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나무 작업실
소윤경 지음 / 사계절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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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꽃 핀 과수원의 오솔길을 느린 호흡으로 걷는 듯한 에세이를 만났다. 흰 도화지의 연필 느낌 생생한 데생이 표지인 것도 감성을 자극한다. 호두나무 작업실이 있는 작가님의 양평 집 모습인가 보다.

단정한 단층의 양옥집, 작가님 말씀으로는 잘 다듬지 않는다는 나무들, 한쪽의 채소들이 이랑 따라 심겨진 텃밭, 그리고 벤치, 파라솔 아래 탁자와 의자. 이 공간 속에서 작가님이 숨을 쉬며 작업도 하시며 텃밭의 채소도 흙을 탈탈 털어 수확하시고 나이든 반려견 보리의 이마에 꽃송이 얹어놓고 사진도 찍으시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나이든 보리의 귀찮으면서도 충직한, "주인이 좋아하시니 내 따라 주리오."하며 가만히 있는 그 모습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사랑스럽고 따뜻한지 모르겠다.

에세이를 읽으면 좋은 것이 나도 저절로 호흡이 가지런해지고 소파에 살짝 등을 기대게 되는 것이다. 나는 걸음도 빠르고 손도 빠르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대학 시절에는 말이 느리고 어눌하다고 미국 교포냐는 말까지 들어봤다. 지금도 말은 결코 빠르지 않지만 언제나 무엇인가에 쫓기듯 빨리빨리 하는 버릇이 사회생활 속에서 길들었다. 늘 긴장하고 주어진 일은 데드라인보다 적어도 며칠 일찍 끝내고 다른 일을 기다리는 습관이 들어서 뭐든 빨랐다. 수 조에 이르는 데이타를 다루는 부서는 아니었지만 일단 금융기업의 기획팀이었기에 부서들로부터 자료를 받아 엑셀과 파워포인트로 정리하는 일들이 많았다. 노트북 속에 빠져들 듯 일을 하고 있자면 옆에서 농담으로 미싱 돌리냐고 할 정도로 타다다다 쉴 새 없이 자판을 두드려댔다. 아이들과 함께인 지금 역시 아이들이 "엄마~" 부르기 전에, 혹은 애들 재우고 밤 늦게 작업을 하며 늘 맘이 바쁘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손과 머리를 재촉하는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에세이를 읽으며 마음이 릴랙스가 되었다.


정갈한 언어 속에 공감가는 글들이 얼마나 많은지... 오랜만에 노란 형광펜으로 그어가며 읽었다.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 그림책을 한동안 펼쳐보기조차 싫을 때가 있다. 작업하던 몇 년 동안, 진퇴양난의 순간들을 다시 상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완성된 책이 만족스럽지 못한 탓이다. 누군가 책에 사인을 해달라고 할 때면 고마운 마음 한편, 창피함에 낯 뜨겁기가 일쑤다. 표지만 슬쩍 넘겨봐도 숨이 콱 막힌다. 뭔가 수치스러운 일이 들통난 것처럼.

<호두나무 작업실> 79쪽

아직 출간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내 첫 역서를 아직 펼쳐보지 못하고 있다. 수십 번 읽고 수십 번 고치며 최선을 다했지만 만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책장을 들쳐보면 창피하고 왠지 뒤통수가 간질간질하다. 차라리 역서의 원서는 다시 읽을지언정 나의 언어 필터를 거친 번역서를 다시 읽을 수가 없다. 언제 정도면 남이 번역한 책 읽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작가님도 그렇다고 하니 이런 위로가 다시 없다. 작가이자 화가이시기에 예술가의 완벽주의라고 생각되는데 공감할 수 있어서 큰 위로가 되었다.

어려운 것, 낯선 경험들을 겪고 나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삶의 자신감을 얻게 된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젠 억지스러운 용기보다는 익숙한 일상들이 더 중요해지는가 보다.... 해낸 일은 잘한 것이 되고, 하지 않은 일도 크게 후회로 남지 않는다.

