스트 듀엣'이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읽다 보니 알게 되었다. 11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에는 진짜 귀신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귀신같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때론 홀로그램으로 소환되는 죽은 이들의 모습도 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들은 저마다 뜨겁게 사랑하고 뒤돌아선다. 몇몇 그 사랑이 이승에서 차마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더라도 그들은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마음으로 닿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최선을 다해 그에게 다가간다. 그렇게 닿을 수 없는 이에게로 가는 길에 만난 이들은 또 다른 연대의 가능성을 내비치며 산다. 살아간다.
11개의 단편은 이제 이야기가 시작되려나 싶으면 끝나고, 인물들의 이름을 외워갈 때쯤 멈춘다.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으며 마치 내가 귀신에 씌인 느낌이기도 했다. 내가 무얼 본 것인가? 책장을 아무리 되돌려봐도 내가 멈추는 지점은 똑같았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불친절하다. 저자가 멈춘 지점 이후에 일어날 일들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책을 덮고 잠자리에 누워 이야기를 하나씩 꺼냈다. 남은 이들은 어떤 삶을 영위했을지 생각했다. 나는 잠을 설치고 말았다. 그들의 행복을 빌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들이 행복하기에 쉽지만은 않은 세상이다.
“소수자 옹호라는 시적 사명을 올곧이 수행하며 자신만의 시 세계를 밀어붙였다”(신동엽문학상) “풍부한 인간의 삶과 감정과 이야기가 있고 사회적인 자의식이 독특한 방식으로 표명돼 있다”(김준성문학상)고 평가받은 저자는 그의 첫 단편소설집에서도 그의 사명을 다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좀 불편하기 읽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는 끝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밀어붙인다. 서두에 이야기했듯이 그가 말하는 귀신은 비단 죽은 자의 모습이 아니다.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못한 이들, 살고 싶으나 삶을 영유하지 못하는 이들을 생의 구석구석에서 찾아낸 저자는 끊임없이 그들에게 말을 건다. 포기하지 말라고. 함께 살아가자고.
책의 제목이기도 한 단편 <고스트 듀엣>에서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형우가 홀로그램으로 등장해 사랑하는 이 앞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첫 소설집을 낭독한다. 살아남은 이는 아마 평생 동안 그 홀로그램을 소환하여 그 소설을 읽고 또 읽을 것이다.
몇 번을 썼다 지웠다. 소설을 통해 고발하는 혐오와 차별, 폭력의 이야기를 오롯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오늘이기에 이 책을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조심스럽다.
"그의 얼굴을 왜인지 남겨진 인간의 표상으로 삼고 싶었다.
마음을 다해 잊고자 하는 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기억하고자 하는 그 얼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