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 일기 세라 망구소 에세이 2부작
세라 망구소 지음, 양미래 옮김 / 필로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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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을 그대로 출판물로 내는 작업은 <안네의 일기> 이후 누군가에 의해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사실 아주 잘 쓴 글이거나 시대상을 담아내는 기록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런 일기가 출판되더라고 팔릴 리 만무하다. 관음에 기인한 약간의 흥밋거리야 되겠지만 주제도 없이 그저 시간의 나열에 따라 뒤죽박죽된 글은 어떻게 읽어도 불친절하기 마련이다. 


모든 순간을 기록하려 했지만, 시간은 순간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순간을 포함하고 있다. 시간은 순간 말고도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래서 나는 텅 빈 시간처럼 보이는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려 애썼다.(p.9)


저자는 자신이 쓴 일기를 보다가, 기록된 것을 토대로 기록되지 않은 시간을 담으려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일기가 아니라 일기를 토대로 새로 쓴 작가의 기록이다. 나는 이 작업이 꽤 흥미로웠다. 작가 스스로도 밝히 듯이 ‘기록하지 않으면 그 삶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가지고 있는 작가는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겪으며 며칠 전의 기억과 기록에 관해 돌아보게 된다. 아마 그녀는 육아로 기록에 관한 물리적인 시간을 빼앗겼을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자라는 순간을 기록하려 애썼을 것이다. 이 와중에 어떤 시간들은 그녀의 선택으로 삭제되기도 한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늘 이런 질문을 해왔던 것 같다. 이렇게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제 나는 망각이 내가 삶에 지속적으로 관여한 대가임을, 시간에 무심한 어떤 힘의 영향임을 이해하게 되었다.(p.92) 


저자는 25년이라는 시간의 축척을 되짚으며 결국 그 일기로부터 해방된다. 기억하지 않아도, 기록하지 않아도 삶은 계속되며, 과거의 나는 일기장의 기록이 아닌 오늘 숨 쉬는 내가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녀는 망각을 선택함으로 해방되었다.

내가 이 글을 시작한 것도 처음은 그저 읽고 사라지는 책을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언젠가 다시 이 기록을 꺼내 그 책을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기록하지 않아도 책들은 내 삶에 꾸준히 쌓일 것이며 그것들은 결국 내 삶이 증명할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나는 이 기록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아무래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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