<호두나무 작업실> 51쪽

작가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건 본인이 꼭 해야 할 일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키기 위해 굳이 도전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우선순위에서 좀 미뤄놓아도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오셨을까? 익숙한 일상의 소중함, 끊임없는 성취 욕구로 스스로를 닦달하고 채찍질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작가님의 소소한 일상,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찾아오는 단상,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기쁨, 현재 살아가는 지역에서의 모험과 탐험, 순수미술과 상업미술 사이에서의 갈등과 갈등을 통해 얻은 답, 그리고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는 철저한 생활인으로서, 프리랜서로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고민과 애환,그리고 삶의 일부인 여행에 관한 생각과 여행인으로서의 정서가 때로는 유머로, 때로는 가슴 찡한 감동으로, 때로는 공감으로 내게 다가왔다.

5월이 오면 호두나무 그늘은 야외 작업실이 된다. 이파리가 풍성해지는 늦봄과 초여름 사이, 이곳은 천국의 책상이 아닐 수 없다. 여린 연두색 이파리와 열매에서는 애플민트 향기가 난다. 잎사귀에 코를 대고 숨을 깊이 들이쉰다. 기분이 금세 좋아진다.

<호두나무 작업실> 212쪽

책 제목이기도 한 표제어 호두나무 작업실은 가장 마지막 장을 장식하고 있다. 작가님의 야외 작업실, 애플민트 향기 나는 그 신록의 호두나무 그늘 아래 있을 테이블에 옆에 작은 책상 놓고 나도 같이 거기서 작업하고 싶다. 글을 읽고 사진으로 뵈었을 뿐인데 친구가 된 기분이다. 별 말 없이 각자의 작업을 하고 같이 고추장에 슥슥 비벼 산채비빔밥 해 먹고 오후에 차 한잔 마시고 그럼 좋겠다.

책의 내용을 120% 돋보이게 해 주는 멋진 표지작업와 책 내부의 서체를 선정한 편집부의 안목과 노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책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나의 이런 생각에 부합하는 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리고 번역작업을 통해 출판의 지극히 일부분을 경험해봤지만 어떤 작업 하나도 허투루 이루어지는 것이 없었다. 책 한 권은 비단 작가의 것만이 아닌 그 작업에 참여한 모든 작업자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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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처럼 책을 보고 책을 쓰다 - 차별화된 기획을 위한 편집자들의 책 관찰법
박보영.김효선 지음 / 예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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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책이다. 역시 베테랑 편집자들이 쓴 최적의 안내서라는 생각이 든다. 예비 작가들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이자 모든 독자가 읽으면 유익할 만한 책이다.

한 달에 책 한 권 안 읽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는데 1만 부만 넘어도 베스트셀러로 인정받는 시대라는데 왜 이렇게 책을 쓰고 싶은 사람이 많은 건지 늘 궁금했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자기 표현과 발신의 장이 넓고 다양해진 게 아닌가 싶다. 또한 등단 작가의 검증된 필력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신선하고 매력적인 콘텐츠를 갈망하는 시대의 요구가 반영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예비 작가들이 책을 어떻게 보고 시류를 읽고 기획할지, 둘째, 실제로 책 쓰기의 노하우, 셋째, 유용하고 실제적인 책 읽기 기술이다.

 

                            

<"시작이 반"이 아니라, "기획이 반">


무엇보다 저자들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말하고 있는 바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획'이라는 것이다. 기 출간된 도서들을 분석하고 "기본적인 정보+자신만의 특성"을 담은 기획을 하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에서 인용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말했다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깊이 탐구하여 노하우를 정리해 낼수록 독자들은 그 콘텐츠를 매력적이고 참신하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저자에게는 자신의 경험에 대한 탐구가 필수라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한다. (113쪽)

결국 자신이 걸어온 삶의 궤적, 진창에서 뒹굴며 얻은 경험이 조개 속의 진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 진주를 어떻게 발견하고 캐내는가, 가 중요한 것 같다. 이 탐구 역시 글을 쓰고 고민 또 고민을 통해 얻어지는 것 같다. 일단 글을 쓰려고 컴퓨터를 켜고 앉으면 글은 손가락이 쓰는 것인지, 엉덩이가 쓰는 것인지 처음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술술 풀려서 나도 모르게 좋은 글이 완성될 때가 있는 것 같다.

