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좋은 날 하자
나태주 지음 / 샘터사 / 2023년 1월
평점 :
코로나가 이 땅에 찾아온 해였다. 아니 정확히는 코로나라는 게 중국에서 발생했고 이 냄새도 증상도 없이 공기로 전해지는 전염병이 우리나라에도 들어온다고 이야기 될 때였다. 일하는 기관의 지방 사업장에서 '나태주' 시인과 조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왔고, 시인을 아프리카로 모시고 가 그의 시가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노래하게 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이 건을 메이드 하려 꽤 노력했었는데 코로나는 그해 계획한 모든 것을 막아버렸다. 아직도 가능성이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평생을 만나지 못할 것 같던, 존경하는 나태주 시인은 그렇게 잠깐 내게 다가왔다 멀어졌다. 그리고 몇 년 뒤 오늘 그의 책은 나와 연결되었고, 그의 책을 리뷰하려 들여다 보는데 그가 노래하는 좋은 날이 지구 반대편의 우리 아이들과 겹쳐 보였다. 좋은 날. 오랫동안 아프리카를 가보지 못했는데 올해는 출장이든 뭐든 꼭 가보고 싶어졌다.
오늘도 해가 떴으니
좋은 날 하자
오늘도 꽃이 피고
꽃 위로 바람이 지나고
그렇지, 새들도 울어주니
좋은 날 하자
더구나 멀리 내가 있으니
더욱 좋은 날 하자.
/ 좋은 날 하자
_나태주
행여 나태주 시인을 모를 이를 위해 덧붙이자면 저자와 제목은 몰라도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라는 <풀꽃>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시의 원작자이다. 시집은 단 시간에 읽는 게 아닌데 뭐가 그리 바쁜지 채 일주일이 안돼서 그의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6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루에 한 개씩 읽어낸 꼴이다.
시라는 게 그렇다. 어떤 날은 한 챕터를 통으로 읽으면서도 별 생각이 없던 날도 있었고, 어떤 날은 단어 하나에 꽂혀 위로받고 먹먹해하던 날도 있었다. '이리 온 안아줄게(자작나무 숲)' 라는 시구에 엉엉 울기도 했고, '서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공연스레(손하트)'라는 시구에 마음이 선득해지기도 했다.
소개 글에 써있듯 이제 79세를 맞이하는 노시인의 글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어떤 시는 50년 전 그가 등단하던 시기의 시같고, 또 어떤 시는 하상욱 시인의 시를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책 한 권을 통틀어 그가 사용하는 모든 단어에는 노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래 난 이 느낌이 참 좋았다.
SNS 글쓰기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 잠깐 소비되고 마는 글들이 SNS에 넘쳐나는 시대에 50년을 시를 써온 시인은 여전히 종이에 인쇄된 잉크로 우리에게 좋은 날을 권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그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어졌다. 잠시 잠깐 걸음을 멈추고, 노시인의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는 건 어떨까. 오늘도 해가 떴다. 그래 우리 좋은 날 하자.
* 쳅터마다 오요우 작가의 일러스트가 한장씩 날개장으로 접혀있는데 따로 찢어내 벽에 붙여둬야 하나 싶을정도로 좋다. 이 날개장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