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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숨
김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평점 :
7편의 단편에는 불안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성소수자의 모습으로, 외국을 홀로 던져진 불안한 여행자로, 입양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7개의 단편을 차례로 읽어내고는 나 또한 깊은 숨을 쉬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세상을 향한 한숨인지, 그래도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안도의 숨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왜 제목이 '깊은 숨'일까 싶었는데 내가 그 의도를 다 알지는 못하겠지만 나 또한 깊은 숨을 쉬고 말았으니 제대로 찾은 소설집의 제목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슬쩍 올려다본 TV에는 마침 신당역에서 일어난 끔찍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스토킹에 이어..) 이런 범죄가 뉴스에서 쏟아진 것이 10년 정도 되었나. 어쩌면 그 이전부터 이런 범죄는 흔했지만 이것이 공론화된 지 10년 밖에 안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토킹 사건을 두고 '남자가 좋아하는데 여자가 안 받아줘서 이리 되었다'라는 시의원의 개소리에 작은 욕지기를 내뱉었다. 사건이 커지자 정부와 경찰은 이제야 대책을 마련하겠단다. 도대체 몇 명이 죽어나가야 시스템이 막아서는 대책이 마련될까. 여성이라는 이유로, 약자라는 이유로 눈치 봐야 하고 조심해야 하고, 피해자임에도 '니가 처신을 똑바로 했어야지' 따위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까.
얼마나 그렇게 내달렸을까. 움직임이 잠잠해졌다. 나는 어느새 잠의 품속에 고스란히 안겨 있었다. 잠? 잠이 누구지? 지금 나를 끌어안고 있는 것은 오로지 존재뿐이었다. 아주 오래전, 태초부터 나를 품고 있던 그는 존재 그 자체였다. 그가 나의 오른쪽 귀를 자신의 왼쪽 가슴에 갖다 댔다. 쿵, 쿵, 쿵. 움직이는 심장 소리. 우리는 태초부터 존재했고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그 존재를 끌어안았고, 그는 나를 보듬어 안았다. 우리는 오래, 아주 오래 그곳에서 흐르고 있었다. (p.96 <가만히 바라보면 中>)
답답한 가운데서도 희망적이었던 것은 7개의 단편의 주인공들은 자신을 옭아매는 불합리와 환멸의 순간에서 누구도 도망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들은 맞선다. 물론 그 끝이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마도 그들은 지지 않을 것 같다. 바라기는 어디도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그들의 존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갈 때에 나도 그들과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유의 책을 읽자면, 참 마음이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