역시 자존감이 중요한가 싶기도 하다. 뜬금없는 말 같지만, 나는 내 자신의 경험을 탐구하고 싶지가 않다. 가만히 있어도 불쑥불쑥 떠올라서 유쾌하지 않은 내 존재의 역사, 가능하기만 하다면 바쁜 일들 속으로 도피하고 싶은 것이 지금도 솔직한 심정인데 굳이 굳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야 하나 싶다. 다만 예전에는 음지에 있고 비주류로 취급받았던 사람들이 진솔하고 담백하게 자신들의 경험을 직시하고 책으로 내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 것은 대단히 긍정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필요한 책 쓰기 기술>


매우 신선했던 포인트는 책을 쓰려 하든 그게 아니든 책 쓰기 기술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콘텐츠를 발견하고, 적확하게 표현하는 것.

모든 사람들이 책 쓰는 기술을 아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첫 번째 자신의 콘텐츠를 발견하는 기술이다. 두 번째는 자신의 콘텐츠를 제삼자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고 매력적으로 다듬어 표현하는 기술인데, 여기에는 문장력과 원고 구성력이 포함된다. (120~121쪽)

네이버가 우리 사회에 가장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블로그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이다. 싸이월드처럼 한순간 날아가버릴까 두렵기도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블로그에 자신의 일상을 올리고 서평, 영화 리뷰, 상품 리뷰 등을 올리며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콘텐츠를 널리 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작가의 기회를 얻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어떤가? 어떤 면에서는 글쓰기에 자신이 있고 어떤 면에서는 자신이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시험(논술) 혹은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꽤나 잘했던 것 같다. 대학 입시에 갑자기 도입되었던 본고사와 논술에 있어서 별도의 사교육 없이 늘 전국 몇 백 등 안에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지만 학부와 대학원 시절, 친구, 후배 및 동생 레포트를 숱하게 대신 써줬고 거의 A를 받아줬으니 그리 나쁜 필력은 아닐 것이다.

자랑을 늘어놓았지만 역시 결론은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양은우 작가님의 책을 읽은 것은 아닌데 블로그 포스팅에서 '작가의 사회성'에 관해 읽은 적이 있다. 사회성이 책에 드러나고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골자였던 것이다. 즉 나는 평가를 위한 극소수의 대상을 위한 글은 쓸 수 있지만 대중을 위한, 작가의 사회성이 중요한 글은 못 쓴다는 것이다. 하기사 누가 글 쓰라고 한다고 이런 고민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기 기뻐야 하는데 여전히 백지의 A4 화면을 마주하고 있으면 속이 울렁거린다. 또 어느샌가 몰입하여 손가락이 글을 쓰고는 있지만 역시 자진해서 굳이 쓸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부담없이 이렇게 올리는 서평은 즐겁지만 이 역시 그저 두려울 때가 있다.


<"함께 쓰고 함께 가기"의 중요>

역시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하는 것인가? 저자들은 '합평'을 추천하고 있다.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 몇 명과 모임을 만들어 원고를 평가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는다면 어떨까? 이런 걸 합평이라고 한다. 합평을 할 때 대원칙이 있다. 첫째 예의를 지킬 것, 둘째 소비자로서 정확하게 평가할 것, 이다. (165쪽)

정확하게 평가하되, 예의를 지킬 것. 매사 특히 인간관계의 황금률인 것 같다. 먼저 비평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자문해봐야 할 것 같다. 예의를 지켜도 지적은 지적이니 말이다. 단지 책을 쓰는 목적뿐만 아니라 독서모임이나 스터디그룹도 같은 취지일 것이다. 뭐든 혼자 침잠해서 혼자 몰두하고 혼자 답을 내야 하는 나 같은 타입에게는 쉽게 실행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마음을 열어놔야겠다. 언젠가는 책쓰기를 위한 합평은 아니더라도 스터디그룹 등을 운영하며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서평의 팁을 따라 나름대로 써본 서평이지만 때로 나는 전문가 서평을 표방? 혹은 모방한 글들보다 원초적으로 정말 '재미있다', '재미없다', '지루하다' 이런 독후감을 찾아 다닐 때도 있다. 어차피 전문 서평가들이 멋진 서평을 써줄 텐데 블로거들은 자유롭게 써보아도 좋지 않을까? 진솔하고 소박한 독후감이 더 좋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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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 댄서
조조 모예스 지음, 이정민 옮김 / 살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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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 비포 유』의 강렬함과 섬세함을 기대하며 조조 모예스의 신간을 기대하는 마음을 열었습니다. 700페이지나 되는 분량을 소화할 수 있을까 살짝 염려하면서요. 역시나 유려한 문체와 스토리텔링에 힘입어 일단 리듬을 타니 이틀 이상 걸리지 않더군요. 등장인물들의 시점이 교차하며 스토리가 진행되기 때문에 초반부에는 앞뒷장을 넘겨가며 분위기를 파악할 필요가 좀 있습니다.

이 책에는 상처입은 영혼들이 총출동합니다.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 승마학교에서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으나 사랑하는 영국 여인을 만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영국으로 건너왔으나 적응할 수 없었던 할아버지 앙리, 망나니 같은 엄마가 일찍 죽고 할머니, 할아버지(앙리)와 온화한 시간을 보내다가 할머니가 몇 년 전, 돌아가시고 이번에는 갑자기 할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사랑하는 말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사춘기 십대 소년 사라, 네 번의 유산을 겪으며 자신의 곁에 있지 않는 바람둥이 기질 다분한 남편과 별거하며 이혼을 준비 중인 헛똑똑이 변호사 너태샤, 그리고 바람둥이 기질 다분한 매력적인 사진작가이자 곧 너태샤의 전 남편이 될 맥.

런던을 배경으로 이들의 시선이 교차합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어긋나버린 결혼을 종료하여야 할 시점이라 변호사인 너태샤는 마음이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맥이 싫어서가 아니라, 가장 슬프고 힘들었던 순간에 자신을 버려둔 것이 못내 원망스럽습니다. 그런 맥이 갑자기 자기도 집을 반은 소유하고 있다면 들어와 살겠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우연히 야밤의 슈퍼에서 물건을 슬쩍하는 것을 목격하고 하룻밤 묵게 해 준 소녀 사라까지 위탁아동으로 집에 들어오게 됩니다. 본의아니게 동거가 시작된 세 사람. 그리고 사라의 모든 기이한 행동의 원인이 되는 사라의 아름다운 말, 게다가 가출한 사라와 말을 좇아 프랑스까지 건너가는 로드트립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우왕좌왕 왁자지껄한 이 우연들의 향연이 이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말과 소녀가 볼을 맞대고 긴 속눈썹을 맞댄 사진. 이 시선이 너무나 좋지 않나요?

젊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건 희망이 되살아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라고 맥은 생각했다. 때로는 신뢰할 수 있는 말 몇 마디 덕분에 믿음의 불꽃이 다시 타오르기도 한다. 미래는 장애와 실망이 가득한 길이 아니라 그 자체로 경이로운 대상이라는 믿음.(671쪽)

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언제든 어느 때든 신뢰할 수 있는 말 몇 마디 때문에 다시 믿음의 불꽃이 타오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자가 말하고자 한 핵심이 이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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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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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시온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작가이다. 작품에 따라 호불호는 있지만 어떤 직업의 세계를 뼛속까지 파고들어가는 주제의 작품은 모두 너무나 사랑한다. 이번 작품은 식물학자의 세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리얼하게 보여준다.

실은 작년 초에 일본 서점대상 후보작 발표가 나자마자 이맘때쯤 원서로 바로 구해서 읽고나서 한눈에 반했다. 올해 다시 내 사랑하는 모국어로 만난 『사랑 없는 세계』는 또 한번 내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주었다.

우직하게 요리를 향한 열정을 불태우는 청년과 그 청년이 사랑하는 풀밖에 모르는 20대 여성 대학원생, 그들을 둘러싼 개성 넘치고 정겨운 동료들, 동네 사람들이 하모니를 이루어 한 장이 넘어가기 전에 한번씩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외곬처럼 식물의 세계에 매달리는 이들의 캐릭터, 오지랍 넓지만 속정 깊고 마음 착한 동네 사람들이 주거니받거니 만담하는 듯한 대화는 어찌나 웃긴지 모른다.

요리를 사랑하는 청년과 풀을 사랑하는 여성의 성장담이 무엇보다 가장 뿌듯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죽은 후에도 육체적인 후손이든 정신적인 후손이든 동반자이든 그 성장은 계승되어 지속되며 거창한지 모르지만 인류 전체가 성장해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성장소설을 너무나 좋아한다. 그것은 식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식물과 함께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이들의 모습에 내 모습을 겹쳐본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성장하기를 멈추는 나태를 멀리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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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모르는 그리움 나태주 필사시집
나태주 지음, 배정애 캘리그라피, 슬로우어스 삽화 / 북로그컴퍼니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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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울적해지고

맘 먹은 대로 잘 안 된다 느껴질 때,

나만 아무 일이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꼬이고 사나워지려 할 때,

시를 읽는다.

정화작용을 가진 시들이

혼탁하게 진흙탕을 일으킨

마음의 웅덩이를 가라앉혀준다.

좋아하는 나태주 시인의

《너만 모르는 그리움》은 필사시집이다.

몇 십 년간 가리워져 있던

문단의 추한 모습이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30년 이상 삶과 언어가 일치하는

아름다운 노년의 시인이 주는

삶의 울림이 더욱 큰 것 같다.

어찌 보면 곰살맞고 낯간지러운 사랑의 시어들은

연인 혹은 배우자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와 부모님 누구를 향하더라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실제로 시인도 무남독녀 외동딸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이 아름다운 시들을

눈으로 쓰다듬으며 입으로 소리내어 읽고,

손으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쓰며 맘에 새긴다.

5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이

감성을 촉촉하게 만져준다.

Part 1 사랑한다, 나는 사랑을 가졌다

Part 2 그대 그리워 잠 못 드는 밤

Part 3 안녕 안녕 오늘은 좋은 날

Part 4 나의 가슴도 바다같이 호수같이

Part 5 날이 맑아서 네가 올 줄 알았다

 

 

시화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시어와 그림이 잘 어우러진다.

그리고 여백에 나의 손글씨로 필사할 수 있다.

캘리그라피를 멋지게 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책에 낙서한 수준이 되어버려 약간 속상하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내 필사시집이 되었다.

그래서 소중하다.

시집에는 시인의 친필 필사 시도 담겨 있다.

 

동글동글 원만한 글씨체는

시인의 마음인 듯하며 더 포근하다.

맑은 날

오늘 날이 맑아서

네가 올 줄 알았다

어려서 외갓집에 찾아가면

외할머니 오두막집 문 열고

나오시면서 하시던 말씀

오늘은 멀리서 찾아온

젊고도 어여쁜 너에게

되풀이 그 말을 들려준다

오늘 날이 맑아서

네가 올 줄 알았다.

이토록 맑은 날 두 팔 벌려

반가운 사람을 맞이할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말간 봄을 기다리며

남은 겨울을 나태주 시인의 시집과

함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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